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복 체험기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2월 한 달을 돌이켜 보면, 다가올 새로운 장르를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보낸 기다림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다. 일찍 2월 초에 개학
하여 바로 다음날 아이들의 중학교를 알려 주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상명이, 불암이, 중계 등의 이름을 부르며 각자의 작은 갈림길
을 아쉬워들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갈 학교에 등록을 해야 했는데, 삼삼오오 아이들끼리 가기도 하고, 나는 아직 중학교에
퍽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딸아이라 직접 가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알아도 볼 겸 걸어서 교문 앞을 가는데, 몇몇 팀들이 모여서 교복을 홍보하고 있었다. 엘리트, 스쿨
룩스, 아이비 클럽... 거의 몇% 할인권을 주고, 홍보 책자를 나눠주었다. 하긴 내가 이렇게 교문 앞에서 교복 홍보팀을 만나기 이전
에 이미 아이들의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도 주소 적으라고 들이 밀기도 하고, 할인권을 남발하기도 했었다. 우리 딸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진짜 주소 적어주면 귀찮게 할 것 같다고 이름이며 집 주소, 전화번호도 하나씩 둘씩 다른 번호를 써서 엉터리로 주고
왔단다. 며칠 뒤, 진짜 주소를 쓴 아이는 당첨이 되어 업체에서 그 반 아이들에게 피자도 쏘고, 교실에 풍선 장식도 해주고 선물까
지 주었다고 배 아퍼 죽어 하긴 했다.
그뿐인가 나 역시도 그즈음 TV 광고에서 눈에 익숙한 아이돌 스타들이 교복을 입고 나와 광고하는 걸 무수히 보아왔으니 말이다.
거의 졸업 즈음해서는 발 넓은 학부모의 문자도 받았다. “***업체에서 20% 할인해 준다니, 생각 있으시면 문자주세요.” 그 엄마가
무슨 이득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복 업체의 판촉은 육해공을 방불하고 다각도로 접촉이 왔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아이 나름대로 어느 회사의 교복이 라인이 예쁘니 난 그거 하겠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참, 이때 나는 무능력해 지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교복 공동구매 등 여러 생각을 했으면서도 아이의 선택에 따라 혹은 대세에 따
라 그냥 물 흘러 가듯이 가버리게 된다. 그러니 학교에 들어가서 등록 후, 어떤 아주머니가 학교 공동구매 제품이라며 노원역 앞에
있다는 업체를 소개하며 따로 종이를 주는데, 그리 고민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그래도 학교 엄마들이 나름대로 노력은 했네’ 그
정도의 평가만 하게 된다. 학교 공동구매에 대해서는 엄마들의 판단이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작년에도 몇몇 아이들이 교복을 못
입었는데, 공동구매 제품이었대, 물건질이 그냥 그래’ 가격을 비교해 보면, 공동구매 제품은 159000원인데, 일반 업체 물건은
294000원이었다. 일반적인 가격이 그랬다. 대부분 기본은 하고, 거기에 블라우스 정도는 하나 더 구입하니 10, 20% 할인 받으신
분들도 그 가격에서 고만고만했다.
자, 교복 판촉전이 치열하고, 이미 광고로 자신의 눈을 박아버린 아이들은 그것이 아니면 자신만 뒤처지는 느낌에 너도나도 브랜
드를 선호하고, 학부모들은 새 출발하는 마당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아이들 뜻을 따라준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렇게 삼박자가
맞으면 거대한 판이 형성되어 말도 안 되는 일도 굴러가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름대로 공동구매를 성의껏 준비한 학부모도 보람차고, 새로 교복을 구입하는 일반 학부모들도 뿌듯하고 기
쁘게 교복을 마련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신문을 살펴보면 이런 우리의 바램을 실현하는 학교도 몇은 되나 보다. 모범 사례로
소개되었으니까. 그런데 의혹이 일긴 한다. 여기 우리 동네 아이들만 광고판을 쫓아 모두 브랜드를 구입한 걸까? 아닐 것이다. 그
아이들도 얘들이니 비슷한 성향을 보일 것 같은데, 혹 속을 들여다보면 몇% 안 되는 사례를 부풀린 건 아닐까. 요즘 어느 일간지
에서 사교육 없는 학교 사례로 소개하는 곳을 보면서, 정말일까 하는 의혹을 갖는 것처럼.
소심하고, 겁 많고, 튀지 않는 선에서 마음속으로만 옳은 생각에 동의하는(^^;;) 소시민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용감하지 않아도
일반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우선은 ‘교복 공동구매 위원회’가 성립되어, 정말 사심없이 최대한 질 좋은 옷을 적정한 가격에 책정해야 한다. 그 다음은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 전에 학교 측과 많은 대화와 협상이 오가야겠지만, 학교에 배정된 신입생들에게 교장선생님 이
름으로 안내서가 나가야 한다. “우리 학교는 **교복을 구매한다. 학생들도 이에 따라야 한다. 혹은 교복 물려받기 장날이 있으니
와서 선택하라” 등. 말이 안 되는가? 시장 원리에도 어긋나고, 아이들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걸까?
이번에 중계동의 어느 학교에서는 교복 리콜 사태가 있었다. 리콜이라기보다는 사후 약방문 같은 거였는데, 올해 교복의 특징이
단추, 지퍼 등을 새롭게 고안해서 더 늘리거나 줄이는 걸 자유롭게 한 면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전과 다른 걸 어떻게든 추가해
서 새로운 걸 사게 하려는 면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 학교에서는 이렇게 지퍼 등이 달린 옷을 모두 박아 오든지, 없애
라는 것이다. 말이 되는가. 그럼 그 전에 이미 아이들에게 배부가 되었어야지 다 구입하고 입학식 며칠 앞두고 예비 소집일에 그렇
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더라도 학교가 의지만 있어 먼저 나서서 제시해 준다면 아이들의 선택이 제한될 것이고, 치솟는 교복값을 잡아 앉힐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새로운 선택과 변화를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또다시 ‘미필적 고의’로 놓쳐버린 소시민 엄마는 또 혼자서 씁쓸해 한다. 혹은 아이들에
게 강변한다. 얘들아, 유관순이나 김구 아니, 이름나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구한 분들,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 남을 돕
는 분들, 이런 분들은 정말 대단한 거란다. 굉장한 용기를 가진 거지, 너희들이 단순히 아, 독립운동가구나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
할 것은 아니란다. 아, 그럼 그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실텐데, ‘저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당연
한 일을 한 겁니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된대도 저는 그렇게 행동할 겁니다.’
아, 젠장. 나는 왜 이리도 생각이 많고, 겁나는 것이 많으냐 도대체.
이경숙_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