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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요실금/ 김선우
은하수 추천 0 조회 11 12.12.05 23: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요실금/ 김선우

일찍이 오줌을 지리는 병을 얻은 엄마는
네 번째 나를 낳았을 때 또 여자아이라서
쏟아진 양수와 핏덩이 흥건한 이부자리를 걷어
내처 개울로 빨래 가셨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요실금을 앓는 여자의 아랫도리처럼
얼음 사이로 소리 죽여 흘렀을 개울물,
결빙의 기억이 저를 다 가두지 못하도록
개울의 뿌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뜨거운 수액을 조금씩 흘려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한의 겨울에도 동네마다
얼어붙지 않은 개울이 한두 개쯤 있었고
나는 종종 보곤 했던 것입니다
한겨울 비루해진 개울이 뜨거운 제 살 속에서
흰 눈을 폭포처럼 퍼올리는 것을

먼길을 걸어온 女子들이
흰눈을 뭉쳐 조금씩 녹여 먹으며
겨울나무 줄기에 귀를 대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오줌 한 번 시원하게 눠봤으면 좋겠다던
엄마의 문이 눈밭 위에서 활짝 열리곤 하였습니다

-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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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실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변이 흘러나와 팬티를 적시는 매우 당혹스러운 증상이다. 남성의 전립선 장애에 해당되며, 주로 출산으로 인한 골반근육과 괄약근이 약해져 나타나는 방광조절능력 저하현상으로 우리나라 여성의 약 4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억압받고 감춰져온 여성성을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시의 질료로 끌어들이곤 했던 김선우 시인이 '요실금'을 무심히 지나칠 리가 없다.

 

 시인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주술적 언어로 그 난맥상을 풀어놓았는데, '죽기 전에 오줌 한 번 시원하게 눠봤으면'하는 바람은 소망으로만 그쳤던 것 같다. 예전엔 이의 적극적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여성은 거의 없었지 싶다. 부끄러워서라도 감히 병원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의학적 판단으로 수술을 요하는 경우는 전체 환자의 10% 미만이며, 나머지는 약물치료와 골반근육운동 등으로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케겔’ 이라는 괄약근 강화운동이 요실금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수년 전 요실금 수술이 급증하여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었다. 요실금 증상이 심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도 생식기성형수술(속칭 예쁜이수술)을 묶어 수술 받도록 하는가 하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예쁜이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요실금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보험금을 챙긴 의사 등이 무더기로 적발된 일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요실금 치료를 위장한 예쁜이수술의 대유행으로 당시 의보재정이 크게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여성시대보험'이란 상품을 판매한 민간보험사도 이로 인해 큰 손해를 보았다.

 

 그 여파로 현재 민간건강보험(실손보험) 보장대상에 치질은 포함된 반면, 요실금은 빠져 있다. 치질은 보험금 때문에 부러 수술을 받는 환자가 별로 없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요실금 수술은 달리 인식했다. 이 같은 사정임에도 지금은 시인의 어머니처럼 '먼길을 걸어온 女子들이 흰눈을 뭉쳐 조금씩 녹여 먹으며 겨울나무 줄기에 귀를 대'곤 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비록 보험을 이용해 꿩 먹고 알 먹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얍삽한 수술은 불가능해졌지만 맥없이 오줌을 지리는 여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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