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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한국] 한국의 한 조선소 현장근무자인 심재덕씨는 2006년 어느 월요일 저녁 버지니아주의 프런트 로열의 모텔에 투숙 수속을 밟았다. 도쿄와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저가항공으로 미국에 처음와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은 상태였다. 이틀후에 심씨는 '매서누턴 산악 100마일(161km) 런'에 출전하여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은 17시간 40분 45초의 대회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The next day, he caught a flight home.
그리고 다음날 그는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I don’t like missing work because of my running," said Mr. Sim, 44, who works at Daewoo Shipbuilding and Marine Engineering on this island off the southern port of Busan.
"달리기 때문에 일을 빼먹고 싶지는 않다"고 부산의 앞쪽 이 섬에서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는 심씨(44세)는 말했다.
Massanutten race officials and runners recall him as a "total unknown" who spoke no English except "Water, water!" and "Thank you!" But Mr. Sim has become something of a legend among South Korea’s amateur marathoners, whose population has exploded in the past decade. He has been nicknamed the Korean Forrest Gump, after the movie character who runs across America.
매서누턴 대회 관계자와 현지 달림이들은 "물, 물!"과 "감사합니다!"라는 말 외에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전혀 낮선 사람"으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에 걸쳐 폭발적으로 달리기 인구가 증가한 한국의 마스터스 마라토너 사이에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미국을 횡단한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따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Mr. Sim got his start running after six years of nine-hour workdays inside the ships, breathing chemicals and dust through a face mask. His respiratory system was so weak that in 1993, doctors recommended surgery to help him breathe. "Because of breathing difficulties, I always kept my mouth open, looking like an idiot," he said. He also lost most of his sense of smell. (On race days, he asks fellow runners to smell his lunch box to check if any food has gone bad.)
심씨는 얼굴마스크를 쓰고 선박속에서 화학물질과 먼지속에 호흡하며 하루 9시간씩 6년간 일한 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의 호흡기관이 너무 약해 1993년 의사는 호흡기능을 보조하기 위해 수술을 권했다. "호흡곤란 때문에 나는 항상 입을 벌린 채 지냈는데 마치 바보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또한 대부분의 후각을 상실했다. (대회일에는 도시락을 꺼내 음식이 상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료 참가자에게 냄새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But Mr. Sim, a determined man if there ever was one, refused an operation. "Instead of surgery, I decided to run," he said. "I decided that, even if I died, I would die running, with my lungs full of air." His lung capacity, measured in 2003 at 69.5 percent, now registers as normal, he said.
하지만 전형적인 의지의 사나이인 심씨는 수술을 거부했다. "수술대신 달리기로 했다. 설령 죽더라도 내 폐속에 공기를 가득 채우고 달리다가 죽겠다"고 했다. 2003년도에 측정한 그의 폐활량은 69.5%정도였으나 지금은 정상이라고 했다.
Despite still working five or six days a week at the shipyard - he now repairs welding machines - he runs three marathons a month; in spring and fall, as many as seven. In all, Mr. Sim has run 210 amateur marathons since 1995, and finished all but three of them under three hours.
여전히 주 5-6일 조선소 현장에서 근무하면서(지금은 용접기를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음), 월 3회의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며, 봄과 가을에는 월 7회까지 달리기도 한다. 1995년이후 지금까지 총 210회의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했으며 그중 3번을 제외하고 모두 서브-3(2시간대 기록)를 기록했다.
With his personal record of 2:29:11, he cannot compete with professionals ? the current men’s record, subject to ratification by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 is 2:03:23, by Wilson Kipsang of Kenya. But Mr. Sim’s 90 victories are widely considered South Korea’s amateur best, although there is no official agency compiling amateur data.
현재 그의 개인기록인 2:29:11로는 프로선수들과 겨룰 수는 없다. 아직 세계육상경기연맹(IAAF)의 인준을 받아야 하지만 현재 남자 세계기록은 케냐의 윌슨 킵상에 의한 2:03:23이다. 아직 아마추어 선수의 기록을 취합하는 공식 기관이 없지만 심씨의 90회 우승기록은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로는 최고로 여겨지고 있다.
He sometimes runs a marathon on Saturday and again on Sunday, and has won six such back-to-back marathons. He excels in so-called ultrarunning endurance races, typically double the length or several times longer than the 26.2-mile marathon and often conducted on mountain trails. He has run more than 30 such races at home and abroad and won 10 of them. "I am happier running than walking," he said in an interview at his home.
그는 가끔 토요일에 마라톤을 완주하고 일요일에 다시 도전하기도 하며, 이런 이틀 연속 참가한 마라톤에서 6번이나 우승한 바 있다. 그는 소위 울트라마라톤에서 두각을 드러내는데, 울트라마라톤은 보통 42.195km마라톤의 2배 혹은 그 몇배 더 긴 거리이며, 자주 산악에서 열리기도 한다. 그는 국내외에서 30회 이상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했으며 그중 10회를 우승했다. 심씨의 집에서 가진 이번 인터뷰에서 "나는 걸을 때보다 달릴 때 더 행복하다"고 했다.
Mr. Sim, 44, with a favorite trophy, which he won in 2010. His feats of stamina have won him renown among South Koreans.
MR. SIM grew up in an isolated village near Mungyeong in central South Korea, one of the country’s most mountainous regions, at a time when villagers were still collecting mountain herbs and hunting wild animals for food. He had to walk two miles to school or to the nearest candy store, and recalls chasing rabbits and pheasants over the steep slopes. (This early experience helps him in mountain trail races. He said he felt comfortable in the woods.)
심씨는 한국의 중앙부로 가장 산악지역중의 하나인 (경북) 문경근처 외딴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산에서 약초를 캐고 들짐승을 사냥하는 시기에 성장했다. 그는 학교와 가까운 상점에 가기위해서 2마일(3.2km)을 걸어가야 했으며 가파른 산비탈에서 산토끼와 꿩을 쫓아 다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어릴 때 경험이 산악마라톤 대회에 도움이 되었고 숲속에서는 편안해짐을 느낀다고 했다)
Nevertheless, he said, he was never good at running in his school years. "I was one of the shortest kids in school, and they seldom let me compete in the races, and even when I did, I never finished even third," he said.
그럼에도 그는 학생시절에는 전혀 달리기를 잘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학교에서 가장 키가 작은 학생중에 하나였고 (달리기)대회에 참가시켜주지도 않았다. 어쩌다 참가했을 때도 3등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Now, his golden business card identifies him as "golden legs" and "iron worker." Among his shipyard colleagues, his nickname is "the iron man."
지금 그의 황금색 명함에는 그를 "황금발" 그리고 "철인 사원"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조선소 동료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철인"으로 불린다.
Beyond his personal exploits, though, Mr. Sim’s hero image owes something to the special place that the marathon holds in South Korea.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위업에 더하여 심씨의 영웅적인 이미지는 한국에서 마라톤이 갖는 특별한 위상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South Koreans still consider the medal the marathoner Sohn Kee-chung won at the 1936 Berlin Olympics to be the first Korean Olympic gold, though Mr. Sohn ran as a member of the team from Japan, Korea’s colonial ruler at the time. A photo of Mr. Sohn from the medal ceremony ? holding a leafy branch to hide the Japanese flag on his tracksuit ? is one of the most celebrated images of Korean national pride.
한국인들은 당시 한국의 식민지 통치자인 일본팀의 일원으로 달렸음에도 여전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토너 손기정이 획득한 메달을 한국 최초의 금메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메달 수여식에서 운동복에 그려진 일장기를 가리기 위해 월계관을 들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사진은 한국인의 국민적 자부심을 나타내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중 하나이다.
Although South Koreans craved another marathon gold, the sport attracted few participants among ordinary people. That began slowly changing after the South Korean runner Hwang Young-cho won the marathon in the 1992 Barcelona Olympics. But it was the Asian financial crisis of the late 1990s that helped fuel the marathon boom. With their once-proud economy crippled and jobs evaporating, many middle-age South Koreans took to long-distance running and mountain climbing, embracing the physical and psychological challenges of endurance sports.
한국인들이 또 다른 마라톤 금메달을 갈망하고 있지만, 마라톤 종목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참가자들을 많이 끌어들이지 못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의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그것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라톤붐에 불을 붙힌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아시아에 몰아닥친 재정위기였다. 한때 자부심을 가졌던 경제가 무너지고 직장이 사라짐에 따라 중년을 맞은 많은 한국사람들은 지구력 스포츠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도전하면서 장거리 달리기와 등산을 시작했다.
When Mr. Sim ran his first marathon in 1995, it was the country’s first open for amateur runners. It took him 14 years to complete 100 "sub-three-hour" marathons, a first for a South Korean. But with racing events proliferating, he needed only four more years to run his next 100. By then there were more than 120 marathon competitions a year in South Korea, in addition to hundreds of half-marathons and shorter races. The spread of urban health clubs, with their treadmills, helped spur the running trend.
심씨가 1995년 처음 마라톤을 달렸을 때가 한국에서 최초로 아마추어 달림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이었다. 마라톤 서브-3 완주를 100회 기록하는데 14년이 걸렸는데 이는 한국에서는 최초였다. 하지만 달리기 대회가 급증하면서 다음 100회를 완주하는데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때쯤 한국에서 한 해에 수백개의 하프마라톤과 거리가 더 짧은 단축코스 뿐 아니라, 120개 이상의 풀코스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러닝머신을 갖춘 도시의 스포츠센터 확산은 달리기 트렌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At first, there were no marathon competitions ordinary people like me could enter," Mr. Sim said. "Now there are so many you can’t run them all, especially when you have a full-time job, as I do."
"처음에는 나같은 일반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대회가 없었다. 지금은 너무 대회가 많아 모든 대회에 다 달릴 수 없다. 나같이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He also saves money and vacation days to compete in ultrarunning competitions abroad. He has won them in Japan and Singapore, and narrowly missed placing among the top 10 in the 100-mile Western States Endurance Run in the Sierra Nevada in California in 2007 and 2011. He has fared less well in European alpine races, in which he has suffered hypothermia and sometimes had to quit before the finish line, as he did in the 200-mile Tor des Geants race in Italy in September.
그는 또한 외국에서의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돈과 휴가일을 저축하고 있다. 그는 일본, 싱가포르에서 우승한 바 있고 2007년과 2011년에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에서 열린 100마일 웨스턴 스테이트 인듀런스 런에서 상위 10위중에서 아깝게 등위를 놓치기도 했다. 유럽의 알파인 대회에서도 잘 하지 못했는데 그는 여기서 저체온증을 겪기도 했고 9월 이탈리아에서의 토르 드 지안트 200마일 대회에서 처럼 가끔은 피니시라인 직전에서 대회를 포기하기도 했다.
MR. SIM’S fame has attracted corporate sponsors, who provide him with shoes and other running gear and energy supplements. In return, he has appeared in their magazine advertisements and carries their logos on his running shirt.
심씨는 명성덕택으로 기업의 스폰서를 받기도 한다. 이들은 그에게 신발과 다른 러닝복장, 에너지 보조음료 등을 공급하기도 한다. 그 대신 그는 이들의 잡지광고에 출연하기도 했고 달리기 복장에 그들의 로고를 부착하고 달리기도 한다.
He follows a spartan routine. Six days a week, he gets up at 5 a.m. and starts his day with an apple and 50 chin-ups. He runs 12 to 15 miles a day on a treadmill or on the road. Some days, on his way home from work, he runs mountain trails that overlook the cranes and dry docks of Geoje, the center of South Korean shipbuilding.
그는 스파르타식 훈련양식을 따른다. 한 주에 6일을 아침 5시에 일어나 사과 하나와 50회의 턱걸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러닝머신이나 도로에서 12~15마일(20~25km)을 달린다. 어떤 날은 직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한국 조선소의 심장부인 거제의 크레인과 건선거가 내려다보이는 산길을 달리기도 한다.
He said running left his feet perpetually bruised, and he has lost hundreds of toenails. His wife complains that he often misses Sunday church services because of marathons. His 15-year-old son, Young-bo, said he felt proud when his friends marveled at the trophies covering the family’s living room wall, but he, too, wishes his father would slow down a bit.
달리기로 인해 그의 발은 항상 멍이 들어있고 수백번에 걸쳐 발톱이 빠져나갔가고 했다. 그의 아내는 마라톤대회로 인해 일요일 예배에 자주 빠진다고 불평을 한다. 15살박이 아들 영보는 친구들이 자신의 거실벽을 덮고 있는 트로피를 보고 경탄할 때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아버지가 이제는 좀 자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Mr. Sim has no such plans.
하지만 심씨는 그럴 생각이 없다.
"I never finished first in anything until I started running," he said. "Only death will make me stop running."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 어느것에서도 1등을 한 적이 없었다. 죽음만이 내 달리기를 멈추게 할 것이다"고 했다.
첫댓글 스파르타식 훈련이 눈에 들어오네요..한주에 6일은 5시에 일어나 사과 하나에 50회 턱걸이
그리고 20-25km....대단합니다... 지금도 그럴려나..
오메나~아주 긴 기사 이네요 ^^ 이사람 정말 대단 하군요 정신력 하나는 끝내줘요~
정말 대단합니다.~강철인이군요~풀 코스를 이백회를 넘게달리다니 정말 감탄사가 절로나오내요~정신력과 인내력 존경스럽내요~~
아마추어 선수 심재덕님 너무 유명한 선수입니다. 뉴욕타임즈 기사가 실린 정도면 멋져요.
너무나도 대단한 선수죠....
이양반 이제는 커나가는 후배들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해야되지 않나.
나다도 열심히하면 이분처럼 썹3 밥먹듯 할날이 있겠죠. 진심 존경스럽네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