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들 어찌 사나 봤더니…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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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는 시즌.
서울의 강남역을 방불케하는 모습으로
그 날도 대구의 중앙로역의 주변은 사람들로 붐볐어.
아무도 몰랐던 거지.
그곳이 곧 생지옥의 될 줄이야.
사람들은 평소처럼 각자의 스케쥴로 바쁜 모습으로
지하철을 이용했고,
그 중에는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한 아저씨도 지하철에 탑승했어.
아저씨는 옆구리에 가방을 꼭 껴 안은 채였지.
그렇게 사람들을 태운 안심행역 지하철은 출발했어.
사람들이 빠지고 들어오는 동안.
구석진 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옆구리에 껴 안은 가방을 놓지않았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옥이 되기 전.
Feb 1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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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들 어찌 사나 봤더니… 충격
● 대구 참사는 진행 중…
● 부상자 40%가 10년째 고통
● 후두협착·언어장애 반복 수술 비용 감당 못해 치료 포기 많아
대구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곽시환(47)씨의 원래 직업은 레스토랑 조리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요리를 할 수가 없다.
폐쇄된 공간에서 불길이 확 이는 것만 봐도 공포에 사로잡히고 숨이 가빠 오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10년 전 그날 하루 아침에 생긴 일이다.
곽씨는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생존자다.
곽씨가 겪고 있는 고통은 심리적, 정신적 후유증에만 그치지 않는다.
후두가 좁아지는 협착증세로 두 차례 수술을 받고 장애인
판정을 받은 그는 지금도 통증과 기침,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람이 많은 실내나 먼지가 날리는 곳에는 아예 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심하게 쉰 목소리를 예전의 것으로 다시 찾으려는 희망은 버린 지 오래다.
사고 당시 뜨거운 유독 가스를 너무 많이 들이마시고 후두 화상을 입은 탓이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목에 좋다는 민간요법도 하고 있지만 별 차도가 없다”며
“후유증이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18일로 꼭 10년이 되지만
부상자들은 여전히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 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부상자 가운데 60여 명이 지금까지도 투병 중이다.
이는 생존하고 있는 부상자 146명의 40%에 이르는 숫자다.
이들은 후두가 좁아지는 협착과 성대 손상, 목 통증과 호흡곤란,
얼굴과 목이 붓는 증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가운데 20명은 반복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의 후두협착이나 성대손상 환자다.
후두화상을 입었던 송창준(47)씨는 “항상 목이 따끔거리고 기침과 가래도 끊이지 않아
대화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언어장애도 큰 고통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말이 나오지 않아 한참 동안 헛기침을 하거나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화상으로 성대의 점막이 굳은 사람이 많아서다.
부상자 중 60여 명이 언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17세 학생이었던 이모(여)씨는 쉰 소리를 개선하기 위해
2009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경제적 이유로 한 번에 30만∼250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어
통증을 완화하는 약만 먹고 견디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책위의 이동우(69) 위원장은 “당시 호흡기 손상과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비와 보상금을 받긴 했지만 10년이 지난 만큼 다른 질환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상자의 치료를 맡고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최홍식(이비인후과) 교수는
“성대 등의 섬세한 점막에 화상이 생기면 후유증이 오래가고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며 “대형 참사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들의 상태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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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딸은 소풍을 간다고 평소보다 한시간후에
나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려다 친구가 달려오면서 같이가자고 해서 기다리다가
버스를 놓쳤습니다
조금있다가 지축을 흔드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렸고
여섯정거장이나 떨어진 우리아파트 창문이 떨어질듯 흔들렸습니다
지금의 롯데백화점과 상인역 근처에 사는 상인들과
행인들은 아직도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꺼지면서
팔다리 목이 떨어진 시체들이 뒹구는
그날의 악몽을 얘기하며 몸서리를 칩니다
온갖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고
전라도 사람들과 광주사람들이 잘뒈졌다고
대구시민 다죽일것 그랬다는 말과
고소하다는 말들이 난무했습니다
정부의 미지근한 대응과 가혹하리 만치
냉정한 보상금에도
대구시민은 죽창과 쇠꼬챙이 신나를 들고 거리를 내달리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잔인한 죽음앞에도 부모의 처절한
생이별에도 묵묵히 슬픔을 삼킬뿐
누구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폭동으로 점화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날
우리딸은 버스를 놓친탓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3년뒤에
또 죽전지하철 가스누출 참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걸핏하면 신나와 쇠꼬챙이 ,죽창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어떤 고귀하신 유공자 분들과는 다르게 말이지요
첫댓글 국가차원에서 분명한 검증이 있어야하고 그분들의 생활을 보장 해드려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