26년만에 수술, 제도 악용 막는다
A씨는 2017년~2020년 총 다섯 차례에 걸쳐 412일 동안 2222만원의 실업급여를 타냈다. 취업과 실직을 다섯 번 반복한 것이다. A씨가 낸 고용보험료는 572만원. B씨도 5번 일자리를 잃었다며 251일 동안 1481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B씨는 고용보험료로 85만원을 냈다.
정부가 이들처럼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타는 사람에 대해서는 급여액을 최대 50%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용보험기금이 바닥 나는 가운데 ‘실업급여가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보험위원회는 이 같은 방안이 담긴 ‘고용보험 제도 개선안’을 이날 의결했다. 고용부는 위원회가 의결한 제도 개선안을 바탕으로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을 개정해 조만간 입법예고하고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가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타는 사람에게 ‘페널티’를 주는 것은 실업급여 제도가 도입된 1995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개선안의 핵심은 실업급여를 반복해서 받는 이들이 받는 급여액을 줄이는 것이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가 원치 않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위원회는 5년 동안 3번 이상 실업급여를 탄 경우 3번째부터 단계적으로 실업급여를 줄이기로 했다. 구체적인 비율은 미정이지만, 3번째는 10%, 4번째는 25%, 5번째는 40%, 6번 이상 50%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수급 자격을 인정받은 뒤 실제 실업급여를 받는 ‘대기 기간’도 길어진다. 지금은 1주일인데 5년간 3번 이상 받으면 2주, 4번 이상 받으면 4주로 늘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은 그동안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르바이트와 실직을 반복하거나, 적극적으로 제대로 된 새 일자리를 찾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반복 수급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노동계는 ‘일부 악용 사례를 잡으려다 실직자의 생활 안정을 돕는 제도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정부는 노동계의 이런 반발을 고려해 반복 수급에 제재를 가하되, 적극적 재취업 노력이 있거나 임금이 현저히 낮은 경우, 일용직이었던 경우 등은 실업급여를 받은 횟수를 셀 때 제외해 주기로 했다. 또 경영계에도 일부 책임을 지웠다. 특정 사업장의 3년간 실업급여 수급자 중 12개월 미만 근무자 비율이 90%를 넘고, 낸 보험금 대비 받아간 금액이 다섯 배가 넘으면 추가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금은 사업주가 직원 월급의 0.8%를 실업급여 보험료로 내고 있는데, 해당 사업장에는 보험료율을 1.0%로 올린다. 근로자들이 오래 일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일자리를 잃는 것에 회사 책임도 있다고 본 것이다.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반복 수급 제재에는 단서를 달고, 경영계에도 페널티를 주는 일종의 절충안을 낸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그만큼 고용보험기금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고용부와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에 적자로 전환했고, 이후 적자 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2017년 말 10조2544억원이었던 기금 적립금은 사실상 올해 모두 바닥나 최대 2조6994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