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돈 버는 데서만 머문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편집=최원철
입력 : 2016.05.20 08:53
[월간조선-부자들의 생각(1부 산업화의 주역):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편집자 注
유한양행을 창업한 고(故) 유일한 회장은 세상을 떠난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 기업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유학, 네브래스카고등학교와 미시간대를 졸업했다. 제너럴일렉트릭에서 일하다가 1926년 귀국,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유한양행을 설립, ‘안티푸라민’ 등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 생전에 주식의 52%를 종업원들에게 넘겼다. 고려공과기술학원, 유한중·고교,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독립운동에도 투신, 3·1운동 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했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에는 50세의 나이로 미(美)전략사무국(OSS·CIA의 전신)이 추진했던 한반도침투계획(NAPKO작전) 비밀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1년 사망 시에는 전(全)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유언장에는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 학자금으로 1만 달러를 준다.],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민다.], [소유 주식 14만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1991년에는 사망한 딸 유재라 여사도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현 유한동산과 유한양행 주식 등 200억원대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아버지의 뜻을 이었다.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월간조선
진실한 우정에는
인간관계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해
자식의 가능성이 보일 때 기대와 희망을 갖게 돼
사랑하는 나의 딸 제넷에게
오늘은 네 인생에서 성인이 되는 날이구나. 그리고 제넷 우리 모두는 네 인생이 행복하며, 유용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되길 이 아빠는 기원한단다. 부모로서, 특히 우리는 네가 지닌 가능성이 보여질 때, 자식으로부터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진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했던 충고들이 반복으로 여겨질 때 아마도 종종 너를 훈계했던 것 같구나.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네게 주입하려고 애써왔던 것들을 너는 이제부터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공부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 너는 상당히 훌륭한 자질과 품성을 갖추고 있단다. 네 마음속에는 동포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지녔으며, 아주 극심할 정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단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경솔함과 무례함에 의해서 감춰져서는 안 되는 가치 및 자산들이란다.
진실한 우정과 인간관계는 단순히 즐겁게 인사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요구한단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은 진실하고 깊은 마음을 가졌으며 아무도 생각이 얕은 사람을 오래 참아주지는 않는단다.
사랑하는 딸 제넷아, 너는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네가 육체적으로 완전히 우리에게 의존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단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계속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결코 심각한 가족관계를 가지지 말도록 하자꾸나.(1950년 10월 19일 캘리포니아에서 변치않는 사랑으로 아빠가)

↑1968년 5월 18일 유한양행 창립 4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마치고 설립자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가 사내를 돌아보고 있다. /조선일보 DB
인간관계에서
중재자나 친구역할은
중요한 자산이 될 것
성년이 되면 판단력과 인내심을 가져야
아들에게
네가 이 편지를 받을 즈음에 너는 네 생애에 있어서 두 가지 획기적인 사건을 맞이했을 것 같구나. 그것은 다름 아닌 네가 극심한 경쟁 속에 좋은 성적으로 유수한 대학을 졸업한 것과, 법적으로 완전한 성인이 시작되는구나. 너는 이제 성년이 됨으로써 때때로 성인으로서 좋은 판단력을 지니기 위하여 너의 인내심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이해해야 할 것 같구나. 그리고 대학을 졸업함으로써, 우선 네가 무엇을 공부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심사숙고했으리라 믿기 때문에 너의 선택이 제때에 잘 이루어진 것 같구나.
네가 일련의 대학과정을 수료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친구들을 사귀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재능을 보여주었던 것이구나. 나는 네가 네 인생에서 이러한 면을 더욱 계발함은 물론이려니와, 일상에서 접촉하는 사람들과 일어나는 보다 중요한 일들을 식별하는 분별력을 갖추기를 바란단다. 그리고 상호이익을 위해 어떠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중재자나 친구로서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며 가장 고귀한 자산이 될 것 같구나. 그리고 스탠퍼드 법대의 스패드(Spaeth) 학장을 방문해서 법률학교 입학을 허가받도록 하거라. 스탠퍼드 법률학교가 너에게는 아주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구나. 더불어 너의 두 가지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축하를 보낸다.(1956년 6월 1일, 동경에서 애정을 보내며. 아버지 일한)

↑유한공고에 자신의 주식을 기증하는 유일한 회장. /월간조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생관은 큰 만족감 줄 것
제약산업은 희망과 건강, 즐거움을 가져와
아들에게
법률학교가 점점 좋아지고 있고, 복습이 잘되고 있고, 법률학교의 기초코스가 네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편지를 통해 알게 되니 기쁘구나. 그리고 인생에 대한 너의 생각과 견해에 대해서 알게 되니 기쁘구나. 그리고 인생에 대한 너의 생각과 견해에 대하여 네가 행한 대로 내게 편지를 써주어서 더욱 기쁘구나. 좌절, 지나친 방종,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보상의 결핍, 그리고 그 이외에는 하느님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 아래 있는 사람들은 가끔 인생에 대해 혼동할 때가 있다고, 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단다.
내가 가졌던 불타는 야망, 대학을 들어가고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의욕들이 나는 한국을 외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시켜야 하며 한국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잘살게 해야겠다는 의욕으로 불태웠단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졌었단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이러한 것들을 이루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단다. 사람들은 야망이나 욕구, 그리고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시킬 특별한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에 내 경험을 여기서 말한 것 같구나.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에 대한 인물·인맥 검색

↑유일한 회장의 유언장.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했다. /월간조선
“당신은 타인의 목적을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라”는 너의 인생관은 너에게 만족감을 가져다 줄 것이며, 나에게도 물론 가장 근본이 되는 인생관인 것 같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리는 우리가 타인의 유용한 목적을 위하여 소용되어질 때 스스로가 행복함을 느낄 것같구나.
우리 가족은 서로 가깝지 않고, 어려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너를 잘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너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라 네가 이러한 생각들을 몇 년 동안 쭉 해왔다니 이 아버지는 굉장히 슬프단다. 아들아, 아버지 특히 남자는 겉으로 슬픔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사상과 동료애, 이해심과 그리고 가까운 부자애를 나누고 싶었단다.
우리 가족은 좀 달랐던 것 같구나. 하지만 어쩌면 우리 가족 넷 모두는 서로가 무척 가까웠는지도 모르겠구나. 다시 말해서 스키피와 나는 서로 상반되는 기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와 제넷처럼 서로 아주 가깝고 친하단다. 나는 측정할 수 없는 너와 제넷의 사랑과 애정에 많이 의존하고 있단다. 나는 내가 너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만큼 너도 나를 이해해 주는 감정을 가지길 소망한단다. 나와 같이 부족함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아들이 더 많은 것을 해주길 바란단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내가 실패한 것들을 메우는 데 네 인생을 허비하기를 더더욱 원치 않는다. 만약 한국에서 우리가 네게 사회복구프로그램을 요청하고 이것이 만약 네 마음속에 있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으며, 네 삶의 흥미를 준다면, 너는 일상의 고역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완전히 공허한 기쁨이 아닌 인생에서 유용한 삶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구나. <下편에 계속>

"나더러 아편 장사를 하란 말이냐!" 회사 간부에게 소리친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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