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해요, 베이비박스
최분임
그런데, 엄마는 뭘 망설이는 걸까요
새벽바람은 골목 입구를 지키고 있고
어둠은 합리적인데 말이죠
분실될 염려 없이 아가,로 저장될 이름
다른 길이 있을 거라는 고장 난 당부를 새기듯
가로등 깜빡깜빡 눈동자를 듣고 있어요
담벼락 속 저 베이비박스 어둠을 수유하듯 흘리는 불빛
칭얼댄 적 없는 허기가 맹렬해지네요
늡늡한 품이 될 수 없다는, 인연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당부가 아프지만 물건처럼 처리되는 절차에 익숙해지려고요
애틋하지 않는 태도는 벽을 향해 날아가던 소주병
방향이 사라진 얼굴에서 배웠을까요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질문과 비루한 학습의 결과물엔
산산조각 난 사내 이름이 담겼어요
일회용 젖병을 찢어발기던 취기의 밤은
뒤돌아보지 않으려구요
엄마 등에서 베이비박스로 옮겨지는 순간
무언의 약속 벨을 울린대요
우주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무게감 없는 별처럼
시작을 다친 삶이 둥둥 가볍네요
담뱃불에 그을린 곰 인형은 데려가려고요
앞만 바라보고 걷기에
상처만 한 친구가 어디 있겠어요
최분임 시인
경북 경주 출생. 2014년 제12회 동서문학상 대상 수상하며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실리콘 소녀의 꿈 』 2005년.제23회 마로니에 전국 여성백일장 산문부문 장원 수상.
2017년 제8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