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통 난 고양이의 체통
임병식 rbs1144@daum.net
고양이는 체통을 아는 동물이라 믿어왔다. 그 믿음은 사실 관찰이라기보다 해석에 가까웠다.
사람 앞에서는 욕망을 감춘 채 한 발 물러서 있었고, 먹이가 있어도 즉각 달려들지 않았다.
거리감이 오래된 품격처럼 보였다. 나는 그 침묵과 지연에 체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득 오래된 장터의 풍경이 겹쳐졌다.
가난한 양반이 짚신을 팔며 “짚신 사려” 한마디조차 끝내 내지 못하고, “내 것도…”라는 중얼거림만 흘리던 모습.
체면이 생존보다 앞서는 순간의 어색한 존엄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인간의 시간 바깥에서 움직이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의 먹이 장면은 늘 공백처럼 비워져 있었다.
그 믿음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 균열을 냈다.
이른 아침, 쓰레기장 옆.
비닐 더미를 헤치던 고양이 몇 마리가 인기척을 감지하자마자 흩어졌다.
그 순간 찢어진 비닐 사이로 음식물 찌꺼기가 쏟아졌다.
남은 것은 체통이 아니라, 조건 반사처럼 빠져나간 몸의 속도였다.
이상하게도 허탈했다.
그러나 곧 알았다. 무너진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던 나의 질서였다는 것을.
나는 그들에게 체통을 본 것이 아니라, 체통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체면은 존재의 속성이 아니라 해석의 습관이다.
현실 위에 덧씌워진 느린 이름일 뿐이다.
흩어지는 고양이의 뒷모습 위로, “내 것도”를 되뇌던 목소리가 겹쳐졌다.
체면은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늦은 붕괴 속에서만,
그것이 처음부터 실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2026)
첫댓글 괭이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군요
10년이 넘도록 고양이와 지내다 보니 말귀가 조금 틔인 것도 같네요
고양이는 어딘지 신령스러운 면이 있지 싶어요 아무튼 고양이도 동물이라 사람을 경계하는 건 본능이라 생각됩니다
평소 좋게만 보았던 지인도 뜻밖일 때가 있는데 짐승이야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어쩌면 본능에 충실하여 사실은 처음부터 아예 속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음식봉투를 뒤지다가 허겁지겁 달아나는 꼬락서니가 참 가관이더군요. 그 젊잖은 체면은 어디에다 두었는지
당황한 모습이 영력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고양이가 체면을 잃고 도망가듯, 사람도 매한 가지 라 여깁니다.
양복 입은 으젓한 사람도 예비군 복장 걸치면 아무데도 오줌 싸고 뒹굴고 하는 것을 보면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아침 일찍 산책을 하다 급한 일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아무데나 해결합니다.
훤한 낮에는 의원이나 공중 변소가 개방되지만 캄캄하면 닫아 버리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아침 일찍 고양이를 보고 좋은 着想을 하셨습니다.^^
순간포착을 했습니다. 달아나는 것을 보니 은밀하게 행동하다 들킨 모양이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