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몇몇 아이들이 도서관 앞에 와서
"00가 다쳤어요! 엄청 울어요. 이리로 오고 있어요!"
라며 알린다.
곧 문을 닫아야 하는 7시가 가까웠는데, 왜 엄마한테 안가고 여기로 오는지 의아했지만, 곧 아이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왼쪽 팔로 넘어졌는데 너무너무 아프단다.
아주 당연한 듯이 도서관으로 쑥 들어와 앉아 물을 달란다. 계속 목이 마르다며 몇잔을 리필한다.
좀 어떠니 물어보는데, 그냥 너무 아프다고만 한다.
일단, 심상치 않다. 하긴.. 놀이터에서도 30분을 앉아 울었다고 하는데...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알리니 지금은 너무 바빠서 고등학생 형을 보낸단다. 엄마는 근처 식당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제일 바쁜 저녁 시간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도서관 안에서 부목으로 쓸 만한 것을 찾지만 당췌 없다. 그나마 찾은 게 강화 스티로폼으로 조립해 만드는 행글라이더 꼬리다. 마침 도서관에 있던 (제일 가까이 사는) 00 엄마가 급히 압박붕대를 가지고 와서 부목을 만들었다.
곧 00의 형이 왔지만 근처의 정형외과는 문을 닫았고, 좀 먼 곳의 병원으로 가야하는데, 형아가 위치를 잘 모른다. 그 와중에도 애는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멀리 있는 병원도 곧 마감을 하는데..
안되겠다.. 일단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같이 가봐야겠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집 둘째보고 막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가라고 했는데, 고맙게도 압박뭉대를 준 00 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줄테니 안심하고 다녀오란다. 자기 애들도 있는데..;;
그렇게 병원에 도착,
아니나 다를까,, 팔목의 뼈가 둘 다 골절이 되었다.
엑스레이 찍고 깁스하고 나오니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동행한 형은 긴장을 풀려고 하는지 너가 조심하지 않아서 치킨 두마리 값이 날아갔다고 농담을 한다.
다시 돌아오는 길.. 아직 저녁을 못 먹은 우리 애들도 빨리 만나러 가야 하기에 다시 택시를 잡는다. 그런데 이 형제들 근처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세우지 못해서 안절부절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잡았던 택시 놓치고, 한참을 옥신각신 .. 드디어 오토바이를 세우는 다리를 찾은 순간 오토바이 주인이 등장. 맘 좋게 괜찮다 해준다.
다시 카카오택시를 부르고...
(머피의 법칙.. 그 큰 사거리에 그렇게 잘 오던 택시가 갑자기 안오고, 그래서 오분거리 카카오택시 불렀더니 택시 몇대 지나가고..)
아주 여러가지로 추억 거리가 많이 생겼다. ㅎ
10시쯤 아이 엄마는 고맙다면 전화를 해왔다.
동네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운 부지런쟁이 언니, 4 아들의 엄마
바로 다음날 막내 아이 초등학교 녹색이라 아침 8시부터 건널목에 있으니 00는 깁스 부목을 하고 일찍 등교를 한다.
그런데 이녀석, 가끔은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안하고 무조건 몰라요라고 대답을 하곤 한다. 미운 4학년?
오늘 도서관을 지키고 있자니 이 녀석이 가장 먼저 온다.
팔이 괜찮냐 물어보니 또 몰라요.. 시전이다.
나도 유치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ㅋㅋㅋ
나와 그 아이만 둘 있는데, 나도 말을 멈추고
도서관에 적막이 감돈다.
이윽고 아이가 말을 걸어온다.
오늘 머해요? 몰라요
토끼간식 머 만들어요? 몰라요.
선생님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에요?
떡볶이는 왜 수요일에만 줘요?
. . .
질문이 끊이지 않는데, 나도 몰라요 시전을 한다.
ㅎㅎㅎ 이녀석 고소하다!
"00야 너도 자꾸 몰라요 하면 나도 대답 안할꺼야."
"네, 이제 그렇게 안할게요."
이렇게 나의 유치함은 싱겁게 끝난다.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첫댓글 한참을 막 정신없이 따라가다, 새로운 방을 두 개쯤 통과한 기분이에요. >.<
무엇보다 다친 아이를 서로 연락해서 도울 수 있는 마을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니, 감동...!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