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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냉정히 평가해서 무신정권 때에 착한 집권자는 경대승 뿐인가요?
계림공과 수양대군 추천 0 조회 2,383 12.04.25 14:24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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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4.25 14:58

    첫댓글 '착한' 집권자가 대체 무엇인가요? 정치가를 선악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구별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만약에 히틀러가 진심으로 나라(독일)를 걱정하고 독일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 피땀을 흘려서 외국을 핍박하고 전쟁을 벌인 것이라면(그럴 가능성도 꽤 큽습니다) 히틀러는 착한 사람일까요? 자국을 침공한 외국 병사들의 안위까지 챙겼던 춘추전국시대의 송나라 양공(그 결과로 나라 말아먹습니다만...)은 착한 사람인가요?
    저는 정치가를 선악으로 판단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봅니다.

  • 12.04.25 15:04

    최충헌이 한 모든 짓이 정말로 최충헌 스스로는 '이것이야말로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라고 굳게 믿고 한 점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저지른 것이라면 최충헌은 착한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반대로 사리사욕만을 채울 욕심으로 정치를 했는데,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살기 좋아졌다면 그는 착한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선악의 기준 자체도 모호하지만, 의도와 결과 중 어느 것으로 선악을 평가해야 하는지도 모호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타협 불가능한 선악까지는 좀 그렇고, 간단한 기준을 정해서 '결과' 를 중심으로 좀 낫다 못하다 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 12.04.25 15:07

    무신시대의 무신을 비교할 때에도 집권자 개개인의 선악이 아니라, 누가 집권했던 시대가 더 국력이 팽창하였는가 혹은 누가 집권했던 시대가 더 살기 좋았는가 정도만 말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경대승이 유난히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대승 시대가 유난히 좋았던가요?)

  • 12.04.25 16:50

    정치가는 선과 악으로 구분될 수는 없지만, 백성들의 칭송을 받냐, 안받냐의 차이점은 분명하게 있죠.

    당시 경대승은 아버지의 재산 청주전,답을 모조리 백성들에게 돌려줄 만큼 청렴한 인물로 당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거사 이후에도 권력을 경계하여 관직에 나가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전폭적인 추앙을 받았습니다. 또한 황실의 정통정을 세우려는 충정으로 의종황제를 시해했던 이의민을 적대했으며 조정을 경인년 무신정변 이전으로 되돌릴것을 천명했죠. 안타까운 것은 경인년 거병으로 옹립된 명종황제는 경대승을 끊임없이 경계했으며 배척했죠. 경대승은 황제의 신망을 얻지 못한채 30살의 나이로 병사하는 비운을

  • 12.04.25 17:43

    맞게되고, 명종황제는 무신정변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게 된다는 점에서 안타깝죠.

    반면, 정중부, 이의방,이의민등은 경대승과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안되는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청지의 기준은 선,악이 아닌 백성의 칭송을 받냐, 못받냐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 12.04.26 12:37

    경대승의 청렴함과 벼슬을 탐하지 않음을 예로 드셨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첫째로 청렴함은 정치가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은 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마 대부분은 저와 생각이 다르실 수도 있겠으나, 정치가의 기본은 '성과' 이지 '도덕성' 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적당히 부패하여 뇌물을 곧잘 받아먹는 정치가라도 재상으로서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여 태평성대를 일궈 냈다면 저는 그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할 겁니다. 예컨대 황희의 경우, 실록의 기록을 보면 그리 청렴하다거나 윤리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뇌물 받기, 살인죄 무마, 심지어는 간통 혐의까지!)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12.04.26 12:55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아 신하들간의 갈등을 억제하고, 또한 왕과 신하간의 갈등도 억제하여 정국이 안정되고 세종의 태평성대가 지속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황희는 좋은 정치가라 볼 수 있을 겁니다.
    특히 경대승의 경우 그 청렴함이라고 언급되는 건 집권 이전, 아비가 죽은 뒤에 아비가 강탈한 재산을 되돌려 준 것 뿐이고 집권 이후의 청렴함을 단정하기는 좀 애매하지 않을까 합니다. 집권자는 아무리 청렴하고자 해도 지배기구(경대승이라면 도방, 사병 등)를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니 경대승이 경제력 없이 정국을 운영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경대승 정권기 부패사례도 그 이전보다 적지

  • 12.04.26 13:00

    않았습니다.
    둘째로 경대승은 분명 크게 벼슬을 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벼슬을 얻지 않은 것과 권력을 얻지 않은 것은 좀 다릅니다. 왕이 제안한 승선 벼슬을 거절했지만, 경대승은 여전히 '권력' 을 쥐고 있었지요. 어짜피 실권은 벼슬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경대승의 무력에서 나오고 있으니 벼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물욕을 의미한다 보긴 어려울 겁니다. 무신정변 이전 질서로의 회귀를 주장하면서, 무신인 자신이 독재적으로 집권하는 모순이 있었던 것이죠. 특히나 이전의 무신정권과 달리 경대승 정권은 '과두정권' 이 아니라 1인 지배의 '단독 정권' 성격이 강했습니다. 과거보다 더한 권력의 집중이지요.

  • 12.04.26 13:04

    경대승 정권 무렵에 부정부패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정보기관을 통해 여론을 감시하여 숙청을 벌이고, 자기 세력이 범죄(살인죄 등)로 잡혀가게 되면 경대승이 힘을 써 석방시키기도 하는 등 그리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태도 많이 보입니다. 특히나 경대승 시절에 민생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지적할 만한 것도 별로 없지요. 그가 말하는 '복고' 는 백성을 위한 복고가 아니라 국왕을 겁박하는 무신들을 처단하는, 국왕 중심의 복고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 보입니다. 요컨대 경대승이 '다른 무신보다는 좀 나았다' 라고 평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일궈낸 성과가 긍정적이라 말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 12.04.26 13:05

    * 경대승 관련 자료: 신라, 가야토론방의 'Re:경대승 기록 모아봤어요' 글 참고
    (댓글이 3개를 넘어 별도 답글로 다는 게 적절하겠으나, 댓글에 대한 댓글, 거기에 대한 추가 댓글 성격이라 따로 답글 적기가 좀 애매하여 일단은 그냥 두겠습니다. 이런 경우에 답글로 다는 게 참 애매하더군요.)

  • 12.04.27 11:16

    미주가효님, 정치가의 기준을 국력으로만 판단할수 있겠습니까~ 또한 정치가의 기준을 청렴함과 민심으로만 볼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고려 무인정권을 얘기하고 있고 무인정권을 볼때 많은 무인들 중에서 그래도 좋게 평가되는 인물이 경대승입니다.

    무인정권을 볼때 많은 무인들은 본인들의 입맛에 맛는 황제로 교체했고, 황제를 죽이고, 황실을 겁박하고 황실과 사돈을 맺었고, 매관매직, 청탁뇌물은 문론이고 각지에서 많은 봉기들이 있어났으며 무인정권 정횡과 부패는 그야말로 극에 달습니다.

    그 중 경대승은 다른 무인들과는 달리 백성들의 민심을 얻었고, 조정을 무인정권 이전으로 돌리려고 했고, 권력을 탐하지 않아

  • 12.04.27 11:21

    관직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많은 무인들은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거병했지만 권력을 얻은 뒤에는 국정을 쇠신하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기보다는 자신들의 권세를 지키고 가문의 부귀영단을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경대승이 왕도 아니고, 무인정권을 볼때 경대승만한 인물도 없었다고 봅니다.

  • 12.04.25 15:55

    미주가효님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계림공님 질문의 취지를 충분히 선해하자면, 경대승은 청렴한 행동을 통해 평판이 좋았고 문신을 두루 기용하려 노력하는 등 나름대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집권자'라 할 수 있겠죠. 최충헌과 최우도 봉사10조, 문신 등용 등의 취지를 보건대 설사 형식적일지라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사회구조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잘못되어 있으면 좋은 사람이 집권하든 나쁜 사람이 집권하든 국가는 나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 12.04.25 16:04

    따라서 경대승이나 최충헌 등이 설사 좋은 취지를 가진 집권자라 하더라도 당시 고려 사회 시스템을 보건대 절대 좋은 집권자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다른 무신집권자들에게는 이런 취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무신의 난을 통해 이미 고려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죠. 특히 사극 무신에서 볼 수 있듯이 황제가 아닌 제2인자가 절대권력을 가지면 국가시스템을 건전하게 복구하기 힘들죠. 한편 무신에 나오는 박송비나, 최춘명, 이자성, 채송년, 박서 등의 장군들은 모두 평판이 좋은 인물들입니다.

  • 12.04.25 16:55

    최충헌을 비롯하여 이의방과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등의 무인 권력자들은 황제를 갈아 치울만큼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으면서도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이였을까요? 특히 두분의 황제를 폐위시켰고, 이후 4대에 걸쳐 권력을 세습 시켰을 만큼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할 철옹성 같은 권력을 구축했던 최충헌은 황제의 용상에 올라 새로나라를 세우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을까요? 무인 권력자들은 경적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흔들었으나 나라를 이끌어 갈만한 안목과 경륜이 부족했습니다.

  • 12.04.25 17:03

    그들은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거병했지만 권력을 얻은 뒤에는 국정을 쇠신하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기보다는 자신들의 권세를 지키고 가문의 부귀영단을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주었죠. 황실과 혼인을 맺으려는등 무인정권은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망이 망소이 형제의 명학소 봉기와, 최초의 신분해방 운동이였던 만적의 봉기를 비롯해, 각지의 백성들이 무인정권의 항거하여 끊임없이 봉기를 일으킨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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