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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여자
동쪽에 자리한 아홉 개 능의 영령들이
비 맞은 이불처럼 무거운 세월을 덮고 누워 있다가
이른 아침 방문객들의 발자국 소리에 깨어 풀이슬로 세수를 한다.
시각적으로 완만한 곡선과 푸른 잔디로 덮여 평화로운 서정성을 느끼는 무덤이지만
잠들어 있는 왕의 여자 그녀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재조명하고 싶어진다.
여자가 품고 살았던 오욕칠정은 죽어 육신과 유리되어 어떻게 될까
면면히 흐른 역사의 주인공들 앞에서 내 생각으로 유추해보지만 알 수 없는 영역일 뿐.
욕망과 좌절
억압과 애욕
미망과 결핍
모색과 허망
분노와 갈등
수많은 사건으로 기록된 그녀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하며 경외감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다.
현릉에 누워있는 문종의 아내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를 살펴본다.
문종의 아버지 세종은 며느리 덕이 없어서
병적으로 투기가 심한 첫째 며느리(휘빈 김씨)는 폐위되자 자살을 하고
둘째 며느리(순빈봉씨)는 동성연애자로 폐위당하고 친정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다.
왕세자일 때 후궁으로 이미 딸을 낳은 권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적자인 단종을 낳고
삼일 만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산후병으로 죽고 만다.
따지고 보면 왕실 여자들의 산부인과 문제로 역사의 비극이 종종 발생했다.
그녀가 안 죽었다면 단종의 비극도 없지 않은가
죽어서도 편치 못했던 가엾은 그녀
안산에 묻혔다가 남편이 9년만에 즉위하자 현덕왕후로 추송되고 소릉으로 명명되었다.
2년 후 남편이 죽고 아들 단종이 즉위하자 남편과 현릉에 합장릉으로 겨우 안착하였다가
아들 단종이 3년의 재위기간을 끝으로 계유정란으로 세조에게 권좌를 뺏기고
상왕이 되었다가 1년 뒤 성삼문 단종 복위 사건으로 상왕이 폐위되며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장인과 처남을 잃고
유배지 영월 땅에서 17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12세에 즉위하고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불안하게 5년을 살다가 사약을 받은 것이다.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가 원한에 찬 현덕왕후가 나타난 악몽을 꾸고 심장마비로 죽자
화가 난 세조가 현덕왕후를 파묘해 강가에 버리는 수모도 겪는다.
현덕왕후는 나중에 중종7년에야 비로서 74년 만에 현릉 문종 곁에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안장된다.
문종 곁에 누워있어도 그녀의 원혼은 영월 땅을 배회하며 절규했으리라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을 죽게 했던 왕후의 자리가 이렇게 애달플 줄 짐작이나 했을까
하지만 부모가 사망한 어린 왕자의 삶은 권력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다.
목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목릉은 왼쪽에 선조가 묻히고 오른 쪽엔 정비인 의인왕후,
조금 떨어져 동쪽 언덕엔 계비인 인목대비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
그녀는 선조의 나이 18세에 15세 나이로 선조의 정비가 되나 가례 전 소주방 나인이었던
공빈 김씨 (광해군과 임해군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진 남편에게 박대를 받고 만다.
더구나 그녀는 생산 능력이 없는 석녀였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중전의 의무로 후궁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잘 보살펴 살아있는 관음보살이란 수식을 단다.
선조는 조선 최초의 방계혈통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선조하면 임진왜란과 붕당정치의 시작과 세자 광해군이 떠오른다.
선조가 가장 총애했던 공빈 김씨가 임해군과 광해군을 연년생으로 낳고
2년을 산후풍을 앓다 박복하게도 25세에 죽고 만다.
이 때 선조는 또 다른 후궁 인빈 김씨에게 빠져있었다.
선조의 총애로 기세가 등등했던 공빈 박씨가 남긴 유명한 말
“의인왕후의 심정을 알겠어요”
누구든지 경험 한 만큼 이해한다는 공식을 검증하고 죽었다.
의인왕후는 공빈 김씨의 두 아들 임해군과 광해군을 친자식처럼 사랑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인빈 김씨만 데리고 피난을 간다.
홀로 피난길에 오른 의인왕후의 마음고생이 컸다.
전쟁이 끝나 왕은 환궁을 했으나 의인왕후는 광해군을 의지해 해주에서 4년을 같이 있다가 환궁을 한다.
그러나 피난 생활 중에 얻은 병으로 46세에 소생도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사랑도 못 받고 자식도 없이 첩의 자식들만 바라보면서 산 그녀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더구나 국모로써의 덕목을 지키느라 스트레스는 좀 많았을까
결정적으로 첩과 같이 피난 가는 남편에게 받은 상처는 끝내 그녀를 병으로 쓰러지게 했다.
인빈 김씨는 네 명의 왕자와 다섯 명의 옹주를 낳고 자신의 아들 신성군으로 세자 책봉후 자신은 왕비가 되려 했지만
성종의 예를 들어가며 후궁으로 정비를 삼음은 불가하다고 극구 반대하는 신하들 때문에
그 꿈은 무산되고 광해군에게 읍소해 자기 자식들은 무사했다.
그리하여 선조의 정비를 처녀 간택하여 삼으니 그 녀가 바로 비운의 인목대비 영창대군의 생모 인목왕후이다.
인목왕후
그녀는 의인왕후가 죽자 국상이 끝난 후 선조나이 51세에 18세의 나이로 가례를 치른다.
어머니 나이뻘의 후궁들과 광해군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나이였지만 조심 또 조심하여 선조의 사랑을 받는다.
방계혈통이란 콤플렉스가 있는 선조는 은근히 적장자를 기대한다.
4년 후 선조가 기대하는 적장자 영창대군을 생산하나 3년 후 선조가 갑자기 57세로 죽자
인목왕후의 간절한 희망은 절망의 검은 먹구름으로 변하고 만다.
영창의 나이는 겨우 3살에 광해군의 나이는 34세였으니 게임이 안 된다.
25세의 인목왕후는 선조의 고명을 듣기위해 끝까지 침소를 지키지만
끝내 영창대군으로 후사를 이으라는 고명을 못하고 죽은 늙은 남편 앞에서 오열을 한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인목왕후는 대비로 물러나 질곡의 삶을 살아야했다.
아들과 친정이 몰살을 당하고 서궁으로 유폐되어 목숨만 부지하다 11년 후 인조반정으로 복수를 하지만
8살 나이로 강화도에 위리안치 당해 참혹하게 죽은 아들 영창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인조 1년에 도망가는 광해군의 아들을 잡아 죽이고 며느리는 자결을 하고 부인도 목을 매 자살을 했지만
막상 광해군은 유배지에서 인목왕후보다 9년을 더 살았으니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오월비상 같은 여인의 한으로도 세상이치의 순리는 불가항력이었다.
다행히 딸 정명공주는 서궁에 함께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원되어
노처녀로 중추부동지사의 아들 홍주원에게 시집가서 83세까지 잘 살았다.
한 많은 여인 인목왕후는 인조의 보살핌 속에서 49세의 나이로 인경궁 흠명전에서 눈을 감는다.
목릉에 제일 먼저 의인왕후가 들어오고 선조가 8년 후 경릉 자리로 갔다가
22년 만에 천장되어 들어오고 본처인 의인왕후가 죽은 뒤
32년 만에 비로서 인목왕후가 들어와 동원이강릉의 변형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삼각구도로 앉은 세 개의 무덤사이로 돌로 만든 길이 있다.
기찻길 모습을 하고 있어 무척 정감이 간다.
그들이 그길로 왕래를 하며 지낼까? 수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지 않았을까?
아침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답사의 영역을 넓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원릉으로 올라가면서 역사에 대한
흥미는 고조된다. 대장님의 설명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조의 첫 번째 부인인 정성왕후는 영조가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있을 때
혼인을 하고 경종이 병약하여 후손도 없이 죽자 연잉군으로 있던 영조가 즉위해 정성왕후가 되었다.
영조보다 2살 위였으나 후손도 없이 66세까지 잔잔하게 사셨던 분이었다.
정성왕후가 죽자 영조는 66세에 15세인 정순왕후를 계비로 얻는다.
영조는 두 명의 부인과 네 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두 부인에게선 후손을 얻지 못하고
후궁인 정빈 이씨에서 효장세자를 얻었으나 10살에 요절을 한다.
또 다른 후궁 경빈 이씨가 사도세자와 다섯 명의 옹주를 낳았으나
둘은 이름 지을 시간조차 없이 죽고 세 명의 화평, 화협, 화완 옹주만 살아남았는데
화평옹주가 출산하다 죽고 화협 옹주는 병으로 죽고 화완 옹주만 영조의 특별한 익애 속에서 궁중에 살게 해 주었다.
화완에 대한 영조의 편애는 병적일 만큼이나 강렬했다.
하긴 화완 옹주가 시집가서 낳은 백일 된 딸이 죽자 갑자기 남편과 시부모마저 차례대로 죽어
홀홀단신이 되었으니 측은지심이 없었겠는가 그녀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오만방자한 모습으로 오빠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일조를 한다.
이야기가 옹주로 흘렀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가 죽자 처녀 간택을 통해 영조의 계비가 된다.
영조보다 51년이나 어리고 사도세자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다.
그녀에게 늙은 영조는 남편이 아니라 오빠 김구주와 노론파의 정치적 야심을 펼 바람막이였고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이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영조 말년에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암살하려다 영조에게 들키지만 영조는 그냥 봐주었다.
너무 어린 아내에게 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역사는 기록돼있다.
정순왕후 그녀의 정치적 야심은 대담했다.
하지만 자기가 죽이려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재위기간에는 숨죽이며 때를 기다린다.
드디어 정조가 죽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56세의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실시하며 스스로 여자국왕이라 칭하고
과감하게 국왕의 모든 권한과 권위를 행사하였다.
중요한 조정 중신들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서약도 받아내며 정조의 장례가 끝나자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소론시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이 때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과 혜경궁 홍씨의 동생도 처형된다.
친정 집안의 당파인 노론벽파를 위해 천주교도 300명을 학살하는 등 그녀의 전횡은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여 서서히 개혁으로 진보하려는 역사를 퇴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자로서의 평범한 경험을 하지 못한 정순왕후에겐
갱년기 과도한 남성 홀몬 작용으로 더욱 정세를 쥐락펴락하진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이해해 본다.
어찌했던 그녀는 61세 천수를 다하고 죽어 쌍릉의 형태로 여기 묻혀있다.
영조는 첫째부인 정성왕후와 서오릉에 묻히고 싶어 했는데 정조에 의해 동구릉에서 정순왕후랑 누워있다.
동서고금을 통한 역사에는 피가 묻어있다.
권력을 장악하려면 반대세력을 제거해야 했으니 부모도 형제도 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 틈새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곡예사 같은 삶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이 번 답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른 아침에 능에서의 사색은 영혼의 세계를 완숙토마토처럼 예쁘게 숙성시킨다.
짧은 글의 후기지만 많은 역사공부를 하게 만들었다.
대장님의 자료집을 위한 독서의 량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을 했다.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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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논문을 쓰셨네, 논문을!! 앞으론 나문 박사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네^^. 권력을 사이에 둔 궁중의 암투. 무한의 욕망과 불안이 낳은 비극이랄까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행복으로부터의 유폐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부나비처럼 달려들어야 하는 건 무지와 집착의 유혹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 같고요. 잘 읽었습니다. 아낙님, 아니 나문 박사님!! ^^
삼실에서 몰팅~~~역시 아낙언니다우세요~~역사속인물들은 맨날 듣고 머리에 담아보려해도 뉘가 뉜지..헷갈린데...요점정리를 잘 해주셨어요~~언니의 수려한 문체로다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아낙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조선조 궁중비사를 비장하고 있는 동구능은 <판도라 상자>같은 느낌! 삼강오륜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왕조가 막상 그 반대되는 악행만을 일삼지 않았던가! 이런 복잡한 사연마다 정쟁으로 비화되어 숱한 인간들이 서로죽이고 고문하고 정배보내는 파쟁의 끝은 필경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았던가! 이런 역사에서 배운 게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진리 - 그래서 아직도 정치판은 늘 살얼음판이고 세상은 늘 살벌한 것일까!
덕분에 다시 한번 더 조선 왕릉에 대한 공부를 해봅니다~ ^^*
역사공부가 저절로... 역쉬 아낙님의 교습방법은 탁월해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맞아~맞아~머리에 쏙쏙~~아낙이 짱이야~!!!
우와~~~ 풀어 쓰는 왕들의 여자...최고예요. - 여자로서의 평범한 경험을 하지 못한 정순왕후에겐 갱년기 과도한 남성 홀몬 작용으로 더욱 정세를 쥐락펴락하진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이해해 본다. - 이 부분에 완전 실신~~
미 투네~~~ㅎㅎ
나두!!!!! 완전 실신!!! 황홀한 실신, 부러운 실신!
와~~ 탄복입니다. 열심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심경까지 유추하시면서 왕들의 여자를 꼼꼼히 설명해 주셨네요.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아낙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공부를 다시하게 만드시네,,,아낙언니 감동 짱이야~~~요,,,어쩜 이리 세심하실까??/
난 동구능을 돌아 나오면서부터 벌써 헷갈리기 시작하던데 어쩜 이리도,,,저는 늘 잊어버리고 헷갈리는게 역사이야기예요 아무래도 난 인문, 사회쪽은 영~~~ㅎㅎㅎ 다시한번 복습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낙님의 힘이 느껴집니다. 감탄! 또 감탄!!
오메````나---대장님이 꼬리글이라도 달면 안 쫓아낸다고 해서^^오랜만에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와~~~! 여인천하에 대한 공부를 다시금 해 봅니다. 아낙님이 깨워주는 왕이 여자들에 대한 삶~~! 같은 신분으로 여인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었던 아낙수나문님.. ㅎㅎ 감사합니다요^^*
소설 한편 잘~~ 읽었습니다. 언니 대단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