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전년대비 350% 급증
저금리·풍부한 유동성 영향에
우호적인 자금조달 환경 마련
CB·BW 등 메자닌 발행도 활발
대한항공 3조로 가장 큰 규모
증시 활황에 주가방어도 잘돼
올해 상반기 상장사의 유상증자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증시 활황을 활용해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유상증자는 시장에 풀리는 주식 수가 늘어 지분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에 보통 악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확보한 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코넥스 상장사가 올해 상반기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은 17조3953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48.7% 늘었다. 이는 예탁결제원이 상장사의 유상증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상장사 유상증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상장사 유상증자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6.7% 폭증해 15조988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상장사들은 실물 경기 악화로 현금이 급속히 말라갔지만, 증시는 반대로 'V자' 반등하자 자본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조달한 결과로 해석된다.
메자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메자닌은 채권과 주식의 중간 단계에 있는 자산으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대표적인 메자닌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는 CB를 전년 대비 43.3% 늘어난 6조1351억원 발행했다. BW는 같은 기간 6864억원이 발행됐는데, 이 또한 52.4% 급등한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영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현금 조달이 필요한 기업이 늘어나면서 유상증자뿐 아니라 CB와 BW 발행이 증가했다"며 "코로나19로 타격을 받거나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았던 기업,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기업이 유상증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어 "다만 증시가 급락할 때는 유상증자를 하기 어렵다"며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올해 초부터 증시가 오르고 있고, 금리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에는 우호적인 환경이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3월 대한항공은 채무를 상환하고 인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3조원 넘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대한항공은 주주배정 증자 금액이 3조3159억원에 달해 상반기 유상증자 규모가 가장 컸다.
신사업 확장을 위해 유상증자를 단행한 곳도 많았다. 증시가 활황을 겪고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화솔루션은 상반기에 1조3460억원 규모로 유상증자를 했다. 한화솔루션은 이를 태양광·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1조2735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포스코케미칼은 양극재 생산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유상증자는 통상 주가에 악재로 인식되지만 상반기 유상증자 규모 상위 5위 기업 대부분 주가가 올랐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 후 신주가 상장된 지난 3월 24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주가가 13.4% 상승했다. 포스코케미칼(19.3%)·SK바이오사이언스(18.8%)도 신주 상장 후 주가가 올랐다. 한화솔루션(-3.2%)·한화시스템(-2.6%)은 주가가 하락했다. 유상증자보다 개별 기업 이슈가 주가 등락을 가른 셈이다.
한편 상반기 무상증자 규모도 전년 동기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 상장법인의 무상증자 발행 규모는 9억2800만주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무상증자 주식 수가 257.1% 급증했다.
무상증자는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주주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것으로, 대표적인 주주환원책에 속한다. 다만 무상증자 발표 이후 주가가 과하게 급등하는 사례도 있어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