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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의 25시 경찰학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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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3.
비공개
오늘은 가든 이 분주하다. 20명 넘은 별(★)들이 온단다.
요렇게 많은 별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사연부터 짚고 넘어가자.
베트남은 위관 급부터 별을 단다. 진짜 장성급별도 별이요. 위관급도, 영관급도 모조리 별이다. 그럼 어떻게 구분하나? 베트남 별 구분법……. 먼저 위관 급 계급장에 줄이 한개 있다. 줄 하나에 별이 하나면 소위다……. 영관급은 줄이 두개 있다. 줄 두 개에 별이 두개면 중령님이시다.
그럼 진짜 별은 줄이 세 개? 아니다, 진짜 장군 별은 줄이 없다.
또 우리와 다른 것이, 이 사람들은 북한처럼 계급이 네 단계다. 우리네는 소령, 중령, 대령, 그 다음이 별이지만. 이 사람들은 대령위에 하나 더 있고 그 위가 별이다. 그러니 군인들 숫자는 우리보다 더 많을지라도 별 숫자는 더 작다 그야말로 바람직한 피라밋이다. 그럼 이렇게 많은 별들이 오늘은 왜 우리 가든 에 떼거리로 몰려오시나?
처음 베트남에 와서 느낀 것인데 사회주의 다 그렇듯이 경찰과 군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민중은 그야말로 흑싸리 껍데기. 스탈린 시절에 두 명이 모이면 한사람은 어김없이 경찰 이었듯이. 베트남도 경찰이 엄청 많을 수 밖에 없는 사회주의 국가며 소련을 형님 나라로 모시고 또 모방하며 살던 나라다. 외국인인 우리가 움직이면 모조리 보고가 들어갔다. 해방은 북쪽의 승리로 끝났기에 경찰, 군 높은 직위는 당연히 승리자 몫일 터……. 그러하니 우리와는 한 때 총질했던 족속들이다.
이런 나라에서 공장은 해야 하는데 국교 정상화 전이라서 외국인이라면 전기세도, 전화요금도 자기들 맘대로 먹이던 시절이었으니. 파워 없는 파트너 잡았다가는 시시콜콜 뜯기다가 나자빠질게 뻔한 것은 몇 년의 경험으로 안다. 솜씨 좋고 인건비 저렴한 베트남에 공장은 하나 하려고 회사를 그만둔후 다시 찾은 길인데 어떡한담, 장고 끝에 전직 경찰출신 렌터카 운전수 소개로 베트남 경찰학교와 연결이 되었다. 베트남 중부 이남을 모조리 커버하는 학생들이 1.000명~1.500명가량의 경찰학교다. 경찰학교장 재량으로 경찰학교 부지 중 여유분을 공장으로 임대해 주는 것이다. 당연히 대지는 경찰학교 영내고. 위치는 경찰 학교장 집 바로 앞 담하나 사이로 대나무 몇 그루가 자라는 나대지다.
그 시절은 군, 경찰, 소방서, 이런 관공서들이 외화 벌이를 많이 했다. 많은 땅을 확보하고 있었기로 여분의 땅을 임대해 주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입으로 부족한 재정을 매우는 것이다. 사이공의 어느 호텔은 국방부 소속이고. 1군에는 경찰들이 운영하는 관광 회사까지 있어 사이공 외곽 지역으로 이동시 신고를 하고 허가를 얻어야 했다. 예를 들자면 가까운 '붕다우' 해변은 사이공에서 겨우 80킬로 정도 인데도 허가를 받고 다녀야 했던 시절이었다.
자기들 깜냥에는 잘 한다고 시행한 정책일지 모르지만. 민중들이 무슨 우리 속 염소새끼도 아니고 이거야 원. 거기에 자유분방한 사고로 무장된 외국인들까지 자기들 의식의 우리 속에 가두려는 우를 범했다. 그래서 '코카콜라'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표기하라 했고. 세계적인 체인점인 호텔들도 베트남어로 표기하라고 했다.'코카콜라'를 뭐라고 베트남어로 번역한담? '코카콜라' 하면 브랜드 값만도 얼마인데 작은 나라에 물건 좀 팔자고 베트남어로 번역하여 표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큰 회사들이 베트남정부의 말을 들을까? 아니나 달라 몇 조금 못가고 베트남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별 시덥잖은것들까지 간섭하고 딴지를 걸었다. 개방을 말던가 간섭을 말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서서히 개방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 궁금할 것이다. 나는 그 경찰들이 운영하는 관광회사에서 나트랑.' 붕다우' 등지로 바나나 구하러 다니고, 나중엔 공장부지 구하러 '다낭' 가는데 허가 받고 다녔다. 우리와 국교 정상화되기 3년 전에 와서 23년 넘게 산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그때 베트남 현실을 세세히 이어갈 사람 있음 나와 봐라 나 수고 좀 덜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되어있다는데 파워 좋은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경찰학교 땅에 공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탐색중인데. 경찰 학교장 한마디에 -오케이- 싸인 을 했다."자기도 어린자식들을 기르는데 남을 못살게 굴면 내 대가 아니라도 자녀들이 벌을 받는다." 이거야말로 공자 말씀 아니더냐.
학교장집 담하나 너머 나대지에 공장 만들어서 열심히 일해서 2공장 만들고. 영화 하얀 전쟁 / 머나먼 송바강. 함께 하던 '정수' 동생의 부추김으로 숙소로 사용하던 경찰학교 관사 앞 나대지 700평에 가든 을 만든 것까지 이런 상황글은 나의 글 곳곳에 나온다. 이렇게 초석을 다지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던 중 불의의 일격을 맞는데. 그것이 IMF다 ―2공장 폐업하고 1공장과 가든 1/10로 인원을 줄이고 겨우 숨만 쉬면서 재기하려고 몸부림치던 어느 날. 담벼락 하나 사이의 경찰학교가 난리가 난 것이다.
연일 보지도 못한 인물.별들이 수십 명씩 들고 난다. 그전에는 술친구 학교 교장선생님 덕으로 사이공 시경 부국장 이하 간부들과 자주 술자리에 어울려 안면은 트고 사는데. 요즘 들고나는 인물들은 전혀 안면 없는 인물들이다. 무슨 일인가 알아 봤더니. 부정, 부실한 학교 운영으로 하노이에서 감사가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까 경찰학교에서 임대해준 많은 땅과 그 외 외화벌이로 하는 장사 중 일부. 공장임대, 주유소, 사체놀이, 등등 너무 방만한 사업과 정리 안 된 자금 등으로 내사가 들어온 것이다. (경찰학교. 사채놀이는 뒤에 딸로 거론하겠다.)
작은 사건은 아니라고 느낀 것은. 학교 자금 관리를 했던 여자 중령이 얼마나 코너에 몰려 대책이 없으니 면도칼로 자기 손목 자해를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몇 달이 지나서 경찰학교장이 물러나고 연루된 부 교장 둘과 또 다른 몇 명이 일 계급씩 강등을 당했다. 그중에는 사람 좋은 중령 의사가 끼었는데. 일 계급 강등 후 화가 나서 의사 가운만 입고 다니지 절대로 정복은 안 입고 다녔다. 흐르는 분위기를 보니 이거 기분이 안 좋다. 담벼락 하나사이 우리에게까지 파편이 튀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는 것은 아닌지…….
점점 윤곽이 들어났다. 날카로운 칼날이 향하는 방향이 전 방위적이다. 경찰 학교장이 살던 땅도 절반은 내놔야 하고 학교 영내에 입주한 외부 업체들은 모조리 나가라는 것이다. 이런 상려리 쉐이덜을 봤나.부정을 저질렀으면 저희들끼리 해결할 것이지. 왜 계약기간이 많이 남은 애먼 업체들을 내모나. 익서은 우리와 경찰 학교 측과의 5년간 장기전으로 치룬 싸움의 발단이 되었다. 그나마 하나 남은 1공장은 계약기간이 2년 남았기로 비워주었다. 계약기간이 8년 남았고 10만 달러 이상 투자해 건물까지 지은 가든 은 건들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처음 싸움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경찰학교에서 사용해야하니 공장과 가든을 외부로 옮겨 달라는 공문이 왔다. 우리는 당연히, 잡초지에 우리가 건물을 지었고 계약기간도 8년이 더 남았으니 내보내려면 보상을 해 달라. 그래서 보상액을 작성하여 경찰학교 측에 제출했다…….이때부터 보상액이 많다는 소리와 함께 목조르기가 시작되었다. 자~이제부터 베트남 사람 잔머리 공부 좀 합시다.
*처음……. 가든 외부 간판에 영문이 베트남어 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한다고 벌금을 매겼다.
*그럼 어떻게? / 벌금 물고 / 베트남어 보다 더 작게 / 베트남어 아래에 / 영어를 쓰란다.
( 벌금 물고, 멀정한 간판 내리고 다시 만들어서 달았다. )
*두 번째……. IMF로 손님도 별로 없는 가든 에 20명가량의 경제경찰이 들이닥쳐서 서류압수 / 종업원들 모조리 차에 실고가 조사 / 재료구입 근거서류 / 노동계약서 / 종업원들 주거신고서 / 멀리서 온 아이들은 이주신고서 / 건강증명서 / 요식업 교육수료증 / 등을 제출하라고 했다. 하나라도 누락시 모조리 벌금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전에는 우리 가든 뒤에 있던 경찰학교 정문을…….가든 으로 들어오는 길목 새로 만들고 식사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경찰 경비가 외국인은 여권, 현지인은 주민증을 맡겨놓고 가라고 하니 밥 한 그릇 먹으려고 식당 가는데 이렇게 수고를 하고서야 내 부모 형제 아닌 바에야….누가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당하면서까지 밥 먹으러 오시겠는가. 당연히 이걸 노린 것이지만….차도 못 들어가게 하니 우기 때 비 맞고 밥 먹으러 들어간다? 참 치사하고 더러운 놈들이다. 일국의 경찰학교가 할 짓이라니 윗대가리들 하는 짓을 보니. 이놈의 경찰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당최 모르겠다.
이것만이 아니다. 밤 11시 이후로 문을 두들겨서 나가보면. 경찰 백차를 대 놓고 타란다. 왜? 주거신고 없이 여기서 자니까.
"내가 잠잘 곳이 아닌 곳에서 잔다면 (즉 경찰학교 영내에서)경찰학교에서 가만 두었겠냐? 경찰학교장 데려와라 삼자대면하자…….
"그건 네 사정이고 신고는 안 되어 있으니 어서 타……."
예전에 잘 해주어서 신경도 안 썼던 주거신고가 새로운 교장으로 교체 후 우리를 몰아내려고 안내주고 관활 서에 연락해서 괴롭히라고 한 것은 안 봐도 그림이다. 와! 사람 돌겠더라…….이런 빌어먹을 베트콩 놈들아 나 어디로 안 도망가니까 밝은 낮에 와라….밤에 잠도 못 자게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자기들은 이것이 일이란다….그리고 이 시간에 와야 나의 잠자리 가지고 시비를 걸 수 있다는 심사다. 끝없는 잔머리.
이때부터 본격적인 싸움 준비에 들어갔다. 계약 서류와 함께 진정서. 그리고 여러 영수증을 첨부했는데. 그 영수증 속에는 IMF로 손님이 없어서 가든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할 지경이라서 경찰학교에서 사채 돈을 빌려서 빌린 돈으로 경찰학교에 월 임대료를 지급했고 또 빌린 돈 이자도 지급해야 했다.
참 양심적이고 물 좋은 세입자들이시다. 앙 그런가…….임대료 못 내니까…….임대 해준 이에게(경찰학교)높은 금리로 사채를 빌려서 빌린 돈으로 그 자리서 임대료 냈고.이자까지 지불했으니. 이거야 말로 앉아서 빌린 이자높은 사체로, 일어 서면서 바로 이자까지 냈으니…….허허
그때 빌린 돈 계약서와 그 돈으로 임대료와 이자 돈까지 내고 받은 영수증을 모조리 복사하여서 사이공 시장 , 사이공 시경국장 앞으로 진정서를 보냈고. 또 한부를 들고 영사관을 찾았다.그 후 들리는 소리가 "얼씨구! 잘하는 짓이다~점입가경(轉入佳境)이로세. 일국의 경찰학교에서 외화벌이 한답시고 사채놀이까지…….
이렇게 드잡이 질로 하루가 불안스런 어느 날…….영사관에서 힘을 써 주어서인지. 베트남 외교부에서 보잔다. 외교부 건물을 수소문해 보니…….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대통령궁 오른쪽 '알렉산더 로드'에 있었다. 해방 후 승리자 맘대로 사이공시를 호치민시로 바꾸고 거리도 모조리 자기들 입맛대로 손 본 것 같은데 왜 이 거리는 관두었는지 모를 일이다.
살다보니 별난 곳 다 가보네 그래…. 자기들이 원하는 날짜, 시간에 외교부 건물을 찾아가니…….젊은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 나왔다. 우리를 부른 이유를 물었더니….우리가 변상해 달라는 가격이 높다고 한다. (오잉! 변상해 주기는 하려는 구나….이것이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는걸 알기까지는….외교부 건물 다녀온 지 1년이 걸렸다)
그래! 당신들도 힘들다 하고….우리도 경찰학교에 시달려서 죽을 맛이다.
정문까지 막아놓고 손님 식사하러 오시는데 여권 맡겨라 주민등록 맡겨라 하는데 가 어디냐? 그리고 우리가 불법으로 장사하는 것 아니잖아? 경찰학교하고 함께 작성한 계약서 여기다. 당신나라 법에 두 계약자 중에 계약을 위반하는 상대에게는 두 배의 보상을 하게 된다며, 맞나?
맞는다고. 그럼 이번 건도 경찰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계약기간이 아직도 8년이나 남은 우리를 내 보내려 했으니.투자금 두 배를 물어주어야 하는가 아니냐. 그래도 우리는 건축비와 시설비등 최소한의 가격을 배상해달라했다. 이런 마당에 우리보고 뭘 어쩌라는 것이냐? 난 우리가 왜 이렇게 시달리며 또 이 자리에 와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오늘은 많이 배운 그대들이 시원한 답 좀 주셔야겠다.
보상액 문 제만해도 그래요….많다고 생각이 들었다면….우리를 불러서 전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 상의를 해야지.아무 말도 없이 장사 못하게 막으면 되는 것이냐?
당신들 축구 좋아하시지? 지금 우리에게는 공(보상 액)이 없어요.학교 측으로 보냈거든.그런데 학교 측에서 돌려 보내주지 않으면서 공이없어 그런데 없는 공을 또 차라는 것이냐? 그럼 좋다 우리도 질렸으니. 이건 룰이 아니지만 ―보상액을 다시 내려서 신청했다고 치자. 그런데 학교 측에서. 이것도 많아 더 내려…….이렇게 나오면 우리는 어쩌지? 우리는 거지가 아니잖아? 우리는 동등한 계약자 맞지? 그리고 계약을 위반한 것도 학교 측이고... 앞에서 거론했듯이 조정해서 보낸 보상액이 많다고 또 내리라고 하면 그때 당신들이 책임진다고 한마디만 해 다오.그럼 당장 조정(내려)해서 보내겠다….책임질래? 왜 말이 없으셔….불렀으면 일이 원활하게 풀리도록 의논을 해야지요.
셋씩이나 나와 놓고는 별 말들이 없다. 뭐 식당주인 정도야.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 겐가? 이런 만남이 있은 후 또 일 년이 흘렀다. 만날 싸움질에 땡볕인데 세월 가는 것은 어찌 아느냐고? 여기 高山 도시 '달리'에서 나는 용잔한 감이 우리나라 보다 두 달 먼저 시장 토마토 옆에서 얼굴에 수박씨 같은 파리 붙이고 나뒹굴면 가을이 도래 한줄 어림한다.
그렇게 시달리며 버틴 지 1.000일도 훨씬 지난 어느 날….그날은 10명 가까운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이번엔 사이공 시경 소속 경찰들이란다. 한두 번 몰려와야지 이제 이것도 이골이 나서 이것들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가든 을 앞뒤로 돌아다니면서 모든 것을 체크하였다. 본 건물, 부족건물, 뜰 조경, 분수, 너머 원두막, 원두막 건너 풀장, 풀장 건너 골프 연습장 3타석…….모두 체크 후에. 한다는 소리가….건축비의 40%를 보상해 주겠다고 한다.나대지는 30%만 주시겠단다. 우리는 15년 계약기간중 절반이 넘은 8년 잔여 계약기간이 남았으니. 60%를 해 달라고 했다. 그럼 자기들 의견은 40% 우리 의견은 60% 이걸로 서류 작업은 마치고 저녁 잘 먹고 가셨다.(해 주기는 해 주려나…….이걸 믿고 또 사채 쓰며 버티다가 눈덩이 처럼 불어버린 월 5% 이자 때문에 베트남에 뼈를 묻을 뻔한다.)
이 사람들이 돌아간 후 매달 5% 이차돈 내면서 기다리는데..몇 달이 거듭 지나고 돌도 넘고 또 시장에 감이 나뒹굴어도 도무지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나중에는 낡아서 비기 오면 줄줄 새는 관사 지붕도 못 고치게 해서 우기 때는 이곳저곳 떨어지는 비를 피해서 잠을 자야했다. 자 이런 생활을…….즉 분쟁 당사자인 경찰학교장, 외국인 관리 경찰, 사이공 시경, 그리고 주변 경찰서, 모든 부서들이 이놈도 차보고 저놈도 차보는……. 약 오줌 받자고 상자에 넣어둔 토끼 꼴을 근 4년 넘게 당해 보라. 그럼 없는 병도 생기고 무쇠라도 흔적 없이 녹을 일이다.
너무나 당연히 병이 났다…….그때까지 까맣던 머리카락은…….어딘지 모르게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는 베트콩처럼 흰머리가 튀어 나왔으며. 불안감으로 밤마다 마신 술로 위장은 보릿자루처럼 늘어져서 물도 넘기기 어렵고. 쌓인 울화를 발산할 곳이 없어서…….왼 가슴은 간혹 통증으로 지어 뜯는다. 이런 증상을 우리 고향에서는 '가슴에 피' 라는 병이라 한다. 참으로 난감하던 시절 어디에 보를 막고 어디에 물고를 내야 할러는지 당최. 덕분에 시 한수 배웠다.
기다린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누구도 다가오지 않은 시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조병준의 (따뜻한 슬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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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악몽 같은 곳을 어찌 탈출 했나로 넘어가자. 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던 어느 날.너무 피로운 몸으로 침대에 누었다가 일어서는데. 방이 핑 돌면서 사방이 캄캄해지며 쓰러진 것이다. 밖에 누구에게 연락도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의식은 있어서. 아하! 사람은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기로 쓰러진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긍적적인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였다. 괜찮을 것이다. 편하게 생각하자. 열네살에 오일장에 소사러 갈때보다 더 대책없는것도 아니고 또 간염을 술로 이긴 내가 아니더냐. 편하게…….편하게…….
얼마 뒤에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은 할 수 있었으나. 큰 병원은 돈이 없어서 갈수가 없었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경찰학교 주치의를 찾았다. 경찰학교 주치의는 오후 4시 이후로는 집에서 의료 행위를 했다. 급료가 작다보니. 퇴근 후 집에서 의료 행위를 하여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도록 정부에서 허락한 것이다.
참 이런 별난 일도 있나. 경찰 학교장이 발병하게 만든 병을 경찰학교 주치의에게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이 아이러니. 진료 중에 너희 학교장으로 인하여 생긴 병이니 치료비 줄 수 없다 하였더니. 일 계급 강등 된 자기 처지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동병상련이라고 해서…….환자 의사가 진료 중에 껄껄 웃었다.
계속 가슴과 머리 아픈 것이 낮지 않아서 알고 지내던 베트남 육군 통합병원 '마담 신' 이라는 부원장에게 부탁하여 검사를 받았다. 일사천리로 검사를 받고 결과를 애기하시는데, 당신은 심장이 약하다. 남들은 심장이 1분에 60번 뛸 동안 당신 심장은 45번 정도 안뛴다. 그래서 통증도 오고 심장보다 높은 머리 쪽으로 혈액을 원활하게 못 뿜어주어서 머리가 아픈 것이라고 한다.
호! 그래 그럼 물구나무서기 하면 되겠구나. 약 준 것 받아서 와서 목에 넘기고 이제까지 끝이다. 가만두니 가슴통증은 사라지더라. "병은 자연이 치료하고 돈은 의사가 받는다."
자~학교와의 오랜 싸움으로 쓰러져서 이제는 벽 잡고 다닌다. 이걸 어찌해야하나…….누워서 몇 주간 장고해 봤지만 어디에도 답이없다. 그동안도 사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그래서 가자 익소을 떠나자, 여기 더 있다가는 내가 죽는다. 노가다를 해라도 남은식구들 먹여 살리려면 몸이 건강해야한다…….그래 나가자. 우리가 지은 건물과 기타 시설물들은 모조리 부셔서 고물상에 팔아 넘기고 나가자……. 그렇게 맘 먹고 톱을들고 나섰다. 그동안 여기저기 길을가다가 예쁜 꽃나무가 보이면 집주인에게 팔라고 하여 우리집으로 옮겨심고 정성스레 가꾼 나무부터 톱들 댔다. <황산벌 전투에 나서기 전에 자기손으로 가족들을 살해하고 출전했다는 계백장군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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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그 다음날부터 톱과 도끼들고 뜰에 나무부터 아작 내기 시작했다. 몸이 부실하니 나무 하나 자르는데도 하루 종일 걸린다. 내가 도끼들이고 뚝딱 뚝딱 딱따구리 모양 나무를 쪼고 있으니. 담 너머 경찰학교에서 금방 연락이 왔다. 그러지 마시고 부셔봐야 고물 값인데 더운데 힘빼지 마시고 파시고 가시란다. (하이고! 눈물 난다 이놈들아…….악어의 눈물 ) 사준다는 가격이 고물 값보다 높았지만, 더러워서 다 부시고 간다고 그담 날도 도끼들이고. 또 그 다음날도 도끼들이고 나서니. 이제 경찰학교만 안달이 난 것이 아니고 주변 지인, 가족들까지도 나를 말리는 것이다.
나 좀 놔둬라. 고추장에 고추 찍어먹는 민족 성질 좀 보여 주도록. 그냥가면 화병으로 죽을 것 같다.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 청명에 죽나 한식에 죽나 돗진갯진 아니것냐? 그리고 이렇게 모조리 부셔버리고 가야, 그래야 담에 한국 사람들 많이 들어와 사업을 하게 되면 또 무슨 문제가 발생할 할지라도 이것들이 한국 사람들 우숫게 보지않고 조심할 것 아니냐.
며칠 승강이하다 또 쓰러졌다…….부실한 몸으로 너무 힘든 도끼질을 여러 날 하는 통에…….어쩔 수 없어서. 주겠다느 돈 받고 나가기로 했다. 내일은 이사를 가는날 이라서 오늘 새로운 학교장 까라. 많은 별들이 몰려온 것이다. 이사짐 옮길 차량도 학교에서 제공하고 1.000명넘은 아이들 필요하면 얼마던지 인부로 제공한단다. 그리고 돈 주겠다고 음식 주문을 하더니 몰려온 것이다…….
나 보고는 경찰학교장 옆에 앉으시란다. 그러고 마시더니 '위하여'도 하잔다…….이 상려리 쉐이덜 건물 부수지 말라고 투자비 1/10도 안된 돈을 줘 놓고서 머시라? 위하여 저희들은 위하여가 될지 모르지만 내는 이제 거리에 내 앉을 판인데. 잔은 들기는 했는데 영화 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안소 킨 주연 영화 25시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서 고개를 숙이고 픽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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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끌려간 안소니 퀸 / 오리지널 게르만족 혈통이라 하여 매스컴 탄 안소니 퀸 /
오랜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부인의 치마를 잡고 있는(적군의 강간으로)금발 어린이 /
그 고통으로 백발이 되어 버린 부인 / 어찌 할 줄 모르는 안소니 퀸과 그 가족들에게 사진을
찍을 테니 웃으라고 부추기는 사진기자 / 그때 안소니 퀸 표정이 지금 잔을 들고 잇는 내 표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