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Birth Of Korea)'을 관람하였다. 이 영화는 이대통령의 사진과 영상자료, 그의 며느리 조헤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과 전문가 인텨뷰를 통해 이대통령의 젊은 시절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재임기간 업적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의 결론은 남과 북이 시작은 같은데 70년 후에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이다. 북은 남한보다 40배 잘사는 상태로 사회주의를 지향해 망했으며, 남은 아무것도 없이 자본주의로 시작해 흥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주요 업적은 토지개혁, 한미동맹, 원전연구 등이다. 농지개혁은 절대다수 소작농에게 토지로서 사유재산을 부여해 공산세력 침략을 막을 유인을 주고 농업국가가 산업국가로 전환할 근본적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농지개혁은 6.25전쟁 직전 대부분 마무리됐는데 북한의 침략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된 농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나라를 지키게 되었으며, 북한군 침략에 호응하는 대규모 농민봉기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필리핀 등 토지재벌 정치가들이 땅을 다 차지하느라 토지개혁을 못했는데 비해 개혁에 성공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토지개혁을 해 오늘날의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토지개혁 이외에도 여성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교육을 강화해 문맹율을 낮추고 대학교육을 강화해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등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확고히 수립하였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휴전하고 남북 38도선 분할 후 발을 빼려는 걸 견제해 전쟁이후 미군을 잡아두겠다는 복안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였다. 반공포로 석방은 한미방위조약을 이끌기 위한 신의한수였다. 신의한수로 70년간 한국이 번영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었다. 원전연구는 오늘날 원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은 외교적으로 일본을 몰아내야 한다며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지원을 호소하였으며,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6.25 남침때 한강을 폭파하고 도망갔다는 좌파들의 '런승만' 비난은 조작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망명점부를 수리하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권총을 꺼내들고 '북한군과 맞딱뜨리면 북한군을 쏘고 내 아내를 쏘고 나를 쏠 것이오' 하고 도망치길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리고 서울을 비우고도 있는 것처럼 녹음방송했다는 것도 조작이고 한강교도 사람이 건너는 중 폭파했다는 것도 좌파들의 조작이었다.
김일성은 6.25때 전황이 불리해지자 압록강 건너 도망친 걸 '런일성' 이라고 하지않는 좌파들이다. 이승만이 3.15 부정선거와 4.19 발포 책임으로 하야시켰다는 것이 좌파들의 주장이다. 야당 후보인 조봉암이 선거기간 중 사망해 이승만 당선이 뻔한데 조작할 이유가 없었고 측근들이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위해 3.15 부정선거를 일으킨 것이며 4.19 원인이 된 3.15 부정선거를 이승만이 일으키게 했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4.19 발포로 사망한 자를 위로하고 스스로 하야한 것도 독재자가 아니라는 증거다. 의회주의 언론이 살아있는 것은 그때가 최고였으니 이승만이 독재자와는 거리가 멀다. 하와이 망명도 빈털터리여서 수천억원을 들고 튄 필리핀 마르코스와도 다르다.
스위스 비밀은행 은닉도 허위 주장이고 말년에 병원치료비도 없이 이승만은 고국 귀환을 꿈꾸다 망명지 하와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하와이에서 미 군용기로 운구해 가족장으로 치렀다. 대통령 사임했을 때나 국립묘지로 갈때도 연도에 수많은 인파가 몰린건 좌파들의 북한의 사주를 받은 흔적 지우기에도 불구하고 국부 대통령의 추앙을 받았다는 반증이다. 한국 번영을 이끈 이승만이 국부이자 영웅이며 미군을 주둔시키고 한미동맹을 이끌어 낸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이제는 올바른 평가로 이승만을 국부 대통령으로 당당히 추앙 받아야 한다.
하와이나 미본토의 이승만 기념관도 문재인 정권하에 예산지원은 커녕 방해해 서재필은 기념해도 이승만은 기념관과 동상도 없이 있던 기념관도 그나마 쫒겨나고 말았다. 국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 조차 없다. 이제는 당당히 이승만 기념관도 국가예산을 지원해 만들어야 할 때다. 오로지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한평생 몸을 바친 위대한 영웅 이승만 대통령을 이렇게 푸대접해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짝이없다. 그러나 윤삭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희망의 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찾아드는 듯하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재단이 범국민운동을 추진하고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지난 5개월 간 국민 6만2,000여명이 참여해 약 103억원을 모았다. 숫자가 보여주 듯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을 지어가고 있다. 부산에 사는 김형균(16)군은 작년 9월부터 매달 1만원씩 정기후원하고 있다. 김형균은 중학교 역사시간에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주의자라고 얘기했는데 선생님이 손들고 복도로 나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공산주의식 교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의견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나라다. 전교조 교사들은 공산주의 찬양 교육을 일삼고 있다. 이런 교사들은 교육계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 이자들이 있는 한 한국교육의 미래가 없다. 김형균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 생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승만 관련 책들을 탐독하게 시작했는데 당시에 사람 취급도 못받던 여성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투표권을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이분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구나 가슴이 저릿했다고 한다. 영화 '건국전쟁'을 보면서 세번 울었다고 한다.
나는 시종일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감동과 울분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이렇게 많이 흘린적은 없었다. 관람객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1954년 외국원수로 첫 초청되어 미의회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1954.7.28)과 뉴욕에서 오픈카퍼레이드시(1954. 8.2) 색종이가 휘날리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은 모자를 벗고 밝은 표정으로 수많은 환영 인파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은 눈물겨운 명장면이다. 약소국 대통령이 강대국으로부터 열렬히 환대받는 것은 20세기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김영덕 감독은 1편에선 이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생각에 업적을 주로 다뤘으며, 2편에서는 이대통령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겪은 일화들, 지도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가졌던 고민 등을 두루 보여 줄 예정이다. 건국전쟁 2는 이르면 내년 개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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