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75) - 천사걷기하며 살핀 독립지사의 자취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 절기, 차분하게 비가 내린다. 겨우내 마른 대지 촉촉이 적셔라. 우수인 19일은 정월 대보름날이기도 한데 보름달 보기는 힘들 듯, 친구가 보내준 동영상으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 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뜬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을 읊으며 모두에게 새 희망이 넘치는 날들이기를 빈다.
지난토요일(2월 16일), 매월 셋째 주말에 갖는 천사걷기(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 주관)로 병천 유관순 유적지에서 목천 이동녕 생가에 이르는 천안일원을 30여명의 동호인들과 함께 걸었다. 금년은 3∙1절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를 기리는 각종행사가 곳곳에서 열리는 터, 때에 맞게 독립지사의 얼이 서린 역사문화 둘레길 탐방을 일정으로 잡은 주최 측이 고맙다.
새벽부터 중부지방에 눈이 내려 천안 가는 길목의 경관이 새하얀 설경이더니 현장에 도착하니 햇빛 눈부시고 바람도 잔잔하여 걷기 좋은 날씨다. 오전 10시 40분, 서울에서 전철로 내려오는 동호인들과 천안역에서 합류하여 병천면에 있는 유관순 열사 유적지로 향하였다. 출발지점인 유관순 열사 사당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천안거주 회원들이 먼저 와서 일행을 맞는다.
출발에 앞서 유관순 사당에서 기념촬영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곧이어 1km 남짓 떨어진 유관순 열사 생가 쪽을 향하여 출발, 생가에 도착하니 초등학생을 비롯한 순례자들로 마을전체가 북적인다. 생가 바로 옆은 당시 시위활동의 거점이었던 매봉교회, 건물 입구에 전시된 만세운동의 여러 그림과 자료들이 바삐 지나는 발길을 붙잡는다. 이어지는 유관순 길 곳곳에 그의 숨결이 담긴 이야기를 적은 팻말도 여럿, 바쁘게 스쳐 지나며 스물도 안 되는 짧은 삶으로 묵직한 교훈 남긴 선열의 넋에 고개 숙인다.
걷기 중 두 번째 멈춘 곳은 독립지사이자 대한민국 초창기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정치인 조병옥 박사의 생가, 그는 1960년 3월 15일의 대통령선거(속칭 3∙15 부정선거)에 야당인 민주당후보로 출마하였다가 선거 한 달 전에 신병치료차 도미했던 미국에서 급서하여 많은 아쉬움을 안겨준 거물정치인이었다. 마침 생가방문일은 그가 타계한 2월 15일의 다음날, 당시 고등학생으로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소년이 어느덧 노년에 이르러 한때 우러르던 선인의 행적을 되돌아보는 감회가 별다르다.
한 시간 반 걸어 점심때에 이른 곳은 병천 읍내, 단골로 들르는 순대국밥 집에 도착하니 때마침 장날이라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10여분 기다려 입장하니 이내 맛있는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이 걸쭉하고 센스 넘친 동호인이 장터에서 사온 귤 맛이 상큼하다. 아우내 장터의 만세 때도 장날이라, 그때도 5일장이었을까 오늘은 16일이고 그때는 1일이었다. 기록의 아우내 시위는 1919년 4월 1일이다.
손님이 가득찬 병천의 순대 국밥집
1시 40분에 오후 걷기 출발, 옛날 장터였다는 고개 마루 지나 큰 도로 따라 독립기념관 방향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힘차다. 가는 길의 도로표지판에는 곳곳에 역사문화 둘레길이라 적혀 있고 한참 걸으니 박문수 묘소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띤다. 고재경 천사걷기 회장의 설명, 박문수 묘는 길옆 높은 산꼭대기에 자리하였는데 한 동안 후손들이 험로를 오르느라 고생깨나 하였으리. 지금은 입산도로가 뚫렸다.
한 시간쯤 걸어 목천읍에 들어서니 독립기념관으로 가는 길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생가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이날 목적지는 이동녕 생가, 오후 3시 넘어 생가 터에 이르니 넓은 광장 한 쪽에 이동녕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어렴프시 알았던 그의 행적을 자세히 알 게 된 것이 이번 걷기의 큰 소득, 산천 곳곳이 나라 사랑의 거목을 배출한 터전인 것이 반갑다. 기념관의 자료에서 새긴 그의 행적은 이렇다.
‘석오 이동녕은 1869년 9월 2일(음력)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에서 군수를 지낸 선비 이병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독립협회 가입을 시작으로 언론교육활동, 청년회 조직 등을 통해 개화민권,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면서 조국의 독립과 민권국가 건립에 전 생애를 바쳤다. 3∙1운동 후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으로써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국무총리, 주석 등의 중책을 맡아 어려운 시기에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끄셨다. 1940년 72세를 일기로 중국 기강에서 서거, 광복 후 유해가 봉환되어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이동녕을 가까이 안 것은 2004년 8월, 백범김구기념사업회가 주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장정 순례단을 따라 중국 상해에서 중경까지 임시정부가 옮겨간 자취를 답사하던 중 기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의 기록, ‘2004년 8월 12일, 오전 9시에 둘러본 기강에 있는 임시정부청사와 요원들의 숙소는 1~2년 전까지만 해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으나 우리가 가본 현장은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옛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불도저의 굉음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중경에서 태어났다는 차영조 씨는 아버지(차이석 임시정부 비서장)의 숨결이 스민 건물이 사라져버린 집터를 바라보며 회한의 눈물을 삼키고 우리 일행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누를 길이 없었다.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선생의 기념비가 5년 전까지 세워져 있었는데 근년에 그 비석이 어느 유치원에 뒹굴고 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으나 행방을 알지 못하고 있다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폐허로 변한 기강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터에서
기념관 옆 이동녕 선생의 생가 터 앞에는 그가 1930년대 후반 기강에서 썼다는 산류천석(山流穿石,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이라고 새긴 휘호석이 우뚝 서 있다. 걷기 막바지에 귀한 뜻을 새기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인도한 발걸음이 오묘하다. 틈나는 대로 선열들의 얼이 서린 고장과 아름다운 산천경개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체력을 다지고 호흡을 가다듬자. 아울러 밝은 공동체, 평화로운 세상을 가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