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carbaret ; 영화 '캬바레(cabaret. 1972)' 의 한 장면
요란한 드럼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밥 포스 (Bob Fosse) 감독의 영화 '캬바레(cabaret. 1972)'는 1930년대 초반의 나치당의 발전 과정을, 상징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뮤지컬 영화의 백미이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캬바레라는 무대는 단순히 음악과 무용, 그리고 관객이 함께 하는 곳이 아니라 타락한 현실을 재현하는 곳이자 그에 대한 비판적 공간이었다.
그런데 여기, 캬바레나 카니발등의 공간을 통해 그 시대의 비극을 영화가 아닌 그림으로서 표현한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그리고 나는 프랑크푸르트의 한 조용한 주택지에 자리하고 있는 Städel Museum에서 그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Städel Museum 입구
그러나 마치 개인과 집단, 일상과 정치가 결코 분리되어질 수 없음을 증명했던 그 영화에서 처럼 프랑크푸르트와 이 Städel Museum은 앞서 언급한 화가에게는 영욕을 동시에 건네주고 결국 그로 하여금 독일을 떠나게 했던 아픔의 공간이였다. 66년여의 생애 동안 천여 점에 가까운 그림과 더불어 수 많은 조각과 판화들을 남겼을 만큼 치열하게 자신을 불태웠던 화가. "자아(self )"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독특한 자화상들을 남긴 작가로도 유명하였으나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면서 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던 인물. 그가 바로 독일의 표현주의 대가인 막스 베크만 (Max Beckmann) 이었다.
사실 괴테의 고향이자 아펠바인이라는 사과주로 유명하지만 독일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답게 수십층 짜리의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는 이곳 프랑크푸르트의 첫 인상은 단 하루만 머물어도 충분할 것 같은 그저 그런 도시의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무미건조한 도시가 마치 바게트 빵 같은 도시, 딱딱한 껍질 안에 말랑말랑한 속살이 숨겨있는 도시, 개인의 일상이 역사와 함께 사유하며, 고통받으면서도 존엄한 생을 이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드러내주는 전혀 다른 도시로서 보이게 된 첫 계기가 바로 Max Beckmann이었다.
그는 1925년,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임명되었다. 그러나 1937년, 현대미술을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보았던 히틀러에 의해 500 여점 이상의 그의 작품이 몰수되면서 결국 독일을 떠나게 된 그는 이후 인간 비극의 극화된 모습들을 작품 속에 꾸준히 그려내었다.

새들의 지옥 (Hell of the Birds 1938) by Max Beckmann (출처 http://www.artexpertswebsite.com/)
Max Beckmann이라는 한 개인의 일화가 말해주듯 나치라는 유령은 이렇게 유대인 학살을 넘어 사회 전체를 뒤덮었다. 1937년 히틀러의 지시로 뮌헨에서 개최된 '퇴폐 미술전'(Degenerate Art exhibition)에 그의 몇몇 작품들이 전시되었던 경우에서 보여지듯, 제3 제국 시대는 마치 독일판 문화 혁명처럼 예술이 정치적 선동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재단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숨쉬어야 할 예술가들을 뿌리채 뒤흔들었던 참담한 비극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일의 지역사회나 가정, 개인 모두가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심의 한 쪽에 위치한 유대인 묘지. 저 벽돌 하나 하나에 학살 당한 유대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벽돌들로 쭉 둘러진 담 그 자체가 유대인 묘지가 된 곳이다.
미술관을 나온 나는 이러한 나치 시대가 남긴 부정과 파괴를 좀 더 깊숙히 바라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Städel 미술관에서 5분여 거리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영화 박물관인 ' Deutsches Film Museum'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바라 본 영화 박물관의 겉모습은 Städel 미술관에서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소박했다. 하지만 독일의 모든 것은 그 안을 들여다 본 이후에야, 정확한 가치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법이라는 걸 깨달은 내가 아니던가. 설레이는 마음으로 마치 선물 상자를 열어보듯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가니 역시나, 시대적 구분에 따라 깔끔하게 정리된 카메라들과 영화 도구들 그리고 세트장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을 콩닥 콩닥 뛰게 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무색하토록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 이후, 독일에서 영화는 정치 선전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레니 리펜슈탈이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1935) 와 올림픽 찬양 영화인 <스타디움의 신들>은 그 대표적 예이다. 그러므로 동시대 의식 있는 영화인들에게는 칠흙 같은 암흑이자 죽음과도 같은 공포의 시간이었을 터였다.

프랑크푸르트 영화 박물관 Deutsches Film Museum' ; 영화 장비와 세트들
멋진 전시물들 앞에서의 흥분도 잠시, 또 다시 아픔의 역사를 마주하게 된 나는 '지배하지 않고 지배되는 사람들'을 뜻하는 '작은 사람들(Kleine Luete)' 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당시의 체제를 경험했는가를 통해 '나치 시대의 일상사'를 기록했던 포이케르트(D. Peukert)를.
프랑크푸르트는 내게 그런 '작은 사람들'의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던 소중한 공간이였다. 저항과 침묵 사이를, 혹은 동조와 찬양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터전을 등지거나 삶의 이유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역사를... 그러나 그 궤적을 따라가면서 '신성한 피'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의 목숨이 필요한 사회, 예술가들의 자유를 질식 시켜버릴 수 있는 사회, 끊임없이 제거할 적들을 창조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파멸시킬 뿐이었음 알게 해준 도시. 그리하여 스스로 정의를 세울 능력이 없는 세상의 모든 권력들 또한 결국 히틀러 정권이 거쳤던 그 필연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준 도시였다.
발물관을 나와 프랑크푸르트를 관통하여 흐르는 노을진 마인강을 따라 걸으며 나는 '나치 시대 일상사' 에 적힌 한 독일 젊은이의 일기를 떠올렸다.
꿈을 꾸면 나는 언제나 직사각형, 삼각형, 팔각형을 본다. 모두 성탄절 비스킷처럼 생긴 그 도형을 꿈꾸는 이유는, 꿈꾸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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