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 제공된 경로는 조선 후기 문신 **학서(鶴棲) 류이좌(柳宜佐, 1763~1837)**가 1792년(정조 16년) '영남 만인소' 사건 당시 안동 하회마을에서 한양 성균관까지 이동한 실제 기록에 근거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세부 날짜와 숙박 지점에 대해서는 학계의 고증과 기록(류이좌의 행장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여정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 역사적 배경 1792년 4월, 영남 유생들이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청하며 올린 **'영남 만인소'**에 참여하기 위해 류이좌가 급히 상경하던 상황입니다. 당시 그는 안동에서 한양까지 약 500리(약 200km) 길을 매우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2. '이봉주'급은 아니지만, '말'을 탔을 가능성 이게 핵심입니다. 류이좌가 혼자서 봇짐 메고 터덜터덜 걸어간 게 아닙니다. 승마: 명문가 선비가 급한 일로 상경할 때는 직접 말을 타거나, 최소한 하인을 대동하고 짐을 맡겼습니다. 말이 있으면 이동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체력 소모가 적습니다. 역참 제도: 당시 조선에는 주요 간선도로(영남대로)마다 역참이 있어 말을 갈아타거나 쉴 수 있는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첫댓글 사람 다리로 돼..?
난 진심 옛날사람들이 나 보면 경악할거같음 사람이 이따구로 체력이 없을수가 있는지
조선시대에는 1일이 일주일이였나요
포장된 길도 아니었을거아녀ㄷㄷㄷ
걸어서 소백산맥 하루만에 어케 넘는건데
가능한 시간이야 저게…???
아니 몇주는 걸릴줄알았지
아니 미쳤네ㅋㅋㅋㅋㅋ체력ㅋㅋㅋㅋㅋㅋ
축지법 정도는 쓸 수 있어야 선비할 수 있나요........
아니 해지면 길이 보이시나요...?
말타고간거아니고?
달려서갔나?
걸어서 4박5일..??? 미쳤다 어떻게한거임
뛰어간건가..? 아니 뛰어도 난 못할거 같은데 와
발바닥 다 찢어졌겠네...
아니 밤에는 호랑이도 나오는데 어케하셨어요
심지어 짚신 신고 가신 거잖아...어떻게 가신겨
축지법 진짜 있었나봐
옛날 사람들이 더 체력 좋았을 것 같긴한데 그래도 어떻게 저게 가능한거지ㅋㅋ
축지법써서그래
하루에 10-12시간을 45~60킬로미터 걸은거래 개쩌는 조상님들 짚신신고 그게되노
잘못기록되거나 잘못해석된거 아닐까...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장회나루-장호원 94km나옴... 네이버 자전거경로 기준..
그땐 닦은 길이 없었으니 냅다 최단거리로 가셨던게 아닐까..?
축지법이 아니고서야...
회초리로 단련된 종아리셨을까
산넘고 그래서 거리는 줄었겠지만 개힘드셨을듯
저만큼 다시 돌아갈텐데
축지법 아니냐고
짚신신고 봇짐매고 산길을? 왐마....
진짜 건강하고 튼튼하고;;
네? 선비가 의외로 튼튼햇네
이미지에 제공된 경로는 조선 후기 문신 **학서(鶴棲) 류이좌(柳宜佐, 1763~1837)**가 1792년(정조 16년) '영남 만인소' 사건 당시 안동 하회마을에서 한양 성균관까지 이동한 실제 기록에 근거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세부 날짜와 숙박 지점에 대해서는 학계의 고증과 기록(류이좌의 행장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여정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 역사적 배경
1792년 4월, 영남 유생들이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청하며 올린 **'영남 만인소'**에 참여하기 위해 류이좌가 급히 상경하던 상황입니다. 당시 그는 안동에서 한양까지 약 500리(약 200km) 길을 매우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진짜네
2. '이봉주'급은 아니지만, '말'을 탔을 가능성
이게 핵심입니다. 류이좌가 혼자서 봇짐 메고 터덜터덜 걸어간 게 아닙니다.
승마: 명문가 선비가 급한 일로 상경할 때는 직접 말을 타거나, 최소한 하인을 대동하고 짐을 맡겼습니다. 말이 있으면 이동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체력 소모가 적습니다.
역참 제도: 당시 조선에는 주요 간선도로(영남대로)마다 역참이 있어 말을 갈아타거나 쉴 수 있는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와 저때 호랑이도 있던 시절 아님? 대단하신데...
개빡치셨나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