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은 ‘韓日戰’이다] [숙명의 라이벌이 쓰는 드라마] [上]
도쿄올림픽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조선일보 스포츠부는 ‘도쿄올림픽은 ○○이다’란 제목으로 이번 대회를 보는 다양한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1편에선 이번 올림픽에서 주목할 한일전을 양국을 대표하는 스타의 맞대결로 살펴본다.
그래픽=백형선
[축구] 키도 나이도 스페인 진출도 똑같네… 축구신동으로 불린 이강인과 구보
2001년생 동갑내기에 키 173cm의 왼발잡이. 공통점이 많은 두 축구 스타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귀가 닳듯 들어왔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나 나라를 대표해 도쿄올림픽 무대에 나선다. 한일 축구의 미래로 통하는 이강인(20·발렌시아)과 구보 다케후사(20·레알 마드리드)다.
먼저 이름을 알린 건 구보였다. ‘축구 신동’에 유달리 호들갑을 떠는 일본 축구계의 든든한 지원 속에 구보는 FC도쿄 유니폼을 입고 15세 때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18세였던 2019년엔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A매치 무대를 밟았다.
그해 이강인은 폴란드 U-20(20세 이하) 월드컵에 나가 세계를 호령했다. 한두 살 많은 형들과 경쟁해 2골 4도움으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리오넬 메시 이후 14년 만에 ’18세 골든볼(대회 MVP)’의 주인공이 됐다.
유소년팀 시절의 두 천재 - 이강인(왼쪽)과 구보 다케후사가 유소년팀에서 뛰던 시절. /AS TV
이후 둘의 행보는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다. 2019년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구보는 여러 팀에서 임대로 뛰며 경험을 쌓았다. 스페인 1부 리그인 라 리가에서 66경기를 뛰면서 5골을 넣었다. 2019-2020시즌 마요르카에선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2020-2021시즌 비야레알과 헤타페에선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발렌시아의 이강인도 ‘골든볼’ 수상자의 위용을 보여주진 못했다. 2019년 1월 바야돌리드전에 나서며 100년이 넘는 구단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리그에 데뷔한 외국인 선수가 됐지만, 이후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지난 시즌엔 라 리가 24경기에 나서 득점이 없었다.
성장통을 겪는 두 ‘축구 천재’에겐 이번 올림픽이 그래서 중요하다. 24세 이하가 출전이 가능한 무대에 스무 살로 도전장을 던진 두 선수가 한 단계 올라설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일전이 성사돼 이강인과 구보가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두 나라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대 올림픽 본선에선 2012 런던 대회에서 딱 한 번 만났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3~4위전에서 박주영·구자철의 연속 골로 일본을 2대0으로 제압하고 사상 첫 메달(동)을 따냈다.
이번엔 대진상 8강전에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에 좌절을 맛봤던 주장 요시다 마야(삼프도리아)를 비롯해 도미야스 다케히로(볼로냐), 엔도 와타루(슈투트가르트) 등 유럽파를 앞세워 이번 올림픽에 나선다. 뉴질랜드·루마니아·온두라스와 B조에 속한 한국은 22일 오후 5시 뉴질랜드와 올림픽 본선 1차전을 벌인다.
[女배구] 월드스타 김연경에 도전하는 일본의 샛별 이시카와
5년 전 리우올림픽의 여자 배구 한일전은 양 팀 캡틴인 김연경(33)과 기무라 사오리(35)의 라이벌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기무라는 일본 배구 전문 잡지 ‘월간 발리볼’의 표지 모델(단체 사진 포함)을 14개월 연속 장식한 국민 스타였다.
두 팀이 맞붙은 조별리그 1차전 결과는 한국의 3대1 승리. 김연경이 30점을 퍼부으며 런던올림픽 3~4위전의 0대3 패배를 시원하게 설욕했다.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8강에서 탈락했다.
리우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은 기무라는 2017년 31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반면 김연경은 여전히 한국 대표팀의 캡틴으로 도쿄올림픽에 나선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은 세르비아, 브라질, 도미니카공화국, 케냐와 A조에 속해 있다. 두 팀은 이번 달 31일 조별리그 4차전에 맞붙는다.
세대교체를 단행한 일본 대표팀엔 기무라가 없지만, 2000년생 이시카와 마유(21)가 김연경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시카와 마유는 일본 남자 대표팀 주장 이시카와 유키(26)의 동생이다. 이번 올림픽엔 남매가 동반 출전한다.
윙스파이커(레프트) 포지션인 이시카와는 2019년 세계 U-20(20세 이하) 선수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받았다. 174㎝로 키가 그리 크지 않지만, 가공할 점프력과 지능적인 플레이로 ‘배구 천재’란 수식어가 일찌감치 붙었다.
그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한국과의 준결승에서 30점을 기록, 국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은 이시카와를 중심으로 20세 이하가 주축이 된 대표팀을 내보냈는데 김연경이 버틴 한국을 3대1로 이겼다.
일본은 당시 멤버들을 중심으로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열린 한일전에선 이시카와가 18점을 올리며 한국을 3대0으로 제압했다.
한국은 리우올림픽과 비교해 주축 멤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시카와와 같은 빛나는 샛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월드 스타’ 김연경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건다. 런던올림픽 4위, 리우올림픽 8강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에 나서는 김연경은 이번 대회를 누구보다 기다려왔다. 작년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예선 결승에서 복근이 찢어진 상태로 뛰면서 한국을 본선 무대로 이끈 그는 최근 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서 “한일전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경의 올림픽 한일전 전적은 1승 1패. ‘여제’는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올림픽 무대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의 포효를 할 수 있을까.
[야구] 신인왕 출신의 거포 강백호·무라카미
야구 강국 일본은 올림픽만 나오면 작아진다. 금메달 없이 은 1개(1996년), 동 2개(2000·2008년)에 그쳤다. 특히 한국에 힘을 쓰지 못했다. ‘국민 타자’ 이승엽이 2000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선 결승 2타점 2루타, 2008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전에서는 결승 투런포를 때려내며 일본 제압에 앞장섰다.
도쿄에선 누가 ‘이승엽’이 될 수 있을까. 예년보다 투수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국내 팬들의 시선은 ‘타격 천재’ 강백호(22·KT)에게 쏠린다. 2018년 29홈런 84타점으로 KBO리그 신인왕을 거머쥔 강백호는 올 시즌엔 11일 현재 타율(0.395)과 출루율 1위(0.492)를 질주하며 리그 최고 타자로 올라섰다.
강백호는 2019 프리미어12로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수퍼라운드 한일전에 선발로 출전해 2안타 3타점으로 ‘일본 킬러’로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일본은 홈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만큼은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각오다.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등 최정예 멤버를 꾸렸다.
타선에선 강백호의 닮은 꼴인 무라카미 무네타카(21·야쿠르트)가 눈길을 끈다. 강백호보다 한 살 어린 무라카미는 2019시즌 NPB(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88cm, 97kg로 강백호(184cm, 98kg)와 체격이 비슷하다. 강백호(1루수)와 무라카미(1·3루수) 모두 수비 약점을 방망이로 만회하는 선수들이다. 지난해 28홈런 86타점을 올린 무라카미는 올 시즌에도 NPB를 대표하는 거포로 활약 중이다. 홈런 24개로 센트럴리그 2위를 달린다.
프로 4년 차이자 향후 10년 넘게 국제 무대에서 국가대표 간판타자로 첫 자존심 승부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