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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화창한 햇살이 가게 쇼윈도안으로 빛나는 구슬처럼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쏟아져 들어 온 햇살이 쇼윈도우앞에 있는 화초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내 몸이 근질거린다.
'마음이 동하면 행하라'
"따르릉~~"
"딸.. 우리 봄햇살 마중나갈까?"
"응..엄마 조오치~~~!!"
"그럼 가게로 나와...."
아이들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가 없다.
만만한게 콩떡이라고 늘 가게되는 곳이 가까운 강화이다.
우선 그냥 강화쪽으로 가보자.. 하고 강화쪽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중간에 무심코 핸폰을 열어보았다.
이른 새벽에 문자가 들어왔었나 보다.
문자가 있기에 열어보니 곰아저씨가 새벽기도를 가시면서 친정엄마를 위해
기도를 하시겠단다...
곰아저씨가 계시는 시흥쪽이 생각이 났다.
"딸..우리 월곶으로 갈까?"
"그러지요.."
그리하여 다시 핸들을 돌려 소래가 있는 월곳으로 갔다.
월곶에 남편이랑 자주 가는 칼국수집이 있는데 월곶 먹거리타운을 몇바퀴 돌아도 영 못찾겠다.
그래서 그냥 아무집이나 들어가서 조개구이랑 칼국수 시켜서 먹고 나오니
포만감과 함께 피곤이 몰려와 자고 싶은 생각이 든다.
딸이 갑자기 여기서 안양 멀지 않으니 예전에 살던 안양에 가고싶다고 한다
가끔 꿈에서도 가 본다고 하면서 가보고 싶단다.
조금 피곤은 했지만, 나도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국민학교를 찾아갔던 적이 있던지라
그 마음 충분히 알기에 안양으로 핸들을 돌렸다.
유머가 넘치는 딸과 아들때문에 웃으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피곤도 사라지고
드디어 안양비산사거리가 나온다.
난방용 기름사러 갔던 주유소는 그대로 있지만 주변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예전의 비산사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산사거리에서 인덕원쪽으로 좌회전하면 바로 좌측으로
예전에 우리가 처음 안양에 내려와 살던 비산주공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그자리에 거대한 삼성래미안아파트가 우뚝 서있다.
인천으로 이사가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저 아파트에 살고 있었을텐데...^^;;
그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118동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바로 뒤에 관악산이 있어 딸과 함께 도토리도 주으러 다니고 산책도 하고
공기도 참으로 맑은 곳이라 같은 아파트 사람들이 118동은 별장이라고 할 정도로 경치도 좋았던 곳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숲속의 나무잎사귀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가 너무나 좋아 귀를 활짝열고 집중시키곤 했다.
비가오면 유난히 커피향이 짙게 퍼져나가 비오는 날엔 일부러 커피를 마셨다.
베란다너머 숲속의 비내리는 모습과 빗소리을 비롯하여 나도 추억이 많은 곳이다.
아파트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옛날의 기억과 추억이 너무나 변한모습에 깨질까봐서
아파트로 안들어가고 그냥 지나쳐 갔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가 살던 빌라를 찾아가기로 했다.
조금 더 올라가 안양공설운동장쪽으로 좌회전하여 들어가자 마자
예전의 삼호아파트 , 뉴타운아파트와 상점들이 기억속 그대로 있어
기억속 그날들의 추억들을 딸아이와 함께 이야기나누었다.
뒷좌석에 있던 아들이 "여기에서 나도 살았어?"
기억속 추억속에 동참할 수 없는 아가였기에 대신 그당시의 모습을 말해주었다.
"안양공설운동장앞을 지나면서 바로 저 자리에서 누나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너는 잔디밭에 있던 어떤 형아들에게 다가가 천연덕스럽게 과자달라고 해서
먹고 있었다. 그때 너는 빨간모자에 하얀티에 노란바지였어..."
"아.. 그사진 나도 봐서 기억 나.."
당시 사진을 찍어놓은 것을 보고 기억을 떠올리며 아들도 추억속으로 동참을 한다.
"그리고 너가 엄마가 설거지 하는 동안 열린 문으로 무작정 길을 떠나(?)
길 잃어 버렸을때 지나가던 엄마친구가 너를 약국에 맡겨놓고 간 일이 있는데
그때 약국이 저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약국이 아니네....."
약국이 있던 상가건물을 끼고 좌회전 하자마자 우측으로 딸아이가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비산초등학교가 보인다.
▲딸아이가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비산초등학교..좋은 기억도 있지만, 안좋은 기억도 있는 학교이다.
딸아이가 1학년에 막들어갔을때 아이가 열감기로 인해 수업시간에 우유를 토했다.
반친구가 집으로 달려와 갈아입을 옷과 휴지를 가지고 오라고 전해주러 왔다.
부지런히 학교로 달려가는데 2층 코너에 있던 교실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막 올라가는데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딸에게 얼른 토한 우유를 닦으라고 소리를 치고 있다.
선생님은 냄새난다고 복도에 나와 서있고 반아이들에겐 냄새때문에 수업 더이상 못한다고 다 보내놓고
내가 막 계단을 올라서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자마자 당황을 하시더니
닦지말라고 하는데 혜은이가 닦는다고 말씀을 한다. 아무말도 안했다.
아파서 얼굴이 하얘진 딸아이가 자기가 토해놓은 우유를 닦고 있는데 잔뜩 기가 죽어있는 있는 모습이다.
나를 보자 울먹이는 딸아이를 괜찮다고 안아주고 엄마가 바로 집으로 갈테니깐 집에 가있어..하고
토해놓은 우유를 닦으니 선생님이 화장실에도 토한 것 같다고 말을 하기에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화장실에 가보니 깨끗하다. 그래도 조금은 찔리는지 다시 닦지말라고 했는데.... 한다.
'알았습니다. 선생님..혜은이에게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
딱 이 말만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 얼른 닦으라고 소리를 질렸다고 한다.
나도 이소리를 들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남편이 직장에서 교육청에 어떻게 1학년아이에게 선생님이 그럴 수 있냐고 항의를 하고는
바로 학교로 달려와 교감선생님을 만나 아픈아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으며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고 항의를 했다.
그때, 학교 교감선생님이 믿기지 않는다며 자신도 평교사일때 1학년아이들 때로는 똥도 싸고 오줌도 싸면
빨아서 입히곤 했다고 하면서 선생님이 퇴근하였으니 나중에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하였고
나중에 선생님이 시인을 하고 우리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하였지만,
교육청에서 저학년 선생님들 특별교육 시키라는 조치에 따라 하루 오전수업만 하고 오후에
저학년 선생님들 교육을 받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딸아이가 그당시 기억을 지금도 생생하게 하고 있고 그 선생님 이름도 잊지 않고 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깊었을까...
워낙 촌지로 유명했던 학교였고, 특히 촌지를 밝힌다는 그 선생님..
몇번의 전화로 은근히 눈치를 주는데도 꿈쩍않고 소신대로 촌지를 안보냈는데 아마 그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릴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일이다.
그러나 2학년 올라가서는 너무나 자상하신 좋은 선생님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1학기만 마치고
인천으로 이사오는 바람에 전학을 했다.
그당시 2학년 아이큐검사에서 우리딸이 학교에서 최고로 나왔다고 하시면서 잘 가르치라고
하셨다..(이건 자랑질.. ^^ ㅎㅎ 아이큐가 152)
암튼 그 첫번째 선생님외엔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매번 좋은선생님만 만났다. ^^
▲학교앞 문방구는 여전히 ...
그리고 바로 앞 가파른 언덕위에 있던 삼호빌리지 빌라단지...
86년부터 91년도까지 비산주공에 살다가 92년도 새로 진 삼호빌리지에 들어가
96년도 여름방학하기 전까지 살았으니 어느새 15년이 흘러가 버렸다.
그러나 그때의 빌라단지 그대로 남아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자 마자 우리가 살던 빌라단지가 보인다.
우리가 살던 6동도 돌아보고 관악산으로 약숫물 뜨러 올라가던 산길로 올라가보기도 했다.
예전의 산길은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넒게 포장이 되어있고 저 산너머 우리가 살았던
비산주공아파트에 지어진 삼성래미안아파트가 웅장하게 우뚝 서있다.
▲왼쪽 자동차가 서있는 6동의 301호가 내가 살던 곳... 15년전에 지은 빌라인데도 외관이 깨끗하다.
집안내부가 온통 하얀가구와 하얀벽지로 꾸며 분양했던 빌라.. 그 깨끗함에 반해서 입주했다.
저위로 관악산에 올라가는 산길이 보인다.
▲아니..꼬불꼬불 산길이었는데 이렇게 변하다니.. 저너머 비산주공아파트였던 삼성래미안아파트가 보인다.
▲빌라옆으로 언덕따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예전에 우리아이들이 이곳 언덕에서 퐁퐁을 타면서 놀던 곳인데..
아직도 근처에 살고 있는 안양 118동 이웃지기들...
그중에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준석이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삼호빌리지앞에 있거든.. 잠깐만 얼굴좀 보고 가자.."
집으로 오라고 하는거.. 아무래도 신세질 것 같아서
그냥 바로 가야하니깐 학교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잠시후 우리딸보다 한살어린 준석이랑 학교앞으로 나온다.
자주 통화하기 때문에 오래만이란 생각은 없지만 어느새 얼굴본지는 4년정도 된지라
그동안 친구도 나이가 먹어감이 보인다.
학교앞에서 서서 이야기를 하자니 서운한지 호프집에 들어가던지
집에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우리 지금 조개구이랑 칼국수 먹고와서 배불러.. 그리고 나..맥주 안마신지 6개월도 넘었다야.. ^^"
"어..그래? 그럼 우리가 만나야 할 이유가 없어졌네.. ㅎㅎ"
사실 안양에 살던 시절, 30대 초반에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집안에 칩거하며 밝은 햇살조차 창으로 들어오는 것이 싫어 대낮에도 두꺼운 커텐을 치고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햇살좋은 봄날에 밖에 나갔다가 그 찬란한 햇빛과 화사하게 피고 있는 봄꽃들이 왜그리 슬픈지...
그때의 그 느낌은 가끔 내가 찬란한 슬픔이라고 자주 표현하곤 한다.
햇빛을 보기가 싫어 두문불출하던 시절....
그때 이 친구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또 다른 친구랑 둘이 무조건 집으로 찾아들어와
햇빛을 쬐야 한다며 커튼을 걷어재치고 나를 끌고 나가 호프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한잔에 마음을 열게 하고
노래방에 데리고 가서 목석같은 내앞에서 둘이서 노래불러주고 억지로 노래 부르게 하고..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날, 이미 비짝말라 약해진 몸탓에 호프500 한잔에 취기가 올라 어질어질 했는데
우리 신랑에게 조금 늦게 들여보내겠다고 하고서는 노래방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둘째인 아들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을때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후우울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
정숙하게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고 늘 생각을 하던 나로서는 여자들끼리 호프집에 간다는 것은
너무나 파격적인 일이었고 그 당시에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노래방은 나와 너무나 상관없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 친구들이랑 두어번 가면서 때로는 이렇게 망가져(?)보는 것도 정신건강에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나를 어둠속에서 끌어내 준 두친구에게 너무나 고마운 맘이다.
어릴때, 한살차이로 서로 싸우기도 하였지만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누나,동생이
되었던 딸아이와 준석이도 서로 오랜만에 보는지라 조금 어색한 듯 했지만
금세 어색함에 벗어나더니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는다.
한살차이밖에 안나는데도 어릴때 '누나~누나`' 하였던지라 서슴없이 '누나'라고 부르는 넉살좋은 녀석..^^
헤어지고 나서 차안에서 문자가 오고가더니만 이번주 목요일에 딸아이가 밥 사주기도 했단다. ㅎㅎㅎ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우리아이들 놀이터였던 안양공설운동장도 돌아보고,
딸아이가 다녔던 삼호유치원도 찾아가보고...
그리고 인덕원으로 해서 평촌 작은언니네 집으로 해서 인천으로 돌아왔다.
고만고만한 꼬맹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로 정나누면서 살았던 118동 이웃지기와 친구들..
지금도 서로 안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참으로 정겨웠던 이웃지기들인지라....
그 그리움에 다시 안양에 내려가 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드는 날이었다.
▲22살인 우리 딸이 5살부터 7살까지 3년을 다녔던 삼호유치원..그당시 그모습 그대로 있다.
▲안양공설운동장..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운동에 열심인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공설운동장내에 있는 야외수영장.. 예전에는 저런 건물이 아니어서 밖에서도 안이 보였는데...
여름이면 이웃지기들이랑 아이들 데리고 수영을 하며 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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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개구이 참 좋아하는데 월곶 인터체인지부근에 해물 칼국수집도 좋은데--- 자녀들과 좋은 여행하셨네요
ㅎㅎ 덕분에요~!! 실은 아찌 만나러 갈까 하고 겸사겸사 그리로 간 것인데 안양으로 가는 바람에 전화 못드렸습니다.
긴~~~일기였는데도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서 그런지 쓰면서도 즐거웠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아무리 힘들었던 지난날도 먼훗날 돌이켜보믄 아릿한 추억들...언니의 봄 나들이에 같이 동참해서 좋네요~~^^*
그렇게나 길었어? 다 풀어냈으면 소설책이 될뻔 했네...ㅋㅋㅋㅋ
넘 길어서 읽다가 사진만...ㅎ 햇살을 누비면서 다닌 하루...행복했겠다...내는 일조량이 부족해서 긍가 살짝 우울모드...
엥? 정성이 부족햐~~~!!! 햇빛을 쬐주어야 우울증도 사라진다고 해요. 비타민 디인지..뭔가가 생긴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 아가때 일부러 집에서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서 햇살바라기 해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랑 함께 한 추억여행이었네요....좋은 기억이든 그렇지 않은 기억이든 추억은 추억인거 같아요. 불과 십여년전만 해도 촌지가 극성을 부렸는뎁.........이젠 그렇지 않은 것 같던데요. 아~~~~~~~~~나두 추억여행이나 떠나볼까나?
지금은 촌지...없지만 우리 딸 초등학교 들어갈때 엄마들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촌지였어요. 솔직히 그때 노골적으로 바라는 선생님들도 계셨고..딸아이 고등학교때 어쩌다 운영위원장이 되었는데 학교 돈 지출에 가장 깐깐했던 마음에 안드는 위원장이었을 꺼예요. ㅎㅎ 개인적인 촌지는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답니다.
빛님의 추억여행 같이 하고 온 기분이네요. 가끔은 옛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곰실곰실하던 그때가요.
아..표현이 참 이뻐요..가끔 저도 인용해야지... 곰실곰실~~~ ㅎㅎ
가슴에 와 닿습니다.더 쓰고 싶어도 이만큼만이요..
누구나 어릴 적 추억이 있기에 ...가슴에 다가갔나 봅니다. 더 쓰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네요 ^^
소설로 꾸며도 독자가 많을듯 기억도 표현도 너무 마음에 가깝게 느껴지니....
글 잘쓰는 재주만 있다면야 소설도 도전해보고 싶긴 한데 너무 모르는 것도 많고 표현력도 부족하고 그래서 그냥 주저리글만 씁니다. ^^;;
저는 혼자서 늘 생각해 보는데 이사빛님같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빛날분인데 하고 생각만 하고 있지요.....타고난 기술과 아름다운 마음이 같이 하는 보기드문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