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는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약육강식의 정글보다 더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돈이 없다면 참으로 불안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돈 한 푼 없이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가능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돈 한 푼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데도 말입니다.
영식 씨는 1972년생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온 지 9년이 되었습니다. 보름 전부터 민들레 식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보름 전에 도시락을 받으러 온 손님들에게 간식을 나눴습니다. 아무래도 옷을 갈아입게 해 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티셔츠는 쓰레기 버린 곳에서 주워서 입었다고 합니다. 몸을 씻어본 지 일 년도 더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희망센터에 가서 샤워하고 속옷부터 모두 갈아입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명식 씨가 설거지나 청소를 거들고 싶다고 합니다.
노숙을 한다면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방을 청소하고 살아보지 못해서 그냥 지금 지내고 있는 곳에서 살면서 출퇴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영식 씨는 주안 2동에서 삽니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집에서 삽니다. 형님의 집인데 재개발될 때까지 자기가 지키고 있답니다. 돈이 없어서 전기도 끊고, 수도도 끊겼다고 합니다. 잠자리는 스티로풀을 밑에 깔고 주변에서 구한 이불을 덮고 잔답니다. 한 겨울도 벌써 여덟 번이나 겪었는데 지낼만 하다고 합니다.
영식 씨는 다섯 남매의 막내입니다. 십여 년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돈 버는 일도 포기하고 재개발될 때까지 빈집을 지키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합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습니다. 머리카락도 몇 올 남지 않았습니다. 대머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자를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삼십대 초반에는 동거도 했습니다. 헤어졌을 때 진짜 행복했다고 합니다. 자활센터에서 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동료들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엄청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돈 버는 것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도 누군가 자기를 때리면 막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영식 씨가 출퇴근을 한 지 며칠이 지났을 때 운동화를 얻을 수 없는지 물어봅니다. 새 신발을 신은 지 겨우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 운동화가 정말 너덜거립니다. 주안 2동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지 못했답니다. 지난 9년 동안 차를 타 본적이 없답니다. 돈이 한 푼도 없기 때문입니다. 걸어서 다니면 집에서 민들레국수집까지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걸린답니다. 새 신발을 드렸습니다. 길에서 주운 교통카드가 있다고 합니다. 만 원 어치 교통카드 충전을 해줬습니다.
영식 씨는 치아가 없어서 잇몸으로 식사를 합니다. 점심을 민들레 식구들과 함께 합니다. 첫 날이었습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접시에 꽃게무침을 가득 담습니다. 꽃게를 좋아하는 데 십 년 만에 먹어본다고 합니다. 가위와 젓가락을 이용해서 얼마나 맛있게 꽃게무침을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맛있다고 합니다. 영식 씨가 잠을 자는 곳에는 전기도 물도 불도 없어서 아무 것도 만들어서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합니다. 전에는 그림의 떡이었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면 언제든지 커피믹스를 타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점심은 민들레식구들과 함께 제대로 먹고, 저녁은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손님들에게 드리는 도시락을 먹고, 텔레비전도 좀 보다가 주안2동 빈집으로 자러 갑니다.
가난하게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가난이 함께 하는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을 것인가 돈을 믿을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항상 아슬아슬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첫째가 정부지원 받지 않는 것, 그 다음에 후원회 조직 안 만든다는 것, 그리고 프로그램 공모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부자들이 생색내면서 주는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7년을 버티면서 진짜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속이 새까맣게 타야합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을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겼을 때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가장 믿고 의지했던 교구의 모 신부에게 꼼짝없이 걸렸을 때, 가난을 택하는 것이 올가미에 벗어나는 길이었습니다. 어떤 사제는 '개가 웃을 일이다'라고 하지만 정말입니다. 하느님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창설하신 무아 방유룡 신부님은 정말로 계산을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집도 절도 없는 무일푼이신데도 수도회를 창설하셨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 것 같은 처지에서도 천막을 치고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 사람들 마음을 조이게 해서 그렇지 사실은 해 보면 아주 쉽습니다. 처음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 대접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쌀을 동네 어려운 분들에게 나눠주면 봉사자들이 얼마나 불평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것도 모자라는데 대책 없이 막 나눠준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이제는 민들레국수집에 쌀이 떨어질 것 같으면 빨리 동네 분들에게 나눠주라고 성화입니다. 이제는 한 포를 나누면 열 포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이런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필요한, 하느님이 없으면 못 사는 것. 이것을 가난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착한 것이 좋고 나누는 것이 좋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과 살면 참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손님들은 욕심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담배 한두 갑 만 있어도 사이좋게 나눠 피울 수 있습니다. 꽁초 하나 있어도 자기는 있으니까 없는 사람에게 주라고 양보합니다.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생각해서 하루에 두세 번 와서 식사하라고 해도 한 번만 오는 고집을 피웁니다. 가진 것이 없는데도 나눠먹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면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난이라는 것은 돈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맥과 학식에 목숨 걸지 않고 하느님이 하라는 대로 투신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가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이 세상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난하게 살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이걸 모릅니다.
가난하면 교양이 없고, 더럽고, 게으르다?
어느 노숙하는 손님은 여섯 달 동안 겨우 천 원을 써 봤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는 손님들은 돈이라곤 거의 없는 빈털터리가 대다수입니다. 돈이 생기리라고는 꿈도 꿀 수가 없이 살았습니다. 자판기 커피 한 잔 사 먹을 동전을 주우면 횡재했다고 행복해 합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독후감을 발표하고 받은 삼천 원을 아끼고 아껴서 삽니다. 그런데 갑자기 백만 원이 생기면 어쩔 줄을 모릅니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가난하게 배추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땅값이 올라서 졸부가 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갑자기 졸부가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도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억지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과 돈, 명예, 권력에 희망을 두는 것은 이처럼 아주 다른 겁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을 하면 너무 무정한 것인가? 우후죽순 무슨 무료급식소, 사지육신 멀쩡해도 노숙하면 밥을 먹인다는 것...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일을 할 수가 없는 육신의 장애, 늙은데다 홀로 산다든지 병들었다든지 고아라든지 합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무지 동의가 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싶은데 일할 곳이 없다? 정말일까?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해서가 아니고?" 자기는 민들레 국수집 밥이 제일 맛있어서 세 번을 와서 먹는데 멍청한 놈들은 한 번밖에 안 온다고 조롱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왜 멍청하게 하루에 한 번밖에 안 오는가 하면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먹어야 한다고 양보하는 사람들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하느님 닮은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마음들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어떤 기쁨이 있는가 하면 놀랍게도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정말 착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금광석과 같습니다. 광석에 황금함유율이 굉장히 높은 것과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착하게 살고 욕심 부리지 않고 가진 거 없어도 잘 나눠줍니다. 교양이 없다고 무시당하고 더럽다고, 게으르다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열심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돈보다 하느님 뜻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는 가장 쉬운 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