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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상23:15~29.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는 하나님2. 2022. 5. 22.
오늘 내용은 1-14절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그 내용은 어떤 사람이 다윗을 찾아와서 그일라의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일라는 유대의 땅인데 블레셋이 그일라를 공격해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 피해는 1년 농사를 추수하고 말리고 탈곡을 한 타작마당의 모든 소산물을 탈취당하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내용입니다. 그일라 사람들의 당한 아픔을 회복시켜 달라는 도움의 요청입니다. 사실 이 요청과 부탁과 호소는 사울 왕에게 해야 하는데 사울 왕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도망을 다니는 다윗에게 요청을 합니다. 싸울 수 있는 군대와 용사는 사울 왕에게 있습니다. 명령하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사울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다윗에게 요청을 해요. 여러분, 그일라 사람들이 소망하며 감당한 1년 치 농사와 함께 삶의 근거를 빼앗겼는데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얼마나 통곡할 일입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참으로 난감하고 절망입니다. 내일과 미래를 약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에 다윗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이 일에 대하여 하나남께 묻는데, 2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도와주자고 말 하는데 함께 한 600명이 반대를 합니다. 3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입니까 한지라.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 자신들이 도망을 다니면서 유다에 있는 것도 불안하고, 대상이 블레셋 군대이고, 자기들은 갖추어진 것도 없다는 이유입니다. 타당하기 때문에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4절,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시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대답을 기다렸는데 블레셋 사람들을 반드시 다윗의 손에 넘기겠다는 같은 음성과 대답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의 사람들과 함께 그일라를 도와주기 위해서 블레셋을 공격하고 빼앗겼던 가축을 가지고 그일라로 돌아와 그일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이는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제사장과 함께 기도한 결과이고, 에봇을 놓고 기도한 결과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듭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데 7절,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누구인가 또 사울 왕에게 다윗의 이 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 뼘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사울 왕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자신의 손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넘겼다고 합니다. 사울 왕은 현재의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합니다. 왜 이렇게 표현을 합니까?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들어갔기 때문이고 갇혔기 때문이고 도망을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독안에 들어있는 쥐라는 거지요. 정말로 이제는 사울의 손안에 다윗이 있었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나요? 또 아비아달 제사장을 부르고 에봇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또 다시 기도하고 묻는데 9-12,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자상하게 묻고 기도했습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일라로 내려온다면 말씀해 달라는데 하나님은 사울 왕이 그일라로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일라 성과 그일라 사람들을 위하여 블레셋과 싸워서 격퇴시키고 빼앗겼던 1년 치의 타작마당에 있던 소산물을 찾아 주었는데 이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과 600명의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왜 이렇게 자세히 물을까요? 확실한 응답을 듣기 위함입니다. 얼마나 힘들게 싸웠습니까?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넘기겠다고 합니다. 그일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앞에 바로 배신을 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배신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과 함께한 600명이 다윗에게 무엇이라고 말 할까요? 다윗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일행은 서둘러 문과 문빗장이 있는 그일라 성을 빠져 나갑니다. 13-14,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은 갈 수 있는 곳으로 그일라를 떠났으나 다윗이 갈 수가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냥 정처가 없이 떠났고, 일단 살고 싶었고, 소낙비는 피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아니라 삶의 길과 진행이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광야 요새에도 있었고 십 황무지에도 있었는데 사울 왕이 매일 다윗을 찾아 나섰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다윗이 십 황무지에 있을 때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합니다.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고 알려주고는 하나님 앞에서 이 내용에 대하여 언약을 하고 요나단은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십 황무지에 사는 사람들도 사울 왕에게 다윗의 근거지를 자상하게 알려 주고, 알릴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백성이 된 의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마온 광야로 이동을 했는데 사울 왕과 군사들이 여기까지 추적을 했고 포위하고 에워 쌓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 전령이 사울 왕에게 보고를 하는데 블레셋이 또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위태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포위하고 에워 쌓던 다윗을 뒤로하고 전쟁에 휘말린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전쟁터로 향합니다. 다윗에게 있어서는 반전이었는데 이 반전의 장소가 셀라하마 느곳 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고 엔게디 요새로 안전하게 들어가는데 여기에 몇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23장의 본문이 무엇을 교훈합니까요?
1. 도움의 요청과 부탁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입니다. 여러분, 도움의 요청과 부탁은 보통 언제 합니까? 힘들고 어렵고 곤궁에 처할 때에 합니다. 그런데 이 도움의 요청과 부탁을 누가 들어줍니까? 넉넉한 사람이 도와줄까요? 어떤 사람들이 부탁을 들어 줄까요? 어떤 일이든지 일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대체로 여유가 있고 넉넉한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 별로 없고 부족한 중에도 애쓰고 짜 내면서 성사가 됩니다. 사람을 돕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가끔씩 사람들 가운데는 정말로 가진 것이 풍부해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없는데 십시일반 모아서 도와주고 어려운 가운데서 가진 것 중의 일부를 떼어 부탁을 들어줍니다. 그러니까? 있어서 도와주는 것보다 없는 가운데서 도와주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의 다윗은 사실 어려운 여건과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쫓기며 황망한 가운데 이 소식을 들었는데 사실 다윗과 일행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있어서는 같은 유다 족속인지라 그 소식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사울 왕이 나서야만 했습니다. 통치자는 사울이기 때문입니다. 빼앗긴 곡식을 찾아 주어야 할 위치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오직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쫓기는 다윗은 지금 다른 사람과 다른 일에 마음과 눈을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동족이 어려움을 겪는 것 때문에 그 도움의 요청과 부탁을 들어 줍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모습이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의지와 행동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처지가 아무리 곤경해도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합니다. 도움의 요청과 부탁 앞에서 처지와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께 묻자와 입니다. 늘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모습은 어디서 나타나나요? 그 모습은 언제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묻고 주신 답을 가지고 살아가면 실수가 없고 승리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보다 앞서는 것이 기도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쳐야 합니까? 응답하셨지만 600명의 사람들이 반대를 합니다. 자기들이 그 일을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지요. 갈등을 느낀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물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똑 같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묻고 시작을 하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하나님께 묻는 것이 신앙인의 삶의 행동입니다. 중요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묻고 응답을 받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순위 앞에서 이 사실을 기억해야 방법이 나오고 행동과 의지의 시온의 대로가 열리고 내 인생의 길이 보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렵고 처지가 곤란할 때의 도움의 요청과 부탁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의 요청과 부탁을 안 받을 수 있습니까? 제외되시는 분이 있습니까? 도움의 요청 앞에 나의 처지와 상황을 나보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묻고 간구하면 가장 적절하고 좋은 응답과 해답을 주십니다.
그러면 도움의 요청과 부탁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무엇입니까? 600명의 사람들은 안 된다고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도망을 다니는 신세이고 괜한 일에 끼어들었다가 잡히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600명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환난을 당하고 원통하고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의욕도 없고 갖은 것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규모가 있는 군대와의 처음 전투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안 된다는 보여 지는 것과 현실적인 판단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결의에 찬 확신을 보고 600명의 사람들이 다윗을 믿었습니다. 함께한 다윗의 용사는 빚진 사람들과 환난을 당한 사람들과 원통한 사람들과 도망한 사람들이었지만 블레셋을 궤멸시키고, 빼앗겼던 곡물을 모두 그일라 거민들의 손으로 되돌렸습니다. 거기다가 다윗은 전리품으로 꽤 많은 가축을 얻었습니다. 갑자기 이들은 용사가 되었고 위대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승리할 수 있다는 큰 경험이 되었습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의 일하심과 동행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누구인가를 돕는다는 것은 도울 만 해서 돕는 게 아니고, 주님의 명령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판단이 아니고, 도울 수가 없어도 도움의 요청을 들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좋은 일을 계획했을지라도 기도보다 앞서면 아니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만드시고 거기에 행동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항상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와 원인이 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경험이고 축복입니다. 작은 것을 통해서 더욱 큰일을 기대하고, 주어진 현실에서 용기를 갖고, 항상 무엇이든지 포기하지 않게 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내용은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은 생각한 것처럼 간단치가 않습니다. 복잡 미묘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한 쪽이 좋으면 다른 부분에 균열이 생깁니다. 판단과 이해에 있어서 시원한 해답이 없고 늘 부족함을 느끼는데 늘 이러한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살아온 인생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앞으로 살아갈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이쪽과 저쪽의 분간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묻고 간청하는 그 질문에 하나님은 분명히 대답해 주시고 그 응답을 말씀과 꿈과 환상으로 보여 주십니다. 다윗은 작은 것을 통해서 더욱 큰일에 대하여 기대를 했고, 주어진 현실에서 용기를 갖고, 항상 무엇이든지 먼저 포기하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요?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 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 하리로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다윗의 앞에는 하나님 먼저입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에 다윗을 넘기지 않았고, 사람들의 넘김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다윗처럼 이런 신비를 경험하며 사시는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건과 사람을 동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예비하시고 기름을 부으신 인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또한 다윗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경중이 있을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요나단을 다윗에게로 보냅니다. 16-17,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나님께서 또 무엇을 하십니까? 27-29,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 느곳이라 칭 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블레셋으로 전쟁을 하게합니다. 사람을 동원하고 전쟁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십니까? 다윗을 힘 있게 하고 다윗이 흔들리지 않고, 다윗을 온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19-20,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한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배반하고 넘기는 것이 의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깔려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스스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존할 수 있습니까? 전혀 안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다윗에게 보내고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나님을 두고 언약을 하게 합니다. 또 전쟁을 일으키게 해서 다윗이 안전하게 엔게디 요새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일목요연하게 해석을 합니다. 그렇다면 의무라고 하면서 배반과 배신을 하는,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넘기려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일에 대하여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제가 간증을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김 근배 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이유는 37세 된 둘째 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문을 사모가 했고 헌화를 하고 조의금을 힘써 전달했지만 조그만 저의 마음이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기다리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너무나 안스러웠습니다. 사모님은 사랑했던 둘째 딸의 납골당에 가서 영정사진을 보시면서 30분에서 한 시간씩 우시고 온답니다. 집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딸인 사랑이를 등하교 시키면서 또 우신답니다. 그 모습을 보시는 목사님 또한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울고 가슴이 미어지는 이유는 5년 전에 기록해 놓은 남편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오늘이 2017년 마지막달 12월 6일 새벽이네. 갑자기 이렇게 새벽에 혼자 컴퓨터 앞에 앉은 이유는... 사실 몇 달 전? 부터였던 것 같애. 내가 메일로라도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내가 갑자기.. 준비없이 서방앞에서 사라지는 날이 혹시 올까봐. 그러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 너무너무 많은데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없어져 버릴까 봐... 정말 그러면 안 되겠다 싶었어. 하고 싶은 말이야 미리 말로도 할 수 있는 거긴 하지만... 말이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눈물만 나와서.. 목이 턱하고 막혀서 나오지를 않더라...
내가 정말 이유 없이.. 그냥 막 서방 옆에서 눈물 뚝뚝 흘리고 몇 번이고 그랬던 것 기억 날거야.. 그때마다 항상 그랬고 그때마다 항상 생각했어..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나도 못하고 없어지는 일은 생기면 안 되겠다 하고.. 서방.. 연애할 때 기억나..?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루푸스에 관한 자료를 프린트해서 가방에 넣어두고는... 할 말이 있다고... 나도 뭐 정확하게 모든 상황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말이야... 그때의 그 마음은 기억이 나. 내감정은...오빠랑 처음 연애할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오빠를 좋아하게 될 줄을 몰랐었는데... 막상 너무 좋아지고 나니 그때서야 생각이 나더라. 아 맞다... 나 아픈 애인데... 그래서 순간 너무 덜컥 두렵더라고.. 오빠가 알면.. 결혼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겠지.. 그러면 나는 어떡할까... 그때 받을 상처와 충격을 내가 혼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었어... 더 시간을 끌고 말을 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말하자. 나중에 더 좋아지기 전에.. 더 힘들기 전에...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근데 오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별 것 아닌 병인 줄 알았어. 정말.. 아파보지 않은 상태였고. 사실 나도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병원 결과로 알게 된 사실이었기에 내 병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그냥 하루하루 일하면서 생각 안하고 살았더라고.
오빨 만나서 연애하면서 한번씩 아프고 처음으로 입원이라는 것도 해보고.. 그때마다 내 곁을 지켜줬던 오빠 때문에 너무 슬프고 힘든 기억이 될 수도 있었던 기간들이 나에게는 추억..? 처럼...ㅎㅎ 그렇게 남겨져있더라고..지금도.^^ 그 후로도 몇 번 입원하고 아파보고 했지만.. 모두. 힘들지 않았던 기억으로 그냥.. 다 오빠랑 데이트 했던 것 같은 그런 좋은 기억으로.. 그렇게만 남겨져 있더라.. 사랑이 낳기 전까지는... 오빠랑 정말 말도 안 되게 그렇게 결혼을 하고... 연애 때부터도 함께 살았지만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도 생기고.. 하나하나 너무 꿈같고 행복하고. 오빠!! 나는 정말 오빠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애가 맞아. 내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오빠를 만나기 전과 후. 그렇게 나눠지는 것 같아. 오빠를 만나서 오빠랑 함께하면서 보낸 지난 몇 년이... 아니 그 몇 년을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난. 매일매일 감사했고 행복했고.. 눈떠서도 눈 감을 때도 오빠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랬어 정말.... 저번에 오빠가 한번 지나가는 말처럼.. 만약에 과거로 돌아간다면.. 결혼을 꼭 해야 한다면 나랑 하겠지..만?! 아니라면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면 결혼을 꼭 해야 하겠나..라는 생각을 한적 있었다고.. 뭐 그런 식으로 말했었는데.. 내가 그 말을 듣고 막 울었었어.. 물론 서운..한 마음에도 울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오빠한테 너무 많이 미안해서... 정말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내가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을 때... 그때마다 머릿속에 맴돌던 말이.. 오빠, 나같은 여자 만나게 해서 미안해. 나랑 결혼해서 미안해. 사랑이 낳아서 미안해... 우리 예쁜 사랑이.... 너무 예쁜 사랑이.. 내가 끝까지 책임져 주지 못할 수도 있었던 건데.. 그런 생각 꿈에도 못하고 낳아놓고.. 나중에 혹시 내가 없어지면 그때는 어떡하나... 우리 사랑이 엄마 없는 애.. 외롭고 불쌍한 애 소리 절대 듣게 하고 싶지 않은데... 오빠도 만약에 사랑이가 없었다면 나도 금방 잊고 정말 더 더욱 더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오빠. 나 아까 오빠랑 다큐멘터리 '앎'이라는 거 같이 보다가... 십 분도 안 되서 나 못 보겠다고 들어갔었어. 그런 다큐멘터리인줄은 또 생각도 못하고 쉽게 틀으라고 했다가... 시한부 인생의 엄마들 얘기를 듣는데... 정말 심장이 뒤 틀리는 것만 같더라..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그 여자가 다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남편도 너무 좋은 사람 같았고.. 같이 연애할 때 얘기하고 웃으면서 앉아 얘기하고 하는데... 썩어 문드러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정말 더는 볼 수가 없겠더라.. 그래도 그 여자의 딸 둘은 둘 다 초등학교 고학년 저학년쯤 되어 보이고.. 서로 의지할 수도 있고... 엄마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면 알아듣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데.. 나는 과연 우리 사랑이를 몇 살까지 더 볼 수 있을까...?
폐동맥 고혈압!!!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이 병명을 듣고 그날 저녁에 찾아 봤을 때 정말 그 충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내가 언제 어떻게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그 생각 때문에 우울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하더라. 대충밖에 안 봤는데 충격이 너무 크고.. 몇 날 몇 칠을 잠도 못 이루고 사랑이 옆에서 끅끅 거리면서 울다 잤어... 그리고는 다시는 안 찾아봤어 다시는. 내가 설사 갑자기 죽더라도 그렇게 우울해하기만 하다가 가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모르는 게 낫고 더 보지말자.. 내 목숨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안보고 나니 조금 살만하더라고!! 오빠. 또 한 가지 미안한 건... 오빠 아들 낳기 원했었던 거.. 그거 정말 장난으로 했던 말 아닌 것도 알고 나도 정말 해주고 싶었었는데.. 아니 굳이 아들이 아니더라도 사랑이를 위해서라도 서로 의지할 형제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어느 정도 약 먹다보면 몸이 더 나아지고 괜찮아져서 그래도 30대 중반쯤에는 하나 더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생각했었는데... 요즘 이렇게 병원에 갈 때마다 시한부 듣고 오는 것 마냥.. 항상 더 나빠졌다.. 약을 늘려라.. 수치가 올라갔네. 어쨌네. 얘기만 듣고 오다보니.. 그냥 자연스레 나는 안 되겠구나.. 포기가 되어가고 있어 사실.... 둘째 낳는 건 고사하고 그냥 정말 이러다가 점점 간경화 심해지고 폐동맥 고혈압이 어쩌고.. 그러다 그냥 금방 죽겠구나.. 그 생각만 자꾸 드니까!! 자꾸!!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할수가 없게 되더라. 얼마 전에 내가... 그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심 정지 되었거나 했을 때 억지로 살려두는 그것... 뭐라 하지..?ㅋ 암튼 나도 존엄 사 할 권리가 있다고... 나 그렇게 억지로 살릴 생각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나 그거 서류 써서 남기고 싶다고... 그 얘기한 적 있었어. 내가 죽게 된다면. 어차피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가족들이 빨리 극복하고 제자리를 찾길 원하지 절대로 나로 인해 심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절대로 절대 힘들게 하는 걸 원치 않아 절대로. 절대로. 혹시나 그런 상황이 올까봐 내가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객관적인 판단이 든다면.. 그냥 자살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까지도 생각하다가 다시 제정신 차리고 돌아왔어.. 자살... 뭐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니까!!! 나 이제까지 별로 좋은 일 한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고 맨 날 부모님 속만 썩이고 그렇게만 살았는데.. 그런데도 항상 하나님은 날 지키시더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많이 틀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항상 나를 구하시더라고.. 나중에 생각해봤어 왜 나를 그렇게 사랑하실까.. 난 이쁜 짓을 한 게 없는데.... 근데 그게 정말 우리 부모님의 기도 덕이라는 말밖에는 뭐 답이 없더라! 죽음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아직 코앞까지 안 가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혹여 죽게 되더라도 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겠지.. 라고 받아들여지는 마음가짐이 되었으면 해..아마 그러기 위해서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이 죽음이라는 단어와 폐동맥 고혈압.
3. 이렇게 하시는 이유와 원인이 무엇입니까? 작게는 유다의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함이고 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함입니다. 오늘 600명으로 결성이 된 이후 첫 번째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이제 다윗의 목적한 인생이 서서히 작동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내가 만들 수도 없고 내가 스스로 나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시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하나하나 차근히 쌓아가고 발전시켰습니다. 여러분, 누구인가는 말하기를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데요. 그래서 장소에 따라 삶의 방법이 다르다고 합니다. 예. 물론 은혜의 자리와 은혜의 장소가 더욱 복이 됩니다요. 하지만 비전과 소망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전진하고 하는 데에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면 아니 됩니다. 이 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말씀이 의식을 컨트롤하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의식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인이고 믿음의 사람이고 비전과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나의 시대는 내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시대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간에 있지 않습니다. 다윗은 문과 문빗장이 있는 그일라 성에 갇혔지만 다윗에게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보면 피할 길이 있습니다. 삼상12:16, 이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일을 보라. 나의 목전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나의 시대가 달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나 하던 그 모습입니다. 오늘은 오늘이라 기쁘고 내일은 갈릴리가 있기 때문에 좋지요? 하지만 다윗에게 오늘은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나 기대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던 그 모습이었고 그 자리이었습니다. 여러분, 내 자신만이 신앙 안에서 나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어떻게 행동해야 다윗에 대한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변할까요? 오늘 나에게 주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남김없이, 후회와 후퇴 없이, 주신 소명 붙들면 세상의 손에 넘김을 당하지 않고, 남김없이 후퇴와 후회 없이 기름부음을 받은 은혜와 기름부음을 받은 약속으로 살면 나를 가로막는 사람의 손에 넘김을 받지 않고, 남김없이 후퇴와 후회 없이 나의 소망을 목적하고 버티면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고 나를 책임지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의 길을 내십니다. 이 것이 오늘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이 나의 맘대로 됩니까? 되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아니지요?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의 신뢰와 믿음을 보도록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을 통해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소명에 따라 살다보면, 기름을 부으신 은혜와 기름을 부으신 약속을 가슴에 담고 살다보면, 소망을 목적하고 버티다 보면 좋은 결과도 있고 원하지 않는 일도 만납니다만 그럼에도 좋은 결과라면 그 것은 믿음 안에서 승리인 것이고 그래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고 원치 않은 결과와 원치 않는 일이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결과의 산물입니까? 아니면 하시는 것 마다 풀리지 않은 결과이고 원하지 않은 일이었습니까? 다윗은 오늘 또 고통을 받습니다. 또 어두움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또 사울 왕의 손 안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내 몰렸습니다. 캄캄하고 대안이 없고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지만 모든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안에 갇혔습니다. 은혜를 입고 바로 배반을 당합니다. 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존재하고 있는 현장마다 사울 왕에게 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왜 이렇게 끝까지 행동할까요? 좋은 결과이면 하나님이 펼쳐 놓은 사건위에 승리이고 원치 않은 결과이면 내일과 미래를 위한 포석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것 때문에 지금은 고생이지만 이 것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단점을 다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로 인도함을 되게 하고 통일 이스라엘을 세계의 만방에 알리고 든든히 세워가는 기틀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조건이 없다는 것 때문에 어떤 자세와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되나요? 화가 나고 사람이 싫어지십니까? 모든 것이 다 싫습니까? 그러면 유다의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어렵고 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어렵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들과 오해로 알려진 사람들과 편견으로 배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기회를 상실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내일과 미래를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무엇으로 그림을 그리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각자 여러분의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처한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관계의 의미를 잘 해석하시고 주의 뜻하신 길을 힘 있게 전진하시는 남김없이, 후퇴와 후회 없이 주신 소명을 붙들고, 기름부음을 받은 은혜와 기름부음을 받은 약속으로 살고, 여러분의 소망을 목적하고 버티면 하나님은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고 반드시 여러분을 위한 길을 내십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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