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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교회는 부활절예배를 통하여 예수님 부활을 온 누리에 알렸습니다. 기독교만이 있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했던 날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이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닌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 때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품고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도 불신자들은 예수님부활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두개인들은 사람의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전15: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이 말씀은 오늘도 유효하여 자기지식, 과학에 물든 사람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신론자 프랭크 모리슨은...... “예수님 부활은 그의 제자들이 조작한 사기극이다.”라고 했고 데오도르 카일은 “예수의 시체는 썩었고,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는 환상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불신자 들이 있었다면 오고 오는 세대 속에 부활을 보고 확신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인가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증인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밤새 지켰던 자들인데 굳게 닫혀 있는 예수님의 빈 무덤 때문에 놀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보고하니 저들은 파수꾼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마 28:13)고 당부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부활하심을 감추려고 돈을 준 사실까지 유대인들 사이에 퍼졌으니 예수님 부활하심에 대한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울은 부활의 목격자들을 열거하는데 고린도전서 15:4-8절을 보면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열거했습니다.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베드로와 12제자들, 500형제들, 야고보, 그리고 바울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00여 형제중에는 복음서에 나타난 마리아, 살로메를 비롯한 여인들이 예수님 부활하심에 증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강조하십니다. 44절 서두에 보면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44-45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던 목격자들이 증인이지만 메시야이신 당신 자신이 고난 받고 십자지시고 다시 사는 부활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 다 이루어진 사실을 강조 하신 것입니다.
먼저는 고난에 대한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언이 있습니다.
시편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시편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
이사야 53: 4-6.....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다음은...부활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시편16:8-10......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110: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 예수님은 45절을 보세요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반신반의 부활을 의심한 답답한 제자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설교자인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해 어떤 강요가 아닌 있는 사실 그대로 가르치시고 깨우치시려는 예수님의 학습방법이 얼마나 감동적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 부활하심에 대해 아직도 마음에 문이 열려지지 않습니까? 사도신경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그져 외우고 주문하듯이 그동안 해왔습니까?....... 그래서 말하기를 목사님! 아직도 부활에 대해 확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다면 예수님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을 오픈하십시오 마음의 창을 여십시오 그래서 어떤 말씀이든 받아드리겠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닫혀 있으면 어떤 주옥 같은 말씀이라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이 닫혀있고 우둔하여도 마음의 창을 열고 보게 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신 줄 믿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은 눅24:13-35절 말씀을 함께 읽으면 더 은혜가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다가가 부활하신 예수님 저들에게 말씀으로 깨우쳐주신 장면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으로 생각하고 묵상합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11km 떨어진 마을입니다. 걸어서 3시간 거리에 있는 비교적 가까운 마을입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 (Cleopas)요 나머지 한 사람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엠마오로 걸어가면서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 오셔서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두제자는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인지 알지 보지 못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서로 주고 받고 있습니까?” 그 순간 두 제자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 돌았습니다 (17절)
오히려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보아하니 예루살렘에서 오는 것 같은데,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십니까?” (18절) 예수님은 그 일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두 제자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인데, 그분은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능력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라고 기대했었습니다. 지금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삼 일째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오늘 아침 일찍 무덤에 갔었는데, 예수님의 시신을 보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를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와 함께 있던 제자들이 무덤으로 갔었는데, 여자들이 말한 대로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님은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참 답답하십니다....... 어찌 두 분은 예언자들의 글을 믿지 않으십니까?..... 예언자들의 글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그의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은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예언자들의 글과 메시아에 대한 성경 말씀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27절).........44절 말씀과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 엠마오로 내려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을 풀어 자세하게 가르쳐주니까? 두 제자 어떤 모습으로 바꿔졌습니까?
31-32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영적 소경이였던 두 제자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두 제자 주체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엠마오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거자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33-34.....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로마병정들은 제자들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고 있지만 문제되지 않습니다. 죽음이 저들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다른제자들에게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다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다시 사셨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47-48절....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 부활을 알리는 그 증거는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땅 끝까지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부활절 일주일이 지난 오늘 주일 이 모든 일에 증인으로써 삶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누구에게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증인(證人)『헬: 말투리아』순교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인은 본 것을 목숨 걸고 전하는 사람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자로 진정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증인은 간단합니다.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경험한바 그대로만 말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설명이 아닌 진실을 그대로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증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체험이 있어야하고 신앙 간증이 있어야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인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그는 히틀러 암살 협의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무렵인 1945년 주일아침에 그는 감옥에서 늘 하던 대로 아침기도를 하고 있을 때 험악하게 생긴 두 사람이 감방을 향하여 소리치는데 “ 죄수 본회퍼 나와 우리를 따라 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간입니다. 같은 방에 있던 한 영국장교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본회퍼를 보고 인사하기를 “ 목사님! 마지막입니다. 잘 가십시오” 이 말에 본 회퍼목사는 미소를 머금고 평화로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본회퍼는 이 말을 남기도 39세로 나치정권을 저항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자세입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이 이제 끝났다고 말할 때 “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예수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일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써 사는 삶 이것은 힘으로 지식으로 용감성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49절.....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입어 어느곳이든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