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급성 골수성 백혈병) 투병 일천마흔일곱(1047) 번째 날 편지,4(이슈-issue,정치)-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7월 20일 목요일이란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리투아니아에 방문한 김 여사가 수도 빌뉴스에서 명품 매장에 방문한 모습이 현지 언론에 보도되며, 김건희의 명품 쇼핑 논란에 정치권 공방이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는데, 리투아니아 현지 매체 ‘주모네스’는 7월 12일(현지시간)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는 50세의 스타일 아이콘: 빌뉴스에서 일정 중 유명한 상점에 방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구나..
김건희가 하루 전인 7월 11일 경호원과 수행원 16명을 대동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막은 채 ‘두 브롤리아이(Du Broliai)’에서 쇼핑을 했다는 내용인데요. ‘두 브롤리아이’는 패션·잡화 명품 브랜드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이라네.
이 같은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며,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곧바로 해명에 나섰는데,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김건희가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은 한 것은 맞고 안내를 받았지만, 물건은 사지 않았다. 들어갈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게 인물이 호객을 했다.”고 해명했다니, 믿을 수 있는 것을 말해야 믿지....
하지만, 대통령실의 해명이 오히려 논란을 키운 모양새로, 야당은 ‘대통령실 해명이 부적절하다.’며 강력히 비판하는데,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7월 15일 국회 브리핑에서 “김건희는 쇼핑할 의사가 없었는데 상인의 호객행위 때문에 명품 매장에 들어갔다는 말인가”라며, “상인이 10여 명의 경호원을 뚫고 영부인에게 호객했다니 그걸 해명이라고 하느냐”고 반문했구나,.
이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의 어이없는 변명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변명이 김 여사의 명품 쇼핑에 화가 난 국민의 짜증 지수만 올린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는데, 김건희의 쇼핑 논란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구나.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2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정치 커뮤니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대통령 해외 순방 중 명품 쇼핑,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53명 중 48%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문제없다”는 응답은 35%로 조사됐다네.
정치 성향별로 의견이 극명히 갈렸는데, 진보 성향의 90%, 중도진보의 76%가 김건희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외교 목적으로 방문한 자리에서 명품 쇼핑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인 반면 보수 성향에서는 김건희가 쇼핑을 했더라도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네.
보수 성향의 70%, 중도보수의 59%가 “쇼핑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명품 매장을 구경하는 행동은 개인의 자유며, 야당의 괜한 꼬투리 잡기라는 주장이 대부분인데, 중도 성향에서는 김건희의 쇼핑이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38%로 긍정(33%) 평가를 근소하게 앞섰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1910년 9월 10일.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의 한 저택. 중년의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그는 막 아편을 탄 술을 스스로 먹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남자는 곁에 있던 동생에게 “세상일이 이 모양이니 선비가 마땅히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먹기 전) 그릇에서 입을 뗀 것이 세 번이니 내가 이렇게 어리석단 말인가.”라고 말을 했다네.
그렇게 숨져간 사람은 매천 황현으로, 이후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독립운동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았고, ‘이달의 독립운동가’에도 선정돼 대한민국은 그를 여러 차례 기렸는데, 왜일까?
강렬했던 그의 죽음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데, 그는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 주권이 박탈된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난 뒤 자기 운명을 스스로 마감했는데, 나라가 망한 사실에 선비의 죽음으로 항의한 것이라네.
사실, 황현은 대한제국 멸망에 책임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 황현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데,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의 후손이었지만, 황현의 가문은 이후 유명한 관리나 대학자를 배출하지 못해 전라남도 광양의 시골 지주 가문 정도 위상이었고, 황현은 평생 광양과 구례를 벗어나지 않았다네.
관직의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30대 중반, 그는 과거시험에 응시해 합격하지만, 당시 시험관은 그의 답안지를 보고, 처음에는 1위로 매겼지만 ,그가 시골 지주의 별 볼 일 없는 유생인 것을 알고, 2위로 강등한다네.
황현은 불합리한 현실에 관리 생활을 하지 않는 삶으로 대답하는데, 이후 아버지의 설득으로 다시 한번 과거시험을 보지만, 변하지 않은 부패상을 보고 낙향한 그는 지리산 자락에 조그마한 집을 스스로 짓고,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다네.
사회에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는데, 황현의 실력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는 김택영, 이건창 등 당대의 저명인사들과 교류했고, 그는 죽을 때까지 당대 조선에서 자신이 들은 사건을 모아 <매천야록>이라는 기록을 남긴다네.
풍문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명확한 역사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시골에 은거한 선비가 서울에서 벌어진 일을 건너 들었다는 점에서 황현이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데, 1910년 경술국치를 들은 황현은 죽음을 준비한다네.
절명시를 남기면서 그는 제 죽음이 임금에 대한 ‘충’(忠)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인’(仁)에 의한 것이라고 했고, 더 정확히 그는 제 죽음에 대해 “나는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하나 나라가 사대부를 길렀는데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네.
황현의 말처럼 경술국치의 책임은 그에게 있지 않음에도 그는 ‘사람다움’(仁)이라는 가치와 사대부라는 국가 지도부 일원으로서 책임의식을 지키기 위해 자결이라는 수단을 택했는데, 대한민국이 조선왕조 선비로 죽은 그를 기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네.
매천 황현의 죽음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책임의 무게’로, 황현은 국가의 멸망에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책임질 만한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자신이 사대부라는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나라의 멸망에 책임을 졌다네.
100년 뒤 대한민국에서도 이 책임의 무게는 변하지 않는데, 2023년 7월 6일 법원은 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는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종합상황실장에 대해 보석을 결정했고,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 등에 이어 이들도 풀려나면서 ‘이태원 참사’로 기소된 피고인 모두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됐다네.
법원 결정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도, 이들이 책임지지 않았다고 하려는 것도 아니고, 한국 형법의 근간은 무죄 추정의 원칙인데, 이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보석에 의한 불구속 상태의 재판이 꼭 무죄를 암시하는 것도 아니라네.
문제는 1년이 다 돼가는 이태원 참사에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 중 누구도 ‘정치적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용산구 국회의원 출신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구청장이 사퇴하지 않는 것에 “(박 구청장이)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어서 그걸 유죄로 예단해서 미리 물러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물러날지 말지는 본인이 판단할 텐데 주변에서 물러나라 마라고 하는 것은 직권남용이 될 수도 있는 부분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니 정신나간 놈일세.
정치적 책임에 소극적인 방어논리를 사용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이 법원의 보석 청구 인용에 따라 2023년 6월7일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섰구나.
검찰은 ‘이태원 참사’의 주요 관련자 중 한 명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6개월이 넘도록 기소 여부를 결론 내지 않았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사망했는데, 치안 책임자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국가의 공소권을 쥔 기관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미적거린다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치안업무의 정무적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의 탄핵으로 업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는데,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지도층이 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책임질 수는 없고, 또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회피가 될 수밖에 없다네.
그 회피가 일상화가 되면, 국가는 결국 무너지게 되는데, 매천 황현은 죽기 직전 “가을밤에 앉아 생각해보니 지식인 하기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고, 죽음을 앞두면서 “내가 (독약이 든) 그릇에서 세 번이나 입을 뗐네”라고 말했다네.
죽음을 앞두고, 인간적 망설임이 엿보이는데, 그가 죽음을 택한 건 강한 책임감 때문으로, ‘책임의 무게’에 대한 깊은 고뇌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매천 황현처럼 책임을 질줄 아는 이런 관리와 지도자가 있는 나라를 보고 싶구나.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오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핸드폰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외국곡] I`ll Feel a Whole Lot Better-The By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