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흥미로운 억만장자" 브라질 테니스 챔피언 5번 차지 하버드大 경제학과 3년 만에 졸업 225억弗 보유한 브라질 최고 부자
"고급스럽고 세련된 사람" 워런 버핏 매혹시킨 '투자 동반자' 월마트·파나소닉 창업자와 교류 그들의 경영지혜 적용해 기업 키워
"현금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 기업 인수 후 가차없이 구조조정 버거킹선 2만8천명 일자리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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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2013년 세계 최대 케첩업체 하인즈를 사들였을 때 세계 언론들은 그와 함께 하인즈를 인수한 공동 투자자에 주목했다. 주인공은 브라질 최대 사모펀드(PEF) 3G캐피털의 호르헤 파울루 레만 회장이었다. 평소 수익만 노리는 단기투자를 비판하며 “PEF는 포르노 판매점 같다”고 꼬집던 버핏이 PEF와 손잡은 배경을 모두 의아해했다. 그해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버핏은 이 같은 의문에 “레만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사람”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깐깐하게 사물을 통찰하는 것으로 유명한 버핏마저 홀려버린 레만은 225억달러(약 24조2600억원)를 보유한 브라질 최고 부자면서 지난해 기준 세계 31번째 부자다. 하인즈를 비롯해 패스트푸드체인 버거킹, 세계 최대 맥주 회사 안호이저부시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브라질 테니스 챔피언을 5번 차지한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2013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그를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억만장자’라고 부른 것도 과장이 아니다.
테니스 스타가 못 돼 선택한 금융업
레만은 194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스위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때문에 그는 지금도 브라질과 스위스 국적을 모두 갖고 있으며 가족들이 사는 스위스 취리히와 리우데자네이루를 자가용 비행기로 오간다. 고등학교 때부터 테니스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국가대항 테니스대회인 데이비스컵에 한번은 브라질 대표로, 또 한번은 스위스 대표로 출전했으며 윔블던 테니스대회 출전권을 따내기도 했다.
1958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고향인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이 그리워 미국에 오래 있기 싫다”며 3년 만에 학사학위를 받았다. 수강 과목의 과거 시험 문제를 샅샅이 훑고 담당 교수와 수업 내용을 사전에 조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1년 졸업과 함께 스위스 제네바의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에 입사하며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테니스 선수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스타가 되기는 힘들겠다고 판단해 다른 길을 찾은 것이 금융업”이라고 말했다. 1971년 레만은 동업자들과 함께 은행 가란시아를 80만달러에 사들이며 투자활동을 시작했다. 레만은 1998년 매입가의 843배에 달하는 6억7500만달러에 가란시아를 크레디트스위스에 매각했다.
이 와중에 레만은 1982년 소매유통체인 로자스아메리카나스를 인수해 브라질 첫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89년에는 브라질 맥주업체 브라마와 언타르치카를 인수해 남미 최대 맥주업체로 키웠다. 2004년 벨기에 인터브루, 2008년 미국 안호이저부시까지 합병해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가 탄생하게 된다.
가란시아 매각 이후 2004년 2명의 파트너와 PEF 3G캐피털을 창업한 레만은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M&A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010년 버거킹을 40억달러에 사들여 식품업계 최대 M&A를 기록했고, 2013년 하인즈에 이어 2014년에는 캐나다 커피체인 팀호튼스를 인수했다.
벤치마킹의 대가
레만은 젊은 시절부터 해외의 좋은 경영 사례를 연구해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란시아를 경영하면서 미국 최대 IB 골드만삭스의 경영 체제를 그대로 들여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1970년대 골드만삭스는 아직 미국을 대표하는 IB는 아니었지만 레만은 골드만삭스의 파트너 시스템에 매력을 느꼈다. 실적을 올린 직원에게 더 많은 연봉이나 보너스를 주는 대신 회사의 지분을 나눠 가질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이는 당장은 부자가 될 수 없지만 회사의 성장과 함께 재산이 불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 직원들이 회사일에 더욱 매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가란시아는 1980년대 브라질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이 됐고 ‘브라질의 골드만삭스’라는 평가를 들었다.
소매유통업체인 로자스아메리카나스를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다. 유통업은 생소했던 레만은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에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무작위로 발송했고, 결국 샘 월튼 월마트 창업자와 연락이 닿았다. 레만은 그에게서 고객과 직원 관리는 물론 유통망과 공급업체 장악 요령까지 그대로 배워 로자스아메리카나스에 그대로 적용했다.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자를 직접 찾아간 것도 유명하다. 레만은 “마쓰시타 회장이 500년 후의 파나소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몇 년 후도 고민하지 않던 경영 관행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 회장의 ‘20-70-10’ 법칙도 철저히 따랐다. 잘하는 인재 20%는 승진시키고 못하는 직원 10%는 퇴출하는 조직관리 방법이다. 레만의 동료들이 그를 “좋은 사례를 스펀지처럼 흡수해 따라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버핏도 압도한 기업가치 평가능력
레만은 2000년대 초 면도기업체 질레트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며 1989년부터 이 회사에 투자하고 있던 버핏과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질레트 이사회에서 자주 마주치며 투자 기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당시 질레트 최고경영자를 맡았던 제임스 킬츠는 “중국 배터리업체 투자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을 때 레만은 적정 가격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버핏을 포함한 다른 이사회 멤버를 압도했다”며 “문제의 이면을 읽고 본질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코카콜라 등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제품을 애용하는 버핏과 달리 레만은 인수한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를 갖고 있지만 물 이외의 음료는 거의 마시지 않고, 햄버거는 버거킹 인수 직후 한번 먹어봤을 뿐이다.
레만은 기업을 인수한 뒤 피도 눈물도 없는 구조조정을 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버거킹 인수 직후에는 수익이 나지 않는 점포를 대폭 정리해 2만8000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절감한 비용으로 레만은 기존 매장을 재단장해 다음해 더 높은 수익을 올렸다. 하인즈에서도 미국과 캐나다 직원 중 9%가 회사를 나갔다. 3G캐피털의 한 관계자는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사업가들은 고객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레만은 현금이 전부라고 말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