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공일
서 기 원
우리는 거리로 나와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K가 회사로 나를 찾아온 것은 이태 동안에 처음 일이다. K는 별반 그 이유를 설명하려들지 않았다. 나는, “별안간 웬일이지?”하며 가볍게 한마디 던졌을 뿐이다. 실상 나는 일찌감지 퇴근해서 영화 구경을 나가도록 아내와 약속했던 것이지만 모처럼 밖으로 나온, 더구나 단단히 벼르다가 면회 온 양 찾아온 K를 뿌리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보다도 영화구경을 뺄 수 있는 구실이 생긴 것을 되레 다행으로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결혼한 지 4년이 넘은 아내를 데리고 거리를 쏘다니기가 거북스럽기도 하겠으나, 우선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었다. 하긴 오랜만에 우리 내외가 외출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미리 K가 알았던들 당돌하게 회사로 나타났을 리도 없다. 이럴 때 혹시 K의 호주머니에 기백 원을 넣어주고 혼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가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K를 그처럼 푸대접하지 못한다. 나는 아침결에 우리의 옛 전우인 R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찾아왔었고, 되는 데까지 도와주어야 하겠기에 봉급을 가불해서 2천 원을 쥐어 준 일을 하마터면 입 밖에 낼 뻔했다. 오늘따라 나는 조금이라도 K에게 상처를 줄 만한 거동은 일체 삼가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는 말수가 적었다. 마침 식당 안에는 노란 빛과 초록색이 얼룩진 무늬의 낙하산병 너덧이 의자를 바싹 끌어당기고 둘러 앉아 밀담이나 하듯 이마를 맞대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K는 가끔 그쪽으로 시선을 주고는 무엇인지 잔뜩 얘기를 늘어놓고 싶은 표정을 아쉼게 거두곤 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손님은 안중에 없는 듯 방자하게 굴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굉장히 배가 고픈 것인지도 몰랐다. K는 도무지 무관심할 수가 없는가 보았다. 나는 K의 몸 언저리에서 풍기기 시작한 어떤 독특한 분위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가 싫어 애써 둔감한 얼굴로 낙하산병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 분위기란 다분히 들척지근하고도 시큼한 감상에 절어 있는 것이었고 나는 나대로 15년이 흐르는 동안 그따위 감상은 아예 잃어버린 셈치고 나무나 돌덩이를 바라보듯, 혹은 노상 익숙해진 광경처럼 완전한 무관심을 꾸미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왜 그렇게 침울하게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공복에다 몹시 피로한 탓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긷기 시작했다. 뙤약볕 이 따가운 오후지만 바람이 선선해서 무덥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난 딴 데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네.” K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내가 의아해하는 눈초리로 돌아보자 K는 장난감을 조르는 아이들의 시늉이었다. “어디 갈 만한 곳이 있나?” 나는 약간 당황해서 얼른 물어보았다. “응, 일전에 우연히 R를 만났었지, 영등포에서 자전거포를 내고 있다는데 함께 하자는 거야. 그래, 우선 자기한테 와 있으라고 하더군.” K는 아주 신명나게 말하고 나서는 혼자서 헤헤거리며 웃었다. “R?” 나는 K가 어찌해서 억지로 신바람을 피우려고 애쓰고 있는가를 모를 턱 이 없었다. “참 그 자식 만난 지도 한 삽 년 넘었는가봐. 아니 사년이군.” K의 흥취를 돋우어 주지는 못할망정, 기분을 잡치게 할 나는 아니었다.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K는 눈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고 웃었다. 그 웃는 표정은 좀 비굴해 보였다. “K! 날 속이진 말아. 뭣 때문에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까지 우리 집에서 나가려고 그러나?” 나는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기실 새삼스럽게 물어볼 나위가 없는 질문이고 면박일 것이었다. K는 발밑만 내려보며 말없이 걸었다. “집사람의 눈치 같은 걸 개의한다면 자네답지 않아. 그리고 또 나를 못미더워하는 셈이구.” 나는 이렇게 중얼대는 동안 기묘한 부끄럼을 타고 있었고, 햇빛이 더욱 눈에 부셨다. 도심지로 들어서면서 우리들 틈새로 행인들이 빠져 나가기도 하고 서로 뒤떨어지기도 하여 얘기 줄기가 끊어졌다. 여자들은 사내들과는 딴판으로 활기가 있었고, 금시 물을 준 푸성귀처럼 싱싱했다. 그건 전쟁 때에도 그랬고, 전쟁 후에도 변함이 없었고, ‘의거’ ‘혁명’ ‘의거’ ‘혁명’ ‘의거’ ‘혁명’ 뒤도 여전했다. 그들은 사내만 곁에 있어 주면 영구히 생기를 잃지 않을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풀려나온 입술들, 미장원을 거쳐 나온 머리들 할것없이 번영하는 거리의 반공일다운 호사한 색조를 수놓고 있었다. 독신인 K는 여자들의 모습을 될수록 보지 않으려고 했다. K에겐 눈요기가 아니라 고통을 주기 일쑤려니, 그렇게 침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 과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피차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K는 믿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 노릇이겠기 때문이다. 나는 나 나름인 습성에 따라 시선을 알맞게 조정하고 미끈한 다리라고 하여 뒤를 돌아볼 정도는 물론 아니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어떤 아베크를 발견했다. 홀쭉한 키에 서양 사람처럼 엉덩이가 둥근 젊은 병사와 붉은 옷의 긴 단발머리였다. 목 아래 뼈대가 앙상하게 튀어나왔고, 하부는 정강이가 유난히 마르고 가늘었다. 그녀는 아베크의 상대인 병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성 싶어 한결 마음이 놓였다. 나는 어느 편이든 자기의 상대를 자랑하는 듯한 표정에 그다지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행인들이 안중에 없듯, 혹은 둘만의 공간을 수조 속의 금붕어처럼 옮겨가는 그련 정경(情景)엔 질투를 안 가질 수가 없지만…… 그러나 K를 잠깐 훔쳐보았을 때, 뭔지 강한 동요가 안으로부터 일기 시작한 것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혁명 전에 군복을 우습게 여기던 년들이.”하고 볼멘 소리로 뇌까렸다. 별안간 나는 웃음이 치밀어와 간신히 참아내느라고 뱃가죽이 아팠다. “그땐 빈공일이면 군복을 벗고 나왔었거든.” 나는 웃음기를 씻어 버리지 못한 채 대꾸했다. “왜?” K는 아직도 심술이 가라앉지 않았다. “왜라니, 시세가 없으니까 그랬겠지, 별수 있나.” 좀 둔한 K이긴 해도 무슨 희한한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렇지만 전쟁 땐 안 그랬어!” 이 대목부터 K의 음성은 단조(短調)로 변조되는 것이었다. K는 그를 버린 아내의 소식 같은 것을 물어 주었으면 하는 눈치 같기도 했는데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K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해서는 쓸쓸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낡은 추억의 실마리를 내 손으로 당겨 주어야 야박하지 않을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나마지 덩달아 꽁꽁 묶어 둔 묵은 편지봉투를 펴놓게 될까하여 귀찮고 거추장스러웠던 것 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년이 도망가길 잘했지. 차라리 제대로 된 거야.” K는 내 심중의 자그마한 갈등에는 아랑곳없이 좁은 틈바구니에 쑤시고 들어앉듯 먼 눈길을 하며 중얼거렸다. K의 말은 무능력을 한탄하면서 지금 그 아내와 산대도 큰일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고, 또는 애초부터 푼수에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라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소리로 들렸다. 어떻든간에 K는 그녀를 티끌만큼도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로 나왔다. 한복판엔 칼빈을 등에 맨 헌병과 곤봉을 찬 경관이 함께 차량을 정리하고 있었다. 검은 세단이 앞뒤로 지프차의 호위를 받으며 중앙청 쪽으로 질주해 갔다. 내 안저(眼底) 엔 지프차 위 하늘을 겨눈 세 자루의 칼빈과 그걸 잡고 있는 흰 장갑들이 한동안 어른거리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맞은편을 건너다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선글라스가 많았다. 벨 소리가 멈추자 선글라스들은 일제히 이쪽으로 밀려왔다. 그들은 풋나기 정보원처럼 사뭇 으스대면서 K와 나를 갈라놓고 지나갔다. 나는 히죽히죽 웃고 말했다. “K, 재밌는 얘기 하나 할까.” K도 금시 웃음을 돌려보내며 전차 정류장 뒤 잔디 쪽으로 앞서 갔다. 그리고 우리는 실업자들 속에 섞여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바로 겉의 전봇대엔 ‘간첩이 따로 없다, 너도 나도 조심하자’라고 적힌 종잇조각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간첩 이나 잡아서 상금이나 탔음……” 하고 K가 말했다. “바로 고 얘긴데 재수 좋은 사나이의 실화야.” 나는 입맛을 다시고 군침을 삼켰다.
간첨 X는 미본토불, 원화, 수신기 그리고 서울특별시 시민증 등 일습을 갖추고 남쪽으로 밀파되었다. 군사 분계선을 넘어 국군의 전방 진지를 빠져나왔다.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읍에서 서울행 버스를 타도록 미리 지령을 받고 온 터이었다. 행상인 차림이 그럴싸했는지 신분증을 보자는 사람도 없었다. 버스 정거장에 이르자 주변을 살펴본 다음 표를 끊고 차에 올랐다. 다행히 뒤켠에 빈 자리가 남아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놈의 광고들과 눈이 또 마주친다. 하나는 간첩 자수 기간 설정에 관한 담화문이고, 하나는 간첩을 잡은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는 내용인 것이다. X는 겁먹은 눈초리로 버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불쑥 검은 안경을 쓴 청년이 올라서며 차안을 훑어본다. X는 숨이 칵 막히고 잠시 후에 오줌이 마려웠다. 밀봉교육을 받을 적에 남쪽에 가면 선글라스에 각별히 조심해야 하며 그것은 대개 형사나 정보원이라고 하던 교관의 말이 뒤통수를 갈긴 때문이다. 그 청년은 X의 앞줄 좌석에 비비고 앉아 안경을 벗고는 하아하아 입김을 불어가며 유리알을 닦았다. 하필 앞줄에 자리잡은 것이 수상쩍다. 발차 시간이 임박해서 선글라스가 또 한 명 승차하고, 이번에는 X의 뒤켠에 앉았다. X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는 부리나케 자리를 뜨고 발동까지 걸린 버스에서 허겁지겁 뛰어내렸다. “차 떠나요!” 차장의 앙큼한 목소리도 통 들리지 않았다. 그 차에 간첩이 승차한다는 정보가 진작 새어나간 것이 분명 했다. 그는 읍내를 서너 바퀴나 돌아다니고야 이젠 미행도 단념했을 테지 하며, 숨을 돌이킬 수 있었다. 그는 시장에 들러서 그 중 색깔이 진한 선글라스를 샀다. 그걸 쓰고 성큼성큼 여인숙으로 들어서니 식모의 굽실거리는 품이 우스꽝스러웠으나 과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이튿날 다시 버스를 탔다. 재수가 좋은 탓인지 그를 ”매놓고는 아무도 선글라스를 낀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X가 긴장을 풀어 끄딕끄덕 졸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란 단 30분을 넘지 못했다. 차 앞에서 손을 든 사내가 역시 선글라스였던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이쪽도 꼭 같은 물건을 지니고 있는 만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아 여간 마음의 의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그 사내는 다음 마을에서 내렸지만 잇달아 딴 안경회 올라타는 것이다. 이번에도 도중에서 하차해 버렸으나 교대로 올라온 선글라스는 두 명이고 동행이었다. 금테 안경과 서로 알은 체를 한 것부터 뒤숭숭한 일이었다. X는 감시망이 물샐틈 없이 펄쳐 있는 줄 깨달았다. 이젠 공포마지 지쳐 선선히 붙들릴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수사진은 귀신처럼 정보에 밝을 뿐만 아니라 범인을 체포하기에도 용한 솜씨를 자량하는가 싶었다. X는 아무 읍에서 서울까지, 말하자면 수감을 채우지 않은 채 호송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눈앞엔 자수 기간 설정이란 큼직한 글자가 떠올랐다. 이윽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번잡한 종점에 이르고,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차에서 내렸다. 이상하게도 선글라스들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혹시 내가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 아닌가? X는 어떤 요행을 바라면서 재빨리 정거장을 뛰쳐나와 큰길로 들어섰다. 네거리에서 잠시 신호를 기다렸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다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건너편을 넘 겨 다보았다. 선글라스가 여나믄 쌍이나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 이 세상엔 요행이란 없다고 단념했다. 신호가 바뀌자, 그들은 일제히 X를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길 한복판에서 얼어붙은 듯 우뚝 섰다. 멍청해진 눈망울엔 ‘간첩 자수 기간’이라 붓글씨로 쓴 현수막이 하늘거렸다. 그는 줄달음질로 건너편 보도 위에 올라서기가 바쁘게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머리에 기름을 칠한 의젓한 젊은 신사가 눈에 띄었다. “선생님! 저는 간첩이올시다. 자수하겠으니 경찰서로 데려다 주십시오.” 그는 젊은 신사의 소매를 붙잡고 호소했다. “이 양반이 돌았나? 웃기지 말고 빨리 가시오.” 청년은 이렇게 쏘아붙이고 돌아서려 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정말 간첩입니다.” X는 울상이 되어 마구 지껄였다. 청년은 웃다가 말고 “나 참, 재수 없는 날이군 ! 자, 저기 파출소까지 갑시다.”하며, 앞장을 섰다. 파출소로 들어가 “이 사람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자꾸만 따라다니는 통에 못견디겠어요. 자기 입으로 간첩이라고 우기니……” X를 가리키며 일렀다. 경관은 신고자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다음 “직업은?” 하고, 물었다. “학생입니다.” “무척 바쁘신 것 같군요.” 경관이 비꼬아 말했다. 청년은 새끼손가락만 세워 보이고 대꾸했다. “글쎄 이걸 만나러 가는 길인데 재수 더럽게 걸렸지 뭐예요.” “네가 간첩이라며? 앞으로 와.” 경관은 말끝을 맺기 전에 하품을 크게 했다. “빈공일엔 미친놈이 많단 말이야.” 곁에 앉은 경관이 펜대를 놓고 말했다.
“그래 상금은 탔나?” K가 물었다. “물론이지, 이십만 원인가 탔을 거야.” “호오 ! 자식 횡재했군 그래.” K는 눈이 둥그래졌다. 나는 껄껄 웃었다. “허지만 빨갱이 녀석들이 그렇게 어수룩하단 말인가?” K는 고개를 가우뚱한 채 눈을 껌뻑거렸다. 배가 나온 뚱뚱보는 모두 자본가요 악한이라고 가르친다니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도 무책임하게 주워대고 있었고 K도 거기에 알맞게 요량해서 새겨듣고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한동안 거리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자 시청 쪽에서 요란한 폭음이 울려 오기 시작했다. 땅을 흔드는 진동으로 미루어 여러 대의 탱크임을 금시 알 수가 있었다. 뚜껑을 열고, 기관포를 건 M3형 탱크가 세 대였다. 사수(射手)는 기관포를 수평보다 좀 낮게 앞을 겨냥하고 있었고, 포 옆구리에 드리운 금빛 탄대가 유난히 번쩍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줄지어 구경하고 있었다. 번들번들한 탱크포가 비스듬히 하늘을 향하고 탱크에 이어 ‘TOYOTA’란 마크가 새겨진 트럭들이 무장한 군인을 가득 싣고 쫓아가고 있었다. 운전사 옆에 앉은 장교들은 빠짐없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 크고 검은 눈들은 길 양편에 늘어선 군중들을 아주 깔보듯이 훑으며 지나갔다. “어지간히 재네 그려, 재들은 아마 전투해본 경험이 없을걸. ”하고 K가 말했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눈짓을 해 주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자네도 4·19때 구경했었지?” “뮐 말이야,” K는 괜히 골이 나서 반문했다. “탱크 위에 학생들이 꽉 올라탄 꼴을 말이야.” K는 대답이 없었다. “개구리 고지때 미군 탱크가 오지 않았더라면 몰살당했을 걸세.” 나는 아까보다는 좀더 목청을 높여 말했다. “그땐 나도 그 위에 올라탔었지.” K가 중얼거렸다. “어딜 올라타?” “4·I9때 말이야.” K가 광화문 쪽을 돌아보고 대답했다. 마지막 트럭이 지나가자 거리는 다시 일요일 하루 전의 향긋한 냄새가 지물어가는 어스름 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 얘기도 좀 들어봐.” K가 말했다. K는 데모 군중 속에 휩쓸려 다니다가, 시장기를 참을 수 없어 뒷골목으로 새어나갔다. 그리곤 밀국수를 세 그릇이나 쑤셔 넣었다. 그는 흥분하게 되면 뱃속이 허전해지는 버릇이 있었다. 광화문으로 나오자 놀라운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탱크 두 대가 인파에 휩싸여 제자리걸음을 치고 있었다. 처음엔 위에 올라탄 사람들을 떨구러고 몽둥이를 들기도 했으나 알사탕에 몰려든 개미떼처럼 온통 뒤덮이고 포신까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자, 아예 엔진을 꺼버렸다. 뚜껑 밖에 상체를 내민 젊은 병사들은 학생들과 악수도 하고 서로 어깨를 지며 웃어주기도 했다. 중앙청 쪽에서 간간이 함성이 터지고 총소리가 울렸다. 문득 K는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잇몸을 드러내고 웃었을 때 R임을 분명히 알았다. K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R 하사!” 고함을 지르며 기어 올랐다. “야아, K 아니냐!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은 부둥켜 안고 서로 이마를 맞부딪쳤다. 사방에서 잇달아 터지는 함성 때문에 고함을 질러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니 빌써 상사구나.” “벌써가 뭐야.” “전차는 연제부터 탔니?” “너희들 제대하고 나서 금방이야.” “근데 이자식아, 바보처럼 싱글벙글 웃기만 해.” R가 귀에다 대고 소리쳤다. “까불지 마.” R가 눈을 부라렸다. “데모대를 쫓으라고 날 보냈지, 함께 미처 돌아가라고 했어? 임마!” K가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R는 다급하게 입을 열려고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었으나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가보았다. “너희 대장이 쏘지 말라고 하데?” K는 놀려대는 투로 물었다. “자식이! 자유당인가? 잔소리 말고 네 주소나 예다 적어, 나두 곧 제대한다.” R가 수첩을 들이대며 말했다. “너 이자식, 한 방이라도 총을 쏘면 죽인다?” K는 한참 킬킬거리고 나서 말했다. “군복 벗거든 형님을 찾아오라.”
네온과 쇼우윈도우의 광선이 포도 위를 노랗고 미끄럽게 비춰 주고 있었다. 길가에 내놓은 라디오방의 확성기가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각하께서는, 하는 소리만이 귓속을 쑤셔댔다. 아나운서는 감격에 떠는 듯하였다. “저 아나운서는 자유당 때부터 듣던 목소린데.”하고, K가 말했다. 나는 별로 라디오를 듣지 않기 때문에 귀에 익은 목소리이긴 했어도 통 자신이 없었다. “그때도 지 목소리였어.” “언제말이야?” “4·19지, 언제긴!” R는 불평을 토하듯 내뱉었다. “그사람네들이야, 시키는 대로 지껄일 수밖에.”하고, 나는 대꾸했다. “그렇지만 제 예편네가 들음 좀 이상할 게 아니야?” “뭐가 이상해.” 나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가로막았지만, 내심으로는 K보다도 오히려 한 술 더 뜨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꽤 피로해 있었고 속이 출출했다. 오줌 냄새가 풍기는 골목으로 집 어들어 선술집을 찾았다. 유리창 안으로 얼음 위 낙지며 전어 같은 안주가 자곡차곡 겹쳐 있었고, 갈비를 굽는 연기가 밖으로 새어 흘렀다. 우리는 그중 후미진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 초저녁인 탓인지 손님은 우리까지 두 패뿐이었다. 나는 한편 다행스럽기도 했으나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손님이 뜸한 음식점 치고 신통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고루 욕심읕 부려서는 안될 일이다. “먼지 빈대떡하구 외김치나 한 접시, 그리구 술은 막걸리 한 되, 술맛 좋아?” 이 정도라면 나는 주머니의 사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딴 손님 셋은 벌써 취기가 오른 얼굴들이었으나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고 이편에 신경을 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 술잔을 나누는 것도 몇 달 만의 일이다. 집에서도 이처럼 제법 상을 차려 놓고 마시질 못한다. 대개 아내의 눈치를 보아가며 소줏명이나 들여다가, 오징어를 찢으면서 깡술을 나누기가 고작이었다. K는 절대로 주정을 부리지 않았다. 집에서 마실 적엔 무척 조심을 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번도 혀 꼬부라진 주정을 듣지 못했다. 하긴 몇 해 동안 식객 노릇을 해 온 주제인지라 얌전히 마시도록 스스로 길을 들인 셈인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밤, 나와 마주앉아 푸짐한 안주에 양껏 마실 수 있다는 것만 해도 K로선 기막히게 흡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공복에 지릿하게 배어든 술기운은 금방 온몸에 퍼져 나른한 쾌감 속에 젖어들었다. 나는 취한 눈으로 측은한 나의 피보호자(被保護者)를 바라봤다. K는 쩝쩝 입맛을 다셔가면서 생선회를 씹는 중이었다. 나는 아내와 영화 구경을 하지 않은 것을 적이 만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K, 딴 데로 옮긴다는 소리 다시 입 밖에 내면 재미없어.” 나는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니까.” K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잔을 받았다. “알았지? 언제까지라도 상관 말구 우리집에서 살란 말이야.” 나는 취중에도 내가 구지레한 감상을 헤프게 쏟아놓고 있다고 의식했다. 아니나다를까. K는 술잔을 탁 내려놓고는 “뭐라구? 그럼 죽도록 자네 집에서 빌어먹으란 말인가?” 정색하여 대들었다. “내가 실수했네,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해석하다니 그럴 수가 있어?” 나는 되레 그를 탓하는 말투로 나무랐다. “자, 한잔받아.” K는 굵은 팔뚝을 뻗치고 말했다. 나는 그가 쉬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뻣다. 어느덧 방안에는 손님들이 들어찼고, 목소리를 돋우지 않고는 얘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였다. 나는 건너편 카운터 앞에 호젓하게 앉아 있는 뒷모습에 눈이 끌렸다. “저거 R 아냐?” 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R이라니?” 그 친구가 고개를 반쯤 돌려 옆얼굴을 드러냈을 때 K가 “어이!”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R를 질질 끌다시피 데려왔다. R는 나를 보자 고개를 떨구고 머뭇거렸다. “야, 참 오래간만이구나!” 나는 썩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청했다. K는 검연쩍게 웃으며 손을 맡겼다. “어이, 잔 하나 더” K가 고함을 쳤다. R도 어색한 빛을 말끔히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전 R이 만났다는 거짓말이야 이미 탄로난 터이지만 막상 본인이 나타나고 보니 보기가 좀 민망스러운가 보았다. “이거 몇 해만이야.” 나는 거듭 깊은 회포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R도 겨우 내 심사를 침작한 모양이었다. “애가 몇이야?” 그렇게 묻기도 했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고 나서 R는 “설마 자네들이 여기 앉아 있을 줄이야 알았나, 촐촐한 김에 잠깐 들렀지.” 아침나절의 일을 변명하듯이 주섬주섬 말했다. 풀론 K는 그걸 곧이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내 가슴 속은 분한 생각과 서러운 느낌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가불을 한 것인데 술부터 처먹어?” 목젖까지 치밀어올랐지만 꿀꺽 되삼켰다. 여름철에 빙수 장사를 차릴 계획인데 리어카를 살 밑천이 달린다고 하기에 뭉클한 감동마지 받으면서 대뜸 경리과로 달려갔던 터이었다. 나는 술이 깨면서 침울해졌다. K가 혼자서 연방 떠벌리고 있었다. 갑자기 R가 일어서며 말했다. “난 그만 가봐야겠네, 꼭 한번 찾아갈께.” 그리고는 K가 붙들 겨를도 주지 않고, 총총히 사라졌다. “자식, 변했어.” K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변하지. ”나의 대답이다. “그련가?” K는 힐끗 나를 쳐다보고 외면했다. “자네만은 안 변했어.” 나는 차분히 말했다. 결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K도 나처럼 변했다면 아내의 말대로 벌써 그를 내보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중앙청 앞은 캄캄했다. 별빛이 희미한 하늘엔 달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 석조 건물은 산등처럼 무겁게 짙은 어둠을 안고 있었다. 가끔 자동차의 조명이 2층과 3층께를 훤하게 비춰 주곤 했다. G.M.C가 급커어브를 돌 때면 인왕산 위까지, 흡사 비행기를 쫓는 서치라이트인 양 굵고 강한 빛이 뻗어 올랐다. 우리는 뒤에서 서넛이 몰려오는 기척을 들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병사들인 줄 알 수가 있었다. “김 중사! 귀관의 내무반은 아직도 멀었나?” 그리고는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그 패들도 취한 듯 했다. 나는 K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가로 비켜주려고 했다. “야아, 술 처먹음 곱게 다녀!” 난데없는 욕설이 날아왔다. “머야, 남의 어깨를 특툭 치고……” 그들을 건드린 일이 없는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K도 그랬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총기를 가졌겠거니, 덜컥 겁부티 났다. 별안간 플래시가 K의 얼굴을 비췄다. “너희들 인민군하구 싸워본 일 있니?” 살벌한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딴전을 부리듯 말했다. K였다. 상대편은 잠시 잠잠했다. K는 후닥탁 웃통을 벗기 시작했다. “자, 봐라, 이쪽이 박격포 파편을 맞은 자리고, 이건 관통상을 꼬맨 거다.” 라이트가 꺼졌다가 다시 켜지고, 서서히 다리로부터 더듬어 올라가 벌거숭이 가슴팍에서 멎었다. “세상 만났다구 까불지 마. 너희들 선배는 몽땅 죽었거나, 이쯤 됐다. 할 말 있어?” 그러나 나는 눈앞에 엇갈리는 그림자에서 서늘한 살기를 느꼈다. K의 앞을 가로막으며, “이 사람 취했읍니다. 제발 용서하십시오. 제정신이 아닙니다. 미친 개가 짖어댄 걸로 아시고 용서하심시오.” 나는 숨을 씩씩거리면서 두손을 빌 듯이 애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론 조심해 어쩌구 한 마디씩 던지고는 돌아섰다. “암 그래야, 국군이지, 그렇구말구.” 입속으로 중얼대고 K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버스 타지 말고 걸어가세.” 내가 제의했다. 우리는 묵묵히 그리고 느리게 걸었다. 자하문을 통과하기 전에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양편 산비탈 사이로 뚫린 시야(視野)는 30도쯤 되는 각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빛을 환하게 비쳐 올린 서울시의 중천에는 반공일의 한창 무르익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고개를 넘고 솔밭 사이를 걸어, 시골의 읍내 같은 세검동에 도착했다. 시계마늘은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고픈데.” K가 말했다. 그의 말은 집에 가도 저녁상을 청하기 미안하니 여기서 아무거나 요기를 좀 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못 들은 체했다. 우리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두번째 사이렌 소리가 멀리 들렸다. “하루가 지났군.” K가 중얼거렸다. 나는 일부러 벨을 누르지 않았다. “문 열어!” 호령을 치며 주먹으로 두드렸다. “왜 이러나, 이사람.” K가 내 팔을 잡았다. 나는 그걸 뿌리치고, “빨리 열지 못해? K씨가 돌아오셨다.” 고래고래 내지르며 덜커덩 문짝을 흔들었다.
-끝-
I'ㅏ 공 일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