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알린 우리나라 사건
1. 6.25 사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5천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를 이룬 국가라고 자찬 하지만 막상 외국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데 있는지 알지도 못하였다.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 알린 것이 6.25 사변이다.
남의 힘으로 해방된 지 5년 만에 남북전쟁인 6.25가 났다.
유엔군이 결성되어 한국을 지원하러 오는데 이들은 한국이 어데 붙어 있는 나라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명령에 의하여 전투에 참가 하였다.
전쟁준비태세가 하나도 안 된 남한은 북한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국가가 풍전등화일 때 유엔군의 도움으로 반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종군기자가 세계의 각지의 국가들에게 한국은 자유 우방이며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전쟁 중이라고 타전을 하였다.
이때가 극동에 붙어있는 가난한 나라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한국의 생활상은 가난한 후진국으로 비적 마른 아이들을 사진 찍어 우리나라의 부끄러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전쟁이 3개월이면 끝난다고 예언을 하였지만 3년이나 끌다가 정전을 하게 되었다.
가난한 국가의 창피이지만 국가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큰 공헌을 6.25가 한 셈이다.
2. 88 올림픽
벅정희 대통령시절 하게올림픽 유치를 발표했다.
전두환 대통령시절에 데모가 계속 일어나니 민심의 향방을 돌리려고 국가적으로 체육진흥에 목표를 두었다.
이때 나타난 것이 프로 야구 이고 다음이 프로 축구다.
올림픽에 대한준비도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민들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였다.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올림픽 개최지는 제울(서울)이라고 선언하자 한국유치단은 귀를 의심했고 유치하는데 큰 역할을 한 정주영 회장은 환호했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진영의 보이콧으로 공산진영만 참석하는 반쪽자리 올림픽이었다.
다음 개최지인 미국 LA 올림픽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역시 반쪽 올림픽이 되었다.
다음이 우리나라인데 통일도 안 되고 분단국인 한국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하니 세계 각국이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의 역공작이 심하였다.
정전중이라 전쟁은 안 난다 해도 경제력이 없어 올림픽 스타디움이나 제때에 완공할지 의문이라며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6.25때 한국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정부에서는 허허 벌판인 잠실에 스타디움을 짓고 올림픽아파트를 선수들 숙박용으로 지었다.
88년 올림픽 개최 때는 노태우 대통령이 테이프를 끊었다.
각국의 선수단과 기자들이 몰려들어 서울에 와서 깜작 놀란다.
우려했던 스타디움은 멋있게 위용을 뽐내고 선수촌은 여태껏 어느 나라 선수촌보다도 깨끗하고 시설은 최상이라 선수단은 만족을 표현하였다.
서울 올림픽은 좌우 진영 모두 참석하여 역대 최대의 160개국이 참석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더구나 6.25때 서울에 제대로 된 빌딩하나 없던 곳에 빌딩은 저리가라 하고 아파트가 즐비하게 지어져 있으니 전에 한국을 생각했던 사람들은 서울에 와서 도깨비에 홀린 듯 감탄을 하며 놀란 가슴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전 세계에 한강의 기적을 타전하며 한국을 칭송하는 메아리는 계속 이어졌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최빈국 한국이 6.25사변 후 30여년 만에 열강에 도전하는 3용으로 선진국 턱 앞에 와 있음을 세계만방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태릉선수촌에서 몸을 단련한 우리나라 선수단은 선전을 하여 금메달 12개에 역사상 유래가 없는 세계 4위를 기록하였다.
3. 2002월드컵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 대~한민국. 이 함성이 2002년 서울 월드컵 대회 때 붉은 악마 응원단이 소리 높여 불렀던 대한민국 응원가다.
이 엇박자의 함성이 전 세계인에 각인되어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식당 종업원까지 대~한민국 하며 불러주던 국가적 응원가다.
빨간 깃발에 치우천황을 새긴 붉은 악마의 깃발을 흔들며 응원하는 응원단에 맞추어 전 국민은 열광을 하였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열광하는 최초의 열광의 도가니였다.
월드컵대회를 국가에서 유치한다고 할 때 국민들은 시쿤등 했다.
올림픽도 열었고 다른 세계대회도 많이 했는데 돈 많이 드는 월드컵을 무엇하러 또 유치하려고 하나 하고 부정적인 면도 많았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는 것만으로 큰 만족을 이루는 나라인데 남의 나라 잔치만 벌려주는 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프로 야구는 인기가 없고 아예 리그도 없다.
그러나 축구는 전 유럽인이 미친 듯이 열광한다.
각 나라의 리그도 치열하고 국민들이 인사할 때 날씨보다도 축구 이야기부터 하는 곳이 유럽이다.
여자들도 덩달아 축구에 통달해 있다.
각 리그 선수들의 이름은 물론 사생활 까지 바삭하게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들의 문화다.
유럽리그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그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선수가 차범근이다.
차붐으로 분데스리가 100호 꼴을 넣은 한국의 대표 선수다.
다음이 손흥민이다
지금도 상승중이니까 차붐을 넘어서는 선수다.
우리나라 국가 대표 팀의 감독으로 네덜란드 히딩크가 선임 되었다.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지만 종국에는 한국의 영웅으로 받들어 졌다.
주최국으로 16강에 안착한 우리나라 축구 대표 팀은 국민의 예상과는 달리 히딩크의 지휘아래 너머나 잘 싸우고 있었다.
유럽의 내노라 하는 유능한 팀을 계속 이기며 올라가는데 예상도 못한 8강 또 올라가 4강까지 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전 세계 유능한 축구 해설가도 예측을 못한 일이었다.
승리 때마다 히딩크의 어퍼컷이 작동을 하고 전 국민은 빨간 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다.
전국 지자체는 넓은 공터만 있으면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스크린 앞에는 우리나라 경기 때는 빨간 옷을 입은 국민들이 가득 찼다.
얼굴과 손에는 문양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고 월드컵의 흥취를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온 국민이 하나로 합치하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월드컵의 백미는 4강에 오른 한국과 터키전 때에 월드컵 운동장에 나타난 대형 태극기와 터키기가 운동장 관중석을 뒤업는 대형국기다.
터키에서는 자기나라 국기가 저렇게 큰 것은 처음 본다며 환호했고 형제의 나라라고 감격하고 있었다.
4강때는 한국이나 터키나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루어 경쟁심은 극에 달하지 않아 경기도 신사적으로 하였다.
터키가 미국과의 경기 때에 한국은 미국의 우방이라 미국을 일방적으로 응원할 것이라고 예상 했는데 한국응원단이 일방적으로 터키를 응원하니 자기들이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4강전에서 붉은 악마가 만든 대형 터키기를 보고 감동한 터키는 한국은 터키의 가까운 형제 국이라고 고맙게 생각하며 이후에는 한국인만 보면 더퍼놓고 좋아했다.
붉은 악마응원단이라고 월드컵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응원단 이름이다.
이름도 왜 붉은 악마야, 악마라는 부정적인 어휘인데다 빨간 깃발도 치우천황이 귀신같이 그려져 선뜻함이 월드컵 열기가 없었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전 국민을 빨간 옷으로 물들인 붉은 악마의 응원전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 사진 기자들이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이는 응원단을 촬영하려고 하루종일 지켜보고 있었다.
오전부터 모여드는 응원인파가 오후 되니 시청 광장이 빨간 옷으로 꽉 찼다.
이 사진이 중국의 동방명주 1층 로비에 전 세계 유명 사진인 에펠탑 마천루 피라미드 등과 함께 걸려있는데 이 시청 앞 붉은 옷을 입은 응원사진이 다른 사진을 압도한다.
4. K-팝 아이돌
싸이의 말 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더니 아이돌 그룹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BTS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하며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자 전 세계 젊은 청춘 남녀가 한국의 노래에 열풍을 일으켰다.
우리가 상상만 하던 대형 콘서트를 방탄 소년단은 선진국 앞마당에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앞에 놓고 마음껏 요리하고 있었다.
60년대의 세계를 휩쓸던 영국의 비틀스는 저리가라다.
더구나 옛날에는 오디오나 레코드 테이프로 전파되었으나 현대에는 발전하여 유투브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지니 그 전파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영향으로 한국의 남자 아이돌 그룹 여자 아이돌 그릅이 전세계를 상대로 펄펄 날고 있다.
아이돌 열성팬들은 아이돌이 부르는 한국노래를 배우기 위하여 한글까지 배운다.
표음문자 한글은 배우기도 쉬워 한국문화 알리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이돌의 노래를 들어도 무슨 뜻인지 어떤 감흥인지를 잘 못 느끼는데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국내에서는 흥이 많고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에 힘입어 트로트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여기에 K-드라마 까지 겹쳐 연예계는 열광중이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장금이 중국에서 한류의 불을 집혀 동남아에서 세계로 번지더니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까지 받게 되었다.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 이 넷프릭스에서 시청률 1위를 하며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정치가 발목만 안 잡는다면 경제나 문화가 얼마든지 세계에 자랑하며 우뚝설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6.25때 세계에 최빈국으로 알리고,
88 올림픽 때 이 최빈국이 순식간에 성장하여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알렸다.
2002 월드컵 때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열기를 세계에 보여 주었다.
K-팝 K-드라마로 한류를 이끌어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대열인 30-50클럽으로 세계에 7위의 자리에 우뚝 섰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이제 전 세계를 리드해 나갈 일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