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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광탄 장지산 용암사를 찾아서 ①
-용암사 전각과 당우 등 이모저모-
보광사 주차장 옆 식당에서 점심을 끝낸 후 커피 한 잔으로 휴식을 취한 후 다음 행선지 용 암사로 향했습니다. 용암사로 가는 방법은 315번 도로 오른쪽으로 나가다가 사거리 교차 점에서 98번 도로를 바꾸어 타고 가는 방법과, 315번 도로 왼쪽으로 왔던 길로 가다가 78 번 도로와의 교차점에서 78번을 타고 가면 용암사로 갈 수 있는데, 우리는 후자를 택했습 니다. 보광사에서 약 15분 걸립니다. 시간을 적은 수첩을 잃어 버려서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네요. 1시 40분 정도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용암사에 닿고 보니 불기 2541년(1997년)에 화광님과 비니초님을 비롯한 여러 명과 처음 왔던 적이 있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십수 년 전의 모습은 간데 없고 산뜻하게 단장된 용암 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전에는 퇴락한 모습이었는데 상전벽해를 이룬 것 같습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모습입니다.
장지산용암사(長芝山龍岩寺) 일주문(一柱門)
용암사에 왔으니 용암사는 어떤 절인가 알아 보겠습니다.
용미산 용암사는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용미1리 산11번지 장지산(長芝산)에 있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입니다.
절의 창건은 분명하지 않지만 절 뒤에 있는 용미리석불입상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석불입상을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이라 하는데 보물 제93호로 지정되 어 있습니다. 흔히 '쌍미륵'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조성연대가 고려시대인 11세기여서 이 때를 용암사의 창건연대로 잡고 있습니다.
창건 이후 절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다가, 근래의 연혁은 1936년 파주군의 유지들에 의 해 절이 새로이 지어진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뒤 백정만월(白淨滿月)과 혜성(慧城)스님 이 함께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고, 1978년 서호스님이 착공한 대웅전불사는 1979년 현정스 님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에는 대웅전 안에 지장탱화와 감로탱 화가 조성되었습니다. 요사는 1982년이래 꾸준히 증개축 되었으며 1984년에는 종각이 지 어지면서 범종이 봉안되었습니다.
1954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이곳을 다녀갔고, 그 이전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어머니 가 이곳을 찾아 기도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잉태했다고 합니다. 절 입구의 길이 넓혀진 것 도 이때라고 합니다.
일주문에서의 기념사진
묘법님과 제가 합세한 후 미소님이 다시 한 번 찰칵!
용암사 일주문불사 시주기념 시주질(施主秩)
『임진년 12월 21일 불기 2556년 음력 11월 9일 동짓날 일주문 낙성을 즈음하여 용암사는 보물 제93호 쌍미륵입상엔 관련된 고려 제13대 선종(宣宗 1083~1094) 때 쌍석불입상을 조성한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며 근대 이전의 사력은 전란으로 절이 소실 됨에 자료가 없어 사지(寺地)가 전혀 없이 쌍석불입상만 남아 있던 중 1936년 중건하여 지 금에 이르는 동안 2008년 용암사 토지 1700여 평을 확보 이 사지로 사세를 확장하는 중 삼성각을 개축, 현 일주문 건립추진 재원은 신도회장인 한기태가 화주가 되어 도비 시비를 지원 받고 용암사 자부담금과 시주금으로 공사비 2억여 원을 들여 약 3평 외 2출목 5포 내 3출목 7포 겹치마 맞배지붕으로 건립함에 시주자 인연 공덕으로 일주문 불사가 원만하게 회향함을 기념으로 시주자를 현판에 새기다.
영향질 : 경기도지사 김문수, 파주시장 이인재, 경기도의원 김광선. 화주질 : 신도회장 한기태, 용암사 신도간부일동. 대중질 : 주지 포운태공, 지전 성현, 공양주 신녀 서금강신, 사무장 신사 박성근. 도편수 : 박수한 시주질 : 고인환외 145명 명단. 2012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용암사』
용암사사적비(龍岩寺事蹟碑)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 앞에 양편의 소나무가 서로 의지해 있는데 마치 의전병들이 의전용 칼을 서로 맞대고서 통과의례를 행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잘 자라기를 바 라는 마음입니다.
이윽고 대웅보전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대웅보전의 안내판에는 무슨 글이 쓰여 있을까?
바로 이 안내문입니다. -염화님 사진-
대웅보전(大雄寶殿)
1978년 서호스님이 착공한 대웅전 불사는 1979년 현정스님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 고 이듬해인 1980년에는 대웅전 안에 지장탱화와 감로탱화가 조성되었습니다. 그후 1984 년 10월 대웅전이 중수되었는데, 1997년 소실되었습니다. 그후 불기 2547년(2003년)에 중건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정보는 없으나 대웅전 안에 모셔진 탱화가 모두 이때 조성 되어 봉안된 것으로 보아 이때 중건된 것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처음 왔던 그해에 소실되었네요. 여름에 순례를 했는데 그해 10월 20일에 원인 모를 화제를 당했으니...
화재를 당하기전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자지붕건물이었는데 재건한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입니다. 축대는 장지산 아래 낮은 언덕을 다져 자연석 을 조경한 것으로, 건물은 원형 초석 위로 배흘림 기둥을 올리고 주심포를 놓은 모습입니 다. 외벽에는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져 있는데 사진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안에는 석가삼 존상을 모셨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맞배지붕의 대웅보전 모습
대웅보전에는 4구의 주련이 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어디에도 소개가 없는 주련입니 다. 읽어 보니 알 수 없는 글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글자를 옮겨 놓고 글자를 찾기 위하여 옥편이란 옥편은 다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글자였습니다. 그러나 심증(心證)은 있으나 확증(確證)은 없어 답답했습니다.
서예가들은 글자를 희안하게 쓰는 수가 있습니다. 옥편에도 안 나오니 컴에서 쓸 수 없는 글자지요. ㅎㅎㅎ 그것은 바로 옳을 시(是)변에 비 추(帚)를 쓰는 글자입니다. '是+帚' 이런 모양입니다. 그때 비니초님이 얼마전에 헌책방에서 거금을 주고 사온 서예용 '칠체대자전 (七體大字典)을 찾아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찾아보니 나오더군요. 이 글자 '是+帚'를 저는 돌아올 귀(歸)가 아닌가 하는 심증을 갖고 있던 터라 그 글자를 찾아 보니 바로 나오 더군요. 그래서 주련을 해석해 보았습니다.
毘盧遮那眞法身 비로자나진법신 願力弘深遍刹塵 원력홍심변찰진 徧有因緣於斯土 변유인연어사토 普使群迷知歸津 보사군미지귀진
바로자나 부처님은 참된 법신 구족하여 원력은 크고 깊고 온 국토에 두루하네. 이 국토에 인연 있어 곳곳마다 두루하여 어린 중생 피안으로 가는 길을 알게 하네.
이 주련은 나중에 다시 주련방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주련 사진은 염화님께서 찍어 오시 어 전한테 주신 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후불탱화는 비로자나불탱화로 화기(畵記)를 볼 수는 없었으나 같이 모셔진 지장탱화나 신 중탱화의 화기를 보면 불기 2547년(2003년) 음 6월 21일 봉안하였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때 다함께 모셔진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금어는 용정종춘(用淨鐘春)스님입니다.
불단의 좌우를 보시면 기둥에 시커먼 짐승이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불전에 예배했을 때 그 동물에 대하여 우리는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청설모는 아니고 그 러면 흑표(黑豹)가 아닌가도 생각했습니다. 대체 왜 불단에 저 동물을 조성하여 해 놓았을 까 궁금했습니다. 분명 무엇을 지키기 위한 의미일 터인데 말입니다. ^^
기둥의 주인공은 수달(水獺)입니다.
그래서 종무소에 알아보려고 갔으나 인기척이 없어 알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끝까지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라 한가한 틈을 타 용암사에 전화 를 걸어 알아보았습니다.
"지난 번 일요일에 용암사를 순례했는데 대웅전에서 이상한 동물을 보았습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 동물이 어떤 동물입니까?" "예, 수달입니다." "예? 수달이라고요? 대체 왜 하필 수달을 조성해 놓았습니까?" "예, 자세히는 모르나 수달은 물속에 살지 않습니까? 수달은 물에 사는 동물이니 수기(水氣)가 많지 않겠습니까? 실은 용암사가 화재로 여러 번 소실되는 전례가 있어 화재를 막고자 하는 뜻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 동물은 화재예방의 임무를 띤 수달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재를 막는 동물로는 해태 가 있는데 전래의 비법을 버리고 수달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특이한 발상이 아닌가 합니 다. ㅎㅎㅎ ^^
지장탱화(地藏幀畵) 금어(金魚) 용정종춘(用淨鐘春)스님.
화기(畵記)에 따르면 지장탱화(地藏幀畵)는 불기 2547년(2003년) 음 6월 21일 봉안하였는 데, 이를 월운(月雲)스님이 증명(證明)하였습니다. 주지(住持) 포운태공(布雲太空)스님, 금어(金魚) 용정종춘(用淨鐘春)스님 청신녀(淸信女) 원정(圓淨)이란 화기(畵記)가 있습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畵) 금어(金魚) 용정종춘(用淨鐘春)스님.
모두 무얼 보시고 계실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대웅전 앞의 석탑과 석등.
오층석탑을 보고 계십니다.
용암사 오층석탑
이 탑은 최근 대웅전 중수 때 세웠다고 합니다. 대웅전 중수가 1984년에 이루어졌으니 그때 세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습니다. ^^
국태민안 구국통일 천일기도 광명등
대웅전 앞에는 2기의 석등이 세워져 있는데 박정희대통령 참배기념 석등이랍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 언제쯤인지는 모르나 1군단을 방문하고 용암사를 참배하고 가 신 일이 있다 합니다. 석등을 보면 사각 지대석(地臺石) 위에 사각 기대석(基臺石)을 올리 고 그 위에 하대석(下臺石)을 놓았는데 복련(覆蓮)을 새겼고, 그 위에 8각 간주석(竿柱石)을 올렸는데 거기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바라보는 쪽으로 왼쪽 석등은 "국태민안 위하여 천일 광명등 대통령 박정희" 라고 새겨져 있고, 오른쪽 석등은 "구국통일 위하여 천일광명등 대 통령 박정희"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상대석(上臺石)은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고 그 위 화 사석(火舍石)에는 사천왕을 새기고 옥개석(屋蓋石)을 덮었습니다.
대웅전 앞의 석탑과 석등. 앞에 보이는 건물은 퇴설당(堆雪堂)입니다.
요사채인 퇴설당(堆雪堂)
이 건물은 대웅전 좌측에 있는 용암사의 요사채로 1981년 신도회장 조수천(曺守天)이 세 운 것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현재 종무소 겸 주지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퇴설당(堆雪堂) 편액 원경(圓鏡) 임신년(壬申年) 입추(立秋)라 했으니 불기 2536년(1992) 입추입니다. 퇴설당은 대개 절의 주지 스님이 머무는 요사채입니다. 퇴설당이란 이름은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습니다.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면벽을 하고 계실 때 신광(神光)스님이 도를 구하고자 찾아왔 는데 달마대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때마침 눈이 내려 무릎까지 덮이도록 물러나지 않 고 법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도 달마대사가 미동이 없자 팔을 끊어 믿음을 보였습 니다. 이것을 설중단비(雪中斷臂)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받았고 선종 2조(祖)가 되신 것입니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모지붕 목조 건물입니다. 1984년 10월 대웅전 중수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사면은 개방되어 있고, 축대 주위로 난간이 둘러져 있습니다. 범종은 봉덕사 에밀레종을 모방하여 1984년에 주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범종각(梵鐘閣) 편액 서주(西疇) 정광일(鄭光溢) 선생 글씨
서주(西疇) 정광일(鄭光溢) 선생은 국전 작가이며, 현대미전 서예한국화전각 초대작가, 각 미술전 심사위원, 위운장 역임. 아세아미술상 수상, 한중예술총연합회 사무총장, 대한민국서예문인화 원로 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종각 앞의 멋진 덕명님, 무엇을 바라보고 계실까요?
대웅보전을 참배하고 나와 오층석탑과 석등, 요사채, 범종각을 두루 살핀 후 용암사 최대 의 관심처인 쌍미륵불을 친견하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쌍미륵석불전에 대해서는 2부에서 자세히 올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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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용암사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이번 순례길 참석하길 참 잘 한것 같아요. _()_
예, 이야기를 여러 번 듣는 것과 한 번 직접 찾아본 것과는 인식도에서 훨씬 낫지요. 감사합니다. _()_
그래서 百聞不如一見이라 하지 않습니까
무슨 수이 기둥을 타고 있남요
궁금한건 못참으시는 백우님...전화까지하셔서 궁금증 해결해주시는 쎈스....ㅎㅎㅎㅎ
그렇군요...화재예방을위해 조성한거군요...잘봤습니다._()_
모두 궁금해 여기니까요. 궁금증을 풀어야 긴장완화에 좋지요. 감사합니다. _()_
용암사가 화재를 겪었군요. 사찰이 화재에 취약한데 앞으로는 화재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되겠습니다.이라니... 기막힌 발상이네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이에 대하여 궁금히 여길 듯합니다. _()_
화재예방 수
백우님 덕분에 향불교는 막힘이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주련까지 해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챙겨주시려는 정성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예, 화재가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사찰사적기를 보면 소실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이 화재방지동물... 주련은 비로자나 찬탄송입니다. _()_
어떤 절은 불이 하도 많이 나서 사찰 명에 물 水를 넣어 사명을 짓기도 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자나깨나 불조심이 제일입니다. 수
감사합니다.
용암사 전각과 당우 잘 봤습니다. _()_
용암사가 파주 일원에서 의지처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일대 신행과 포교의 전당으로 자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_()_
용암사 건너가 용미리 공동묘지 외조부 외조모의 묘지가 있는 곳 이지요. 예전에는 사찰이 없었는데 근간에 불사가 잘 이루어 졌내요. 감사 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예전에 언제 사찰이 없었나요 창건 이후 절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다가, 일제강점기인 1936년 파주군의 유지들에 의해서 세워진 이래 계속 존속되었는데요. _()_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_()_
1997년에 여기에 오셨던 기억이 나시나요 그때 법사회 회원들과 봉고차 가득 왔었는데... _()_
그때 사진 몇 컷이 있어 그 때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