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시대의 부처님과 예수님
이승하
설법의 시대에도 복음의 시대에도 대출이 있었을 테지요 인류의 아주 오랜 직업은 고리대금업 혹은 전당포업
대출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출을 해주고 대출금을 받고 신용대출 주택대출 담보대출
우리가 쿨쿨 잠든 사이에 숫자가 어디론가 가고 금액이 어디선가 온다
우리가 번연히 눈뜨고 있는 사이에 원금이 서서히 줄고 이자가 현저히 늘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채무자입니까 채권자입니까 대출 중입니까 체납 중입니까
현대의 신은 대금貸金 현대의 천사는 대출貸出 현대의 악마는 만기滿期
“나는 대출하지 않았다”고 영취산에서 외친 이가 있었다면 그는 깨달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대출을 다 갚았다”고 산상에서 외친 이가 있었다면 그는 복음을 전한 이가 아니겠습니까
은행원은 없고 현금자동입출금기가 기다리는 세상 현금은 사라지고 비트코인이 오르고 내려가는 세상 신용만 있다면…… 돈이 없어도 돈이 있는 세상
—계간 《시결》 2025 봄호 --------------------- 이승하 /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예수•폭력』 『사람 사막』 외 다수.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외.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