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에서 발견하는 삶의 자유 의지
민병식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베 코보(1924-1993)는 초현실주의적인 수법을 통해 인간 소외, 정체성 상실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실존주의적 작품들을 남겼으며 일본의 카프카라고도 불린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한 그는 ‘모래의 여자’는 일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떠났다가 또 다른 일상의 반복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로 그는 1962년에 이 소설을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교사 니키 준페이, 그는 1955년 8월 18일 집을 떠나 희귀 곤충을 채집하러 해변의 모래언덕으로 향한다. 그가 찾은 해안가 모래 언덕에는 기이한 마을이 있다. 부서져 가는 벌집처럼 지하로 20미터 가까이 깊게 팬 모래 구덩이마다 바닥에 집을 지어 놓았다. 남자는 처음에는 이런 형태의 주거생활이 이상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면 좋은 얘깃거리가 될 추억 정도로 치부한다. 막차를 놓친 그는 인근 마을에 홀로 사는 여인의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된다. 당연히 민박집도 모래구덩이 속에 있다. 이때부터 상황이 급변하는데 이튿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줄사다리가 없어져 모래구덩이 속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것이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계략으로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고 만 것이다다. 더구나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히지 않도록 매일 삽질을 해야 한다. 자신하고는 전혀 상관 없은 일을 해야 하는 남자는 화를 내고 일을 거부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생존과 관련되는 물을 미끼로 남자를 궁지에 몰아넣어 굴복시킨다. 남자는 결국 물을 얻기 위해 여자의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모래를 파내고 또 파낸다. 남자는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 치밀한 계획 아래 모래구멍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그는 소금밭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를 구출하여 다시 구멍으로 돌려보낸다. 남자는 할 수없이 여자와 모래를 파며 일상을 반복하던 중 우연히 모래 속에서 유수 장치를 통해 물을 발견한다.
물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무의미를 상쇄시킬 새로운 발견이었다. 모래 마을에서 물은 권력이고 무기다. 남자는 권력자가 그렇듯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가진 자의 여유다. 그동안 탈출을 꿈꾸던 공간을 이제는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웃음이 나오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도망칠 여건이 생겼음에도 탈출을 뒤로 미룬다. 이제 모래구멍 속 일상과 그 안에서의 반복, 그리고 탈출 시기가 남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되었다. 내 삶에 대한 자유의지가 바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엄성이다.
결국 그는 탈출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모래마을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선생의 역할을 하던 모래 구덩이 밖의 일상과 구덩이 안의 일상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남자는 모래구덩이에 갇히기 전 교사로서의 삶도 모래 구덩이 속에서 모래를 파내는 일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 다 모두 그저 똑같은 하루,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었고 의미 없는 행위들의 반복이었다. 결국 인간의 삶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응ㄹ 말해주고 있다. 그때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 도망가고 싶었던 세상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준페이의 모습은 오늘날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는 오늘도 잡히지 않욕망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삶의 자유의지와 존재이유는 뒤로 숨겨둔채로 말이다.
사진 네이버
첫댓글 제가 좋아하는 책이 바로 아베코보의 모래의 여자거든요 여러 번 읽었어요
그러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