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통 난 고양이의 체통
임병식 rbs1144@daum.net
고양이는 체통을 아는 동물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그 믿음은 관찰이라기보다 오래된 해석에 가까웠다.
고양이는 사람 앞에서 욕망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먹이가 있어도 곧장 달려들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주변을 살폈다. 그 거리감과 망설임이 내게는 품위처럼 보였다. 나는 그 조심스러운 태도에 체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문득 오래된 장터의 풍경이 떠오른다.
가난한 양반이 짚신을 팔고 있었다. 생계는 다급했지만 목소리는 높아지지 못했다. “짚신 사려.” 하는 외침도 끝내 크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내 것도…” 하는 낮은 중얼거림으로 흩어졌다. 체면이 허기를 이기려 하던 어색한 존엄의 순간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결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이 먹이를 구하는 모습은 늘 내 시야 바깥에 있었다.
그 믿음에 금이 간 것은 아주 사소한 장면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 쓰레기장 옆을 지나던 때였다.
비닐 더미를 뒤지던 고양이 몇 마리가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고 비닐이 뒤집혔다. 찢어진 틈 사이로 음식물 찌꺼기가 질척하게 쏟아져 나왔다. 잠시 전까지 내가 떠올리던 품위와 거리감은 그곳에 없었다.
남은 것은 체통이 아니라 배고픔이었고, 체면이 아니라 조건에 반응하는 몸의 속도였다.
이상하게도 허탈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무너진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무너진 것은 고양이를 바라보던 나의 질서였다.
나는 그들에게서 체통을 본 것이 아니라, 체통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견디기보다 익숙한 이름을 붙여 안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체면이란 존재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위에 뒤늦게 얹히는 해석의 옷과 같다.
흩어지는 고양이들의 뒷모습 위로 장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 것도…”
그 말은 체면을 지키려는 마지막 몸짓이었을까, 아니면 체면조차 내려놓지 못한 망설임이었을까.
고양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내 안의 체통은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끝내 무너진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던 이름이었다.
우리는 종종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본다. 그리고 그 이름이 벗겨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존재가 제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2026)
첫댓글 괭이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군요
10년이 넘도록 고양이와 지내다 보니 말귀가 조금 틔인 것도 같네요
고양이는 어딘지 신령스러운 면이 있지 싶어요 아무튼 고양이도 동물이라 사람을 경계하는 건 본능이라 생각됩니다
평소 좋게만 보았던 지인도 뜻밖일 때가 있는데 짐승이야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어쩌면 본능에 충실하여 사실은 처음부터 아예 속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음식봉투를 뒤지다가 허겁지겁 달아나는 꼬락서니가 참 가관이더군요. 그 젊잖은 체면은 어디에다 두었는지
당황한 모습이 영력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고양이가 체면을 잃고 도망가듯, 사람도 매한 가지 라 여깁니다.
양복 입은 으젓한 사람도 예비군 복장 걸치면 아무데도 오줌 싸고 뒹굴고 하는 것을 보면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아침 일찍 산책을 하다 급한 일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아무데나 해결합니다.
훤한 낮에는 의원이나 공중 변소가 개방되지만 캄캄하면 닫아 버리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아침 일찍 고양이를 보고 좋은 着想을 하셨습니다.^^
순간포착을 했습니다. 달아나는 것을 보니 은밀하게 행동하다 들킨 모양이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