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이 세상에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임종과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느꼈을 슬픔에 함께 공감하면서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식처럼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성사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젠가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가까운 이들에게 나는 잘하고 있는가? 죽음은 무엇이며 죽음 이후는 어떻게 될까?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적어 봅니다.
인생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귀하다. 곧 사라질 것들끼리 서로 위로하면서 사랑하며 살자-로망롤랑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기대하지 않은 만큼의 시간을 벌면서 산다-호라티우스
죽음은 인간으로서 마지막 성장의 기회이다. 죽음은 겹겹이 포장되어 굳어진 자기가 무장해제되고 아성과 같이 지켜왔던 에고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길희성
살아서 영생을 맛보지 못하는 자는 죽어서도 영생이 없다. 지금 여기서 잘 사는 것 말고는 영생이 없다- 하루살이
참으로 잘 살았다면 그대로 그것이 잘 죽는 것이다-박영호
나고 죽음도 없다-부처
누구든 자기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예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버나드쇼의 묘비명
유한한 삶이 영원한 가치나 의미를 추구하면서 시간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을까?-하루살이의 물음
나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는 기쁨으로 살았다. 진리를 추구하는데 장애물인 육체가 죽으면 내 영혼이 더욱 뚜렷이 진리를 볼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나는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한다-소크라테스
저는 죽음은 끝이 아니고 우리가 잘모르는 신비한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곳을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죽은 이들을 함부로 하지 않고 성스러운 예식을 통해 보내드렸다는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영원으로 들어가는 신비한 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살아서 고인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장례식은 고인의 영생을 죽하하는 의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장자는 부인이 죽었을 때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이현필 선생은 죽음 앞에서 '오메 좋은 거'라는 말을 하고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심도학사 길희성 선생님도 의식이 있던 마지막 순간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자신의 장례식을 음악 축제로 해달라며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던 네 곡의 음악을 장례식장에서 틀어달라고 해 그대로 했습니다. 어떤 교황님은 임종의 순간에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고 사랑하기 좋은 날'이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누가 큰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불교의 고승들 중에는 앉아서 죽었다거나 심지어 물구나무를 선체 죽었다는 이들도 있다는데 저는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죽기전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하느님 저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평생 저를 사랑해주신 것에 대해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처럼 저를 사랑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첫댓글어두운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면 태양보다도 밝은 신의 빛을 만나 지상의 삶을 살았던 우리는 모두 개체아의 정체성의 옷을 벗고 신의 무한한 빛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영생을 누린다. 지상의 괴로웠던 기억은 신의 찬란한 빛으로 채색되고 신의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의심의 안개가 말끔히 사라진다.
첫댓글 어두운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면 태양보다도 밝은 신의 빛을 만나 지상의 삶을 살았던 우리는 모두 개체아의 정체성의 옷을 벗고 신의 무한한 빛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영생을 누린다. 지상의 괴로웠던 기억은 신의 찬란한 빛으로 채색되고 신의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의심의 안개가 말끔히 사라진다.
길희성 박사님의 글을 옮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