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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는 누나의 사랑을 싣고...ㅋㅋ
고들빼기 사랑은 누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봄나물 캐러 가자고 전화로 나를 유혹해 일요일인 오늘 우리 집으로 찾아온 누나와 떠나는 고들빼기 사랑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검은 구름이 하늘 가득한 음산한 날씨에 설렘은커녕 비가 내리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였다. 마음 같아서는 햇살이 따스한 양지 녘 비탈밭에서 누나와 어린 시절 추억 여행을 떠나며 고들빼기 캐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건만. 하!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약속 장소인 누나네 공장 앞 텃밭에 내리니, 바람은 씽씽 눈발은 펄펄, 고들빼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쑥 들어간다. 누나가 시간 내기 어려워 같이 떠나긴 했지만, 4월을 하루 앞둔 날씨는 정말 을씨년스러웠다.ㅎ
그래도 어떡하랴! 모처럼 마음 잡아 떠난 길인데. 호미와 비닐봉지를 각자 챙겨 들고 고들빼기 찾아 삼만리 길을 떠나 호미질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런데 웬걸 이젠 아주 굵은 눈발이 바람에 실려 빗발치듯이 온몸으로 달려든다. 한마디로 고들빼기를 캐는 즐거움은커녕 자칫 감기란 녀석이 찾아올까 봐 누나와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하는데, 마침 농협마트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매장이 근처에 있어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이게 실수였다.ㅋ
누나와 마트 안으로 들어가 눈요기하다가 겨우 단호박 두 개를 사서 다시 차에 오르려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를 놀려대듯이 해님이 방그레 얼굴을 내밀고 해맑게 웃자, 누나가 웃으며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운 듯 " 해가 다시 난다, 얘! ㅎㅎㅎ" 한다. " 그럼 다시 밭으로 가지 뭐 " 하곤 해묵은 외상값 받으러 가듯이 다시 텃밭으로 되돌아가서 고들빼기를 캐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다시 돌아오니 이번에는 그나마 하늘이 참아주는 듯하더니, 웬걸... '애생에 굽은 나무는 지르매(*길마의 강릉 방언) 가지 된다' 던 엄마 말대로 이번엔 좀 더 세차게 진눈깨비가 소나기 오듯이 퍼붓는다. 결국 두 번째 돌아가서도 쫓기다시피 우리는 발길을 돌려 일정에도 없던 막국숫집으로 향했다.ㅎㅎㅎ(덕분에 우리 집 쌀이 굳었음ㅋㅋ)
*길마: 짐을 싣거나 달구지를 채울 수 있도록 말이나 소의 등에 얹는 운반구(순 우리말임) = 엄마의 말 뜻은 즉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며 자라면 커서도 환한 날을 보지 못하고 고생한다는 뜻같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신분 상승이 어려워 가난의 대물림이랄까?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수십 년 전 엄마가 들려준 말씀이 지금도 우리 사회의 현실에 적용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린 눈발이 날리는 하늘을 푸념 섞인 웃음으로 바라보며 오후 3시 조금 넘어 누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누나가 " 막국수나 먹고 가자 " 한다. 속마음은 지난주 삼포에 가서 냉이를 캐던 날 누나에게 추어탕을 얻어먹어 이번에는 내가 누나에게 사 주려던 참이었는데, 신발 끈을 늦게 맸다.ㅋㅋ 나는 아침을 늦게 먹어 점심시간이 되었고, 누나는 아침을 일찍 먹어 시장기를 느꼈으니 먼저 말을 꺼냈지 싶다. 실은 내가 누나를 데리고 가야 하기에 같이 다니면 대개는 누나가 점심을 사주곤 한다. 한샘고등학교 앞을 지나 옛 '샘밭장터'로 들어가는 길옆 시골막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앞으로는 옛 46번 국도에 소양댐 방향으로 오가는 자동차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강변으로 펼쳐진 강둑 산책로가 끝없이 이어져 사계절 자전거 동호인들이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도로 옆으로는 강물이 평화롭게 흐르는 곳이다. 업소 주변에 꽃나무들은 아직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곳은 소양댐 담수가 흐르며 차가운 수온이 대기와 만나며 다른 주변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2·3도 낮아 여름에는 시원한 반면 겨울이 길고 봄이 늦게 찾아온다. 따라서 주변 농원에서 재배하는 딸기와 방울토마토 등 농작물이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서 과육이 단단하고 싱싱하게 자라는 특성을 지닌다.
겨울 동안 독감이 무서워 다중이 모이는 장소는 꺼렸던 마음을 모처럼 내려놓고(실은 *코-스크 함ㅋ) 오랜만에 누나와 막국수 맛을 보았다. 엄니를 모시고는 아주 예전에 두세 번 갔던 곳인데, 나름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봐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주로 단골로 찾아갔던 막국숫집은 이곳에서 2km가량 떨어진 산천리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장 근처에 사방이 고즈넉한 농촌 들녘이 펼쳐진 '단우물' 이었다.(지금은 카페로 업종 변경함)
*코-스크=코+마스크=코마스크
내가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을 피하는 식습관을 아는 누나가 먼저 맛을 보곤 좀 매우니까 막국수 사리 위에 얹은 양념을 덜어놓고 비비라고 했지만, 그냥 다 비볐다. 어떤 음식점이든지 그 업소만의 최적의 비율로 맞춰 나온 맛의 궁합을 몰이해하면 제맛이 나지 않기에 말이다. 먹고 나니 입안이 얼얼! 인간관계도 음식궁합과 같아 나를 조금 내려놓고 상대의 장점을 잘 살리면 더불어 관계도 조화롭고 시너지를 얻으니 말이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먹는 막국수 맛은 역시 '배고프면 맛있다'는 참 진리를 다시 일깨워준다.ㅋㅋ
누나가 점심값을 결제한 뒤 출입구에 놓인 커피메이트에서 입가심 서비스로 제공하는 믹스 커피 두 잔까지 뽑아 차에 올랐다. 누나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고향 마을로 떠나며 맛보는 커피는 엄니와 차 안에서 즐겼던 추억 여행으로 끝없이 우리를 이끈다. 커피매니아는 아니었지만 엄니도 가끔 밖에 나와 음식을 드신 뒤 자판기 커피를 은근히 즐기셨다는 것을 누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막국수는 예전 어르신 세대들이 화전(火田)에 중복 무렵 구황작물로 메일을 심은 뒤 수확해 겨울날 농한기 입이 궁금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뜨거운 가마솥에 국수틀을 올리곤 장정들이 힘겨루기하듯이 눌러 밀려 나온 국수를 익힌 뒤 곧바로 찬물에 씻어 양념 국물이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 불기 전에 즉석에서 먹었다 하여 막국수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 맛은 지역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기에 호불호가 다소 있는 편이다. 나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춘 막국수의 효시 격인 내 고향 향토 음식인 '춘천막국수'는 주로 비빔막국수를, 옛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북방식 '동치미막국수'는 부모님의 고향인 강릉·평창 지역에 가면 주로 맛을 보곤 한다. 가격도 부담 없고 먹고 나서 소화도 잘되고 무엇보다 현대인들의 건강 관리 음식 메뉴에도 오를 만큼 '춘천막국수'는 '춘천닭갈비'와 쌍벽을 이루면서 춘천을 알리는 대명사이다.ㅎ
어린 시절 큰누나는 나를 키우다시피했다. 엄마가 농사일 짬짬이 산에서 산나물이나 집에서 가꾼 채소를 채취해 가용할 푼돈을 마련하려고 읍내 오일장이나 매일 아침 마을에 있는 유명 약수터의 하숙집을 찾아다니며 팔았다. 엄마는 늘 나에게 " 나는 너를 낳아놓기만 했지, 큰누나가 다 키웠지" 하셨다. 누나는 지금도 나를 '동생 같지 않고 자식 같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늦가을 큰누나가 읍내로 시집가기 전까지 큰누나는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엄마처럼 돌봤다. 내가 큰누나를 가장 살갑게 여기는 이유다. 나는 누나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 빚을 언제 다 갚으려나! _()_
누나네 공장 앞 텃밭에서 캔 고들빼기. 요즘은 자연산 고들빼기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찾아보기 어렵다. 농촌에 가도 거의 집에서 먹으려고 텃밭 가에 고들빼기씨를 뿌려 길러서 먹는다. 자연산 고들빼기는 아주 깊은 산골로 더 들어가거나 밭이 아닌 논둑이나 밭둑 같은 곳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야 조금 볼 수 있어 이젠 자연산 고들빼기가 정말 귀한 몸이 되었다. 어린 시절 봄나물 바람이 불 때면 누나들과 *다래끼를 차고 달래 냉이 고들빼기 씀바귀를 캐러 들로, 산으로 쏘다니던 추억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그려진다. 특히 바로 위 막내 누나를 많이 따라다녔다.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쪼개 허리 모양에 맞게 차도록 모양을 갖춘 일종의 바구니.
고들빼기를 고르며 내가 누나에게 " 다음에는 화천 양구로 한 바퀴 돌아오는 오지 길을 따라 봄나물 캐러 가자. 텃밭에서 캐는 봄나물은 재미가 없어서... " 하니 누나가 ㅎㅎㅎ 웃으며 "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녀 " 한다. 그래서 " 엄마랑 다녔던 곳으로 휘휘 여행 삼아 돌아보는 거지. 화천 동촌으로 해서, 양구 해안으로... 꼭 나물을 캐러 가나, 뭐? " 하니 누나도 좋아했다. 자식을 셋을 두어도 모두 자기 사업체 일에 빠져 감히 제 어미의 봄나물 정서를 읽지도 못하고, 딸내미 하나도 강릉에서 직장에 매인 몸이라 시간도 없으니, 누나는 내가 아니면 같이 데리고 다닐 사람이 없다. 불과 두 해 전만 해도 손수 운전하여 가까운 곳으로 나물 뜯으러 가곤 했던 누나였는데, 이젠 운전면허까지 반납해 내가 큰누나의 봄나들이 발이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 대역으로 나를 돌본 그 은혜를 누나가 더 늙기 전에 갚아야 하기에 부지런히 데리고 다녀야 한다.ㅎㅎ
※ 참고로 화천 동촌과 양구 해안은 오지(동촌>해안) 산골이다. 엄마가 내 결에 계실 때는 엄마의 시골 정서를 살펴 봄이면 엄마랑 주말마다 봄나물도 캐고 콧바람도 쏘일 겸 모시고 주변 지역을 메주 밟듯이 찾아 다녔다. 사실 도시와 비교해 오지라곤 해도 예전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방송에 나오는 오지는 아니다.ㅎㅎ
막국수로 모처럼 입맛을 돋우고 누나에게 우리 집에 가서 고들빼기를 같이 다듬어 가져가라고 하려다 그러면 누나가 너무 늦게 집에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하기에 내가 누나 집에 가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고들빼기를 골라서 내 차로 오는 것이 나아 보여 막국숫집에서 바로 누나 집으로 향했다. 누나집에 와서 칼과 도마를 꺼내놓고 둘이 그 옛날 육 남매가 오글거리며 살 때의 추억 여행을 떠나며 장장 5시간을 고르고 다듬고 나니, 자정 무렵이었다. 하아! 생활 리듬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누나가 너무 무리해 행여 몸살이라도 날까 싶어 '나 집에 갈게 나중에 해'하고 집으로 오려니, 누나가 " 조금만 더 기다렸다 고들빼기 무쳐 줄 테니 물김치 담근 거랑 가져가. 냉장고가 차서 보관하기도 불편해 " 한다. 그 말을 듣곤 다시 주저앉으니 마침 티브에서 월드컵 2차 지역 예선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축구 경기를 시작한다.(이날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에 1:4로 패해 완전히 쪽팔렸다. 한 골도 아르헨티나 수비수의 100% 실수로 겨우 얻은 골이었다) 결국 축구를 보는 동안 누나는 다듬은 고들빼기를 마당 수돗가에서 씻은 뒤 안으로 들어와 다시 데쳐 무쳐서 비닐 팩에 담아 주니 새벽 2시 15분. 묘하게 축구 경기와 맞춤으로 끝났다.ㅎ 집에 돌아오니 휴일이라 이미 주차장이 꽉 차 집 앞 강변에 차를 세우고 안방에 들어오니 새벽 3시였다. 오늘은 고들빼기와 전쟁을 치르며 누나와 진을 뺐다.ㅎㅎ
밭에 심었던 고들빼기를 다 캐야 했던 이유는 4월에 그곳에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0평 가까이 되는 부지(밭)에 공장을 짓고 일부 남은 부지에 들깨 등을 심어 텃밭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아들네 두 내외가 시내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는 시간과 거리 때문에 낭비하는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층으로 집을 짓는단다. 애초 그럴 계획으로 부지를 샀다고. 누나 말이 "ㅈㅇ엄마(며늘아이)가 집 지으면 ㅈㅇ아빠가 어머니랑 같이 산대요." 해서 '나는 내 집이 더 좋아 여기에 살겠다'고 했단다. 아직은 손수 식사 준비를 할 수 있고 막내(아들)가 곁에 있기에 쉽사리 '그래, 가지' 하고 말할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울 엄니도 구순이 되는 해까지 나와 같이 지내며 주방에서 일손을 놓지 않으셨으니, 누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무엇보다 누나 집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예쁜 성당이 있어 쉽게 따라가지 않을 듯하다! ㅎㅎ
고들빼기를 고르다가 저녁부터 먹자고 하여! 보는 그대로 '풀떼기' 밥상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해 주는 나물 반찬으로 밥을 먹은 식습관에 지금도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누나가 양념갈비 등 고기를 상에 올려 주어도 안 먹으면 또 섭섭해하기에 한두 개 겨우 뜯곤 물린다. 상에 보면 시금치나물, 마늘종 볶음, 각종 채소랑 표고버섯과 멸치와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 김치와 알배기 배추 쌈 등 격식 없이 차려진 시골 밥상이 누나도 나도 좋아하는 식단이다. 겨울이 지나 이른 봄 쌈으로 먹는 알배기 배추는 그 아삭한 식감하며 달큰한 뒷맛에 한마디로 밥도둑이다. 특별식인 인삼 같은 고들빼기 몇 뿌리는 누나가 내게만 주어 혼자 다 먹었다. 누나도 먹어보라니 한사코 나에게 내밀었다. 엄마 같은 큰누나다. 인삼이라 생각하고 먹었으니, 효험이 있으려나 모르겠다.ㅎㅎ _()_
누나네 공장 앞 텃밭과 이웃한 수로가 지나가는 밭둑에서 캐온 고들빼기 양이 제법 많아 그릇에 담긴 고들빼기나물은 일부 덜어낸 것이다. 며칠 고들빼기나물로 맛난 밥상을 받을 생각 하니 벌써 입안에 침이 돈다. 봄철 입맛이 없을 때 고들빼기나 씀바귀나물을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겨울을 보내며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 데는 아주 직효다.ㅎㅎ 엄만 생고들빼기를 일부 고추장에 무쳐서 주기도 했는데, 아삭하고 살짝 쓴맛이 어우러진 기분 좋은 고들뻬기 특유의 향이 좋아 100% 촌놈인 나는 은근히 즐겼다. 아~! 그리운 엄마 ㅠㅠ
고들빼기나물은 식성 기호에 따라 고추장으로 무칠 때도 있고, 고추장과 *막장(강원도에서는 된장보다는 막장을 더 선호한다)을 섞어 무칠 때도 있는데, 내가 매운 음식을 못 먹는 것을 알고 누나가 막장으로 무쳤다. 생고들빼기를 소금물에 살짝 절여 고들빼기김치를 담가도 맛나다. 단맛에 익숙한 사람들은 쓰다고 입에 대지도 않아 요즘 아이들은 먹으려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입맛을 들인 사람들만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찾는 일종의 약식으로 먹는 야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막장: 메줏가루에 일부 곡물가루를 섞어 담근 장인데,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맵지 않고 구수하고 달큰하여 강원도 지역에서는 나물을 무치거나 된장국을 끓일 때 많이 사용한다. 간장을 담그고 나오는 메주 풀에 담근 된장은 맛이 너무 짜서 다른 곡물가루나 또는 곁들이는 재료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강원도에서는 된장보다는 막장을 더 선호한다.
※ 흐리고 진눈깨비가 빗발처럼 날리는 등 날씨가 궂어 고들빼기 캐는 과정은 사진을 담지 못해 아쉽다. 다음엔 정말 날을 잘 잡아 가야 하겠다.ㅎㅎ
첫댓글 2025.04.10 페북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