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지역 일대 박물관 및 유적지 탐방
2017.4.25.화.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점심식사→ 공산성→세종 대통령기록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정문에 집결해서 9시출발이다.
봄꽃들로 화사한, 날씨도 화창한 4월 봄날,
박물관 전시해설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관에서 제공한 춘계답사길에
함께 활동하는 동행이었다.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여 그간 소원했던 정도 나누며
대자연속에서 현장공부와 건강한 워킹으로 한껏 즐긴 날이었다.
첫일정으로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이른다.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앞에 멋지게 우뚝 서 있는 90살된 금송이다.
금송은 귀한 목재로 공주 웅진동 송산리 고분군 내에 있는
백제 무령왕의 관이 금송으로 제작된 것이 밝혀져
고대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소나무이다.
박물관 전시관 전면
전시관내로 입장이다.
중요민속자료 제22호
(좌)월자
가발의 일종인 월자는 대례복을 입을때 덧드리는 딴머리로 '다리'라고도 부른다.
머리 세 가닥을 땋아서 한 개로 굵게 만들었는데, 위쪽은 약간 둥글게 묶어서
검은 천을 씌운 다음 조그만 천고리를 달았고 끝은 두 가닥의 붉은 댕기를 드리웠다.
(우)아얌
바느질로 된 아얌은 머리에 쓰는 모부帽部와 뒤에 늘어지는 댕기 모양의 드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부의 윗부분은 검은색 비단을 대고 누비고, 정수리가 드러나도록
터져 있다. 아래쪽은 담비털 가죽(밖)과 평직(안)으로 제작하고, 양면을 기모한 홍색의
융직물을 위에서 아래까지 전체적으로 댔다.
(左上) 상투관
머리 정돈과 장식을 위해 상투 위에 쓰던 관冠으로 나무로 만들었다.
위쪽이 둥글며, 앞뒤로 4줄의 골이 나 있고 양옆으로는 동곳을 꽂을 수 있도록 트여 있다.
보믈 제1495호 '윤중초상'에서 상투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左下) 살쩍밀이
뿔로 얇게 만든 것인데 망건을 쓸 때에 귀 옆머리를 망건 밑으로
밀어 넣을때 사용했던 도구로 현재는 원형이 많이 파손되어 형태만 남아 있다.
(右上) 빗
향나무로 만들었으며, 모서리 부분이 각이 져 있고 등 부분은 약간 휘어져 있다.
(右下) 동곳
상투관과 한 짝을 이루는 장신구로 상투를 튼 후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동곳이다.
동곳의 한쪽을 얇고 납작하게 만들어 가르마를 탈 때 쓰는 빗치개로도 이용하였다.
충남의 역사와 문화
무안박씨와 성삼문
논산시 상월면을 세거지로 하는 무안박씨 노성파는 면성부원군 박문오의 후손인
박임경의 직계이다. 박임경은 성삼문의 딸과 혼인하여 3남을 두었는데 맏아들이
노성에 입향한 박증(1461~1517)이다. 박증은 외조부 성삼문의 충절을 추모하여
벼슬에 뜻을 버리고 32세 되던 1492년 노성현 암천(현재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으로
은거하여 일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박종원(1570~1633)은
노성의 무안박씨가 사회적으로 부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박종원 이후 무안박씨 노성파는 인근 사림士林의 결집지였던 보인당輔仁堂을 통하여
여러 성씨와 관계를 넓혔으며, 유력 가문들과의 혼인등을 통해 유력 성씨로 성장하였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입향조인 박증에 대한 선양사업이 추진된다. 1738년과 1764년에
통문을 돌려 서원을 건립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1774년에 드디어 별청別廳
건립으로 결실을 맺는다. 1805년에는 모곡사를 건립하여 나옹 이필태를 추배하였고,
1861년 성삼문을 합향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어 그를 주벽으로 배향하였다.
성삼문 신주의 여정
성삼문은 1456년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화를 당하면서 그의 동생과
아들 등이 모두 죽임을 당하여 혈손이 끊어졌다. 성삼문의 부인 김씨는
관비로 끌려가서도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가
죽은 후에는 외손 박호(1466~1536)의 가계에서 제사를 받들다가 임진왜란 때
신주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1672년 인왕산의 바위가 무너지면서 묻혀있던
성삼문의 진주가 발견되었고, 이 신주는 우암 송시열 등의 의견에 따라
홍주 노은서원에 봉안되었다.
1871년 노은서원이 훼철됨에 따라 성삼문의 신주를 모실 곳이 없게 되자
외손인 박진하가 노성 당호재로 옮겨 봉안하였다. 1903년에 칙명에 의해,
성삼문의 봉사손이 결정되면서 창영성씨 집성촌인 연기군 금남면 달전리
사우(현 문절사)로 옮겨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신주의 훼손을 염려하여
단지에 넣어 땅 속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무안박씨 요여腰輿
요여(腰輿): 장사를 지낸 뒤에 혼백(魂帛)과 신주(神主)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가마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무리진 철죽꽃들이 꽃미소로 반겨 주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명성불고기집으로 이동
2015년 공주시 주관 으뜸 공주 맛집, 명성불고기집에서..since 1973
국내산 한우인 생 불고기 식사를 마치고
백제 유적, 공산성으로 10분정도 도보 이동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산성
공산성 금서루(公山城 錦西樓)가 보인다.
공산성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이다.
불타는 내 마음이 여기 금서루 앞 언덕받이에 붉은 철쭉꽃으로 피어났군!
우리 일정은
금서루로 들어가 횐쪽 성?을 낀 산언덕으로 올라가
강을끼고 걷다가 중간에 꺾어 다시 금서루로 나오는 코스이다.
전체 성벽의 4분의일 정도의 거리란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금강이 흐르는 물위로 금강철교가 보인다.
공주는 고대 이래로 서울과 호남지역을 연결해 주는 육로와 금강수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공주에서 금강을 건너는 나루로는 웅진이라고 불리는 곰나루가 있었고,
공산성 공북루 앞에 있었던 공식적인 나루가 있었다.
구한말을 진타면서 수로에 비해서 육로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서 공북루 앞 나루터가
지나갈 수 있는 나무다리가 1910년대에 건설되었고, 1930년대초에는 강물의 수량증감에
대응할 수 있는 배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등록문화재가 등록된 공주 금강철교는 1933년에 준공된 교량으로 철교에 주로 이용하던
철교를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교로 건설된 특이한 예이다. 철골로 아치를 만들어서 만든
다리의 형태는 서울 한강교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금강양쪽으로 튼튼한 다리가 건설되어서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자동차가 지나 다니고 있는 다리이다.
공주읍과 금강이북을 연결해 주는 금강철교. 철도가 부설되기전까지는 전국적으로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았던 호남지역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한다.
이 다리를 건너서 차령고개와 천안삼거리를 지나서 서울까지 교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내용출처:http://younghwan12.tistory.com/3005
시간이 촉박하여 우리 목표지점은 저기(공복루) 까지다.
공북루
쉬어 간다. 금강변 성벽돌기를 마치고..
성벽 4분의일 정도 거리에서 그치고 금서루로 향하는 숲 사잇길로 든다.
입장했던 금서루쪽으로 가기 위해 지름길도 꺾어들면서 공산성극장을 만난다.
공산성을 둘러보고 세종시로 이동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으로 닿다.
대통령기록관 세종시 다솜로 250(어진동 614)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록을 철저히 수집 관리하여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인식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립.
약 864만건의 문서, 시청각, 선물, 행정박물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통령기록물의 수집, 정리,
기술, 보존, 평가, 열람, 활용, 전시 등을 위한 전문적인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있다.
2014년 이전에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대왕판교로 851번길 30번지(시흥동 231)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통령기록 전시관으로 든다.
접견실
우리나라 건국대통령 이승만 사진 옆에서 하루여정을 마친다.
사진 글 찬란한 빛/김영희
*대통령기록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남긴 문서와 사진, 영상, 사무집기 등을 보존하는 곳.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기록과 자료를 수집하여 보존하며
국민들에게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통해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
대통령기록관은
2006년 국가기록원 조직 개편에 따라 대통령기록관리팀이 신설되었다.
2007년에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었고 그해 7월 28일 시행되었다.
2015년 5월 세종특별자치시에 대통령기록관이 신청사가 준공되었다.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약 2,300㎡ 규모의 전시관이 운영되며
역대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국정운영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외국에서 받은 선물 등이 전시된다.
1층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꾸며진 전시관이며 역대 대통령의
취임과 퇴임까지 주요 활동을 소개하는 대통령 전당과 영상관이 있다.
2층은 ‘대통령의 기록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꾸며진 전시관이며
대통령의 기록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3층은 ‘대통령의 열정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구성된 전시관으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와 대통령 일상의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의 변천사, 행사공간인 영빈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 업무공간인
집무실, 접견실이 재현되어 소개된다.
4층은 ‘대통령의 리더십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꾸며진 공간이며 대통령의 역할과
권한을 이해하고 대통령의 다짐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행정수반으로서 국무회의를
주관하고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을 통솔하는 등 대통령의 주요한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소재지의 주소는 세종특별자치시 다솜로 250(어진동)이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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