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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SfxVRTyVuFo?si=N2j_6XYOp4I4Gotp
기도하시는 예수님 1:35~39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나병 환자 치유 1:40~45
40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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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은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고, 온 갈릴리를 다니며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한 나병 환자를 고치신 후,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널리 알리니, 예수님이 드러나게 다니지 못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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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는 예수님 1:35~39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심에도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35절)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어제 가버나움에서 말씀과 치유와 귀신 축출로 이루신 승리를 뒤로하고, 다음 사역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영적 재무장 시간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오늘 승리’에 도취해 기도를 쉬면 ‘내일 싸움’에 패배하기에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던 제자들이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7절)라며, 환호하는 군중 속으로 돌아가자고 예수님께 제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서 전도하십니다(38절).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이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하루 일과를 무엇으로 시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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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 환자 치유 1:40~45
나병 환자는 율법에 ‘부정한 자’로 규정되어 격리되었습니다. 나병 환자가 치유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죽음을 각오한 일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간구합니다(40절). 이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겸손하고 간절한 태도입니다. ‘원하시면’(40절)이란 말은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확신하는 고백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41절)라고 답하시며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의 ‘원하시면’과 예수님의 ‘내가 원하노니’가 만나면 이적이 일어납니다. 병 나은 것을 제사장에게만 보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명하셨지만, 치유받은 사람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널리 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함에 긍휼로 응답하시는 사랑의 구원자입니다.
●더 깊은 묵상
깨끗해지기를 원한 나병 환자의 간구에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나요?
나의 간절함에 주님이 긍휼로 응답해 주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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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산으로 올라가십시오
우리 교회의 ‘변화산새벽기도회’에서는 성도들이 적어 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교역자들이 일제히 기도할 뿐 아니라 중보 기도 팀이 24시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로 이 기도회가 매우 강력한 영적 잔치가 됨을 경험합니다. 저는 교인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기도 제목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인들을 만나면 영상처럼 제 머릿속에서 기도 제목이 생각납니다. 제 기억력과 암기력이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한 후에 그들의 기도 제목과 얼굴이 매치됨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목회자인 포사이스(P. T. Forsyth)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결단의 골짜기에 더 깊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기도의 산으로 더 높이 올라가야만 한다.” 인생의 문제 때문에 골짜기에 내려갈 때, 우리는 기도의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가정이 바로 세워지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결단이 필요한 인생의 골짜기가 깊을수록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PRAY ON 기도의 불을 켜라 / 김병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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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장 35절
예수님은 모든 사역을 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신 후 복음을 전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고통받는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능력을 경험하는 확실한 통로이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사역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신은 얼마나 기도하는지 돌아보십시오. 나의 작음을 넘어서 하나님의 크심을 붙드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역사의 무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정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앤드루 머리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내일도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이 친히 보이신 ‘기도’의 삶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일에 쫓기고 바쁘더라도 주님과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게 하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제가 원하며, 주님 뜻을 좇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 (새 285 주의 말씀 받은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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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5절 늘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을 마련하십니다. 갈릴리 전역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바람에, 드실 틈도, 쉴 틈도 없으셨지만, 새벽 동트기 전에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사역의 열매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환호가 하늘을 치솟을 시기에, 예수님은 현실을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시며, 그분이 가셔야 할 길을 점검하셨던 것입니다.
늘 제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내가 삶의 주인이 되고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과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들을 나만의 한적한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40-45절 원치 않는 병으로 가족과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살아가던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고 치유하십니다.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것은 율법이 금지하는 행위지만(레 14:46,47), 주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고 병을 치료해주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시는 분이 그를 만져주심으로 그의 아픈 마음까지 치유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그를 배제함으로 공동체의 정결을 도모했지만, 주님은 다시 그를 정결케 하심으로 공동체 안으로 회복하십니다.
소외되고 외면당한 이웃에게 의례적인 도움을 주기에 앞서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먼저 품읍시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6-39절 제자들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는다며, 서두르시기를 재촉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엄청난 인기에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일보다 사람들을 만나 능력을 행하는 일을 더 중요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안식하고 기도하기 위해 멈추고 물러나는 일을 낭비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40절 한 나병환자가 군중을 헤치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은 사회적인 관습마저 깨뜨리는 것이었고, 그는 그 소망대로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오늘 내가 믿음으로 결단할 일은 무엇입니까?
1월2일 청라호수공원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여러 마을에서 전도하시다가 한 나병환자를 만나 고쳐 주셨는데, 그만 그가 소문을 내는 바람에 공공연히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갈릴리에는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따르면 약 200여 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곳을 다 들리기 보다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근방의 마을을 방문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병 고침이나 귀신축출 보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란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따르면 A.D.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80여 개의 회당들이 팔레스타인 전역에 산재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초창기 사역 시 회당에서 설교하고 사람들을 가르친 것으로 보아 그 회당들을 많이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당들의 옛터를 보면 그 당시 회당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향하여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즉, 가버나움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었으므로 남쪽을 향하여,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었으므로 북쪽을 향하여, 가이사랴는 동쪽에 있었으므로 서쪽을 향하여, 여리고는 예루살렘 서쪽에 있었으므로 동쪽을 향하여 서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설교하시고는 결국 그곳을 향하여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의 몸을 만져 준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정결법상 나병환자의 접촉은 금지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십니다. 말씀만 해도 됐을 것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고 봅니다. 그 까닭은 건강한 손, 거룩한 손으로 그의 몸을 만져줌으로써 그의 병뿐만 아니라 그간 피폐되었던 그의 심적, 정신적,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아마 그는 그 병이 낫지 않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불치병인 그 병이, 왜 그에게 왔는지 그것을 몰라 스스로 저주하며 절망 가운데 있었는데 주님의 터치로 인해 그런 것들이 일시에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 병을 고쳐주시고는 주님이 나병환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로 하여금 건강한 사람으로 확인케 하여 가정과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런 소문이 나게 되면 본래의 주님의 사역 목적인 복음전파와 인류구원에 관한 과업을 훼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병환자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동네에 들어가지 못했다가기 보다는 복음 전파 사역을 계속 이어하지 못하시고 잠시 중단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는…… 못하다”라는 말에는 ‘영원히 못하다’가 아니라 ‘계속하여 못하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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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사로의 병을 고쳐준 적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어가자, 예수님은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틀 후 나사로는 죽습니다. 젊은 그가 병으로 죽었으니 아마도 불치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신실한 마리아마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난다고 대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살아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그 말씀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주님으로 하여금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의 나병환자는 주님의 엄히 경고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로서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기뻐서 그랬겠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삼가야 했을 것입니다. 계속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기에 곧 주님으로 하여금 하늘의 영광을 받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때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사람이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입을 잘못 놀려 그 영광스러운 일이 축소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불치병이 참 많습니다. 의술이 발달된 관계로 1세기보다 더 적어져야 하는데 실상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암은 없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질병들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고 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알 수도 있지만 거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비가 농촌이나 도시나 동일하게 오듯이, 신앙인이나 비 신앙인이나 암은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그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죽은 자도 일으키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왜 하필 나냐고? 하늘을 원망할 뿐입니다.
나병환자에게 나병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영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리어 화가 복이 된 것입니다. 설령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불치병이 낫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풀리지 않는 지상에서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그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마치 맹수들의 앞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사고이건, 부도이건, 불치병이건, 불행과 재앙이 닥치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마저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는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전부입니다. 올해에는 그 분만 꼭 붙잡고 사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은 그것을 도리어 복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때나 이때나 문제에 굴하지 않고 주님만을 신뢰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영적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바벨론 험악한 짐승의 이빨과 발톱에서 잃어버린 양을 구원해내고 양 떼를 보존하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이 분산될 때, 약점이 노출되고 승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미혹하는 속임수로 우리의 힘을 분산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사용하셨습니다 즉, 집중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모든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중할 첫 번째 목표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집중하시기 위해 새벽시간을 선택하셨습니다 기도하기에 새벽만큼 좋은 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집중할 두 번째 목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사역에 집중하시기 위해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사역의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막1:37)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두를 만나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만 또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 더 많은 일을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맥이 재산이 아니라, 사슬이 될 수도 있고 함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맥을 넓히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기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기 위해 온 마을을 다 다니셨습니다 왜냐하면 양이 목자를 찾아내는 법은 없고, 오직 목자가 양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 중에도 스스로 찾아와서 사도가 되게 해 달라고 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 가셔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내셨고 불러내신 것입니다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34:11~12)
그러므로 우리도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해 예수님처럼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고 이것을 위해 모든 것을 선택하기 원합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그 택할 길을 가르쳐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시25:12)
가르쳐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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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찾아온 나병 환자는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이라고 한 것은 스스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 낫기를 간절히 원함’을 온몸과 마음으로 절절하게 녹인 표현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원래의 의미에는 악한 영의 세력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포함되어 있는 감정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모두가 부정하게 여기는 나병 환자를 직접 손으로 만지시며 치유를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단단히 그에게 이미 알려진 ‘율법’의 절차에 따라 나은 것에 대해 증명받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직 그가 메시아로 온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시기가 아니었고 그분께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치유를 행하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포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치유’와 ‘회복’만을 구하는 병자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했고 그가 ‘마구 널리 퍼드림’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외딴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또한 사람들은 더욱 그분께로 모여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귀신이 떠나가고 아픈 이들을 낫게 하는 정점에서 그 나병이 낫는다는 기적까지 보여주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드러내시지만 세상은 그분의 오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그분의 빛을 가리지 않고 온전히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하루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입니까?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입니다(35~39절).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십니다(35절).
예수님의 대한 소문이 온 지역에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땅에서 행하셔야 할 사역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이에 반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대중적 인기에 한껏 고무된 모습들입니다. ‘...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37절,새번역)..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과 달리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38절). ‘전도하리니’는 ‘내가 선포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 마태나 누가보다 마가는 이 동사를 저 자주 사용(12회)하여 복음 전파에 대한 마가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역은 그의 교훈과 귀신 축출 사역과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39절).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와 복음 전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아래 사람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이 땅에 세워졌고, 선택을 받았기에 이 일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전도를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많은 사람들만 데려오면 된다라고 하는 착각을 버려야합니다. 이는 곧 신천지가 자신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불의한 방법을 사용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몰약 교리랑 뭐가 다를까요??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는 생명을 살리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만 오면 된다고 전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죄인 됨과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다움임을 고백합니다.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자랑하는 삶입니다(40~42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40절,새번역). 나병환자는 언제나 부정했으며, 성 밖에서 혼자 살아야 했고, 그를 만나는 자는 누구든지 부정해졌습니다. 혹 사람들이 자신의 옆을 지나가면 ‘나는 부정하다...’라고 세 번 외쳐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정결 규례까지 어겨 가면서 성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께서 능히 자신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41절)고 하시자 곧 그가 깨끗해졌습니다(42절).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치유하신 것은 분명 종교적인 부정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규정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랑의 법을 실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로 인하여 부정한 자들이 깨끗함을 받아 모두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에서 깨끗함을 받기 위해서 날마다 주님 앞에서 나아와 엎드려야 합니다. 엎드림은 내 자신이 죄인 됨을 회개하는 것이고,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히 그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 앞에 바로 서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복음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깨달았다면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이 말씀을 붙잡고 나를 변화 시키고,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되는 복음을 자랑하며 전하는 삶이되기를 결단해 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다움이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부끄러워해서 자꾸만 나의 삶의 자리에서 감추는 비겁한 삶이 아니라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예수 믿는 사람임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기뻐하는 삶입니다(43~45절).
예수님은 그를 돌려보내시며 ‘엄히 경고’(43절)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여라...’(44절,새번역)... 정결함에 대한 공식적인 승인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보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명령한 것을 마치라(레 14:4,10)하신 것은 결국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저라도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감춘다고 감추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치유 받은 나병 환자의 소식이 알려지자 예수님의 대중적 인기는 더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이상 드러내 놓고 마을에 드나드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45절)..
외적인 조건과 환경을 보면 마냥 기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답게 주님 안에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 영적 부요함을 누리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은 애써 감춘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들어내 놓고 복음 때문에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 기쁨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이 예수를 믿는 사람다움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자랑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나의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에 있음을 결단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막 1:35~45절)... 빛이 있으라...
현대인에게 필요한 기도의 모습
1) 새벽이 밝기 전에 드리는 기도
모든 일에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먼저 하루를 시작하기 전, 새벽 미명에 주님과의 친절한 교제를 나눌 필요가 있다(시92:2).
2) 한적한 곳에서 드리는 기도
복잡하고 분주한 사회 속에서 평안함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은 특별히 한적한 곳을 정해 놓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으며 주님과의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마6:6).
3) 장시간 동안의 기도
세상의 편의주의에 빠져 신앙 역시 형식적이고 합리주의적으로 변질시키기 쉬운 현대인들은, 보다 많은 시간을 주님과의 깊고 진실된 교제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눅6:12).
☆ 나병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병.
고대 유대인 사회에서 나병은 끔찍한 병으로 취급되어, 나병환자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다. 그들은 공중 예배도 드릴 수 없었고, 일반인들과도 살 수도 없었다. 접촉하는 것조차도 금지 되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병 고침 받기를 간구했고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대시고 고쳐 주셨다. 말씀 만으로도 고칠 수 있었지만, 손을 내미심으로써 육체의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그의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신 것이다.
때로 사람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겉으로 들어난 상처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물질로 돕기 보다는, 예수님처럼 따뜻한 마음이 담긴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적용
Q. 주의 일을 하는 사역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35절)
Q. 따뜻한 마음이 담긴 사랑의 손길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Q. 나는 소외된 자에게 마음이 손길을 내밀어
사회로 복귀하도록 도와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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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주님은 한 나병 환자의 간구대로
그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제사장에게만 보이라 경고하셨지만 그는 널리 전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드러나게 동네에 못 들어가시고 한적한 곳에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기도와 전도에 집중(1:35~39)
사람들의 관심과 일의 성과에 연연하다가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기 사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밤늦게까지 병든 사람들을 고치느라 몹시 피곤하셨을 텐데도, 새벽 일찍 일어나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십니다. 반면 제자들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에 우쭐해져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욕심에 미혹되면, 본질을 놓치고 헛되이 시간과 힘을
소모할 우려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시고, 하나님 뜻과 사명을 이루는 데
충실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떠나 지체 없이 갈릴리 다른 마을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데 전념하십니다. 바쁠수록 본질을 붙잡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기도하신 예수님과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달랐나요?
- 적용 질문: 할 일 많고 바쁜 나날이지만, 믿는 자로서 결코 양보해선 안 될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소외된 영혼에 집중(1:40~45)
하나님 나라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자비와 긍휼을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예수님은 접촉이 금지된 나병 환자에게 손 내밀어 그 몸을 만지면서 치료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하지만 그가 침묵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는 바람에 예수님의
사역이 제한을 받게 됩니다. 율법을 어기고 나병 환자와 접촉했다고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병 환자가 나았다는 기적에만 주목할 뿐, 복음을 깨닫고 제자로 헌신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위험 부담을 떠안으시고,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꺼리는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큰 위험 부담을 안고서도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모습을 통해 올바른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배웁니다.
날마다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갖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향해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께 집중함으로 저 자신을 거룩하게 낭비하는 은혜의 사람 되게 하소서.
마가복음 1:35~45 기도의 자리, 능력의 현장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4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베드로의 장모님을 비롯한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다.
바로 앞의 안식일 다음날 새벽인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
예수님이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다.
예수님은 무엇을 기도하셨을까?
마가복음을 시작하던 날 보았듯이 40일 동안 금식기도도 하셨지
오늘 본문에서 처럼 새벽기도도 하시지
한적한 곳에서 가셔서 기도하시지
밤이 맞도록 철야 기도도 하시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산기도도 하셨지
주기도문도 가르쳐 주셨지
가만히 예수님의 사역을 잠깐 돌아 보아도 기도 생활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에게서 기도란? 일상의 삶이 셨구나!!!
나에게 있어서의 기도란? 하나의 일로 느껴진다.
그러니 내 기도는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을 당하는지 모르겠다.
왜 내 기도에는 능력이 없을까?
저 멀리 어디엔가는 계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게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아닌지
그러므로 어제 했던 기도 오늘도 반복하고 있고 응답은 없고....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주님의 뜻대로 구하기 보다는 내 욕심을 따라 구하고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기 보다는
나의 뜻이 하늘에 이루어 지길 기도하여
성령님을 부려먹고 하나님을 이용할려고 하는 어리석음이 아니였는지....
많은 말을 해야하고 미사여구를 나열해야 잘 하는 기도로 착각하고
믿음없이 의심으로 드렸던 기도를 버리고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이야기 하듯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자.
8일
1.기도하시고 복음을 전하심 (35-39절)
예수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조용한 곳을 찾아가셔서 혼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지장받지 않는 곳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시몬과 그의 친구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오시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기도해야 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온 땅에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땅에서의 모든 삶을 한가지 일에 맞추시고 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 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행하든 어떤 일을 행하든지 궁극적인 목적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묵상하기
내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한 것인가?
2.문둥병을 고치신 예수님 (40-45절)
예수님께서는 고침을 받기 원하는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문둥병자가 가진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사실을 함구 하라고 하시고 제사장에게만 보이고 자긴이 나음 받은 은혜에 대하여 예물을 드림으로 증거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소문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치유하심을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나 자랑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우리는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로 행한 일을 마치 자신이 한것처럼 자랑의 수단으로 삼고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신앙의 모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복음의 일을 행하든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릴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묵상하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겸손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보좌와 권세를 내려놓고 이 땅 가운데 구원자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의 인생에 세상 가운데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한 그분의 나라와 의를 위해 쓰임 받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지진과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곳곳의 백성들과
자연 만물에 하나님의 뜻이 임하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평강과 예배의 기쁨을 부어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분쟁과 악한 것들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세워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