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참으로 가까이 있고, 그것은 실로 순간이다. 한 순간의 미끄러짐이나, 찰라의 사고 순간에 삶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낭떠러지이다. 지난 한 주일은 그러한 삶과 죽음이 불과 한 뼘의 차이로 내 앞에서 오가는 속에서 힘겹고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이번 주에는 화요일 아침과 수요일 저녁에 아주 중요한 국제회의가 있고, 그 회의의 80%와 40%를 내가 직접 영어로 발표 해야 하기에 그 자료준비에 근 한 달을 매달렸고, 지난 주에는 자료를 최종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금요일이 노조 창립일이라서 휴일이기에 모든 것을 목요일까지 완료하기로 하고 목요일 밤에 미국에 있는 친구와 최종 리허설을 하기로 하였는데, 목요일 출근하자마자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난리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서 식목일에 사촌형들과 시내에 나가 식사를 하신이후로 체한 것 같다며 식사도 못하셨는데, 목요일아침에 결국은 병원으로 실려가신 모양이다.
고향 집에 혼자계신 노모는 매일아침 안부전화로 오늘도 무사하시구나 확인하면서도 탈이라도 나시면 금방 달려가기도 어려운지라 늘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늘 왕래가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한 동네 사는 사촌 큰형님이 있어 위급할 시는 우선 조치는 가능하였다.
그날도 수요일에 교회도 못 나오신 어머니가 궁금하여 아침 일찍 들러 본 이웃집 아주머니가 끙끙 앓고 계신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사촌형에게 연락하여 급히 시골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링거를 꽂고 응급처치를 하여도 열이 내리지 않고 혼절을 하시기에 부랴부랴 천안 순천향병원으로 모시고 가면서 연락이 되었다.
저녁회의 자료준비를 급히 담당차장에게 지시하고는 회사를 나와 오산역에서 전철을 타니 마음은 급한데, 평일 오전의 한산한 시골 전철에는 또 다른 운치가 있어 마음을 달래준다. 보니, 대부분 서울에서 천안에 있는 대학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왜 그리 하나같이 밝고 화사한지, 전철이라도 제법 빨리 달리는 차창 밖 봄의 푸르름과 더불어 그대로 달려 봄 나들이 가고 싶은 유혹의 계절이 가슴 그득 다가온다. 겨우 30분만에 천안에 도착하고, 산뜻하게 단장한 천안역의 서부광장으로 나오니 순천향병원이 코앞이다.
응급실로 가셨다는 셋째 형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 들어서니 사촌형님이 막 수속을 마치고 간단한 검사를 하고 있었다. 50여 평의 응급실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하고,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십여 개의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응급 이라기보다는 입원하기 전에 사전 검사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겨우 눈을 떠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두 눈에 자식을 바라보는 안도감이 있다. 검사용 피를 뽑고, 엑스레이도 찍고, 간단한 여러 검사들을 마치고 나니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수고하신 사촌형님께 사례를 하고, 어머니와 단둘이 남아 응급실 가운데 기둥 옆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데, 전화통에 불이 난다. 연로하신 노모를 둔 자식들은 멀리 있고 또 직장에 얽매이니 당장 달려오지는 못하고 그저 걱정만 태산이다. 연신 경과 설명해주며 형들 안심시키는데,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실종되었던 대전의 친구가 결국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비보였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전화들…. 실낱 같은 기대마저 물거품이 되고, 한 점 주검이 되어 돌아온 친구를 위하여 연락하고 조화 보내고 그리고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오늘은 어머니에 전념을 하기로 하였다.
점심때가 다가오니 응급실이 바빠진다. 식사하고 오시다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실려온 노인네, 계단에서 굴렀다는 아주머니, 코와 입으로 잔뜩 호수를 물고 피범벅이 되어 응급 조치 받는 할아버지… 응급실이 점차 소란해지더니 갑자기 한무리 우르르 들어오고 통곡소리가 요란하다.
상복입고 지팡이 짚고 뛰어다니는 상주들 옆으로 피범벅이 된 젊은 남자는 응급 조치실로 실려가더니 심폐 소생술하는 모습이 긴박하고, 상복 입은 또 다른 남자도 피범벅인 얼굴로 엉엉 울며 들어오고, 젊은 여자하나는 목덜미 피범벅인데 멍하니 실려오고, 그리고는 담요로 뒤덮인 채로 한 사람이 실려와서는 어머니 침상 옆에 방치된다. 두 침상사이가 겨우 50센티밖에 안되고, 내가 그 사이에 끼어 있는데, 의사가 달려와서 담요를 들추는데 언뜻 보니 오른쪽 눈가가 푹 파여 마치 눈알이 빠진듯하고 얼굴이 피범벅이다. 허걱하며 숨이 턱 막히는데 의사는 죽었다며 담요를 내린다.
형수님 당장 살려내라고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의사를 밀치니 의사가 다시 담요를 들추는데 보니 두 눈이 허공을 바라보고있고, 오른쪽 눈 위가 푹 파인 채로 절명해있다. 당신들 이러면 저기 있는 아들까지 죽는다며 우선 가망성 있는 이부터 살리자고 하니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한산하던 응급실이 갑자기 아비규환으로 바뀌며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어머니 놀라실까봐 커튼을 빙 둘러 치는데, 간호사가 와서 반대쪽 한산한 쪽으로 침상을 옮겨준다. 커튼을 빙둘러 치고 그 안에 어머니와 단 둘이 있는데, 바깥세상은 저승이고, 이 안은 이승처럼 느껴진다. 얇은 커튼을 제치면 그대로 처참한 아비규환의 세상이다.
점심도 굶고 시간은 오후를 한참 넘기는데, 온다던 담당 내과의사는 오지않고, 저녁회의 준비에 점점 걱정이 커가는데, 세시가 넘어서 담당 전문의가 와서 설명을 해준다. 92년부터 내원하며 치료 받은 어머니의 챠트를 넘기며 그간의 병력과 내시경 사진들, 그리고, 오늘의 검사결과를 보아 담석의 가능성과 노인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암등의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입원수속을 밟으라고 한다. 오늘중으로 CT 촬영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술여부를 결정한다고 하여 부랴부랴 입원수속을 밟는데 병실이 없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이제는 저녁에 있을 두건의 전화회의 준비할 생각으로 마음이 급한데, 온양에 있는 학교에 계신 셋째 형수가 조퇴를 하고 달려왔다. 퇴근 후 공주로 대학원을 다닌다는 형수에게 어머니를 인계하고는 서둘러 전철을 타고 회사에 들어오니 밀린 일이 또 태산이다. 저녁회의 자료 준비는 점검해보니 너무 부실하여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서둘러 회의준비하고, 두번의 회의를 마치니 밤 열시 반이다. 다행이 수지에 사는 직원이 차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직원의 차를 타고 서울 집에 오니 자정이 다되었다. 참으로 길고도 힘겨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날 – 수술과 조문
금요일은 노조 창립일이기에 쉬는 날이라서 애초에 한식 날 대신 고향을 찾으려 했었는데, 어머니 입원하여 계시니 고향 행은 포기하고 병원으로 가기로 하고는 아침부터 일찍 서두르는데 미아리사시는 큰 이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 받던 어부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모님 울지 말고 진정하시라고 하는데 가슴이 철렁한다. 흐미, 또 무슨 일이여…..
전화를 받아보니 오랜 병석에 계시던 둘째 이모부께서 새벽에 돌아가셨으니 형들한테 연락하고 빨리 오라는 말씀이다. 급히 천안에 가서 혼자계신 어머니 검사 받고 수술 해야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날 벼락인지…..마음을 진정하고, 오늘은 수원에 있는 형님보고 가라고 하고 나는 낼 가겠다고 말씀 드리고는 부지런히 서둘러 어부인과 함께 천안으로 내려갔다.
가면서 셋째 형에게 전화로 인계를 받는데, CT 촬영결과 담석이 예상되므로 아침에 자기공명촬영과 내시경을 하고 필요시 곧바로 수술을 하신다는데, 아마도 내시경을 통한 레이저 수술이 될 거라고 한다. 병원에 도착하여 보니, 어머니는 열도 내리고 통증도 없어졌지만, 며칠째 굶으셨으니 기력은 쇠하고 얼굴은 부어있었다. 어제는 거동도 못하셔서 소변보는 일이 제일 고역이었는데, 오늘은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이 되셨다.
오전에 자기공명촬영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오후 두시쯤에 주치의선생님 주관으로 내시경을 한다며 검사실로 모셔간다. 먼저 담당의가 설명을 해주는데, 자기공명촬영결과 담도가 많이 부어있고 그 끝에 콩알만한 담석이 두개 보이는데 내시경을 통하여 확실히 조사하고 바로 수술을 한다고 한다. 추정키는 담석이지만, 연로하신 분이기에 부어있는 관벽에 암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고 한다. 이어서, 어머니의 오랜 주치의이신 내과과장이 다시 인사하며 자세히 설명해준다. 생각보다 많이 개방적이고 자세하고 또한 친절하다. 잘 부탁 드린다고 정중히 인사하고는 문밖에서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한없이 지루하고 답답하였다. 단순한 담석이면 레이져로 부셔서 빼내면 간단히 끝나는 수술이기에 탈없이 수술이 끝나기만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렸다.
한시간 정도 지나니 문이 열리며 가족을 부른다. 내시경으로 촬영된 담낭관이 장으로 연결되는 좁쌀만한 입구사진을 보여주고, 그 입구를 넓히기 위해 내시경 칼로 살을 절개한 위치, 그리고 길게 절개된 사진 몇 장을 보여주더니, 칼끝이 너무 나가서 장의 벽을 절개한 것 같다고 한다. 마취를 하고 시술을 하는데 어머니가 통증에 온몸을 비틀고 하여 급히 수술을 중단하고 담낭관에 가는 호스만 삽입하였다는데, 지난 10년간 이런 경우가 5번 있었고 그 중 3명이 사망하였다는 날 벼락 같은 얘기를 전해준다. 급히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검사실로 달려가는데, 담당의사와 주치의의 얼굴이 다급하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며 어머니를 붙들고 같이 뛰는데, 의외로 어머니는 편안한 모습이다.
초음파검사 하는 동안 셋째형에게 경과를 전화로 설명해주는데 막 목이 메어온다. 얘기듣는 형은 그 자식 돌팔이라며 길길이 뛰는데, 긴 호스를 통하여 원격으로 제어하는 수술인데 어찌하겠냐며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데 담당 주치의가 나온다. 다행이 큰 구멍은 없는데 계속 검사를 하며 기다려 보자고 한다. 그 양반도 십년감수했다며 힘든 모습으로 돌아가고, 담당의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나와 어부인을 안심시킨다.
힘든 문상길
어머니를 병실로 모시고, 오후 내내 검사하고 치료약 투여하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 때쯤 울산의 셋째 형수가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병원을 나와 대전으로 향했다. 어둑한 고속도로를 달려 대전에 가는 길은 어머니의 수술뒤끝의 놀람과 긴장이 겹쳐 무척이나 피곤한 길이었다.
그래도, 상가집이 동창회장이라는 말처럼, 황망하게 떠난 친구 덕에 보고싶던 많은 친구들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비록 고인이 이과 출신이고 늘 조용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서 동창들간의 교류가 적었기에 생각보다는 적게 왔지만, 그래도 부산, 창원, 구미를 비롯하여 서울에서도 차량 몇 대로 나누어 내려왔으니 제법 많은 친구들이 모인셈이다.
이승을 뜬지 제법 시간이 흘렀어도, 이제야 소식을 전하였기에 뒤늦게 모여 친구의 가는 길에 꽃 한 송이 올리고 큰절로 석별의 인사를 하니 그윽한 모습의 영정 속 친구도 이제는 편하게 먼 길을 떠났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으니 상가집이 쓸쓸하면 어쩌나 걱정하였는데 우리 친구들뿐 아니라 그 넓은 문상실이 꽉 차서 북적거리니 다행이었다.
셋째날 – 두번째 문상길
친구들과의 상가집 우정은 그 끝이 없기에, 서울 사는 여 동기들을 핑계로 일찍 일어났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와 씻고 나니 새벽 두시 반이다. 잠자리에 들어 지난 이틀을 생각하니 머리가 빙빙 돌더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마치 술 마신 다음날처럼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주체를 할 수가 없다. 아침도 못 먹고 다시 쓰러져 잠을 청하니 비몽사몽 뒤척이며 정신을 못 차리다가 열 두시 다 되어 겨우 일어났다.
오랜만에 진통제를 찾아 한 알 먹고 점심을 먹는데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오랜 세월 병석에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작은 이모부 댁에 문상을 가야하기에 부지런히 점심을 먹고 머리를 감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든다. 어부인 대동하고 청량리 성바오르병원엘 가는데 봄비가 구질구질 내린다. 길가에 개나리 만개하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봄비가 저렇게 내리니 윤중로 벚꽃구경 가기로 한 사람들은 참 속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부의 상가 집은 참으로 쓸쓸하였다. 거기도 한때는 큰 운수업을 하며 떵떵거렸는데, 어찌어찌 사업이 망하고 술로서 세월을 보내다가 당뇨병을 얻고, 합병증으로 만년에 고생을 많이 하였는데, 몰락한 집안의 상가엔 찾아오는 이도 하나 없었다. 두어 시간 앉아서 큰 이모가 풀어 놓는 삶의 푸념을 들어주는데, 뒷머리가 뜨겁고 식은땀이 흐른다. 쓸쓸한 상가 집을 오래 지켜주는게 도리이지만, 불편해 하는 어부인과 애들을 핑계로 일어서 나오는데 가슴이 아렸다.
산다는 게 이렇게 어렵고 또 도리를 다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것임을 실감한 사흘이었다.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며 화요일 아침에 발표할 자료의 나래이션을 만들고, 틈틈이 지난 사흘을 기록해본다. 삶과 죽음의 간격은 겨우 한 뼘이지만, 죽음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머나 먼 길, 그 길을 환송하는 남은 자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먼 길 떠나며 남은 이들에게 주는 축복으로 우리는 그 보상을 받을 거라 생각해본다.
집에 일찍 들어온 김에 여기저기서 놀구 있었는데...잠시 한눈 팔다 초우랑 못마주쳤구만. 늦가을 같은 글이라 그런게 아니구 초우한테 환한 일이 많이 생겨 신나는 글 보구싶단 말유...혹 오해한 거 아니유? 아니것제~ 똑똑한 친군께...어쨋든 어머니 시술 잘되셨다하니 다행이구...
첫댓글 사흘 간이 한 편의 인생 살이 그대로군...읽고 있는 누구나의 삶이기도 할테구...다음 글은 개나리처럼 진달래처럼 목련처럼 환해서 마음이 행복해지는 글이길 바라면서~ 어머님 수술 잘되길 더욱더 바라면서...
오늘 2차 내시경시술 하였는데, 무사히 잘 끝난것 보고 올라왔지...이제 회복하고 퇴원하는일만 남았다. 다음글은 정말로 맑고 환한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
집에 일찍 들어온 김에 여기저기서 놀구 있었는데...잠시 한눈 팔다 초우랑 못마주쳤구만. 늦가을 같은 글이라 그런게 아니구 초우한테 환한 일이 많이 생겨 신나는 글 보구싶단 말유...혹 오해한 거 아니유? 아니것제~ 똑똑한 친군께...어쨋든 어머니 시술 잘되셨다하니 다행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