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의 인내
출11:1-10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빨리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유적을 말하기를 20대는 20 마일로, 30대는 30마일로 점점 빨라지는데, 50대부터는 과속수준이라고합니다. 저도 50대가 되니 정말 빨라지는 느낌입니다.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야기라네요.
제가 지난해 12월31일에 송구 영신예배를 드리며 축복 기도를 했었고, 1월7일 신년예배를 드린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10월 첫주가 되었고, 한해의 끝자락이 보이는 때가 되었습니다.
10월 첫주를 맞은 오늘, 여러분에게 치하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잘 인내하셨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기도와 소망을 지켜내신 여러분, 정말 축하드립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응답받으신 것들에 대하여 축하드립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응답받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더욱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역사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역사 신학자 김기홍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중세가 시작될 때 기독교를 공인했고, 초기 기독교 선교의 보호자가 되었던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유럽 북쪽에서 내려온 야만인인 게르만족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기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고아와 과부와 불구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고 전쟁이 엉망으로 만든 들판에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로마는 망했어도 기독교는 오히려 확장되었고, 기독교는 모든 유럽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은 다시 복음화되어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참새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말은 내가 뛰고 싶을 때에 걸어야 할 때가 있고, 내가 걷고 싶을 때에 뛰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할만치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아직 아니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라고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은 아직도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당장은 그 순간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마음에 확신을 주시는 장면이 3장부터 7장7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다양한 방법으로 확신을 주시기도 했고, 설득하기도 하셨고, 4:14절에는 이 핑계 저 핑계되는 모세를 향하여 화를 내시기도 합니다. 이토록 어려운 과정을 통해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한 역사를 펼치셨는데, 애굽에 9가지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9가지의 재앙은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전염병), 독종(악성 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입니다.
하나님께서 9가지의 재앙을 내리실 때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기대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번엔 되겠지, 이번에는 될거야, 이번에는 확실해”
그런데 바로 왕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했던지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무너지고 좌절하기를 무려 9번을 했다는 것입니다. 9번의 실망과 무너짐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한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드디어 9번을 기다린 모세에게 10번째의 재앙은 마지막이요 그동안 꿈꾸던 모든 것이 성취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기대하게 하셨을까요? 아니 반대로 말하면 오랫동안 실망하게도 하셨을까요?
첫째, 아홉 번의 인내로 주어진 10번째
이 시간 10번째 재앙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10번째 재앙에 이르기까지 모세는 무려 9번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단순히 겪은 것이 아닙니다. 대단한 인내의 시간, 아니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런 인생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만 견디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백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기대했고, 함께 실망했고 좌절했습니다. 그러니 9번을 거치는 동안 모세가 겪었을 기대감과 실망감의 반복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라면 어떠했을까요? 9번은 말도 안되고, 3-4번만 넘어가도 참지 못했을 것입니다.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하셨을까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양재성 목사가 제17회 서울 WCA포럼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생명체는 건강성을 담보하면 성숙하게 되어있다. 신앙은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결과는 과정을 충실히 살아내는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십자가의 고난은 사라지고 축복의 메시지만 존재하고 있다”며 이것은 교회가 죽음의 문화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현대사회는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용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면 좋은 결과, 축복 이전에 하나님은 모든 일에 과정을 거치게 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과정은 언제가 인간의 기대감을 뛰어넘는 과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약속을 받을 때에 너무 늙어 아이 낳는 다는 약속을 받고 기가막혀 피식 웃기까지 했던 그들에게 99세가 되도록 기다려야 했으니 아브라함과 사라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최근 새벽기도 시간에 사무엘하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울 왕이 죽었습니다. 다윗이 바로 왕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15년 동안의 도망자 생활을 견디었고, 그를 죽이고자 했던 사울 왕도 죽었지만 바로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다시 7년 반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문둥병이 걸렸던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에게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갔더니 엘리사는 만나지도 못한 채 그저 요단강에서 7번을 씻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노발대발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반드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게 하실까요?
사람에게는 아이성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7:2-4입니다.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나서는 바로 아이성을 공격합니다. 막강했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그들에게 아이성쯤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도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36명이 죽고 패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훈련받고, 하나님을 체험하고도 한번의 성공으로 믿음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9번의 실망과 좌절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9번의 실망과 좌절을 딛고 인내하는 자만이 10번째에 주시는 승리는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024년 지난 9개월 동안, 응답받으신 것에 대하여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응답받지 못한 것이 있더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욱 큰소망과 기대를 품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최후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둘째, 최후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제 블랙 프라이데이 다가옵니다. 손해를 의미하는 적자는 붉은 색으로, 이문을 남긴 것을 기록하는 흑자는 검정색으로 표현하던 것에서 유래되어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중간 결산하면 붉은 색으로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는 중간 결산하는 자가 아니라, 최후 승리를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힘들게 하셨고 어렵게 하셨지만, 이유가 있었습니다.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2-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단순히 애굽을 도망치듯 빠져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도망치듯 가는 것이라면 금은보화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애굽은 당시의 초강대국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모세는 지나가는 개 정도의 존재입니다. 그런 모세가 크게 뵈었더라. 위대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출12:31절을 보면 바로가 한밤중에 모세를 부릅니다. 강자는 약자를 급하게 찾지 않습니다. 강자는 항상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밤 중에 모세를 찾았다는 것은 그 순간 강자와 약자가 뒤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의 눈에 모세는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았을 존재였지만 이제 바로에게 모세는 큰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은보화를 다 줍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달라는 대로 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예로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치장을 하고, 애굽을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에게 희망과 용기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당장은 실패요 패배라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에 의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로마인에게 죄인이었습니다.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로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지배를 당합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이제 말씀을 끝내며 다시한번 서로에게 격려하고 치하드리겠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잘 인내하셨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기도와 소망을 지켜내신 여러분, 정말 축하드립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응답받으신 것들에 대하여 축하드립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응답받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더욱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역사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