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한국 학생은 끝까지 싸우다 코피가 터지게 맞아도 항복은 없고, “너 죽어!”하면서 헤어진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우리는 미국 교포사회에서 유태인들을 게으름뱅이로 보이게 만든 그야말로 못 말리게 부지런하고 근면한 根性(근성)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런 장점을 가진 민족이 8.15해방 이후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갈라져서 지금까지 첨예한 이념대립을 하고 있고, 우리는 8.15광복 후에 대한민국을 건국 할 때에 다섯 사람만 모이면 정당 하나를 창당하는 분열상을 보였고,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도 독립운동을 하는 판국에서 사무실의 의자 숫자보다 파벌이 더 많았다고, 김구선생은 개탄을 했다는 것이다.
하여튼 중국, 일본, 한국 3국 민족 중에 가장 우수한 ⌜한⌟민족이 어째서 항상 그들의 지배만 받아 왔는가?
지금의 문죄인 주사파의 집단들도 “중국은 큰 산이고, 우리는 그 산 밑의 작은 산이다.” 라면서 스스로 중국의 속국이 되고자 발광을 한다.
자-그러나 우리조상들은 지구촌 人類文明(인류문명)의 始原(시원)이었고, 중국 지나족의 문명은 우리조상들 東夷族(동이족)이 일깨워준 문명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 우리가 왜? 지금은 요모양 요꼴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는 求心點(구심점)을 상실했기 때문이고, 事大主義(사대주의)의 根性(근성)도 구심점을 상실함으로 발생한 것이다!! 지금부터 필자가 이를 논설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桓國(한국)의 桓仁(한인)시대 3301년
倍達國(배달국) 桓雄(한웅)시대 1565년
古朝鮮(고조선) 檀君(단군)시대 2096년을 이어오면서 前 왕조를 계승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山寺(산사)의 古刹(고찰)에 가면 三聖祠(삼성사)가 있는데, 거기에는 桓仁(한인), 桓雄(한웅), 檀君(단군 또는 桓儉한검이라고도 함) 3대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황해도 구월산에 三聖祠가 있다고 나와 있다.
즉, 이것은 한국의 한인시대를 배달의 한웅시대에 계승했고, 배달의 한웅시대를 고조선의 단군(한검)시대에 계승 했다는, 세계의 인류역사에 前無後無(전무후무)한 3대의 왕조가 계승한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에 왕조시대는 전임왕조를 뒤집어엎고, 즉, 전임왕조의 정책에는 X표를 하고 새로운 세습왕조를 건설했던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조선 단군시대 21대 단군까지는 왕위의 세습이 아닌 백성이 오가 장관을 선출 추대하고, 그 오가 장관이 왕을 추대로 모셨다는 참으로 현시대의 우리의 상식으로는 놀라운 공화정치였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찬란했던 로마 1,000년의 역사도 유일하게 황제가 세습이 아닌 추대였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필자가 여기까지 논설한 것은 우리조상이 고조선 말기까지는 弘益和白(홍익화백) 제도로서 四分五裂(사분오열)하지 않았고, 이때까지는 事大主義(사대주의)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우리조상이 동아시아를 주도해 왔고, 중국의 지나족은 우리조상 동이족의 문명을 미처 소화하지도 못한 상태였었다.
고조선이 끝나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4국시대가 되면서부터 우리의 상식으로 돼있는 왕위세습제가 실시되고, 국력이 쇠퇴하면서 중국의 힘에 밀려 事大主義(사대주의)와 四分五裂(사분오열)의 根性(근성)은 시작이 되었다.
고구려 초기에 多勿(다물: 고조선의 홍익화백제도로 되돌아가자)세력이 있었는데, 이미 왕위세습제도와 왕권의 전제주의가 정착이 되어가던 시점이라서 다물 세력을 제압하기 위하여 소수림왕 2년에 당나라로부터 불교를 받아드려 산중의 蘇塗(소도)를 불교로 하여금 접수하게 함으로 蘇塗(소도)가 寺刹(사찰)로 바뀌었고, 사대주의는 시작이 되었다.
사대주의를 하니까 구심점이 사라짐으로 동시에 사분오열도 같이 시작이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 왕권세습 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고조선 시대의 홍익화백제도를 감추기 위하여 우리조상이 스스로 상고시대의 역사를 왜곡하였다.
아니 상고시대의 역사를 잘라낸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인 이병화 선생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 했으며,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거기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려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根本(근본)뿌리를 상실하고 헤메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에 반하여 일본은 그들의 하나님 ⌜아마데라스오미가미: 천조대신⌟이 있고, 현실에는 천황이 있어서 求心點(구심점)이 딱 잡혀있어, 외래의 종교(信仰)이 들어와도 모두 ‘신도이즘’아래에 질서를 잡음으로 秩序整然(질서정연)하고 단합이 잘 되는 것이다.
세계가 후쿠시마 지진 때 그들의 질서정연함을 보고 감탄하지 않았는가? 서구나 중동, 아프리카 같으면 모두가 도둑이 되어 남의 집 또는 상점의 물건을 훔치느라고 난리법석이 났을 것이다.
우리가 사분오열하는 것은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고, 일본은 구심점이 있어서 단합도 잘 되고 질서정연하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조선인은 매양 진리를 추구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려 하고,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려하고, 예수가 들어오면 조선의 예수가 되지 않고 예수의 조선이 되려 한다.
무슨 주의가 들어오면 조선의 주의는 없고, 그 주의의 조선만 있다. 아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적 특색이로다!!⌟ 라고 탄식을 했는데,
필자는 그 원인과 해답 즉, ⌜한⌟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구심점을 상실하여 외래의 모든 것에 끄달려 가지만 일본은 외래의 종교(信仰)가 들어와도 그것을 일본 것으로 소화를 해내고 있다.
좌빨이들은 감정적으로 반일만 할 줄 알지 일본인들의 이런 우수함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필자는 일평생을 인류의 精神史(정신사)를 탐구한 학도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하는 것이고,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2편에서 다시 만나요!!}
桓紀: 9217년 開天: 5917년 檀紀: 4353년 1월 5일
桓仁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