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온화한 태양이 이글이글 솟아오르며 대지를 고루고루 비추자 온갖 무수한 꽃들이 하나 둘 고개를 쳐들며 피어나기 시작한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 색깔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화단을 예쁘게 수놓으면 관광버스는 춤추듯 끝없이 달려간다. 산자락에 싱싱하게 널려있는 참나무들이 산들바람에 긴 팔을 휘저으면 자연은 온통 초록물결로 물들어가고 여행객들의 소곤소곤 다정한 이야기들은 청 숲을 맴돌며 널리널리 물결처럼 퍼져만 간다.
버스가 무안군에 들어서자 도로 옆으로 넓게 펼쳐진 밭마다 양파와 마늘이 가득가득 푸르게 익어가고 있어 이곳이 새삼 이들 집산지임을 깨닫게 된다. 운남면에서 압해도를 가기위해 김대중 대교를 건넌다. 짧지만 웅장한 다리가 섬 쪽으로 걸쳐있다. 바다는 종일 하얀 포말을 그리며 부서져 내리고 고깃배들은 물고기를 잡기위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대통령을 닮아서인지 다리도 위용을 과시하며 튼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차가 섬의 길쭉길쭉한 도로를 한참 달리고 달려 산언덕을 힘들게 넘어서자 머얼리서 아득히 끝을 볼 수 없는 다리가 희미하게 나타난다. 다리 주위에 가까이 멀리 작게 늘어선 올망졸망한 섬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오죽 섬이 많았으면 1004 대교란 이름을 붙였을까? 남한은 면적은 작지만 섬수로는 세계 4위라고 한다. 주위에 섬수로 이름을 붙였지만 원래는 김대중 대교라고 이름 붙이려 했는데 이웃 다리에 이름을 빼앗겨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높게 솟아올라 거의 이십 리 정도를 달리자 아슬아슬 주변의 섬들과 바다가 모두 한 눈에 들어와 삼삼한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는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를 쉼 없이 달려간다. 섬들이 모두 큼직큼직하여 너른 논과 밭에는 역시 어린 벼와 마늘과 양파가 익어가고 있어 전혀 섬 같은 기분이 안 들고 묵묵히 육지를 지나는 것 같다.
한참 후 작은 섬 박지도에 도착하자 사람 옷과 집과 나무다리가 온통 보라색(퍼플)으로 꾸며 퍼플 세상이 벌어졌다. 보랏빛 옷을 입으면 오천 원 입장료가 공짜라 너도 나도 보랏빛 천지다. 바다 위로 연결된 퍼플다리를 살금살금 걷는다. 마파람이 어느 새 알고 옷자락을 스치며 쫒아 오고 파아란 물속에는 고기들이 한가하게 파도를 가르며 몰려온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많은 여행객들이 부산스럽게 수다를 떨고, 섬의 기념물에는 온갖 자태를 뽐내는 예쁜 아가씨들이 연신 스마트폰 불빛에 미소를 보내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유가 있고 천사처럼 알록달록 아름다운 옷을 뽐내며 활짝 웃고 있다. 모두가 오늘 만큼은 공주와 왕자가 된 것처럼 신나게 보인다. 섬의 공원 곳곳을 돌아보며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배낭을 메고 천천히 비탈진 산을 올라간다. 산을 오르자 빙글빙글 푸른 활엽수들이 늘씬 늘씬 우거진 사이로 한참을 걸어가자 좁다란 둘레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갑자기 땀방울과 함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산 중턱을 넘어서자 어디선가 쏴아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 그곳으로 가니 시원한 옹달샘에는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고 사람들은 표주박으로 촉촉이 목을 적신다. 다시 힘을 내서 산마루로 올라가자 둥그런 당산에는 팽나무 밑에 신을 모시는 자리가 잘 보존되어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산을 돌아 서쪽으로 내려오는데 너른 밭들에서 무수히 피어나는 어여쁜 보라색 라벤더 꽃들이 하늘하늘 춤추며 향기를 발산한다. 작은 남프랑스에 온 듯 천지가 라벤더 꽃물결로 출렁인다. 코끝에 스쳐가는 알싸한 라벤더 향이 산허리를 돌고 돌아 푸른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으로 사람들의 꿈을 모아 진하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길가에는 작은 전기차들이 손님을 태우려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박지도에서 반월도로 가기위해 바다 위로 아득히 놓여진 퍼플교를 오랫동안 건넌다. 바다 가운데로 오자 머리에 쓴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 듯 거세지며 추위가 오싹오싹 몰려든다. 그 동안 숨어있던 추위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너무 추워 소매가 긴 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반월도에서 천천히 동네를 돌아 뒤에 위치한 한적한 오솔길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묘들이 나타나고 피지 않은 꽃나무들이 산소를 지키고 있다. 문득 쓸쓸함과 외로움이 여기저기 감돌았지만 따스한 햇살은 무심히 온 산하를 비추고 있다. 산 정상으로 가는 대신 섬 전체를 돌아보기 위해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대부분 사람은 바닷가 퍼플교 주변에 몰려있고 도로에는 가끔 지나치는 등산객이나 작은 버스만 마주칠 뿐 너무 조용해 한가로움이 밀려왔다. 산 아래로는 작은 마을이 포근히 안겨 아늑함을 더해줬고 널려있는 밭에는 마늘과 양파가 다수를 차지하며 점차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섬 서쪽을 막 돌아가고 있는데 도로 밑 개천가에 저절로 자생한 머위가 우거져 있다. 보는 사람도 없어 잠시 망설이다 개울가로 내려가 머위 줄기를 뚝뚝 끊어 배낭에 담으니 제법 무거워 졌다. 즐거워 휘파람 불며 둘레 길을 한참 걸으려니 땀도 흐르고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한참을 더 걷자 쉴 수 있는 나무그늘 밑 의자에 등산객 둘이 앉아서 쉬고 있다. 나도 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필요한 힘을 보충하려니 쌓인 피로가 몰려온다. 도로 북쪽 길을 따라 걷는데 산 밑에 아직 간척이 덜된 민물로 뒤덮인 너른 야생지가 나타났다. 어림잡아도 논 20여 마지기는 될 것 같다. 짐작해 보니 이곳은 섬 앞에 마을과 너무 떨어진 외진 곳이라 개척이 늦어진 것 같으나 쌀도 귀한 섬에 이런 넓은 보배의 땅이 있다니 빨리 논으로 개간해 경작을 해야 할 것 같다. 논길을 조금 더 걸으니 소로 길이 나타나고 조금 후 섬을 가로지르는 퍼플교가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섬을 한 바퀴 돈 지 벌써 2시간이 지났다. 한적하다 갑자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며 왁자지껄 가게와 다리가 보라색으로 출렁인다. 해안은 파도가 겹겹이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고 육지는 사람들로 물결친다. 퍼플교를 건너 오늘 하루 정든 관광객들과 다시 만나 버스에 오른다. 사람들도 보랏빛 섬 관광에 만족하는지 높다랗고 길다란 1004대교 위를 버스가 달려가자 여기저기서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홍시처럼 빠알갛게 익은 저녁노을은 다리 끝에서 예쁜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고.........
첫댓글 작은 남프랑스에 온 듯 천지가 라벤더 꽃물결로 출렁인다. 코끝에 스쳐가는 알싸한 라벤더 향이 산허리를 돌고 돌아 푸른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으로 사람들의 꿈을 모아 진하게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