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축19회 성지순례 겸 야외 단합대회
해마다 6월이면 성지순례가 있었서나
올해는 사정에 의해 연기되었던 행사가 11월로 결정되어
이사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많은 참여로 행사가 성황리에 끝날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일시 : 2008. 11. 8(토) 08시30분(시간엄수)
장소 : 영주 부석사 - 안동 하회마을 - 도산서원(시간이 허락하면)
집합장소 : 동래 전철역앞(온천장 방면)
부부동반을 원칙으로하며 부득이한 경우 00도 가능 함
부석사/부석사의 전경, 경북 영주시 ...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372년(공민왕 21) 원응(圓應)국사가 주지로 임명되어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조사당(국보 제19호)을 비롯하여 원각전·응진전·안양루·선묘각·범종루·자인당 등 조선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무량수전앞석등(국보 제17호)·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3층석탑(보물 제249호)·당간지주(보물 제255호)·고려판각(보물 제735호)·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이 절의 창건설화와 관련있는 석룡(石龍)·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 등이 전해지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 동족부락으로, 국보를 비롯해 보물·중요민속자료·중요무형문화재 등 값진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다. 동쪽은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남·북 경계를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길지(吉地)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문전에 유씨배판'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이는 일찍이 허씨(許氏)들이 자리를 잡았다가 나중에는 안씨(安氏)들이, 그 다음에는 풍산유씨(豊山柳氏)들이 동족부락을 이룬 곳임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에 이미 유씨들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되나 유씨 동족촌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조선 중엽 이후 대유학자인 유운룡·유성룡 형제 시대에 이룩되었다.
과거 신분제 사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300~500년 된 130여 호(戶)의 유서깊은 대·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 중 유운룡의 종택인 안동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유성룡을 모신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을 비롯해 하회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하회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하회빈영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하회유시주가옥(중요민속자료 제87호)·하회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하회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하회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하회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등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가옥들은 모두 풍산 유씨의 소유이며, 대부분이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다.
하회마을의 대표적 가옥으로는 북촌택·양진당·충효당·남촌택의 네 가옥을 들 수 있는데, 이들 가옥들은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몸채의 한 편을 연장해 사랑채로 했다.
충효당 후원에 있는 영모각(永慕閣)은 유성룡의 유물을 보존·전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각종 유물과 문서들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이들 가옥 변두리에는 하인이나 노비·타성씨(他姓氏)가 거주하던 집들이 있는데, 이들은 3~4칸 규모의 토담집이다. 이 고장의 오랜 민간전승놀이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와 강상유화(江上流花) 놀이인 줄불놀이가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쓰이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탈 및 병산탈). - (크릭)
서북쪽으로는 울창한 노송림대가 있으며, 마을 중앙에는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삼신당나무로 삼고 있다. 강 건너의 부용대는 천연의 병풍과 같은 형태를 자아내며, 이 일대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이 어울려 경승을 이룬다. 이곳 강은 대략 최대 폭 300m, 최대수심 5m에 이르며 하회도선장의 나룻배를 이용해 주변지역과의 왕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상주와 풍산읍을 잇는 지방도와 연결된 길이 하회마을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이 마을길의 북쪽을 북촌이라 하고 남쪽을 남촌이라 한다. 1990년 현재 남촌·북촌의 총가구수는 102가구이다.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과 그로 인한 인구의 감소 및 노령화, 빈 집의 증가와 가옥의 유지·관리가 소홀해지면서 가옥들이 퇴락해가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제170호)
조선 유학(儒學)의 대표적 성현인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을 모시는 도산서원은
그를 잇는 영남학파의 중심지이자 한국 유교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이다.
이황은 학파의 구분을 넘어 이상적인 선비의 전형으로 꼽혔기에 도산서원은 영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중요성을 지녔으며 조선시대의 서원으로서는 드물게 근대에 들어와서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