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과 참빗
임병식
나는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유리 너머의 두 빗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었지만, 그 정지 속에서 오히려 시간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오래 머물다 간 손의 온기가 아직도 빗살 사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유리 너머의 공기는 더 깊어졌다. 보이지 않는 머리카락들이 한때 그 빗살을 통과하며 만들어냈던 결들이, 지금은 빛의 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사물은 멈춰 있는데, 그 주변만 계속해서 늦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레빗은 바람 쪽을 닮아 있었다. 흘러가는 것을 막지 않고, 다만 한 번 스쳐 지나가게 두는 방식. 참빗은 그 반대편에서 서 있었다. 흘러가려는 것들을 잠시라도 기억하려는 손의 습관처럼. 그러나 그 둘을 가르는 선은 생각보다 흐릿했다. 바람도 머무는 순간이 있고, 붙잡힘에도 결국은 흘러가는 시간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 표면에 늦은 오후의 빛이 한 번 천천히 지나갔다. 그 순간 빗들은 잠시 제 이름을 되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곧 그것은 이름이라기보다 오래된 기억의 형태처럼 흐려졌다. 사물은 쓰임을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기능이 아니라 잔상으로 남는다.
그 잔상은 오래 지속된다. 설명보다 오래, 말보다 느리게.
나는 유리 앞에서 아주 조금 더 머물렀다. 빗살 사이로 지나간 시간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유리 너머의 빗들은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무 일도 하지 않음’조차도 하나의 긴 움직임처럼 보였다. 거의 멈춘 것과 거의 흐르는 것 사이의 어디쯤에서.
나는 결국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완전히 끊지는 못한 채였다. 빛과 그림자 사이에 얇게 걸려 있는 상태로, 한 걸음씩 천천히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돌아보지 않았다기보다, 돌아보는 속도가 이미 늦어져 있었던 쪽에 가까웠다.
(2026)
첫댓글 성김과 촘촘함이라는 상반된 빗질을 통해 엉켜 흐르는 삶의 시간을 정돈하고 反芻해 내는,
깊고 정갈한 사유가 돋보이는 청석님 만의 격조 높은 수필입니다.^^
제가 가징 임병식流 수필쓰기 <사물 시간압축사유수필>이라는 유파 장르 개척을 위해 색다른 수필
쓰기를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나온 글쓰기 모델입니다.
두 가지 빗의 조화가 이채롭습니다
얼레빗처럼 설렁설렁 용서하고 화해하며 지나온 인생길이었다지만 굽이굽이행간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참빗으로 깨끗이 훑어내니 마침내 진정한 삶인가 싶습니다
게으른 놈이 모처럼 고추밭에 영양제를 치고 돌아서니 비가 내리네요 구름이 사람을 속인 건지 사람이 하늘을 허수이 여겼는지 아리송한 오후입니다
얼레빗과 참빗의 은유적인 해석입니다.
글이 마치 하나의 정밀한 동양화나 흑백 사진을 보는 듯 차분하고 정갈합니다. '사물은 쓰임을 벗어나는 순간 잔상으로 남는다'는 표현처럼, 글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제 마음에 빗살이 지나간 듯한 긴 잔상이 남네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삶의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삶을 해석해내는 능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도 평안한 밤되세요.
요사이 <사물시간압축사유수필> 쓰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얼레빗과 참빗을 통하여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사유해본 글입니다.
글을 읽고 잔상으로 남았다는 것은 글을 쓴 의도가 마음을 붙들었다는 말이
되기도 해서 조금은 안도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