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한국 여성의 현실은
직장 내 성폭력 문제 여전히 심각 … 성희롱 당하고 직장서 쫓겨나기도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남녀차별 철폐, 여성 지위 향상 등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알리는 날로 벌써 104회째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은 아직도 성폭력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심각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 59.2% =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여성은 59.2%나 됐다. 이 중 32.4%가 직장 상사나 동료 등이 가해자였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한 순간에 성폭력 피해 공간으로 돌변하는 셈이다.
이는 2011년 한 해 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상담 사례 1151건을 분석한 결과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기 꺼려하는 여성이 대부분"이라며 "어렵게 본인의 고통을 털어놔도 피해 사례를 축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위에 알려질 경우 보호는커녕 부당 해고나 '여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잘못된 시선, 직장 내 따돌림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성의 날, 성평등 사회 촉구 시위 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보신당이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여성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성평등 사회 구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 신 기자
◆당연한 권리 주장이 부당 해고 = 직장 내 성폭력은 피해 여성보다 지위가 높은 남성이 가해자일 때가 많다. 때문에 피해 여성의 목소리가 묵살되거나 회사에서 피해 사실을 은폐하는 일도 적지 않다.
'성희롱 진정사건 결정례를 통해 본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권고 결정을 받은 이들 중 33.8%가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여성들의 당연한 권리 주장이지만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권을 포기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이슈가 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 하청 소속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사례가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희롱을 문제 삼자 부당 해고한 사건이다. 피해여성은 최근 원직·복직 했다.백 소장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대하는 사회적 풍토와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두 번 울리는 2차피해 심각 = 현행법상 피해자가 성폭력 사실을 입증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김재련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변호사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다른 직장 동료들이 피해자를 위해 증언하기란 쉽지 않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것도 문제다. 김 변호사는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게 의무 규정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사업자가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 시 이에 대한 보상도 함께 요구하지만 과연 피해자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보다 강력한 성폭력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백 소장은 "여성이 적극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8 세계 여성의 날= 1908년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 1만5000여명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해 제정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김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