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함과 달콤함이 한데 뒤엉킨 이 생소한 감정에 슬픔이라는 묵직하고 훌륭한 이름을 달까, 하고 나는 망설인다. 그 감정은 너무나도 자기 자신에게만 치우친 이기적인 감정이어서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슬픔은 언제나 고상한 것처럼 여겨졌기에 나는 이때까지 슬픔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하지만 나는 울적함이나 후회스러운 한탄, 그리고 드물게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조마조마하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나에게 덮어씌어져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떼어 놓는다. 조금씩 나는 다른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이 싫다. 내 기억력의 불완전함이나 정신의 경박과 싸우는 대신 그것들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란... 나는 그러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령 그것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라도... 자동차의 소리만 들리는 파리의 새벽녘, 내가 침대 속에 있을 때, 나의 기억이 가끔 나를 배반한다. 여름이 다시 찾아온다. 그 추억과 함께.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나직한 목소리로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되풀이한다. 그러자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 솟아오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은 채 그 이름으로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하세요? 프랑소와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중에서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제목!
이 책에서
“안녕”은
만났을 때의 안녕일까?
아니면 헤어질 때의 안녕일까?
이에 대한 답은 책 마지막에 있다.
소설 주인공 세실!
그녀는 거칠고, 질투적이고,
반항적인 17세 소녀이다.
아직은 슬픔이라는 것을 모르는,
슬픔을 경험하지 못한
자유 분망한 소녀가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풀어나간 소설이다.
책의 줄거리를
최대한 짧게 쓰자면 이렇다.
그녀는 권모술수로
타인의 슬픔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슬픔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실의 심리묘사가 칼날 같다.
마치 동판에 에칭한 듯한.
사강은 이 작품을
19세에 썼다는데 믿기 어렵다.
사강은 카뮈와
동시대의 사람이지만
소설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실존주의 철학의
무거운 주제를 담았던
당시와는 다르게
사강의 소설은 대부분
가볍고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철학적 고뇌나 탐구를 요구하는
심각한 주제는 찾아볼 수 없다.
톨스토이나 위고 등
당대의 명작들이
대부분 두꺼운 대하소설인 데 반해
사강의 소설은 분량도 짧다.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소녀들의 성격과도 닮아 있다.
사강의 인생은
불량소녀 그 자체였다.
소르본대학 다닐 때부터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젊은 여자가 발 디딜 곳이 못 되는
카페에 드나들면서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며
재즈를 즐겼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강의 그런 모습을 보고
들개 같다고 탄식했다.
이 소설은 여름휴가 중
사고를 당해 병상에 있던 중
심심풀이로 6주 만에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으로
스포츠카를 구입하고
과속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후에 마약중독,
카지노 도박,
뇌물수수, 탈세... 등등
방탕한 삶을 살다
69세의 나이에
폐 질환으로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의 부도덕이
논란이 되긴 했지만
사강의 장례는
국장급으로 치러졌다.
그녀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그녀의 문학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는 그녀의 죽음보다는
가장 감각적인 작가를
잃은 것을 슬퍼했다.
사강 소설의 진가는
섬세한 심리묘사에 있다.
그녀의 언어는
감정을 메스로 해부하여
풀어헤친 듯하다.
만일 심리 해부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사강 소설은 틀림없이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이 될 것이다.
어휘 선택도 탁월하다.
대표적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들 수 있다.
책 제목에 말줄임표를
붙인 것도 특이하지만,
이 문구는 많은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책 제목이면서
소설 속 대화 내용이기도 하다.
한 여인이
거만하고 불성실한 애인 때문에
속상해하는 중에
연하의 젊은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젊은 청년이 물었던 대사가
“Do you like Brahms?”.
음악에 관해선 문외한이지만,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딱 한 번의 사랑이 있었는데
브람스보다 14살 많은
클라라 슈만과 로베르트 슈만
연상{클라라 슈만,
로베르트 슈만(브람스의 스승)의
부인} 여인이었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클라라를 사랑한 프란츠 리스트
100마르크에 클라라 초상
45년간 브람스는
그녀와 결혼하지 않은 채
교제만 유지했다고 한다.
그녀는 브람스의 음악 생애
그 자체였다고.
“Do you like Brahms?”가
단순히 취향에 관한 질문이었다면
유명해질 이유가 없다.
그 짧은 질문 속에는
“브람스의 사랑”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강 소설 대부분의
줄거리는 평범하다.
그중에서 그나마
무게 있는 것이 있다면
“슬픔이여 안녕”일 듯싶다.
자신이 만들어 낸 슬픔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후회”가 소설의 모티브다.
우리 인생에도
이 모티브가 작용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감정을 참지 못하거나
질투심, 오해나 착각으로
많은 슬픔을 생산해 낸다.
경쟁이 심한 요즘 시대에
세실과 같은 질투심,
증오로 인한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
묻지마 범죄가 대표적이다.
묻지마 범행은
아무런 동기도 없고
이유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세실과 같은 질투심과
증오가 숨겨져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우리는 모두
그런 심리를 내재하고 있다.
의도하든 않든
누구나 슬픔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 낸 슬픔에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히 충동이나
실수일 뿐이라고
가볍게 덮어 버릴 수 없는
범죄 그 자체다.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사이코 인간이다.
이들은 감정에 불구가 된
사람들이다.
슬픔은 일종의 성장 호르몬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여러 감정의 학습 과정을 거친다.
기쁨, 행복, 사랑,
불안, 우울, 증오...,
슬픔도 이 중 하나일 뿐이다.
감정이 사회적 환경에 의한
후천적인지
진화에 의한 선천적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경험 때문에 얻어지는
학습으로 본다.
감정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다.
반려견들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감정의 언어는 알아듣는다.
학습이 되어있기에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주인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세실이 슬픔만 느꼈다면,
그녀는 성장하지 못하고
철부지 소녀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녀는 감정에 대해
제대로 공부했다고 볼 수 없다.
양심은 생명에 각인된
바코드와 같다.
그것은 불행을 두려워하는 본능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는
앞으로 닥칠 자신의 “불행”을
두려워한다.
양심은 남의 불행이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남에게 슬픔을 주었다는 점에서
세실은 사회적 악(惡)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뒤늦게 충격을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평생 슬픔을 안고 살아갈
자신의 운명을 어찌해야 할지
고뇌에 빠진다.
첫사랑처럼
첫 슬픔은 감정의 농도가 짙다.
어느 것이든 첫 경험의 고뇌는
깊은 강물에 빠진 것만큼이나 깊다.
고뇌 없는 경험은 성숙하기 어렵다.
나이 많고 학력이 높다고
저절로 성숙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할수록 감정도 발효되어
그 안에서는 깊은 향기가 난다.
그 심성에는
풋사과가 가질 수 없는
감정의 미학이 들어있다.
어쩌면 자살일지도 모를
안느의 죽음,
지독한 죄책감 속에서도
그녀는 일어서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그녀는
슬퍼함으로써
슬픔을 이길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늘 슬픔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조용히 속삭인다.
『그 추억과 더불어,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오랫동안
낮은 목소리로 어둠 속에서
되풀이해 불러 본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그것을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 1부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 2부
데보라 카 (Deborah Jane Kerr-Trimmer, 영국, 1921~2007)
출연작: 지상에서 영원으로, 줄리어스 시저, 왕과 나, 여로, 공포의 대저택, 007 카지노 로얄, 쿼바디스, 솔로몬의 보물, 여명의 날, 검은 수선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