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만들어 키우기도 힘들지만 수성(守城)이 더 힘들다. 대기업 총수들이 평생을 바쳐 키운 회사를 이어받을 후계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폭넓은 현장 경험과 해박한 경제 · 경영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능력을 키우는 게 후계자 교육의 관건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국내 한 이미지컨설팅 회사에 한화그룹 비서실 사람들이 비밀리에 찾아왔다. 당시 한화 측은 이미지컨설팅 회사에 “김승연 회장 일가를 미국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처럼 만들고 싶다”고 주문했다.
김 회장은 실제 ‘현대판 귀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배경이 좋다. 한국화약 설립자인 부친 고(故) 김종희 회장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은 데다 장인은 서정화 전 내무장관이다. 게다가 경기고, 미국 멘로대 경영학과, 드폴대학원 국제정치학과 졸업이라는 화려한 학력까지 붙어 있으니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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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오른쪽)과 막내아들 동선 씨 | | 그는 회장 자리에 오른 뒤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유엔한국협회 회장, 한미교류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정 · 재계 입지를 착실히 다져왔다. 자신의 세 아들 역시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승마명문학교인 태프트스쿨(고교)에 보내며 ‘한국판 케네디가’를 실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꿈은 최근 자식을 ‘위한’ 보복 폭행 사건이 세간에 불거지며 빛이 바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재계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29세란 어린 나이에 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회장에 오르면서 머리는 항상 올백 스타일로 다니고, 누구도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은 용납지 않았다. 회사에선 이렇게 ‘제왕적 권위’를 유지한 그였지만 자식에 대해선 과잉보호가 유별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젊은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험한 세파를 스스로 헤쳐나가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제대로 된 경영수업 없이 그룹을 맡으며 생긴 김 회장의 권위의식과, 김 회장 자신의 빗나간 자식 사랑이 빚은 최악의 결과였던 셈이다.
대기업 총수들은 후계자 교육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키운 회사가 후계자의 한순간 실수로 기업 이미지는 물론, 존폐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수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경영수업을 혹독하게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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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과 토론하며 현장과 기술 체득 | | 삼성 전문가들과 토론하며 현장과 기술 체득
삼성가에서는 집에서 가족들끼리 식사할 때도 넥타이를 맬 정도로 반듯함을 중시한다. 그래서인지 이건희(65) 삼성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39) 삼성전자 전무도 예의 바르고, 특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새길 줄 아는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천재론’을 주창해온 이 회장은 외아들 이재용 전무를 최고의 엘리트를 키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왔다. 이 전무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과정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대학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접할 수 있는 인문학을 익힌 뒤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게 좋겠다는 이 회장의 뜻을 받아들인 것이다.
세계적인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리더십 개발센터(크로톤빌 연수원)’에서 최고위 리더십 교육과정도 수료했다. 이 전무의 입사 동기들까지 그 덕에 최고의 교육과정을 수료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다른 그룹 총수들이 후계자를 주요 계열사에 두루 거치게 하며 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경영수업을 시킨 것과는 달리 이 회장은 유능한 전문경영인들로 하여금 이 전무에게 멘토링하도록 했다. 학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사를 두는 방식이다. 그룹 내 담임교사는 바로 윤종용 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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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윤종용 부회장(가운데)과 이재용 전무 (아래) 이 전무와 최지성 사장(오른쪽) | | 서울 태평로 삼성플라자 식당가에서 이 전무와 윤종용 부회장이 함께 담소를 나누며 거니는 풍경이 자주 목격되는 것도 그래서다. 재무와 관련해선 삼성 전략기획실 김인주 사장이 멘토링하고 있다. 김 사장은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으로 각 계열사 재무구조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재무 전문가다.
이 회장은 이 전무가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경영자는 기술자가 아니지만 현장과 기술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그런 가르침을 받아 반도체 사업을 일으켜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
이 회장은 현장과 기술을 체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문가들과의 토론’이란 점도 아들에게 알려 줬다. 이 전무가 경영기획실 상무 때부터 국내외 사업장을 돌게 하면서 경영진과 토론하도록 한 것도 그래서다. 이 전무에게는 살아있는 경영수업이었다.
이 회장은 이 전무가 글로벌 인맥을 쌓도록 많은 기회를 줬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삼성전자 전시관을 방문한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을 안내하는 역할도 이 전무에게 맡겼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부당증여 문제가 아니었다면 이 회장은 훨씬 더 일찍 이 전무를 후계자로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 회장은 이 전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최소화하면서 그룹 전반에 걸쳐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느라 고심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이 회장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 지난 2월 이 회장은 아들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시키면서 ‘CCO(Chief Customer Officer · 고객담당 최고책임자)’란 타이틀을 줬다.
이 전무는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협력 중인 소니 · 인텔 같은 세계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을 비롯한 해외 대형 유통업체 등과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게 된다. 삼성SDI · 삼성전기 등을 포함한 그룹 계열사 간 업무를 조정하면서 그룹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이 회장은 이 전무에게 이 직책을 맡기면서 “고객과 실무 기술자, 연구소를 더 깊이 알도록 하는 매진하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수십 명의 사내 최우수 인력이 이 전무를 보좌하고, 각 사업총괄과 해외지사 · 법인도 이 전무의 업무를 지원하도록 했다.
이 전무가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COO기구를 부회장 직속의 독립조직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전무는 윤 부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면 된다. 이 회장이 구상하는 이 전무의 경영자 모델은 아마도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아닌가 싶다. 이멜트 회장도 이 전무와 비슷한 나이에 CCO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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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부담 없이 그룹 전체를 읽어라" | | 현대 “책임 부담 없이 그룹 전체를 읽어라”
정몽구(69) 현대차 회장은 아들 정의선(37) 기아차 사장을 CEO 자리에까지 올려놓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권력’을 주지 않고 있다. 실제 정 사장이 재량권을 가지고 무엇을 결정하도록 한 것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다. 사업이란 늘 리스크(위험)가 따르게 마련인데 굳이 아들에게 그런 부담을 감수하도록 할 이유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정 사장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룹 내에서 누구라도 정 사장에 관해 언급하는 것조차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기아차 노사협상이든 투자설명회(IR)든 사장 선에서 할 일이라도 전문경영인인 조남홍 사장이 도맡아 한다. 모든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은 정 회장이 내린다.
정 회장에게 정 사장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어떤 아버지도 외아들을 벼랑에 떨어뜨려 그 능력을 실험하지는 않는다. 정 회장은 정 사장이 그룹의 전 계열사를 돌며 업무를 익히도록 훈련시켜 왔다. 구매부터 국내 영업, 기획,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도록 한 것이다. 최근 충남 당진 출장이 잦은 것으로 봐서 현대제철을 맡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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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정몽구 현대차 회장 (우) 정의선 기아차 사장 | 지난해 기아차 실적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자 정 사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회장 1인 의사결정구조에서 전문경영인인 조 사장에게조차 책임을 묻기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기아차가 홀로서기를 제대로 하려면 정 회장의 영향권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정 회장이 정 사장에게 미국 조지아주 공장이나 슬로바키아 공장 등 주로 해외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난번 슬로바키아 공장 준공식 때도 정 사장은 아버지 그늘에 가려 아무 말도 못하고 구석에서 자리만 지키다 서둘러 귀국했다.
가부장적 현대가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은 필수다. 부자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살며 밥도 같이 먹는다. 정 사장은 아주 사소한 결정이라도 아버지께 여쭤 결정한다. 정 사장이 젊은 나이에도 그룹 내에서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다는 평을 듣는 것도 그래서다.
한 임원은 “재벌 2세란 생각이 안들 정도로 공손하다”고 칭찬했다. 임원 시절, “언제쯤 사장이 될 것 같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빌 게이츠인 줄 아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공손하지만, 아버지만큼 남자다운 면모도 있다. 한때 그는 “남자가 할 일은 사업과 운동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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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물려받으면 책임까지 함께 받는 것" | | SK “회사를 물려받으면 책임까지 함께 받는 것”
고 최종현 회장은 2세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킨 대표적인 총수로 평가받고 있다. 장남인 최태원(47) 회장은 1992년 선경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은 그룹 핵심 부서인 기획실에서 근무하면서 부친이 정립하고 다듬은 ‘SKMS’라 불리는 SK 경영관리체계를 배웠다.
이는 최종현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체득한 시카고 경제학파의 합리적 이론과 한국적 경영현실을 접목한 시스템이다. 최태원 회장을 시카고대로 보내 수학하도록 한 것도 체계적인 경영기법을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배우라는 취지에서였다.
최태원 회장의 기업관은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고 최종현 회장은 경영자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두뇌 회전’을 강조했다. 문과 출신인 아들 최태원 회장이 물리학을 전공한 것도 바로 아버지가 ‘리(理)’를 터득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철학도 인정하지 않았던 고 최종현 회장은 “철학이 없는 것이 바로 내 철학”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철학은 경영자를 자꾸 정해진 틀 속에 가두게 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경영자는 모든 것을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그려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90년대 초, 갓 입사한 최태원 회장은 아버지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네가 생각하고 네가 고민해서 네 실력으로 해결을 해야지, 그걸 왜 내게 묻느냐. 내 대답은 회장의 대답일 수밖에 없는데 너는 회장도 아니면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회장실에 자꾸 들어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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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고 최종현 SK 회장 (우) 최태원 SK 회장 | 서운할 정도로 냉정하기는 했지만 아들에게 독립심과 책임감을 일깨워 주려는 꾸지람이었다. 생전 최종현 회장은 아들에게 ‘기업이란 무엇인가, 그룹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놓고 토론하기를 즐겼다. 시스템에 의한 경영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경영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 최종현 회장의 기업경영론은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바로 ‘능력있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전에 이렇다 할 후계구도를 그리지 않은 것도 그런 지론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현 회장은 다른 그룹 총수들처럼 사전에 지분을 정리해 2세 경영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쩌다 주변에서 지분 정리 얘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 무엇 때문에 그것을 내가 해줘야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최태원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재벌 2세 답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그 돈으로 중고차라도 구입하면 아버지 최종현 회장은 비서를 시켜 자금 출처를 추적할 정도로 엄격했다.
선친처럼 최 회장 역시 토론을 즐긴다. 생각이 다른 임원이나 직원과 부딪치면 누구든 붙들어 “얘기 좀 해보자”며 앉히고 함께 토론해서 상대의 얘기가 옳으면 “그렇게 하자”고 흔쾌히 결론을 낸다.
최종현 회장은 아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최태원 회장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후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컴퓨터 회사에 들어간 것도 그래서다. 아버지 회사가 아닌 남의 밑에서 경험을 쌓도록 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1년 반이나 장돌뱅이처럼 컴퓨터를 팔러 다녔다. 한 업체를 방문하러 차를 몰고 3~4시간 달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물건 하나 파는 일이 실패와 좌절의 연속임을 체감했다. 나중에 그는 “당시의 경험이 귀국 후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구상에 매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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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에서 양재까지 뛰어서 출근해!" | | 신세계 “한남에서 양재까지 뛰어서 출근해!”
얼마 전 만난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재계에서 나만큼 오너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은 전문경영인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명희(64) 회장이 구 부회장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아들 정용진(39) 부회장도 그 정도로 신뢰하고 있을까.
지난해 부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국내 최대 규모의 증여세를 내며 아버지 정재은(68) 명예회장이 지분을 물려준 것을 보면 승계작업이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회사를 물려 줘도 될 만큼 성장했다고 인정한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경영수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정 부회장에게 보통 엄한 어머니가 아니다. 때로는 혹독할 정도로 강한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2003년 정 부회장이 이혼 직후 마음을 못 잡고 생활태도가 나태해지자 이 회장은 직접 정신교육에 나섰다. 당시 한남동 집에서 개점을 앞둔 이마트 양재점까지 조깅으로 출근하도록 지시했다. 한겨울 추위 속에도 정 부회장은 몇 개월 동안 그런 극기훈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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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회장(왼쪽)과 정용진 사장 | | 물론 아버지 정 명예회장도 엄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긴 하지만, 정 명예회장도 불시에 현장에 나타나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정 부회장을 불러 야단친다고 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경영수업은 어머니 이 회장이 전담하다시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숙명의 라이벌인 롯데를 늘 의식했다.
일본에서 자란 신격호 롯데 회장의 2세들이 현지 유통업계에서 자연스레 선진 노하우를 체득하는 것을 상당히 부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일본 출장을 자주 만들어 어린 정 부회장을 데리고 다니며 업계 지인들을 만나게 했다고 한다. 초기부터 아들에게 유통 인맥을 만들어주려 공을 들였다. 정 부회장은 틈만 나면 해외로 나가 들여올 만한 것이 없나 열심히 찾고 있는 것도 이 회장의 초기 교육 영향이 크다.
이 회장은 자신이 패션에 대한 전문성을 백화점 사업에 적용했듯 정 부회장이 식품 쪽에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외에서 견문을 쌓게 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에서 강점으로 부각된 즉석식품 코너를 기획해 성공적으로 들여놓은 주역도 바로 정 부회장이다. 취미를 사업화하는 것도 이 회장의 영향이 컸다.
이 회장은 “언제나 좋아하는 분야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십수 대의 명차를 수집할 정도로 자동차광인 정 부회장이 이마트에 자동차용품 코너를 신설해 적잖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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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성·능력에 맞게 사업 맡겨야 | | 금호아시아나 적성 · 능력에 맞게 사업 맡겨야
조양호(58) 한진 회장은 장녀 현아(33)씨와 장남 원태(31)씨, 차녀 현민(24)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조현아 상무는 최근 그룹 계열사인 칼 호텔네트워크 등기이사에 올랐다.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조 상무는 대한항공 기내판매팀장을 거쳐 항공과 호텔의 안살림을 맡게 됐다. 활달한 성격에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항공업무 전반에 대해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남인 조원태 상무보는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밟고 와 승진과 함께 그룹 통신관련 사업을 전담하는 유니컨버스 대표에 올랐다. 광고를 전공한 막내딸 현민 씨는 LG애드를 그만두고 대한항공의 광고선전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배치는 고 조중훈 회장이 2세들에게 계열사를 맡긴 것과 흡사하다. 조 회장은 자식들의 전공과 성격을 감안해 계열사를 맡겼다. 항공은 공대 출신인 조양호 회장에게, 중공업은 성격이 걸걸한 둘째 조남호 회장에게, 해운 쪽은 사교적인 셋째에게, 증권은 금융 분야를 공부한 막내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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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조양호 회장 (우) 조원태 상무보 | 밖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삼남매는 3세 경영체제를 굳히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조 회장은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자식이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시키지는 않을 것이며 전문가적인 자질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조양호 회장은 자녀의 ‘생존력 훈련’에 집중했다. 후계자 자리는 자기가 능력껏 찾아가는 것이지,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자녀들에게 “경영자는 시스템 관리자”라고 강조한다. “경험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고 조중훈 회장도 자식들에게 어려움을 겪으며 돌파구를 찾는 법을 가르쳤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낸 것도 그래서다. 한번은 조 회장이 유럽여행을 떠날 때 부친은 3,000달러를 경비로 줬다. 여행을 끝내고 조 회장은 아버지에게 받은 돈의 절반을 돌려드렸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니며 1∼2달러짜리 값싼 여인숙에서 묵었던 것이다. 부친은 아들이 돈 쓰는 법을 테스트한 것이다.
박삼구(62) 금호아시아나 회장 아들 세창(32)씨는 지난해 말, 그룹 전략경영본부 이사로 승진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박 이사는 컨설팅업체인 AT커니에서 2년 정도 근무한 뒤 미 MIT에서 MBA를 마쳤다. 박 회장은 아들을 2005년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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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박삼구 회장 (우) 박세창 이사 | 박 회장의 선친인 고 박인천 회장은 일제시대 때 어린 자식들이 일본말을 쓰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선친과 가장 닮았다는 박삼구 회장은 어릴 때부터 수리에 밝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박 회장은 유학을 앞두고 타이어와 연관성 있던 석유화학 사업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박인천 회장은 자식의 의견을 어리다고 무시하기보다는 의욕과 자신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삼구 회장 역시 박 이사가 금호타이어 재직 시 “글로벌 기업으로 가려면 그에 맞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을 때 의견을 받아들여 일을 맡겼다. 입사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한 것도 그런 성과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호가의 가장 큰 가르침은 실력보다는 정직이다. 고 박 회장은 “기업을 맡은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고, 박삼구 회장도 자녀에게 ‘아름다운 기업가’가 될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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