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기적' 이뤘지만 '월남패망' 사유 알아야 인터뷰:김영규/발행인. 구교득/편집국장
* 독자적인 작전지휘권 확보에 노력 * 참전성과로 해외진출 취업확대
국방 = 전우들의 복지문제도 살피시고 국가 동료 원로분들과의 안보 모임에도 참석하셔야 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저희 국방전우신문 독자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 주신 사령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 사령관님의 근황은 어떠십니까?
사령관 = 하루에 1시간 30분 이상은 잊지 않고 운동을 해야합니다. 가끔씩 조깅을 하러 밖에 나가면 나이든 분들이 나를 알아보고 많이들 인사를 하고 그럽니다. 어느때는 좀 불편한 점도 있고하여 요즘엔 할인판매하는 런닝머신 한 대를 사서 집에 두고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고있어요.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에겐 건강법이라기 보다는 '생존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아직도 전우들을 위해 할 일들이 많이 있으니 그 일들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지요.
국방 = 사령관님께서는 최근 6 · 25전쟁에 대한 전쟁사 정리를 위해 전쟁증언록 편찬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계획으로는 내년에 증언을 수집하고 후년 말에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 = 6 · 25참전 증언록 편찬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세우지 못했어요. 그 얘기는 정확한 전쟁역사를 우리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서 전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 전쟁이 일어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겠느냐 즉 전쟁에 대한 교훈을남겨 주려는 목적이지 ‥‥요즘 전쟁에 대해서 좌익분자들은 북침을 했기 때문에 김일성이 내려 왔다는식의 날조되고 왜곡된 내용들을 퍼뜨리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후손들은 불행하게된다고 · .
국방 = 사령관님께서는 1950년 6 · 25전쟁이라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시고 두번째 국가의 부르심으로 1965년 9월25일국방부 일반명령 제16호(1965.9.20)에 따라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되고 초대 사령관으로 4년8개월간 특유한 전술전략으로 우리 군의 사기와 위상을 높이시고 지금은 국가안보를 지키는 원로의 한 분으로서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계십니다.
사령관님이 월남에 가실 때에는 우리는 의식주가 몹시 염려되던 시절이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잠시 말씀하여 주시지요
사령관 = 월남전에 대한 평가는 그 결과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이바지가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나 보고 얘기하라고 하면, 해외진출에 있어 최초로 해외 진출하는데 있어 개척자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해외에 진출했던 경우가 없었잖아요. 60년도에 해외유학생 몇 명 정도, 그리고는 5 · 16후에 그러니까 63~64년도에 서독 광부와 간호원이 나갔지요. 그러나 그것은 개인이 나가서 취업하는 것이고, 일의 질도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에 해당되는 일로 고생되는 일이었지요.
지금은 우리나라도 외국 근로자들이 와서 이 일을 맡고 있지요.지금 우리에게도 외국인들이 많으면 40~50만명이 있는데 그때 우리의 현상과 같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습니다. 그러니 해외 진출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했지요. 전혀 해외에 눈을돌리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군대가 해외로 나감으로 인해 우리 군을 따라 기업들이 해외로 나오게 되고 해외에 나와서는더 넓은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것입니다
국방 = 당시의 기업 진출은 사령관님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진출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 아닌가요?
사령관 = 우리 맹호부대가 퀴논지역을 내려갔어요. 그런데 전투부대가 옴으로 해서 전투부대에 대한 영역관계 등등이 미국의 업체들을 들어오게 해서 일을 시작하는데 우리 기업체들도 참여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내가 있는 곳의 지역 미군사령관과 우리 대사관 직원들과는 긴밀히 협의를 해서 기업들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래서 한진상사의 수백명 근로자들이 월남에 첫 진출을 하였고 이어서 대한통운 등 유수의 기업들이 속속 들어와 해외기업 진출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더욱 발언권도 강해졌지요. 그래서 일본, 미국 기업 보다도 우리가 절대적인 위치에서 월남사업을 정말 열심히 전개했던 것입니다.
국방 = 사령관님께서는 지휘관 최상의 보루인 지휘권에 대해 처음부터 상당한 고심이 있었고 실제 미국에 가셔서는 사령관님의 통쾌한 전략으로 지휘권 변화에 종지부를 찍으셨다는 말씀을 오래 전에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령관 = 나는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박 대통령께서 당신이 누구보다 월남 사정을 잘 아니 초대 사령관으로 요청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고, 미군이 월남전을 잘못 보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전략전술은 탐색 섬멸전이었지만 나는 미군의 전략전술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 작전권 문제에 대해서 박 대통령은 미군 지휘 아래 들어가라고· . 그렇게 받았다고 -.
그러나 나는 지휘권은 사령관을 임명한 후 사령관의 건의를 받으셔야지 그렇다면 저는 못합니다 라고 했어.
그랬더니 화를 내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각하께서 미국대사에게 얘기한 것은 한국군을 미군 지휘하에 놓는다. 그렇게만 말씀하신 것이지요?하고 여쭈웠더니 그렇게 하셨다는 거야 -그리고 월남엘 갔는데 벌써 미군측은 당연히 자기들 지휘하에 오는 것으로 딱 되어가고 있었어.
그래서 먼저 지휘권에 대해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며칠 궁리 끝에 월남전쟁을 정치전쟁으로 몰고 가기로 하고 그렇게 전략을 세워 진행했지. 그리고 미군 장성들을 설득시키기로 했어요. 사실 군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 군사적으로 봤을때 말이 타당한 것은 아니었어.
한 번은 장성들 모임이 있었어, 월 1회 열리는 장성들 현황 브리핑 모임이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는 장군만 해도 한 27명 가까이 되고, 4성 장군이2사람, 3성 장군도 2사람, 거기다 해병대 사령관도 3성장군인 해병준장에서 해군까지 4사람,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자리였어. 그 앞에 내가 나갔지.
'스르만' 대장이 '제너럴 채'(사령관)가 한30분 정도 얘기한다고 해서 내가 동의했으니 들어보라고 했지.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보니까 전부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다고 온 은인들이고 여기 지금 별을하나 달고 있는 분들도 다 한국전에서 친구였고 나보다 더 선임자였는데, 다시만나 뵙게되어 반갑다고 하고는 '월남에오기도 전에 그랬고 와서도 그렇고 월남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내가 늘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도 확신을 가질수는 없지만 나는 월남전이 군사적인 전쟁이냐, 정치적인 전쟁이냐, 이 2가지 퀘션어블(Question able)한 문제를 놓고 생각한 끝에 나는 정치적인 전쟁으로 나 혼자 결론을 짓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견해를 듣고 싶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러자 맨 앞에 앉아 있던 나보다 선임인 '라슨' 장군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Hey, General Chae, What are you talking about?"-야, 너 무슨 소리 하는거냐? "We are all here in uniform-man!"-우리 모두 군인들인데, 넌 언제부터 정치를 안다고, 뭐 정치적인 그런 얘기를 하냐! 너 정치인이야? 너 솔져(Soldier)아니냐?"
이렇게 빈정대면서 나한테 손가락질을 하면서.. 뭐 나보다 상급자니깐,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속에서 이런게 올라오는 것을 참고,
"Ok, its your opinion" -그건 당신 생각이고‥‥
그런데 '라슨'은 원래 독설가로유명한 사람이야. 전체 미 육군장성들에게 독설을 퍼붓고는 다른 의견 없냐고 물었지. 아무 얘기가 없길래 내가 말했어.
"그러면 너 말이야, 이게 군사적인 전쟁이라고 하는데, 여기와서 보면 우리가 뭘 동원하고 있냐? B-52?... 맞아,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 그런데 여기에 비해 월남, 월맹, 비월맹군, 베르콩들, 정규 베트콩 군이나. 국경지대에 있는 베트콩들, 정규군은 전부 자동 아카보 총, 헤끼 소총을 가지고 박격포나 이런 무반동 총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왜놈들이 버리고 간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이러한 상황인데도 당신들이 우리 한국군 보다 빨리 온 것을 기준한다면 한 5~6개월 먼저 왔어, 3월 중순에 해병 1개 대대가 다낭에 상륙해 가지고 그 다음에 미 대기공수사단이 우리 보다 먼저...이렇게 우리 보다 먼저 왔으면서도 지금까지 마을 하나 평정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얘기인데, 군사적으로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것 그것은 말이안돼. 그런데, 이게 군사적인 전쟁, 정치적인 전쟁이니깐, 정치적인 고려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한참 이런 식으로 물고 갔지.그랬더니 그 '라슨' 장군이 눈을 가만히 감고 있더라고... 그래서
"힘의 우위에 있으면서도 왜 그랬는지 이 문제에 대해 당신들의 견해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라슨' 장군이 조용히 눈을 뜨고 일어나더니 "I sincerely apology to you." -내가 너한테 대단히 미안하다.
"내가 당신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당신의 말이 맞다. 당신의 말이 100% 맞다. 그래서, 난 당신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동의 한다."
허‥‥내가 놀랐다고.
"나는 '제너럴 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제너럴 라슨' 장군, 나한테 용서를 빈다구? 난 그말을 받아 들이지 않겠다. 당신이 뭘 잘못했다는 거냐? 왜 당신이 나에게 용서를 비는거냐?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어, 당신이 한 말이 다 옳은 내용이야. 군사적으로 옳은 얘기야."
"손가락질하고 그런 것 미안하다."
" 당신 나보다 상급자야. 상급자가 그러는게 뭐가 나쁘냐? 그건 군사예절에도 없는 것 아니냐."
그랬더니 다 박수를 치고 그래요. '라슨' 마린(해병)대장이 내 오른 팔을 들고, 무슨 권투선수마냥,
"I agree with general chae's opinion" -나도 '채'장군의 의견에 동의한다.
거기서 작전지휘권이 일단락 된거야.
"앞으로 월남전에서 비록 한국군이 부대규모는 작다 하더라도 나하고 '제너럴 채'하고 '가번디' 월남군 사령관하고 모든 것을 의논해서 하겠다." 그렇게 선언하더라고...
국방 = 앞의 말씀과 연계되는 이야기가 되겠는데요, 월남 전쟁사를 보면 소규모 전투 실적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전투의 특징과 성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령관 = 월남의 산에는 자연동굴이 많아, 거기에 들어가면 폭격 아무리 쏴도소용이 없고, 대포를 쏴도 소용이 없다고. 그런 요새에 베트콩이 들어가 있는 거야. 그러나 우린 그럴때 싸우는 방법이 있어. 그래서 우리가 중대전술기지 방법에서 분리시켜서 거기다 몰아놓고 치는데, 우리는 미군 당신들 처럼은 안한다고 했지.
쉽게 말하면 부락에 접근하는 루트를 우리가 막고 있는거야. 낮에 활동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밤에는 강아지도 나오면 쏜다고 주민들에게 경고 하지. 그래서, 밤에는 움직이지를 않아. 우리는 매복을 한 상태에서 밤에 마을에서 산으로 접근하면 다 치는 거야.
크레모어 가지고, 그렇게해서 접선하는 적들을 일차적으로 때리고 적도 동굴에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지. 모든 연락망이 딱 봉쇄가 되니까. 그러니까 나오지 않을 수 없다고, 나오면 치는 거야.그래서 우리가 소규모작전을 50여만회나 한 이유가 거기에 있어. 싸우는 거 총 가지고 싸우는게아니다. 수류탄하고 크레모어 가지고 하라고 그랬어. 야간에 소총 쏘고 그러면 위치가 파악이 돼.
국방 = 두코전투는 세계 전사에도 길이 빛날 전투였다고 보는데요, 그 전투의 특징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령관 = 월남전의 방향을 바꾼 전투가 두코전투이지. 그 전투에서 중대전술기지개념은 연대급 이상의 공격을 48시간 이상 지탱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거야. 두코전투에서 월맹은 대패하고 우리나라는 5명의 전사자가 났는데, 절대로 진지호로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나오다가 그때 많이 죽었지. 적도 포를 얼마나 쐈는지 몰라.
꼬박 200미터만 가면 캄보디아 국경, 거기서 막 갈겨대는데, 그리고 인해전술이야. 죽으면 또 넘어 오고, 시체를 넘어서 화염 방사기 까지도 썼다고... 세계언론에서는 이 전투를
"Unbelievable, Miracle"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적을 한국군이 만들어 냈다'
그런식으로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고...
이 전쟁으로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고 AID 기구에서는 처음엔 거들 떠 보지도 않다가 이 사람들이 자진해서 서울로 와서 경제차관 지원단, 뭐 그런 컨서시엄등을 만들어 가지고 30몇 억 달러를 처음에, 그리고 145억 달러를 나중에 받고, 뭐 그런 등등의 달라($), 베트남 장병들의 봉급까지 몽땅 다 80% 이상 송금을 하고 그랬지.
국방 = 사령관님과 월남참전 모든 용사들의 노고에 더욱 큰 감사와 깊은 이해가 국민들에게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국가경제발전의 활력소가되고 최초의 해외진출 기회를 맞아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뻗어 오늘의 한국이 일어 서는데 많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면 한미동맹관계는 더욱 굳건히 지켜져야 하겠습니다.
사령관 = 바로 그래, 그것 아주 중요한것 지적 했어요. 지금 사람들 우리 아이들도 월남전의 교훈을 받아야 돼, 지금 미국 나가라는데, 미국은 그러면 나간다고, 이거 철없는 얘들 평택기지에 오는 것 반대한다, 그럼 우리는 갈데가 없지 않느냐? 그러면 미군을 다른나라로 뺀다고. 그러면 우리가 녹는 거야. 이걸 알아야 돼.
월남전 그걸 좀 봐야 돼. 월남전에 관한것을 봐야 된다고. 그래서 닉슨 대통령이 월남전 월남화 해라. 너희들 전쟁은 너희가 해라. 월남화한다. 55만명의 미군을 확 줄이기 시작해서 거의 다 줄어들어 갈 적에 월남이 다급하니까, 제발 떠나지 말라고 했지만 확 줄이기 시작해서 다 줄어 들어 갈적에 월남이 전면공세를 취한 것 아니야. 월남이 패망한 그러한 것을 우리나라가 새겨 봐야 하는 거야.
그땐 우리나라에 무슨 아파트가 있었어? 고속도로가 뭐 있었나? 월남 국군을 통해 해외 진출이라는 것을 배우고 그곳에서 세계를본 후 눈이 떠지면서 중동으로 나갔어. 월남전에서 닦은 기술로 72년도부터는 중동에서 들어오는 오일달러를 가지고 우리 경제를 여기까지 끌어 온거야. 나는 65년 이후로 월남 현지 제대도 많이 시켜 주었어. 그때 사병들의 봉급이 한 달에 1달러 20센트 였다고. 이 사람들을 현지 제대 시킨후 월남 진출 기업에 취직을 시켰어. 당시 한 달에 500달러면 어마어마한 돈이지, 대단한 것이었어.
국방 = 사령관님도 몸이 불편하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건강에 조심하셔야지요.
사령관 = 나도 고엽제 환자야. 나 하고 아주 친한 동료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가 어느 부분이 아픈 것을 본 사람은 별로없어. (기자가 확인) 아직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전우들이많은데 나까지 고엽제 신청 할 수 없다고생각하고 하지 않았어. 내가 병원에 가면아마 꽤 높은 등급을 받을 거야. 내가 너무 아플 때는 집사람과도 방을 따로 쓰고, 잘때는 허리도 많이 아프지...
국방 = 사령관님, 이렇게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사령관님 말씀은 독자들이 한마디 한마디를 깊이 새기고 마음에 담아 첫째로는 국가 안보에, 그다음 월남참전 용사들에게 더욱 큰 사랑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구용우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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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71년도 "닌호아"에서 근무했죠.최진사님은 28연대(도깨비)근무하셨네요, 3개연대중 젤 많이 고생한 연대죠 .30연대는 좀수월했고 29연대는 사령부가있어 중간정도였는데 가끔 박격포가 날라와 되받아치는라고 욕봤죠.아무쪼록 건강하시기기원합니다.여기는 진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