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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네 명을 부르심 1:16~20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권위 있는 새 교훈 1:21~34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 드니라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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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쫓아내십니다. 이에 무리가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며 놀랍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와 각종 병자를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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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네 명을 부르심 1:16~20
예수님은 그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전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던 시몬과 안드레, 배에서 그물을 깁던 야고보와 요한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17절). 고대 사회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는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교사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죄의 권세에 묶인 영혼을 복음의 그물로 건져 내어 하나님 자녀로 삼는 사역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따라오라.”라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들의 결단이 돋보입니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사람들을 배에 버려두고(남겨 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18, 20절). 제자도의 출발점은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복음 전도를 위해 내가 기꺼이 포기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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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새 교훈 1:21~34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권위 있는 가르치심에 경탄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친히 선포하시기에 당연한 결과입니다(요 1:14). ‘권위’(22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수시아’는 ‘왕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때 회당 안에 있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 지릅니다. 예수님이 귀신들을 멸할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 아들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5절)라고 꾸짖으시자 귀신이 순종해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중 하나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요일 3:8).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비롯해 각종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예수님은 영과 육의 치유자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위 있는 주님 말씀 앞에 내가 겸손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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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모든 권리를 다 내려놓고 이 땅에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되는 권리, 물질과 명예,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셨습니다. 귀신 들렸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맨발로 걸으신 그 십자가의 길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맨발로 걷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복입니다.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배와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셨습니다. 선교 단체 YWAM 설립자 로렌 커닝햄이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주 기뻐하며 새 신을 사 주었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로 살아가라는 의미였습니다.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새롭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가 되십시오. 예수님과 걷는 길은 승리와 기쁨의 길이요, 복된 길입니다.
시작의 지혜 / 강준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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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장 17~18절
복음은 인생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물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이전 삶의 방식과 목적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영혼을 억누르는 죄악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고 고통에서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합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능력을 누리고 또 전하는 삶을 삽니다.
죽음과 어둠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광채 앞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다. - 앨리스터 맥그래스
오늘의 기도
주님, 아프고 지친 인생에 온전한 치유자 되시는 주님이 계시니 두려움을 떨치고 힘을 얻습니다. 주님을 깊이 알아 가고, 주님께 간절히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헛된 것을 과감히 버리고, 영혼을 살리시는 주님을 담대히 따라가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66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오늘 본문은 갈릴리 초기 사역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며 또한 많은 사람의 질병과 귀신을 내 쫓으시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제자들을 부르심, 회당에서 가르침,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심 등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베드로와 안드레에 대한 예수님의 콜링입니다. 이는 그들을 부른 것도 되지만 실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부르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그들의 직업은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선지자와 같은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생업도 포기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즉시 따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 함께 일하고 있던 아버지 곁도 떠납니다. 사람을 살리는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원보다 급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습니다. ‘제자 됨’의 기본은 ‘즉각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이야기 할 때는 호칭 순서가 바뀌는 일이 없이 항상 그 순서를 따릅니다. 따라서 서열상 야고보가 형이고 요한이 동생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 중에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사도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교회를 사수하고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등 여러 책들을 기록합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종 사촌 지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의 질병을 고쳐주셨다는 기록입니다. 그런 것으로 본다면 분명히 베드로는 결혼했고 아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가톨릭의 일부 사제들이 베드로는 독신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사제들의 독신주의의 근거로 삼은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에 엄연히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또한 많은 증인들이 있는 관계로 옳은 주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이 증인입니다. 사역할 때 베드로는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고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했기 때문이지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교부에 따르면 베드로의 아내가 먼저 순교하였는데, 그 때 베드로는 아내를 향해 오직 주님만을 생각할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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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곧장 제자들을 부르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복음전파는 사람들을 통하여 전달되기 때문이겠지요. 멀리 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자격을 따진 것도 아닙니다. 어부건, 세리이건, 열심당원이건 상관하지 않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내십니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여행합니다. 어쩌면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씻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먹는 것 밝히는 자, 그리고 성격이 비뚤어져 늘 부딪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모두 품습니다. 잔소리하지 않습니다. 모두 사랑해 주십니다. 그렇게 3년을 사십니다.
제자들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자를 주님은 한 번도 내친 적이 없습니다. 병자건, 죄인이건, 귀신들린 자이건 개의치 않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도 강도를 품었으니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불쌍한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두면 모두 멸망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로,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그렇지요. 되찾아야 하기에 주님은 찾아오는 자들을 결코 피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분의 눈엔 오직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영혼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실은 굶주리고 있는 그들을 긍휼히 보셨기에 일어난 것이지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사람들을 보셨을 때 그렇게 예쁘진 않았을 것입니다. 흉측하기 이를 데 없고, 냄새 나고, 역겨웠을 것입니다. 영혼이 정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을 어루만져 주시고 싸매 주십니다. 불치병도 고쳐 주십니다. 긍휼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깨끗하게 해주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귀한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은 세상에 둘도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도 사람을 그렇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보기에도 사람은 냄새 나고 역겹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지어진 존재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 그분의 성품과 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을 평가할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마저 사람을 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람을 볼 때 긍휼히 여기고, 불쌍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귀한 영혼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겉을 볼 것이 아니라 속을 보면 좋겠습니다.
겉 사람은 내색하지 않고 평안해 있을지 몰라도, 속사람은 울고 있으며, 아파하며, 누군가의 사랑을 간절히 찾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이유이지요.
오늘 주님의 마음과 시각을 갖고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세상에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미워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입니다.
그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 앞서 가는 자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관료들이 따르고 있다면 그 앞서 가는 자는 정치지도자일 겁니다 사장들이 따르고 있다면 그 앞서 가는 자는 회장일 겁니다 많은 팬들이 따르고 있다면 그 앞서 가는 자는 연예인일 겁니다 이렇게 따르는 자들이 앞서 가는 자를 나타내기 때문에, 세상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제한합니다
자기의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로 가난하고 소외된 어부들과 죄인들과 병든 자들과 귀신들렸다가 고침 받은 자들과 세리와 창기들과 눈먼 자들과 여자와 어린 아이들로 채우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에 관하여 추정하기를 사마리아 사람이든지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요8:48)
세상은 이런 판단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의치 아니하시고, 낮고 천한 자들이든지 무명하고 가난한 자들이든지 다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기 낚는 어부를 사람 낚는 어부로 바꾸시고, 가난한 자들로 하나님의 영으로 부한 자들로 바꾸시고, 미련한 자들로 하나님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자들로 바꾸시고, 연약한 자들로 세상을 이기는 강한 자들로 바꾸시고, 겁쟁이들로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다윗의 용사들로 바꾸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바꾸셨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또한 소망 없던 우리를 하나님과 친밀하게 가까워지게 바꾸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2~13)
또한 성령 없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바꾸셨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3:6~7)
제자들을 택하신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가르치시고, 열병으로 앓아누운 시몬의 장모와 많은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내쫓아 주십니다. 지금도 어떤 정치인이든지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카메라를 앞세워 모든 이들에게 자기의 ‘올바른’ 생각을 알리고 ‘죽은 위인들께 경배’하고 거침없이 스스로가 규정한 ‘적폐’에 대한 정죄와 지지에 기반한 ‘실력’행사를 하는 것이 첫 발걸음이 되는 것처럼
세상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능력이 있으셨고 구원자 곧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로 오신 분이라면 당연히 권력과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직접 들어가 실력행사와 함께 세력을 규합하고 로마제국의 심장부와 담판을 짓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주님은 변방의 아픈 자, 귀신들린 자에 관심을 먼저 두고 무지한 자, 길 잃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십니다.
인생의 긴 여정, 때론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실패와 성공, 기쁨과 슬픔,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결국 진정으로 가야 할 곳, 지켜야 할 사람, 그리고 마음에 두고 기도할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하고 어리석은 삶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발걸음의 인도자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온전한 순종과 겸손으로 엎드리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2~13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 간 시험을 받으심
14~15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서 복음 선포의 사역.
16~20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다. --- ~~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죄인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종으로서 구속 희생하신 측면과 먼저 겸손과 자기 희생으로 주께서 치루신 수난과 구속의 종으로서 사역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전함으로써 당시 고난을 당하고 있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한 로마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과 확신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마가 복음의 기본 주제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구원과 승리의 확신을 주기 위함이다.
종으로서의 봉사, 희생 그리고 결국 부활 승천하신 승리는 예수의 복음을 통해 핍박받고 있는 로마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을 얻게 한다.
적용
Q.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부름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Q. 버려 두고 따라야 할 것들에 대해 아직도 망설이는가?
Q. 영적으로 피폐한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자를 부르심(16-20)
"예수께서 배움이 없는 어부들을 선정하신 것은 그들이 그 당시의 유전과 그릇된 관습들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겸손하고 온순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교육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만일 부름을 받아 활동한다면 그를 세상의 가장 존귀한 사람들과 동일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일과를 꾸준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잠재 능력들을 일깨워 주는 데는 솜씨 있는 접촉이 요구된다. 예수께서 당신의 동역자가 되도록 부르신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과 친히 사귈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해 주셨다. 세상의 어떤 위인도 이런 스승을 모신 적은 없었다.
제자들이 구주의 훈련을 받고 나올 때에는 더 이상 무식하지도 교양이 없지도 않았다. 그들의 마음과 품성은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고의 교육 사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마음과 마음, 영혼과 영혼의 접촉을 통하여 얻어지는 그 활력을 나누어주는 데 있다. 생명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축복한 모든 생명의 추진력을 흘러 보낸 그 거룩한 생명과 3 년간 날마다 접촉하였던 그들은 얼마나 큰 특권을 가졌던가!(소망, 250).
오늘도 예수께서는 그대를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대가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어주는 놀라운 능력의 제자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십시오.
1월1일 상동역과 청라 호수공원에서
치유하시는 예수님(21-34)
"그분의 자비의 기별들은 청중들에게 맞게끔 다양하였다. 그분은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사 50:4) 아셨다. 이는 그가 가장 매력적인 방법으로 진리의 보화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의 입술에 은혜가 부어진 때문이었다. 그분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대면하여 그들의 관심을 끄는 실례들을 제시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지셨다. 그분은 상상력을 통하여 사람의 심령을 감동시키셨다. 그분의 실례들은 일상생활의 사물들에서 취하여졌으며, 비록 단순하였지만 그 안에는 놀라우리만큼 깊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소망, 253).
"우리가 사악한 자를 이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방법, 곧 말씀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가 없이는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한다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을…알리라”(요 8:32, 7:17)는 그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된다. 이런 약속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오류의 함정과 죄의 지배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회당에 있던 회중들이 놀라움으로 여전히 넋을 잃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잠시 쉬기 위하여 베드로의 집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 예수께서 질병을 꾸짖으시자 환자가 일어나서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에게 수종들었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소식은 가버나움 전역에 급속히 퍼졌다... 가정에서, 가게에서, 시장에서, 동네 주민들이 예수께서 쉬고 계시는 보잘것없는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환자들은 들것에 실려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혹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허약하여 비틀거리면서 구주가 계신 곳으로 들어왔다... 가버나움은 이전에 이와 같은 날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늘은 승리의 소리와 구원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구주께서는 당신이 일깨워 주신 기쁨 가운데서 즐거워하셨다. 예수께서 당신에게 온 자들의 고통을 목격하실 때에 그분의 마음에 동정심이 일어났으며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기뻐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환자를 치료하시기까지는 일을 쉬지 않으셨다"(소망, 259).
▧ 적용
1.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제자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자.
2. 오늘 내가 예수님께 치유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 예수께 나아가 치유함을 받아야겠다.
✔ 인생을 변화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 복음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21~28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쳤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15절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22절).. 당시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능력 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달리 참된 권위의 원천인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르치실 때 회당 가운데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5절). 이 꾸짖음 속에는 ‘더러운 입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예수님의 권위를 드러내십니다.
복음에는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결코 무능력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세력들이 아무리 강하다 하지만 내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복음을 통해 사탄의 세력들이 계속 무너져 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권세가 내 안에 임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악한 것들이 굴복하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바이러스로 인하여 병들고 상한 이 땅과 이 민족이 하루속히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 복음의 회복을 기대해야 합니다(29~31절).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온 뒤에 곧바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당시 문화는 열병에 걸린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고, 곧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능히 말씀만으로도 그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거룩하게 만드실 수 있는 진정한 능력의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1절b).. 열병에서 나음을 받자마자 수종을 들었다는 것은 단계적인 치유가 완전한 그리고 한 번에 치유와 회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어떤 대가나 조건을 따지지 않으시고, 시몬의 장모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완전한 치료와 회복 그리고 변화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존재로 있던 나에게 다가오셔서 나에게 복음을 심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 삶에 그 어떤 변화가 없다면 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완전한 치료와 회복을 주셨음에도 믿음이 없어서 여전히 무기력하게 누워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영적회복은 곧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겠습니다. 물질적 부요함등의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인생의 진정한 회복을 가져다주는 복음을 오늘도 기대합니다.
➲ 복음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32~34절).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와 기적은 자신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 땅 가운데 드러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사모한다는 것은 내 자신의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 가운데 특별한 능력을 행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통해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이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그나마 이만큼 변화 되었기에 내 인생을 변화되게 한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린 신천지의 실체가 낫낫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코로나 19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이웃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도 복음의 능력 가운데 거하여 삶의 변화를 꿈꾸어 온전한 회복과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막 1:16~34절)... 빛이 있으라...
사역 요약
32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1,22절 권위 있는 교훈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장로들의 유전을 해석하는 서기관과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아시는 분이기에, 그 가르침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근본적인 깊이가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내 삶에 주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울려퍼지도록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23-28절 권세 있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다른 어떤 행위가 필요치 않고 그저 ‘그에게서 나오라’는 말씀 한마디로 충분했습니다. 모든 영적 존재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32-34절 자신을 감추고 침묵하게 하십니다. 병을 고치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갈릴리 사방으로 퍼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다 고쳐주셨지만, 그분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귀신에게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이 그분의 정체를 증언하는 것이 무리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아가는 과정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귀신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계기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말씀과 삶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모습을 경험해야 합니다.
29-31절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에 시몬과 안드레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 현장은 늘 사람들이 모인 곳,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그곳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시몬의 집에도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원인을 알기 어려운 열병으로 시몬의 장모는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열병을 치유하십니다. 오늘 주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 또 그분의 몸 된 교회도 건물에 머물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고 그들은 즉시 따릅니다.
가버나움에서 주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외치자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시고 각종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첫 제자들을 부르심(1:16~20)
영혼 구원은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어부인 시몬과 안드레는 “나를 따라오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그물을 버려두고 즉각 순종합니다. 야고보와 요한 역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음으로써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증인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앞에
핑계와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결단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 묵상 질문: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즉시 일어나 ‘사람을 낚는 어부’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새 교훈, 새 권위(1:21~28)
예수님은 차별화된 교훈과 영적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예수님의 교훈은 당대 서기관들의 교훈과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듣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고
명령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당대 서기관들과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영적 권위와 권능이 나타나는 사역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전인적 관심과 치료(1:29~34)
예수님은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 삶의 전반적인 영역 모두에 관심을 두십니다. 조건 없이 제자의 길을 선택한
베드로의 집을 직접 방문하신 예수님은 그 가정의 근심거리였던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은 밤늦게 찾아온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까지 모두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신앙과 삶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며 복음에 전적으로 헌신할 때,
주님이 우리 모든 삶을 친히 책임져 주십니다.
- 묵상 질문: 본문에서 알 수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 적용 질문: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께 의탁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저를 제자로 부르실 때 기꺼이, 신실하게 응답하기 원합니다.
구태의연한 세상 논리와 익숙한 습관이 아니라,
오직 위엄 있는 주님의 새 교훈이 제 삶을 치유하고 움직이며 다스리기를 간구합니다.
<갈릴리 바닷가 가버나움 동네이다. 가운데 넓은 회당이 있는데 이곳에서 예수님도
가르치시고 귀신을 좇아 내셨는지 모르겠다. 회당 주변에 집들의 터가 있는데
이중에 어는 한 집은 지붕으로 환자를 내렸는 집인지도 모르겠다.
8각형의 큰 건물은 베드로탄생 기념교회이다. 베드로가 이곳에서 탄생하셨단다.
베드로 장모님도 이 동네에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님에게 이끌려 광야에서 40일간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다.
먼저 4명의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한 때 예수님의 12제자는 어떻게 하여 선택되었는가?
관심있게 본 적이 있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이것이 은혜이다.
아마도 특별한 기준이나 학력이나 외모나 재력이 있어야 한다면
나는 부름받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고 해변을 산책하셨는지 모르지만
오늘 만나는 4명의 제자는 단지 자기의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주님이 그 시간에 그 곳을 지나시다가 그냥 부르셨다.
나도 부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축복이요 은혜요 감사요 찬양이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16)
나를 따라오너라(17)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7) 말씀하신다.
놀라운 것은 그물을 버려두고 좇아간다.(17)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19)
예수님이 부르시니(20)
아비와 삯군들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간다.(20)
4명의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다.
먼저 베드로(시몬)와 안드레를 부르셨다.
다음으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다.
두 쌍다 형제이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다가 부름을 받았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다가 부름을 받았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고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일꾼들을 버려 두고 따랐다.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15-20절)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시던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있는 네 사람을 제자로 불러 세우십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우실 때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들로 그들을 부르시는 교육적으로 탁월하신 접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그들은 나신들이 가진 모든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는 놀라운 결단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강력하신 주님의 부르심앞에 그들은 결단하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부르심의 역사 앞에서 놀라운 결단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연약함이 오히려 복음을 위해 더 크게 사용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의 크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자는 그가 어떤 자이든 위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종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는가?
7일
말씀과 능력(21-27절)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은 듣는 이들이 그분의 권위를 인정할 정도로 능력있는 가르치심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기존의 율법학자들의 가르치심과 달랐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 많다고 해서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말씀에 함께 하실때에 진정으로 권위있는 말씀으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귀신도 권위있으신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 앞에 꼼짝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란스럽게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강한 행동이 아니라 그 말씀의 능력이 귀신을 내어 쫓은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능력은 없이 외적인 모습만을 추구하는 그릇된 신앙습관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능력이며 그 말씀의 능력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더욱 더 깊이 있게 하나님의 말슴을 상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2.치유하시는 예수님(28-34절)
영적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육신의 질병 가운데 있는 이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질병들을 고쳐 주심으로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결과로 인하여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시는 긍휼의 마음으로 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죄로 인하여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한 능력을 가진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치유하고 그들이 가진 아픔을 해결해 주는 곳이 되어야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라고 할 것입니다. 또한 성도된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는 선한 섬김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내 주변의 아픔을 치유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
16-20절 예수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은 지체하지 않고 따릅니다. 믿음으로 투신하고,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입니다. 지금 내가 주님을 따르는 데 머뭇거리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 전역에 퍼집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21,22절 권위 있는 교훈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장로들의 유전을 해석하는 서기관과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아시는 분이기에, 그 가르침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근본적인 깊이가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내 삶에 주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울려퍼지도록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23-28절 권세 있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다른 어떤 행위가 필요치 않고 그저 ‘그에게서 나오라’는 말씀 한마디로 충분했습니다. 모든 영적 존재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32-34절 자신을 감추고 침묵하게 하십니다. 병을 고치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갈릴리 사방으로 퍼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다 고쳐주셨지만, 그분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귀신에게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이 그분의 정체를 증언하는 것이 무리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아가는 과정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귀신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계기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말씀과 삶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모습을 경험해야 합니다.
29-31절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에 시몬과 안드레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 현장은 늘 사람들이 모인 곳,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그곳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시몬의 집에도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원인을 알기 어려운 열병으로 시몬의 장모는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열병을 치유하십니다. 오늘 주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 또 그분의 몸 된 교회도 건물에 머물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만날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할 것들을 모르는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셔서 날마다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 가운데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인도함을 받고
그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뤄가는
주님의 거룩한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뻗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에도 거룩한 예배의 함성이 퍼져나가고
이 나라와 백성에게도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담대한 증인들로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