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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고산 선생께서 "어부사시사"를 세상에 내놓으셨고 세월이 흘러 전국의 수험생들을 끊임없이 괴롭히셨는데 선생을 만나면 꼭 한번 따져 여쭙고 싶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쓰고자 하셨을 수많은 생각들 좀 짧게 쓰시지 왜 그렇게 길게 쓰셨냐고..."
"배를 세우거나, 띄우거나, 메거나 말거나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나라의 땅끝에서 먹물 윤선도 선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보따리 싸들고 가서 인사드린다
날씨는 덥고 아스팔트 위에 "강냉이를 올려놓으면 팝콘 된다"는 찜통 대구땅을 벗어나 광주 그리고 멀리 해남군 삼산리 목신마을에 내린다
태양의 뜨거운 사랑은 경상도, 전라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려 주시고, 꽃 피고 새 우는 좋은 날에도 사람구경하기 힘들다는 시골 동네, 이 불볕 더위에 "밖으로 다니면 쓰러진다"며 외출은 자제하란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니 어르신들 만나기는 더 힘든다
어르신들을 만나야 산 너머 올라가는 묵은 옛길이라도 있는지 확인할 텐데...
마을 안쪽으로 끝까지 올라와 산아래 조그만 목신 저수지 위에서 오래전 선너머 현산면으로 넘어갈 때 사용하던 모시재로 오르던 옛길을 찾아본다.
저수지 위 마지막 농장에서 무작정 계곡으로 오르면
수풀 사이로 오래전에 다니던 희미한 엿길이 있으나 수십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 거미줄과 잡목이 길을 막아선다.
모시재로 올라가는 길에 돌무더기가 몇 개 있었는데 무슨 용도인지 알길 없었으나 자세히 보면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모퉁이에만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삼산천과 현산천을 가르는 선은지맥길에 만날 수 있는 모시기재
마당 한구석이 답답하던 차에 주인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좋았을 의자와 테이블이 세월앞에 낡은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고
잡목이 다소 우거져 있지만 여름에는 다 이러하니 크게 불평할 곳은 못되고 지맥길 따라 서쪽으로 향한다.
조금 전에 올라왔던 목신마을과 들판 가운데 지난날 걸었던 삼산천
그 뒤로 남각산과 해남읍의 주산인 금강산이 보이는
오래전 두륜산 아래 대흥사의 범해선사께서 "해남은 뿌리요 금강산은 꽃이요 월출은 열매라"했는데
금강산은 해남의 주산으로 꽃인건 분명해 보인다
멀리 두륜산이고
가운데 산 정상은 고산 선생께서 경북 영덕 강구 고불봉 아래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해배되어 찾은 은거지인 금쇄동이며, 고산 윤선생의 묘가 있는 곳이라 계곡으로 내려가 찾아가 뵈야 할 곳이다.
선은지맥 245m 봉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산에
누가 찾아왔나 마빡만 조금 내밀고 있어
반갑기만 하고
이곳에서 다음봉까지 조금 더진행
지맥길 260봉에서 현산천 최장 발원지 찾아 아래로 내려가는데 거미란 녀석들이 뭘 잡겠다고 온 산에 그물을 쳤고 얼굴에 척척 감긴다.
현산천 원발원지는 이곳 인근의 만인리 체석장 뒷산인 수정봉이며 이곳 계곡과 길이는 3백 미터 정도 차이가 나는데 현산면을 지나 백방산 아래를 지나 두모항이 있는 우리나라 첫 방조인 백포 방조제까지 흘러가는 20km의 짧은 하천이다.
지나간 경로
최근에 비가 온 건지 안온건지
짧은 계곡이니 물이 있을 리 만무하고
내려가는 길에
묏선생께서 목욕한 곳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곳인데
나무 아래 좁은 틈에서 물이 나오긴 하는데
허리 굽혀 물 맛을 보려다 깜짝 놀란다.
조그만 꿈틀이 녀석이 자리 잡았는데 이 녀석도 너무 더우니 이곳에 자리 잡은 듯
산에서 이 녀석들을 만나면 혐오스럽다는 분들이 있어 어지간하면 사진에 담지 않지만 발원지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한 장 담는다
빼곡한 곳을 기어 들어가서
밖으로 빠져나오니 묵은 밭에 칡이 끝없이 반긴다
허리까지 자란 고사리와 빼곡하게 자란 칡덩굴을 100m가량 지나게 되는데 발아래 뭐가 있는지 모르니 답답해지고
지나온 곳은 오래전에 농사를 짓던 곳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칡이 무성하게 점령했다.
묵은 밭을 지나면 비포장의 임도길이 나타나는데 최근에 풀 작업을 했는지 깨끗한 모습이고,고산 윤선도 선생 묘(墓)나 선생께서 말년에 여러 건물을 짓고 살았다는 금쇄동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1km가량 떨어진 고산 선생께 문안 인사를 해야 하니 배낭은 길가에 벗어두고 올라가 본다.
임도길에 자리 잡은 보라색 도라지
고산 윤선도 선생과 부인 남원 윤 씨(尹氏)의 합장묘로 봉분이 꽤 크다
가운데 빛바랜 비석을 중심으로 좌, 우로 문인석이 시중들듯 서 있는데 비석의 글씨는 낡아있어 확인 가능한 글자만 살펴보면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현 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통정대부..."라 쓰여 있다.
남인이셨던 선생께서는 서인과 사사건건 대립하셨는데 특히 꼬장 송시열과 한치의 물러설 수 없는 논쟁을 벌였지만 탄핵을 밥 먹듯하셨던 고산 선생이시다
자연과 벗 삼아 살만하면 궁중(宮中)에서 오라 가라 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짝 저짝 가릴 것 없이 귀양 보냈으니 멀리 함경도 경원을 시작으로 부산 기장, 경상도 영덕 강구 고불봉 아래, 그리고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 복상기간을 3년으로 하느냐! 1년으로 하느냐! 하는(예송 논쟁) 문제로 전남 광양으로 유배된 것이 마지막이다
윤선생께서 허구한 날 귀양이라 20년 유배, 19년 자연 속에 은거하셨는데 다행히 조상이 호남 3대 부자로써 해남땅 절반이 조상들것이라 편하게 유배 생활을 하셨고 심심하면 벼슬하다 또 심심하면 귀양 가서 자연을 벗 삼았다.
조선시대 때 지식인 4천 명 중 700명 정도가 조선팔도로 유배를 갔다고 하니 유배를 다녀와야 목에 힘 좀 주던 시절 "까짓꺼 유배 다녀오지... 부인 이번에는 영덕 강구로 대게 잡으러 가야 하니 짐 좀 싸주시구려"라며 구르마 타고 기분 좋게 유배 떠나셨을 것 같으신 분이다.
참고로 조선시대 때 유배길은 사극처럼 궁둥짝 얼얼하게 얻어터지거나, 칼 목걸이 하나 걸고 천리길을 걸어가거나 구르마나 말 타고 하인 데리고 소풍 떠나듯 가는 경우도 많았으니 호남 3대 갑부였던 선생께서는 최소 제네시스급의 구르마 타고 유배 가면 가고 말면 말고 큰 걱정 안 하시고 늘 편안하게 삶을 사셨던 분이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많고 햇살 좋은 날
풍수를 모르지만 터는 두륜산에서 이어온 용맥(龍脈)이 한 바퀴 돌아가는 곳에 자리 잡았는데 지금은 좌. 청룡 우, 백호가 아닌 좌, 철탑 우, 철탑인 곳이다
어쨌거나 큰절로써 문안 인사를 드리며 옛 시절에 유배 생활을 하면서 선생처럼 보람차고 알차게 보내셨던 분들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예로 오래전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인가 "어부사시사"를 배울 때였던 것 같다.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에게 수업시간마다 옹알이를 시켜주셨고 그로 인해 외우지 못한 녀석들에게 몽둥이찜질을 하게 해 주셨기에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어부사시사 현시점에서 검색하지 않고 아는 문장이 있다면
"무심한 백구(갈매기)는 내 좃난가 제 좃난가...란 특별한 한 문장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고 보니 유배지에서 글을 쓰셨던 분들이 많은데 화순으로 유배 떠나 절명시를 남긴 정암 조광조, 강진에서 홍길동전을 구상했던 허균과 많은 책을 남긴 정약용, 자산어보를 남긴 흑산도의 정약전, 남해 노도섬에서 사시남정기, 구운몽을 쓴 김만중, 제주의 서귀포에서 세한도를 남긴 추사 선생까지 이분들이 유배가지 않았다면 한국 문학은 어찌 되었을 것이며 각종 시험은 무엇으로 문제를 채워서 수험생들을 괴롭혔을까
이분들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누구나 서울대는 무난하게 들어 갔을것 같다.
참고로 고산 선생은 보길도에 가셨지만 유배는 아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비석
해남에는 고산 선생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금쇄동은 두륜산에서 이어지는 선은지맥길인 병풍산 인근 수정동 , 문소동 이어 찾은 3번째 은거지로 경북 영덕 고불봉 아래로 유배 갔다 와서 찾은 곳으로 보인다.
지방도로 806번 도로에서 2km 올라오면 차량 통제하는 바리케이드가 있고 비포장길 걸어서 2km를 더 들어가야 금쇄동의 윤선생을 만날 수 있다.
길을 걸으며 역사를 배우고자 할 때 유배지나 생가 복원지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분들의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 직접 문안인사 드리는 게 최고 일 듯하다
이제 갈길도 멀고 날씨는 덥고 하니 금수저 선생을 뒤로하고 빠른 길을 찾아 내려갈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산소 주위로 고라니나 묏선생 출입을 막는 망이 쳐 저 있어 왔던 길로 올라간다.
참고로 이 무덤 자리는 당대 유명한 지관인 이의신이란 분이 자신이 묻힐 땅으로 잡아놓은 터였지만
고산 선생께서도 풍수에 일가견이 있어 말을 타고 금쇄동으로 가서 자신의 묘자리로 사용하려고 말뚝을 박아 묘자리로 표시하고 난 후에 지관인 이의신을 찾아가서 내가 오늘 좋은 곳에 묫자리를 봐둔 곳이 있는데 같이 가서 좋은 자린지 확인해 달라고 해서 얻은 명당이라고 한다.
지관이셨던 이의신께서 결국 포기한 곳에 윤선생 부부가 합장되었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길은 두 곳인데 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숲이 우거져 보이지 않아 왔던 길 따라 다시 1km를 내려간다.
임도길 내려와서 제각 앞에서
고산제각
허물어진 것을 다시 복원했는데 대문은 굳게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임도길은 며칠전에 예초기로 싹 밀어 버려 진행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나
안내 표시글에서 150미터 올라가면 윤선생 묘소로 올라가는 길인데 잡풀이 우거져 일반 사람들은 엄두가 안 날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
물은 매가리없이 흐르고
내려가는 길에 본 두륜산
지맥길의 병풍산
아직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깨끗하고
아직 민가를 만나지 못해서 그나마 깨끗한 물이며
발원지에서 금쇄동 계곡을 지나
첫 민가를 만나는 곳
현산면 구시리 도로가 팽나무
예전 같으면 저곳 나무그늘아래 평상이나 돗자리 깔고 쉬다가 갔을 테지만 인근에 사람 사는 집은 한 채뿐인데 그나마 거주하는지 모르겠다
민가를 만나면서 물은 조금씩 흐려지고
내려가야 할 곳
현산천 원발원지에서 흘러온 물
현산천 최장 발원지 금쇄동에서 흘러온 물과 병풍산 뒤쪽과 수정봉 인근인 체석장에서 흘러온 현산천이 만나는 곳
충청도 천안을 본관으로 하는 천안 전 씨(全氏) 13 손의 묘와 그 윗대 조상들의 산소로 보이는데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시맨트로 묫자리를 해둔곳을 지나는데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자식이 없는 경우로
나이 들어 조상님 산소 벌초가 신경 쓰여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는데 정작 본인은 또 어쩌나 싶다.
상구시 마을회관에 들러 물 보충하고
어르신 두 분이 계셨는데
"길 가르쳐주는 것과 물 주는 게 가장 큰 복을 가져다주신다"며 시원한 물 2병 주셨다
감사 인사드리고
구시 저수지에서 바다가 있는 두모항까지 안내지도
지도에서 보는 신방저수지는 연(蓮)이 빼곡하게 자라는데 제가 그동안 다녀본 수많은 저수지의 연잎들 중에서 단연 1등인데 수심이 깊으면 꽃이 피지 않는다
구시 저수지
그늘 없는 길이라 덥긴 덥고
도로가의 한우들
아스길
기온이 37도 정도이니 아스길 복사열까지 합치면 50도 넘을듯
완전 더움
현산면 고현리
도로가 잘 보이는 곳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보니 가게 안은 불은 꺼져있으나 주인아주머니께서 과자며 음료수는 판다고 한다
이 더위에 시원한 음료수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시원한 음료수 몇 병사 들고 나와 나무 그늘로 찾아간다.
나무 그늘아래에서 잠시 더위 식혀가며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그늘
여름이 익어도 너무 익는 듯
여름이 까맣게 탄다고 해야할듯하고
현기증 나기 좋은 날이다
신안의 특산품 굵은 왕소금 한입 털어 넣고
물 한잔 밀어 넣으며 땡볕을 이겨본다.
고현리의 비조산을 지나
땡볕 아래서 몸부림치다 말라죽은 지렁이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지난날 함안천을 걸으며 불볕더위에 쓰러질 뻔한 적이 있는데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하는 세상이니 내일 급하게 뛰지 않으려면 오늘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것 같다
좌측으로 성매산이고 우측은 백방산으로
한때는 옛사람들이 해남 북평면에서 땅끝지맥길에 만나는 닭골재를 지나 저곳 고다산성과 백방산성 사이 이곳으로 들어와 현산면 구시고개를 지나 해남읍으로 갔던 해양 수문(水門)역활과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퐁당 퐁당
도랑 한번 건너주고
임도길이나 잡풀이 있고
신방리 뒷산인 백방산
그 뒤로 달마산 자락이 길게 보이고
잡초 무성한 제방 아래로 흐릿한 물이 흐르지 못하니 고여있는 연못에 자라는 마름이 가득 자리잡았다
97미터 높이의 고다산(성매산)으로 고대의 고다산성이 길게 보인다
성매산과 백방산 사이로 현산천이 흐르고
옛날 해남읍의 관문 격인 고다산성과 함께 백방산성이 마주 보며 있다
신방교에서
신방교 옆에 자리하는 비석
백방산(百房山 197m)이며 산 위에 백개의 방(房)이 있어 그렇다는 전설과 옛 백제시대 때 백방사(百房寺)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 백방산 정상으로 백방산성(百房山城)이 있다
산 우측에는 낙화암(落花巖)이라는 절벽이 보이는데 고려 때 중국 남경으로 사신으로 떠난 님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하여 그리운정 하나 가슴에 남겨두고 꽃잎처럼 떨어져 낙화암이라 부른다
백 년이 흘러도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곳인 낙화암은 여인들의 구슬픈 울음소리 또한 그치지 않았을 자리로 보인다
신방지 싱그럽고 푸르게
연이 가득 피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모습의 연(蓮)은 없고
약 20만 평 규모인데 30년 전에 연을 심었으나 물이 깊어 연꽃이 피지 않는다고 하는 저수지로 지금까지 본 연(蓮) 저수지로 국내 최대의 저수지가 아닐까 싶다
전남 무안의 회산 백련지가 10만 평 정도 규모로 동양최대라 했는데 이곳의 신방저수지는 백련지에 비해 2배가량 더 큰데 이 넓은 저수지에 연꽃이 모두 핀다면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지 상상도 못 하겠다.
신방지와 굳은 절개의 망부산(望夫山) 그리고 푸른 풍경
망부산은 백방산과 지척에 있으며 고려 여인들이 중국 연경으로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굳은 절개를 지키다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하는데 망부석과 백방산을 오고 가며 님 생각하다 낙화암에서 그리움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국내 간척지 1호이며 예전에는 멀리 보이는 백방산 아래 신방마을까지 바다였다고 한다
두륜산이 보이고
백방산과 두륜산
예전에 1925년 전에는 바다였던 곳으로 10㎢ 넓이가 간척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 찍어 놓은 백포방조제 안내글인데 방조제가 생기기 전의 지도를 토대로 네이버 지도 넓이로 확인하니 유역면적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77번 국도인 백포해안도로 아래를 지나와서
백포 방조제가 앞에 보이고
100m의 백포 배수갑문
멀리 달마산이 길게 이어지고
최장 발원지부터 백포 방조제까지 20km의 길을 끝내며 오늘은 고산 선생과 백방산, 그리고 국내 처음이라는 백포 방조제를 생각하며 걸었던 길이다.
두모항에 도착하니 해남으로 나가는 마지막 마을버스는 30분 전에 갔다고 마을 주민이 말씀해 주셨고 잠시 자리에 앉아서 예전에 이곳은 어떠했는지 이야기도 듣는다
바다? 육지?
우리나라 갯벌 면적은 2만 5천㎢이며 더이상 난개발로 갯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21년 서천,고창,신안,보성ㅡ순천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제되었는데 얼마전에 여수,고흥,무안.서산 갯벌이 2차로 등제되어 남해바다 여수,순천,고흥,보성,신안,무안,고창,서천,서산갯벌까지 이어진다
건너편은 해남군 화산면 방향
물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물 2리터로 씻고
카카오 택시를 불러 해남으로 향한다
더워도 너무 더운 날
그렇지만 대구에 비하면 한결 시원한동네
며칠 뒤에 다시 한번 더 해남땅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첫댓글 두모항까지 선은지맥이 우측을 호위하고 있군요.
윤선도의 묘도 들리시고..
카카오맵에는 만인지 쪽 병풍산 아래로 되어 있는데,
최장 발원지는 모시재쪽이라 그쪽으로 오르셨나봅니다.
더운날 수고 많았습니다...
오우~
지도를 보며 확인 해주셨구요
관심으로 봐주셨어 감사 드립니다
모시기재를 찾아 오르면 지맥길에 빨리 오를수 있어 좋았고 성하의 계절에 산길 어디던 다 똑 같이 숲이 우거져 있기에 발아래만 조심하면 되죠
금수저 윤선생과 예전 바다에서 해남으로 들어오던 해양관문격이던 백방산성과 성매산성도 배울수 있었습니다.
이번주 정맥길 조심해서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성난 수풀 사이에서 한 줌의 물을 보는 것은 마치 어릴 적 소풍 때 보물찾기 게임에서 숨어 있는 선물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아닐까 싶네요.
덕분에 잊었던 *지국총어사와*도 다시 한번 떠 올립니다.
*안빈낙도*라고 배운 것 같은데 금수저 분이었다니 약간 실망입니다.
배 고픈데 낙이 생기겠습니까.^^
휴대폰으로 보니 우리 뱌미는 숨은 그림 찾기 입니다. 더운 날 수고하셨습니다.
지국총 어사와
학창시절에 배웠던게 생각나죠
윤선도 선생은 해남에서 4대조까지 갑부로 살았는데 유배 가더라도 편하게 살았던것 같습니다.
신안에서 즐거운 시간 감사했으며 다음에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더운날 지국총 지국총~ㅎㅎㅎ
무슨 게임 노래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방장님 글을 보니 고산 윤선도 선생은
정말로 어째 일부러 유배를 자처하지 않았나도 싶네요.
유배 끝에 명작이 탄생하니^^
해남은 뿌리요 금강산은 꽃이요 월출은 열매라.
범해선사의 말씀 가만히 읊조려보며.
낙화암에, 망부석...
백방산과 두륜산 인근 국내간척지1호,
사랑스런 갯벌 모습보니 또 해안으로 떠나고 싶어지네요.
현산천 강길 걸음 고생 많으셨습니다.
해안길도 재미있지만 강행도 배울점이 많아 재미있구요
내일부터 이틀일정으로 서천에 다녀올까 하는데
입추 덕을 볼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글 감사 드리고 압해도 후기 기다리다 목 빠지겠습니다
고산선생님을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엔 관심이 별루 없어서요!ㅋㅋ
더운날 압해도 전에 다녀오신건지 후에 다녀오신건지요?ㅎㅎ 작년 더위를 오롯이 국토를 왔다리갔다리 종단하시더니~ 올해는 서해쪽으로 가셨습니다.ㅎㅎ
방장님도 뱀을 보시구! 음침해서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날이 더위 발원지에 있었나 봅니다. 지방소멸이라 거기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ㅠㅠ
강릉은 비가 옵니다. 영남쪽은 가뭄이라는데~ 작년 우리동네가 생각이 나구요!
더운날 몸 조심하십시오!
위에 댓글보니 서천에 가시다구요! 다음주말에 가는데~ㅠㅠ
늘 느끼는거지만 방장님의 후기는 독보적이네요.
분명 강행기인데 산을 타고 내려와 하천을 따라가는 내용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그리고 삶의 모습까지 폭 넓게 그려주시니...
얼마전 대구 간송미술관에 "추사의 그림수업" 이라는 특별전에 다녀왔습니다. 추사가 유배때 그렸다는 많은 그림을 보고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생각지 못했는데 방장님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와 윤선도의 묘만으로도 당시 그분의 마음과 모습까지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후기에 나오는 어부사시사는 여름편 2수에 있는 내용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