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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마가 시작된 7월이네요.
이번 달에도 책 추천을 하려고요.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도서명: 일억 번째 여름
저자: 청예
* 이 책은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 전자책으로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여름이다. 한창 습했다가 덥고, 후텁지근하고, 그러다 다시 덥고, 또 푹푹 찌는 계절이다. 그런 여름의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 내가 좀 더위를 먹은 게 분명하다. 열사병, 아니면 일사병일 수도 있다.
정신이 혼미해졌던 거다. 그게 아니라면, 가만 있어도 은근 더운 여름에 《1억 번째 여름》이라는 책을 봤을 리 없다.
아니, 어쩌면 냉방병이었을 수도 있겠다. 몸에 스민 냉기 탓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1억 번째 여름》을 읽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 후에 이 작품을 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고, 기뻤다.
그러나 감상문을 적는 지금 이 작품에 대해 한탄한다. 기쁜 만큼 슬프다. 작가님, 꼭 이래야 했나요?
시들지 않는 여름, 그로 인해 시들어버릴 세상, 그럼에도 시들지 않는 마음 - 《일억 번째 여름》
📑💞 “어두운 꽃이 푸르러지는 일억 번째 여름이 오면 낡은 한 종족은 반드시 멸망한다. 이 땅에 두 개의 흔적을 남기니, 부디 선량한 지혜가 깃들기를.” 📜
이야기의 무대는 지구와는 다른 새로운 행성이다. 그곳에는 순환하는 계절이 없다. 과거의 잦은 소행성 충돌로 자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랑데부(태양)가 떠 있는 지역은 빛과 열기로 가득한 여름, 새여름과 끝여름뿐이다. 한편 해가 비치지 않는 다른 반쪽 지역은 오직 어둠과 혹독한 추위만이 존재한다.
그런 행성에 신인류 ‘네오인’이 있다. 그들의 후손은 지구인이다. 지구 멸망 후 다른 행성으로 이주했으나, 모종의 까닭으로 다시 파국을 마지하고, 지구인이 유전자 씨앗으로 남겨둔 생명이 진화를 거듭해 새로운 인류가 된 것이다. 네오인은 몸에서 까만 털이 자라는 두두족과 다양한 유색 털이 자라는 미미족으로 나뉘었다. 그들은 명확한 신체적 특징만큼 살아가는 방식, 사회를 이루는 방법, 문제를 대하는 생각 등이 달랐다. 그 ‘다름’은 초반에는 서로 협력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나, 그것은 곧 ‘차이’가 되었고, 그것이 끝내 ‘차별’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두두족은 뛰어난 과학 기술로 하얀 성을 지어 그 안에서 냉방 기기와 첨단 기술로 생활하며, 자신들의 기술력에 필요한 에너지를 미미족에게 채집하게 했다. 일부러 태풍, 화산 폭발,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 재해를 일으켜 그 재난 속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미미족에게 모으게 한 것이다. 미미족은 여름 기후로 인해 거대해지고 독성을 띤 동식물 등 자연 환경을 견디며 움집을 지어 생활하고, 미미족에게 내려오는 위기 감지 능력과 생존력을 바탕으로 두두족의 폭정을 견디며 살아갔다.
이 혹서 가득한 세계에는 선조가 남긴 ‘예언’이 존재했다. 위의 발췌한 문장이다. 네오인 두두족과 미미족은 어떻게든 이 예언의 실마리를 풀고자 노력하는데, 그러려면 고대어를 해석할 수 있어야 했다.
📑🧡 “우리에게는 반드시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
그리하여 소설은 고대어 해독가 이록을 업고서 뜨거운 모래사장을 걷는 미미족의 족장 ‘주홍’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다리가 불편한 이록은 주홍의 등에 업혀 고대 선조가 남겼다는 유산 중 하나 ‘궁극의 원천’을 찾아다닌다. 고대어를 해석할 줄 알지만 혼자 걷지 못하는 이록, 튼튼한 몸을 가졌지만 고대어를 읽을 수 없는 주홍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같이 있어야 완벽해지는’ 존재이다.
그런 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궁극의 원천’이 아닌 일억 번째 여름을 예고하는 ‘어둠꽃’이었다. 그 꽃을 본 순간 주홍은 오래된 예언을 떠올리고, 두두족이 미미족을 멸족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사실 그녀의 두려움은 근거 없는 망상이 아니었다. 두두족 족장은 자기 종족이 살아남기 위해 예언을 실현시켜 미미족을 멸종시키려 하니까 말이다.
한편 미미족을 배신한, 이록의 배다른 형 일록이 어둠꽃의 개화를 알게 되고, 일억 번째 여름이 왔음을 두두족에게 알린다. 그리고 미미족 마을에 인위적인 자연 재해, 지진을 일으킨다.
📑📚 “나는 살려야겠다. (...)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이 형을.” 🍀
그 지진으로 인해 ‘이록’의 어머니가 죽는다. 미미족은 항상 온갖 자연 재해에 노출되어 있어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당한다. 거기에 두두족의 착취까지 이어지니, 생존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게다가 최근 이록의 형 일록이 미미족을 배신하는 일이 있었기에 갈등은 나날이 심화되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주홍은 미미족의 족장으로서 어떻게든 종족을 살릴 방책을 찾고자 이록과 함께 두두족의 하얀 성으로 잠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의 기록물을 뒤지던 중 수상한 글귀를 발견하고, 그 지시에 따라 이록은 자기 집의 마룻바닥을 들어내 그의 어머니가 남긴 메모를 찾아낸다.
쪽지에는 ‘궁극의 원천’을 두두족에게 모두 넘기라는 당부와 함께 과거 선조가 남긴 두 가지 유산 중 ‘벙커’에 대한 단서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이록은 어떤 결심을 하게 되고, 마치 형을 따라 미미족을 배신하려는 듯한 그의 뒤바뀐 행동에 주홍은 혼란을 느낀다. 이록은 혹한과 밤의 세계인 행성의 뒤편 어딘가에 있다는 ‘벙커’를 찾아 피난을 가자는 설득을 무시하고 ‘궁극의 원천’을 찾고자 콜로나(선조의 유적)를 탐색하길 멈추지 않는다. 발견하면 전부 두두족에게 넘길 거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나중에는 자신의 다리 역할을 하는 주홍을 떼어놓기 위해 두두족에게 기계로 된 ‘인공 다리’까지 요청했다.
그러나 이록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자신이 그 곁에 남을 수 없을지라도... 그 사람이 외롭지 않길 바라면서, 같이 걷고 손을 맞잡을 사람을 살릴 정도로...
이록은 누군가의 ‘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리’가 되어 함께 걸을 수도, 땅을 단단하게 딨고 서서 쓰러진 상대를 일으켜줄 수도 없었다. 고대어를 해독할 수 있지만 몸이 약했고, 두두족과 미미족 사이에서 태어난 탓에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 어중간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그가 결정적인 역할,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지키는 것’이었다.
📑🧭 “아직 나를 밌고 있다면, 내일 약속의 절벽에서 기다려줘.” 🌳
한편 ‘일록’에게도 움직이는 동기가 있었다. 자신을 미운 눈 뜨고 본 미미족을 배신하고 진정한 두두족이 되기 위함은 물론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미미족을 구하기 위해서 배신자 행세를 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일록과 이록은 배다른 형제이고, 순전히 미미족이 가진 고대어 해석 능력을 유전하기 위해, 형제의 부친인 두두족 족장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그래놓고 제대로 돌보거나 부모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그중 일록은 어중간한 고대어 해석 능력으로 인해 부친에게 외면당했다. 그리고 태생 탓에 미미족한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 어중간한 재능은 그의 성정을 조금 괴팍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일록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연두였다. 그녀는 부모님처럼, 또 또래 친구인 주홍이나 백금처럼, 자연 재해에 맞서 에너지를 채집하는 ‘채집가’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연두의 재능은 주홍처럼 뛰어나지 않았고, 신체 능력은 백금처럼 강인하지 못했다. 어중간한 채집가의 재능과 능력이었다. 그럼에도 연두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당당한 미미족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기에...
👩🦯 일록은 연두의 자질을 보면서, 그런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동경과 애정을 느꼈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배신자가 되고, 마을이 사라진다 해도, 모든 미미족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연두만큼은 살리고자 발버둥쳤던 것이다. 그 대가로 자신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에게까지 거짓으로 대해야 했다. 믿어주기에 그 무슨 짓을 해도 속일 수 없는 단 한 사람을 위해, 끝에 다다를 때까지 거짓을 보였던 것.
이처럼 청예 작가의 소설 《일억 번째 여름》은 시들지 않는 여름으로 가득한 세계, 그로 인해 시들어버릴 세상, 그럼에도 시들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일억 번째 여름》 - 함께 있어야 완전해지는 이들의 멸망을 넘어선 마음
📑💞 “내 선택은 늘 하나였다. 너를 지키는 일.” 🍀🧭
이 소설은 10대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청소년 문학’의 성격을 띤다. 배경이 극한 상황에서 어른 말고 10대를 내세우는 건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일까?
가끔은 지금의 어른인 우리가 해내지 못한 과제를 미래의 희망이라는 이유로 청소년들에게 떠넘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건 엄연히 잘못이다. 이 소설의 경우, 미미족의 족장이라는 직함을 맡았다 해도 고작 청소년인데, 그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책임을 다하라고 닦달하는 장면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청소년 소설의 성격답게 다소 내용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은 주홍과 이록, 일록 순으로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각자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주홍과 이록은 서로에게 여름이었고, 일록의 여름은 연두였다. 그리고 백금의 여름은 주홍이었다. 여기서 ‘여름’은 ‘전부’ 내지는 ‘세계’라는 뜻과 동의어가 된다. 그 ‘관계성’으로 인해 단편적으로 비춰지던 인물의 서사가 좀 더 풍성해지고, 인물의 동기와 절박함 역시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마을을 배신하더라도, 누군가가 상처받더라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저항’이 인상 깊게 와닿는다. 그것은 ‘헌신’이라기보다 ‘희생’에 더 가까운 행위였다.
🌸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독자의 가슴 한구석을 툭 건드리는 구석이 있다. 오직 여름뿐이라 절절 끓는 폭염의 한가운데서도, 결코 증발하지 않고 끝끝내 남아 있는 누군가를 향한, 상대를 위하는, 너를 지키고 싶은, 그리하여 사랑하는 마음... 스러질 세계에서도 그 마음만은 시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에 시큰거리는 상처를 내고 지나간다. 헌신은 고귀한 것이되, 희생은 애처롭기 때문에... 함께 있기에 완전한 그들은, 결코 다시는 완전해질 수 없게 되었다. 서로의 지지대로서 쓸모를 증명하던 그들은 이제 다시는 상대의 지지대가 될 수 없다. 일록과 이록 형제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선택으로 인해 상대가 받을 상처와 슬픔을... 🌸
오직 ‘너’만을 지킨다는 건 감동적이지만, 홀로 남겨질 ‘너’의 심정을 생각하면 슬프기만 하다. 너도 살리고 나도 살면 안 되었던 걸까? 이런 질문과 함께 소설의 서사가 아직도 묘한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 “바람 같은 사람 옆에는 뙤약볕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대.” 🪴
소설 《일억 번째 여름》은 ‘연두’의 입을 빌려 말한다. 자연은 ‘조화’를 기본 바탕에 두었기에, 우리가 서로 다른 성격과 형질을 갖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함께 있어야 서로의 단점을 보강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참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현실뿐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이 ‘당연한 걸’ 실천하지 못해서 파국이다. 극단적인 양극화로 나뉜 사회와 계급, 극단으로 치우친 환경과 삶... 왜 서로 화합할 생각을 안 하고, 반목할 이유만 찾는지 모를 노릇이다.
게다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묘하게 치우쳐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술자가 미미족의 족장 주홍과 미미족의 편인 이록 등 미미족 편에 가까워서 그런지, 두두족과 반목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두두족의 체질에 대해 이해해 보려는 의도 같은 게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두두족이 엄청 싸가지 없게 그려지긴 했지만 말이다.
미래 사회를 그리는 SF 장르 보면, 다들 하나같이 극단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 사회상을 무대로 하기 일쑤이다. 그렇게 되는 건 극적인 장치가 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인류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확정적인 미래’가 결코 서로 화합하고 조화롭고 어우러진 세계가 아니라서, 오직 ‘디스토피아’뿐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거 보면, 참 암울한 미래이고 세계관이다. 그럼에도 주홍, 이록, 일록, 연두, 백금, 작중 다섯 명의 아이들은 뜨거운 여름과 잔혹한 재해를 견디며 ‘누군가를 지키려는마음’을 잃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게 유토피아가 아니라 할지라도, 네가 살아갈 세상에 내가 없더라도, 너는 바라건대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각 인물마다 기저에 깔려 있다. 그 맹목적인 마음은 묘해서 사람을 홀리는 구석이 있다. 그렇기에 희생 서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책을 끝까지 읽었다.
📑💎 “(...) 알아뒀으면 해. 희생은 혼자 하는 게 아냐.” 🌻
덧붙여 《일억 번째 여름》은 ‘솔라펑크’ 장르라고 한다. 생소한 명칭에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SF 장르의 하위 분야로, 디스토피아적 상황에도 환경을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거나 희망을 제시하는 특징을 가진 장르란다.
그렇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로 극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대목이 대표적일 것이다. 서로 부족한 점을 보듬고 사랑과 희생을 통한 연대로 역경을 극복해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물며 희망을 위한 ‘희생’조차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금’의 마지막 대사로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다만, 결국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함에도 희생과 제한적인 생존이라는 비극적 결말은 씁쓸하다. 또한 희생도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소수의 희생으로 사태를 갈무리하는 경향이 보여서,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전개가 답답하게 다가왔다. 👩🦯
누군가는 말한다. 희생 없는 혁명, 희생 없는 개혁은 없다고.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만이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서사를 선호하지 않는다. 소수만 하는 희생보다 함께하는 희생이 더 뜻깊다고 주장할 거라면, 희생을 나누고 쪼개서 부담을 줄여,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결말을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너무 이상적이긴 하다. 그러나 어차피 청소년 SF 솔라펑크 장르 자체가 가상의 세계 아닌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이 소설을 희망을 제시하는 솔라펑크 장르라고 보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여름처럼 뜨거운 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회, 계급, 환경, 삶, 사랑, 그리고 ‘나’까지 꽤나 풍성한 서사가 담긴 점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