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는 덜하지만 오늘도 오전에는 비가 좀 뿌려댔습니다. 하늘을 보아하니 먹구름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아 일단 남쪽인 서귀포쪽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서둘러 나왔습니다. 최대한 부드럽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뭐라고 떠들어대도 반응하지 않고, 눈도 마주쳐가며 '널 존중해'식의 태도를 취하니 준이녀석 수월하게 말을 듣습니다. 씻지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했더니 기꺼이 샤워도 했고...
준이말대로 싸우지말고 뭐든 받아주려고 합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산 것도 아닌데, 녀석 사랑과 관심이 그리워 어깃장도 놓는 것도 있는데 지금은 저밖에 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습니다. 마음을 정리하고나니 준이는 그렇다쳐도 완이가 오늘 보여준 매너는 거의 90점! 이 녀석 전두엽 충전지수 갑자기 5% 수준을 보이며 희망을 갖게 합니다. 세로 도파 열심히 챙겼더니 그 효과가?
제주도는 먹구름 풍경도 멋드러져서, 제주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1115번 국도타고 가다 만난 장면에서 마음이 사로잡혀 사진에 담아보았는데 눈에 들어왔던 강렬한 암회색이 제대로 살지를 못했네요.
비가 오면 여미지식물원을, 비가 안오면 치유의 숲 정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치유의 숲 바로 전 '추억의 숲길'에서 마음이 멈추었습니다. 이미 시간은 오후 12시를 훌쩍 넘겼고, 코스가 어떻게 될런지 모르나 끌려들듯 추억의 숲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근사한 선택이었음을 멀지않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라산 낮은 지류 중에 하나일 듯한 이 숲길은 시대변천에도 먼세월 속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된 고색창연와 태고적 풍경 그대로 입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쥬라기공원이나 인디에나존스와 같은 영화 촬영지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쌓아졌다는 돌담은 수 백미터 길이로 무너짐없이 이끼를 잔뜩 머금고 있고 그 이끼들은 여기 숲의 여기저기 숱하게 누워있는 돌들에도 어김없이 퍼져있습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숲길은 상대적으로 사람들 발길이 많지는 않은지 헷갈리게 하는 기로점이 몇 개 있습니다. 좁은데다 바위들도 길들을 막아서니 친절한 등산로길 표시흔적들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공유림에 놓인 이 숲은 길을 벗어나면 길잃기 딱이겠지만 다 걸으면 5km가 훌쩍 넘는 긴 길이 입니다. 심하게 오르막 내리막도 거의 없어서 태균이와 함께 돌기 딱 좋은 코스이기도 합니다.
제주일부와 서귀포 쪽 해안은 모두 걸었으니 틈나는대로 한라산 접근 주변 탐방로들을 쭉 돌아보는 것도 겨울에는 아주 좋을 듯 합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다소 두렵기도 했지만 시작시점을 좀 앞당기면 될 듯 합니다. 고색 기운이 철철 넘치는 숲 속 행보를 제주도아니면 어디서 할 수 있으리오!
모든 코스를 돈 것도 아닌데 내려오니 오후 5시. 오늘은 서귀포 매일올레 야시장에 가서 놀 예정입니다. 여기 야시장이 무척 궁금했던 차라 자주 가볼만한 곳인지 추억의 숲에서 멀지않으니 저녁은 특별히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대중장소 소음에 극히 취약한 완이가 그런대로 즐기는 모습이라 이 점에서는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실감!
이 녀석 눈으로 보고 따라하는 모방행동은 수준급이 되서 준이랑 셋이서 셀카를 찍는데 놀랄 정도로 그 짧은 시간에 준이를 그대로 따라합니다. 거울 속에 자기 자신은 아직 인지하지 못하지만 셀카 속 자신과 주변인은 그래도 인지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난 며칠 야외활동에서 차트렁크를 자꾸 뒤져서, 벌의 성격으로 가방을 주질 않았더니 그 화살을 작렬하게 태균이에게 쏘아댔습니다. 준이방에 난입해서 옆에서 쑤시고 잔 다음날 준이몸에 꼭 할퀸 상처를 내놓더니 이번에는 언제 그랬는지 태균이에게까지 해놓았습니다. 얼굴부터 팔목, 손등 등 복수심이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감사'라는 타인배려감정은 갖기가 참 어렵지만 '화풀이'라는 복수감정은 갖기가 얼마나 쉬운지 인간의 원초적 뇌구조에 웃음이 나옵니다.
준이, 완이 모두 마음이 편해야 더 나아질 수 있겠구나 싶은 결론에 종일 최대한 목소리 낮추고 부드럽게, 존중해주는 태도를 보이자 녀석들 한결 성숙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준이방에 옆으로 세워두었던 침대를 끌어내 거실에 설치해주고 바닥을 완전 폭신하게 깐다음 커버를 씌웠습니다. 준이와 완이를 분리해주는 조치입니다. 침대는 싱글인데 완이가 자꾸 여길 쑤셔대고 소변을 싸대니 감당이 안되서 옆으로 치워놓고 바닥에 잠자리를 두 개해 주었는데도 여전히 완이의 침범이 너무 상습적입니다.
준이는 혼자 있는 게 필요하니 침대좋아하는 완이를 위해 거실에 설치해주고 잠들 때까지 제가 지켰습니다. 완이 집에 가는 날이 한달 반 정도 남았으니 지금은 이게 최선일 듯 합니다. 준이가 다른 공간으로 잠자리를 옮겨주면 좋지만 지금은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있던 자리 거기에서 조치를 하는 게 맞을 듯 합니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하루였습니다. 덩달아 태균이도 편한 얼굴이 되니 제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게 모든 것은 해결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는 비소식이 많아서 대체 야외활동을 한번 짜봐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세 친구의 환히 웃는 얼굴 사진이 많아서 덩달아 즐겁습니다.
그림이를 봐도 기분이 좋을 때 효과를 보임을 알고 있어도 정말 육아는 어렵고 발달장애는 예측불가일 때도 넘 많죠.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