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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계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목회자는 명 설교가로 이름이 자자했다. 교회가 지방에 위치해 있었지만 방송을 통해 설교가 송출 되고, 교단지에 글을 썼던 필자였기에 전국적인 인지도가 상당했다. 책을 저술한 것도 20여권이 넘고, 교회의 규모도 상당해서 수도권의 대형교회에 필적할 만했다. 목사의 은퇴는 교단법상 70세가 정년인데 65세에 조기 은퇴하며 목회의 끝자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 목회자가 현직에 있을 당시 아들의 유학비로 교회 헌금 중에서 1억이 넘는 금액이 지원됐는데 은퇴할 무렵 그 교회의 한 중직자가 그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했고, 그것이 매스컴을 타며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수십 년 간 목회의 현장을 갈무리하는 그 타이밍에 유종의 미는 커녕 파렴치한으로 내몰리는 그 상황에 그 목회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분이 자주 찾았던 기도원 입구에 집회를 앞두고 교회 성도 10여명이 몰려와 현수막을 들고 데모하듯 항명하던 장면을 목격했던 필자는 마음이 아렸다. 시간이 지나고 그 일이 잘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회자에겐 평생의 기도와 정성이 쌓였던 그 교회를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기도 하며 사람 때문에 상처 주고 상처 받기도 하게 된다. 현직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자주 고백했던 그 분은 은퇴하자마자 평소 다짐했던 전국의 시골 교회와 개척 교회를 찾아다니며 낮아진 겸손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쓴다는 후문을 들었다.
유명 가수나 작곡가의 경우 표절시비에 더러 휘말리게 마련이다. 모방이 없이 창조는 탄생할 수 없는 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가사의 유사성이나 특히 작곡에서는 거의 비슷한 흐름에 표절 시비에 걸려든다. 표절이라고 고백하기도 하고 딱 잡아떼기도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전후 한국 교계에서 설교를 자체적으로 완전히 창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세계적인 목회자로 명성을 날렸던 조용기 목사 조차 교회 개척 초기 설교 원고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금세 바닥난 설교 자료로 인해 유명한 사람들의 설교를 인용해 짜깁기하고, 베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미나 유럽의 신학자들의 책이나 설교가의 설교를 인용했고, 표절이라 할만큼 가져다 써도 일반 신자들은 눈치채지도 못했다. 산업화 이후 한국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했고, 그에 따라 교회도 굉장한 가속도로 증가해 신자가 천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 무렵부터 교회 목사의 설교 표절 논란도 많이 일어났다. 성도들의 지식적인 수준이 상당해졌고, 인터넷의 비약적인 발달은 검색하기만 하면 설교 원고는 바로 출력돼 표절에 대한 판단이 바로 드러났다. 목사의 설교 표절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식이 증가할수록 더해진다는 것이다. 신학 공부는 더 많이 하고, 깊이는 더 깊어졌지만 설교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쓴다니 참으로 역설이 아닌가.
남의 것의 모방에서 나만의 창조성이 빛나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만의 것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아닌가. 한국 교회는 목회자의 의존도는 도가 지나칠 만큼이다. 목회자의 개인 시간이 보장되어야 기도의 영성을 쌓을 수 있고, 조용히 묵상하며 설교 원고를 집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는 신학 공부하는 동안 일생의 설교 원고 초고는 마련해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신학을 지도하는 교수들도 자신의 제자들이 설교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도록 신학 지도를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