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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寺)을 찾아서(2) - 月牙山 靑谷寺
지난 6월2일 토요일 오후 절 아래의 헛제사밥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월아산을 돌아내려와 청곡사를 볼 요량이었는데 너무 늦어 절만 보기로 했다.
청곡사야 늘상 가고 보는 절이기에 별 다를 게 없나 생각했는데, 작심하고 절집 안팎을 살펴보니
주마간산격으로 간과한 면면들이 너무 많다.
다른 눈으로 절집을 살펴보는 데만 세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절집에 대해 하는게 아니라 절집을 다시 보는 감흥과 소회,
새로운 사실,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적는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다수의 역사적인 사실을 인용했슴을 밝힌다.(출처 명시)
청곡사 대웅전 - 불탄절 뒤라 연등으로 인해 대웅전 편액이 안 보인다.
다시 보는 靑谷寺
청곡사는 신라 헌강왕때(878) 도선국사가 세운 절이라 한다.
진주 남강에서 靑鶴이 날아와 月牙山(482m) 기슭에 앉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청곡사다.
그래서인지 청곡사에는 鶴에 대한 이름이 유독 많다.
절로 드는 길의 소류지인 鶴影池는 '학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생긴 이름이요,
절입구의 다리인 訪鶴橋는 '학이 찾아 오는 다리' 라고,
절집의 누각인 喚鶴樓는 '학을 불러 맞이한다'고 생긴 이름들이다.
하여 靑谷寺란 이름도 靑鶴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절의 역사이기에 <월간 磐若>에 이현도가 쓴 청곡사를 발췌한다.
신덕왕후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왕비이다.
태조가 애지중지하던 강비는 태조보다 일찍 사망한다.
서울의 '貞陵'이 신덕왕후의 무덤이다.
강비의 고향이 진주이고, 진양(진주)강씨이다.
조선이 개국되자 태조는 강비의 고향이라고 진주를 "진양대도호부"로 승격시켰으나,
아들인 태종은 즉위하자 계모인 신덕왕후를 미워해서 진양대도호부를 다시 "목(牧)"으로 격하시킨다.
신덕왕후가 이성계를 처음 만난 곳은 진주 월아산 아래의 갈전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국 장수 이성계 일행이 지리산 지역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마을의 우물가에서 처녀를 만났단다.
갈전의 옛이름은 이성계 일행이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인 우물’이라 하여 ‘갈마정(渴馬井)’이라고 했는데,
흐르는 세월과 함께 우물의 흔적이 없어지면서 지명이 ‘갈전(葛田)’으로 변천되었다.
월아산 청곡사에서 발견된 청동향로의 금문에는 향로제작에 관여했던 사람이름과 제작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태조 6년(1397) 조선 개국성조의 중궁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본향인 진양대도호부의
비보사찰 청곡사 보광전 향로는 청곡사를 중창하는 상총(尙聰)비구가 공경스럽게 조성한다.
온전히 여러 갈래로 상주하는 승당(百分常住僧堂)의 소장임을 확인하나니
법륜은 언제나 굴러서 널리 중생을 제도할 지어다”라는 내용이다.
금문의 내용으로 보아 신덕왕후는 고향인 진주 월아산 청곡사를 복원하고 향로를 만들어
거대한 회향법회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 '월간 반야' 이현도의 글 청곡사에서 발췌]
또한, 퇴계 이황의 칠언절구 한 수가 나온다.
靑 谷 寺
琴山道上晩逢雨 저물녘 금산 가는 길에서 비를 만나니
靑谷寺前寒瀉泉 청곡사 앞 샘에서는 차가운 물이 솟네
謂是雪泥鴻瓜處 아 이게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이려니
存亡離合一산然 존망과 이합이 하나 되어 흐르는구나!
'산'은 눈물 줄줄 흐를 '산'인데 한자가 없다.
이처럼 노스승의 시에도 청곡사가 나온다.
이쯤하고 절로 들어간다.
너른 주차장에서 절로 드는 입구 절표지석 옆에 그간 보지 못했던 뭔가가 떡하니 버티고 섰다.
하도 눈이 설어 살펴보니... 이럴 수가!!
절로 드는 입구의 표지석 - 월아산 청곡사 사적비
이 비석 바로 옆에 神社가...
해괴망측하기 이를데 없고, 통분의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신사
왜인들 승려상인데 강점기때 청곡사에서 주석한 일인 승려인 모양.. 선배 승려라고 이리 한다면 오산이다.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고 발상이다.
'神社'다. 일제 잔재 神社가 절로 드는 입구에 서 있다.
나로서는 처음 보기에 민망할 따름이고, 저으기 당황스럽다. 이 무신.. 우째 이런 일이...
전에는 보지 못한 구조물인데 어디에 있던 것을 가져다가 절 입구 면전에다가 세워 놓았다는 말인가?
물론 과거의 아픈 역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리도 뼈져리게 아팠던 역사의 교훈은 온데간데 없고 일인들의 상징이다시피한 신사가
흉허물스럽게 떡하니 버티고 서 있어서야...
절집의 아픈 역사도 역사이지만 굳이 보지 못하던 구조물을 세워 둘 필요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당시의 아픈 절집의 역사는 우리에게는 치욕 그 이상이다.
그런 치욕을 감추기는 못할 망정 보란듯이...
아이들이 물으면 교훈으로 말해 줄 아픈 역사이던가?
참으로 통분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구려!
절길로 바로 오르지 않고 옆길로 조그마한 소류지에 다가간다.
여기가 바로 '청학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학영지(鶴影池)다.
가히 仙景에 다름 아닌 풍광이다.
여기서 길손은 학영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다.
규모면에서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에 비길 바는 못되나,
절집 아래 소류지로서 풍광은 주산지에 버금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물가운데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물속에도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주산지'와 그림이 겹쳐진다.
학 대신 오리들이 물창구 치며 놀고, 한 겨울이면 가족들을 몰고 나와 썰매도 타곤 했는데 오리들은 온데간데 없다.
절로 들자꾸나!
학영지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절로 든다.
일주문이다. 현판에는 '月牙山靑谷寺'라고 씌어져 있다.
초입부터 녹음이 우거진 게 절로(절집으로) 드는 것 같다.
일주문 편액의 유려한 글씨는 星坡 河東州선생이 쓴 글씨이다.
성파는 추사체의 대가로 이 고장 진주에서 활동한 당대의 명필이다.선생이 쓴 글씨로는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의 현판, 부산 범어사의 관음전과 종루의 편액등이 남아 있다.
선생의 후학으로는 비봉산 아래(정확히 말해 진주여고 뒤) 비봉루에서 하얀 수염을 흩날리며 일필휘지로
추사체를 써내려가던 은초 정명수 옹과, 곤양에서 칩거하며 독특한 추사서체를 창안해 낸 도연 김정 옹이 있다.
두 분 제자가 모두 추사체의 경지를 이룬 분들이다.
다작을 하신(글보시) 두 분의 글씨로는 안동 봉정사 일주문의 편액은 은초의 글씨이고,
곤양 다솔사의 적멸보궁 편액은 도연의 글씨로 유명하다.
성파의 추사체는 곡선의 유려함이 최고의 경지이다.
추사체의 유려함에는 성파만한 명필이 없다.
소나무가 맞을 운명은?
부도탑전 바로 앞의 석탑
아무래도 왜색이...
부도탑전
절을 지나 월아산으로 오르는 중간 등산길..
방학교 바로 위쪽 계곡에 누운 200살 쯤 되어 보이는 왕버들..
저리 누워서도 생명줄을 놓지 않고 푸른 잎을 피워내고 있다.
아! 생명이여!! 생명이여!!!
절 입구에서 만난 다람쥐.. 바로 코앞인데 겁을 내지 않는다.
절 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에서 본 청곡사 대웅전
애기달맞이는 길손을 맞이하고...
대웅전에서 바라 본 환학루
환학루는 청학을 불러 맞이한다네..
대웅전 계단 좌우의 괘불걸이
대웅전 안의 제석천왕과 대범천왕(보물 1232호)
두 천왕상은 보물 지정 후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되었으며 법당안의 것은 모조품이다.
대웅전의 삼존불
가운데는 석가모니불이고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부처님 오시는 길을 밝히는 연등..
내 길을 밝히기 위한 등불이리니...
나만, 내 가족만을 위한 꽃등이 아니길....
업경전 -명부전 -지장전
業이란 무엇이더냐?
수많은 육도윤회의 생에서 거듭되는 자기행위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선업을 지으면 선한 생일 것이요, 악업을 지으면 지옥생이 될 것을...
지옥생을 관장하는 지장보살이 모든 악업이 사라지고 현생에서 불국토가 완성되면 부처가 되리라고...
살이살이 모두가 선업이 되면 업장소멸이 무에 필요할 것인가?
불국토여! 불국토여!!
업장이 소멸되면 無가 되고 無는 곧 空이라.
공의 세계에 이르면 가고 옴도 없고, 나고 죽음도 없으니 이는 곧 피안의 세계에 이름이다.
피안의 세계는 이상향도 아니요, 서방정토도 아니요, 극락세계도 아니다.
나고 죽음이 없으매 무슨 苦海가 있고 苦痛이 있으리요.
이게 바로 涅磐(니르바나)인 것을....
업경전에서 사진을 담는 내내 마치 업경대에서 내가 염라대왕에게 심판 받는 것 같다.
살아가고 살아갈 날.. 죄라도 짓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아미타바.
메꽃도 피었네..
나도 나발이니 니가 죄 지으면 나발 불리라..
獨聖閣.
홀로 깨친 이..
즉, 독성이다. 남방불교에서는 최고의 경지이다.
북방불교라야 보살행이지, 남방불교는 나만 깨치면 그만이다.
그러기에 모든 중생이 스스로 노력하여 깨쳐서 모든이가 독성이 되는 것이 남방불교의 불국토이다.
할매산신각
眞影閣
선승들을 모신 누각이다.
절에서 예불 드릴때, '僧伽耶衆'하고 여짭는 큰 스님들이다.
'존영각'이라고도...
어디 가나 밥먹는데는 예절이 있는 모양..
'삼륜당'이니...
설선당은 한참 공사 진행중~~
칠성각 앞의 나무를 새로 만난다.
수많은 절 방문 걸음 중 처음 만나니까..
하기사 오고서도 못 보고 갔을테지만...
수도 없이 많은 인고의 세월들을 견뎌낸 흔적들이 오롯이 박혀있다.
오고가고 가고오는 중생들도 꿰고, 세월의 무상함도 다 알고 있으리라.
사실 나무는 안쪽(심재)부분이 썩어 허물어져도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수피 바로 안쪽에 위치한 변재부분의 관다발(물관 체관)만 지나가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속이 비어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다시금 내 나이보다 훨씬 많은, 처음 대하는 나무 한 그루를 칠성각 앞에서 만났다.
나한전과 칠성각을 돌아보고,
절 서쪽을 돌아 나온다.
퇴계가 감복했던 맑은 물이 솟는 明泉을 본다.
명천 옆 오랜 감나무는 절을 굽어보며 내일을 기약한다.
절집 서쪽의 明泉
옆의 오랜 감나무는 고개를 돌려 절하며 부처님전을 바라보고 서 있다.
300년이 넘은 감나무인데 지금도 감이 주렁주렁이다.
감나무 남쪽의 느티나무..
연인인 연리지도 아니고, 부부인 연리목도 아니다.
그저 한 몸(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인데 태생부터 형제의 정을 끊지 못하고 이리 몸을 꼬아가며 붙어 있다.
사람들아! 한 몸에서 한 핏줄을 받은 형제는 이래야 하느니라..
청곡사의 유일한 국보인데 친견할 길이 없다.
오래전에는 절에 큰 행사가 있을시 괘불탱을 대웅전 앞 마당의 괘불걸이에 걸어 놓고 법회를 행했는데...
국보로 지정된 후 부터는 괘불탱을 친견조차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나?
대웅전의 경상남도 보물 '영산회상도'나 볼 수 밖에...
친견하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 자료를 뒤지다가 찾았습니다.
(2004-09-19 07:12:08 sfm홈피)
절을 돌아 내려오며 숲을 보는데...
참나무의 위력이 얼마인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참나무 한 그루의 세력범위가 어마어마하다.
옆의 붉은 적송들은 참나무를 시위하는 졸개들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졸개들도 불원간 목숨을 잃고 만다. 마치 파리목숨의 졸개들처럼...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
있음이 없음이요, 없음이 있음이라
그러하니, 있고 없음이 똑 같다.
학영지 물가운데 서 있는 느티나무의 물그림자!
물위에 보이는 것이 실상이요, 물에 비친 그림자가 허상이라
물위의 실상이 물에 비치면 곧 그림자이니 허상이요
물에 비친 그림자가 곧 실상인 느티나무의 모습이니
실상이 없으면 허상도 없고, 허상이 없으면 실상도 없다.
실상이 허상이고 허상이 실상이다.
그러하니, 실상과 허상이 똑 같다.
절을 돌아 한참 후 다시 보는 학영지는 거울 같다.
마치 업경대인 것 처럼... "너희들의 흉한 몰골을 비춰보라"고나 하는 듯이...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6/2일 지나고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는데..
덕천강이 불러 덕천 이야기 듣고 하다보니 늦어졌다.
절 아래의 진주 헛제사밥도 함께 차리려고 했는데, 자리가 너무 작아 다음상에 올릴까 한다.
주마간산격으로 대웅전에서 부처님 얼굴 한 번 보고 나오기가 일쑤였는데,
다시 보는 청곡사는 여러가지 다른 면면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다만 뭇 중생들이 보고 느끼지 못할 뿐!!!
* 6/2일 청곡사 이야기입니다.
* 애초 계획과는 달리 월아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 이 이야기는 몽이블로그에도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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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다
신사는 철거되어야 마땅하다.
승려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긴 우리나라 역사는 깡...이면서, 이스라엘 역사는 줄줄 꿰고 있는 분들이 많은 현실도 한탄스럽지만....
내가 고2때
청곡사에서 수계를 받았다....
그 때 수계받은 불교학생회 멤버 중에서 3명은 출가를 해 높은 공부를 잘 하고 계시다.
...ㅎㅎ 내가 출가 했더라면, 이건 가출....이었겠지만.
청곡사에는 국보급 보물이 참...많다.
입구 성전암도 예사 암자가 아니지만, 실은 두방암이 더 멋있다.
홍병철,박순재 친구들과 두방암 코스로 월아산 야간산행도 감행하기도 하였으니까...^^
몽아....잘 읽었다.^^
자주 갔어도 내가 지금까지 청곡사 헛깨비만 봤구나. 나도 당황스럽네. 정말 잘 읽었다. 새로운 사실도 알았고...
진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청곡사'는
해발 482m인 월아산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농가들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청곡사가 시야에 나타난다.
고즈넉한 경내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내친김에 아름다운 월아산 등반을 계획함도 좋을듯 하다..^^
짝지야!
참말로 자세하게도 둘러보고
그것을 또 멋지게 기록으로 남겼네...
아직 꼼꼼하게 읽어 볼 여유가 없어
자세하는 못 일었데
하여튼 대단타!
불탄절이라 새 건축물이
고풍스럽지 못해서 다소
아쉽네,,,,
정호의 개그..
불(火)이 아이고, 불(佛)..
불탄절(佛誕節) ㅋㅋㅋ
와 대단하다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하더니
우리가 그냥 스쳐지나가는것들을
어찌 그리 잘 포착하고 재미있게 표현을 잘하노
작가로 나가도 되겠다.
홍총몽이..재능과열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보물같은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