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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1월 29일 토요일
[(녹)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에서 본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통치권과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5-27
15 나 다니엘은 정신이 산란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환시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16 그래서 나는 그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다가가서,
이 모든 일에 관한 진실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그 뜻을 나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17 “그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다.
1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19 나는 다른 모든 짐승과 달리 몹시 끔찍하게 생겼고,
쇠 이빨과 청동 발톱을 가졌으며,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는 네 번째 짐승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20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있던 열 개의 뿔과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에 관한 진실도 알고 싶었다.
그 다른 뿔 앞에서 뿔 세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른 뿔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더 커 보였다.
21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22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된 것이다.
23 그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네 번째 짐승은 이 세상에 생겨날 네 번째 나라이다.
그 어느 나라와도 다른 이 나라는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으스러뜨리리라.
24 뿔 열 개는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임금이다.
그들 다음으로 또 다른 임금이 일어날 터인데
앞의 임금들과 다른 이 임금은 그 가운데에서 세 임금을 쓰러뜨리리라.
25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 년, 이 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
26 그러나 법정이 열리고 그는 통치권을 빼앗겨 완전히 패망하고 멸망하리라.
27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21,34). 그리고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21,36)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이라는 말은 우리가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듯이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연습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신앙인이 사랑을 실천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말과 행동을 삼가는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의 노력일 뿐만 아니라 믿는 이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가꾸고 지켜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서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이는 ‘늘 깨어 기도하여라.’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고여 있지 않고 흐르며 출렁이는 물이라야 썩지 않고 바다까지 흘러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은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샘을 벗어난 그 힘으로 계곡을 겁 없이 흘러내려야 하고, 계곡에서 쏟아져 내린 힘으로 구불구불 강줄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을 새롭게 할 기회인 ‘대림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과 새롭게 만납시다.(김동희 모세 신부)
또 다시 한해의 끝자락에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또 다시 교회 전례력으로 우리는 한해의 끝자락에 서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은총의 선물인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할 때입니다.
마지막 날에 저희에게 건네시는 주님의 메시지도 오늘따라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바오로 사도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합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 12-13)
우리가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 마치 섬광처럼 다가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준비해야겠습니다. 지나온 한 해 동안의 내 삶을 진지하게 한번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진흙탕처럼 흐려진 영혼의 상태를 진정시켜야겠습니다.
아직도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맡겨드려야겠습니다. 좀 더 영적이고 좀 더 단정하고 품위 있는 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좀 더 자주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돌아보니 올해도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헛되고 의미없이 보냈습니다. 내 인생 여정에서 앞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금쪽 같은 시간들을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는 데 소모했습니다. 모든 것 하느님 자비하신 손길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곰곰히 성찰해보니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한치 앞만 내다보게 되니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듭니다.
남아있는 시간들, 남아있는 인생을 주님 권고에 따라 살아가야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깨어있음은 언제나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일정 시간은 잠을 자야 하는 인간이기에 항상 깨어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그러나 잠드는 순간, 잠자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 역시 주님께서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그 역시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 기도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에도 굳건하고 기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공지능의 대표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을 인공지능 사업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이 인공지능 사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인공지능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건이 4가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한국은 자체로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과 네이버’는 한국이 오랫동안 구축한 플랫폼입니다. 이런 플랫폼을 통해서 막대한 양의 정보를 이미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은 정보 처리능력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입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 국가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배터리입니다. 인공지능의 정보는 배터리가 있어야 저장할 수 있는데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배터리 생산 국가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인공지능을 산업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장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생산 공장이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경제가 더욱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 단계를 보면, 마치 인간의 진화를 보는 듯합니다. 처음 인공지능은 ‘햄버거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햄버거를 그릴’ 수 있었고, 그다음에는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으며, 이제는 ‘직접 햄버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손을 빌리던 기술이, 이제는 인간을 돕는 비서가 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존재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일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는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은 단순한 위치의 질문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묻는 말입니다. “카인아,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은 관계의 책임을 묻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들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드는, 내면의 거울과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정보를 알고, 더 빠르게 답을 내놓는다 해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영혼이 묻고, 믿음이 답하는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지식의 시대’를 열어주었지만, 신앙은 여전히 ‘지혜의 시대’를 열어줍니다. 지식은 알고 이해하는 힘이지만, 지혜는 사랑하고 나누는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처럼, 깨어 있는 신앙인은 받은 은총을 세상과 나누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신앙의 눈을 뜨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희망의 눈을 뜨고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나누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러기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행복입니다. 신앙인이라는 말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몸을 팔았던 여인도, 눈이 멀었던 소경도, 나병환자도, 하혈하던 여인도, 중풍병자도, 듣지 못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서 참된 행복을 느꼈고, 영원한 삶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결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오늘 하루, 우리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기를, 그리고 하느님 앞에 늘 깨어 기도하며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오늘이 맞이할 그날이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루카 21,34ㄷ-35)
어둠 가운데
빛을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빛이다
불신 가운데
믿음을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믿음이다
체념 가운데
희망을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희망이다
미움 가운데
사랑을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사랑이다
홀로 가운데
함께를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함께이다
탐욕 가운데
평화를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평화이다
죽임 가운데
살림을 사는
그대에게
오늘이
맞이할 그날
살림이다
오늘의 성인
성 쿠트베르토 메인(Saint Cuthbert Mayne)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영국(UK)
활동년도 : 1544-1577년
같은이름 : 구트베르토, 구트베르투스, 구트베르트,커스버트, 쿠트베르투스,쿠트베르트, 쿳베르토, 쿳베르투스
영국 데번셔(Devonshire)의 율스턴(Youlston)에서 태어나 삼촌에 의해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성장한 성 쿠트베르투스 메인(Cuthbertus Mayne, 또는 쿠트베르토 메인)은 옥스퍼드(Oxford)의 성 요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1570년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두에(Douai)로 가서 수학한 후 사제품을 받고 1575년경에 영국으로 돌아와 콘월(Cornwall)에서 성 요한 페인(Joannes Payne, 4월 2일)과 함께 은밀히 가톨릭 사제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년 만에 체포되어 1577년 11월 29일 교수형과 사지가 찢기는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두에에서 성직수업을 받은 첫 번째 영국인이자, 두에에 세워진 영국 신학교 출신 중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그래서 10월 25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세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모든 성인들 축일
1223년 11월 29일 교황 호노리오 3세는 작은 형제회의 회칙을 인준하였다.
그리하여 이날을 세라핌 수도회 모든 성인의 날로 정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권고5)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감수하신 착한 목자를 바라봅시다.
주님의 양들은 고통과 박해, 모욕과 굶주림, 연약함과 유혹, 그리고 다른 갖가지 시련 가운데 주님을 따랐기에, 주님한테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업적을 이룩한 분들은 성인들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업적들을 그저 이야기만 하면서 영광과 영예를 받기 원하니,이것은 하느님의 종들인 우리에게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성프란치스코의 영적권고6)
1209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회칙을 인노첸시오3세께서 구두 인준하며 회개의 설교를 할 수 있는 탁발수도회가 탄생되었다.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프란치스칸 강좌에서1.17. 이런 획기적인 사건들 중 하나는 1208년 2월 2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에 맞추어 일어났다. 프란치스코는 미사 시간 중에 복음 말씀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지팡이나 지갑도 없이 사도들을 맨발로 설교하러 파견하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순회자 혹은 순례자가 되어, 그들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설교해야 했다.
프란치스코는 너무 기뻤다.
그것이 바로 그가 오랫동안 찾아왔던 바였던 것이다.
그는 그가 들은 것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려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와, 신발, 그리고 은수자의 허리띠를 벗어버리고, 타우(T) 모양으로 된 겉옷을 입고 허리에는 허름한 띠를 매고 맨발로 나갔다.
그는 회개의 은수자 삶에서 사도적 설교가의 삶으로 자신의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이것이 바로 장차 프란치스칸 운동을 도래케 한 이상이었다. 1.18. 프란치스코가 뽀르찌운꿀라에서 첫 번째 형제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바로 몇 주 후의 일이었다.
그들 중 첫 번째 사람은 아시시의 부유한 젊은이인 Quintavalle의 베르나르도였다.
그는 프란치스코를 자기 집에 초대하여 (우연히도 그의 집은 아직도 아시시에 남아 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밤에 프란치스코는 그 친구의 집에서 묵었는데, 베르나르도는 프란치스코가 밤새도록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렸다.
그 다음날 아침 베르나르도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프란치스코와 함께 그는 아시시 광장에 있는 성 니꼴라오 성당으로 가서, 함께 하느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복음서를 들춰보았다.
세 번이나 책을 펼쳤는데, 다음의 구절들이 나왔다: “너희가 완전한 자가 되려거든 가서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서 보물을 갖게 될 것인데, 그런 다음 나를 따르라”(마태 19.21); “여행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루가 9,3);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루가 9,23). 이 성서 말씀들은 프란치스코가 시작한 복음 운동에 있어서의 삶과 회칙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같은 해인 1208년 4월에 2명의 형제가 더 프란치스코와 베르나르도의 삶에 가담하였는데, 그들은 대성당 참사위원이었던 Pietro Cattani와 Egidio 혹은 Giles(영어식 이름)였다.
이날은 4월 23일이었다. 그들이 합류하자마자 그들은 둘씩 짝지어 설교 여행을 떠났다.
프란치스코와 Giles(에지디오)는 Ancona의 Marches(마르키아 혹은 마르케)로 갔다. 1.19. 이 작은 형제 공동체는 그 숫자가 꾸준하게 늘어갔다. 1208년 가을에 형제들은 리에티 계곡으로 설교하러 갔는데, 그들은 Poggio Bustone라는 불리는 작은 마을에 들르게 되었고 프란치스코는 거기에서 “buon giorno, buon gente”(좋은 하루, 좋은 사람들) 이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인사하였다.
프란치스코는 몰두하여 기도하는 시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느낌을 심오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1.20. 1209년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위해 간단한 회칙을 써 주었다. 이것은 주로 앞에서 인용한 복음 내용과 비슷한 복음 구절들로 구성되었다.
그는 대담히도 동료들을 데리고 로마에 가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을 만나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인가를 청하기로 결심하였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용감한 행동이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그런 평신도 설교가 그룹에 대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사실 교황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단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설교하였고, 제도 교회의 성직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측면에서 복음적 가치들을 살았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비윤리적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것에 대해서와 추문이 될 만한 그들의 예식들에 대해서 비난하였다.
당시 많은 이단파들이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 남부 지방과 이태리 북부 지방에 많이 있었다.
이들 중 카티리파 이단이 가장 위험한 그룹이었다.
마치 평신도가 교회의 제도에 대항하여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통찰력이 뛰어난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였다.
그는 San Paolo의 Giovanni Colonna 추기경이 데리고 온 이 거지 그룹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후 프란치스코가 이단에 빠지지 않고 평신도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순수한 개혁을 시도하는 데 있어서 도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전통에 의하면 교황이 꿈에서 교회를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프란치스코이다.) 그래서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의 회칙과 생활을 구두로 인준해 주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형제들을 작은 형제들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형제들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진정한 형제들로서,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minores”로서 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1.21.
12명의 형제들로 구성된 이들은 기쁨에 넘쳐 아시시로 되돌아 왔다.
그들은 Orte에서 잠시 머문 후, 뽀르찌운꿀라에서 약간 떨어진 Rivo Torto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몇 달간 극도의 가난 속에서 머물렀다.
한 번은 황제로 선출된 Otto 4세 황제가 교황으로부터 왕관을 받기 위해 가는 중에 가까운 길을 지나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이 때 형제 한 사람을 보내어 황제의 영광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대담하게 알리게 했다.
이 힘없는 형제는 황제 경비대에 의해 곧 저지를 받았으며 황제의 경비대는 이 형제가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이 형제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것에 대해서 매우 기뻐하였다.
어떤 농부가 형제들이 머물던 그 척박한 장소를 사용하기를 무례하게 요구했을 때에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은 Rivo Torto를 떠나 뽀르찌운꿀라로 돌아갔다.
복자 프레데리코(Frederick)
활동년도 : +1329년
신분 : 증거자
지역 :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같은 이름 : 프레데리꼬, 프레데리꾸스, 프레데리쿠스, 프레드릭, 프리데릭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라티스본(Ratisbon, 오늘날의 레겐스부르크)에서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프레데리쿠스(Fredericus, 또는 프레데리코)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수도원에서 그는 주로 목수 일을 하며 땔감 나무를 준비하는 직책을 맡았지만, 놀라운 신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법을 깨달았다. 그는 천사의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9년에 승인되었다.
복자 디오니시오 (Dionysius)
활동년도 : 1600-1638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복자 레뎀토 (Redempt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638년
같은이름 : 레뎀또, 레뎀뚜스, 레뎀투스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옹플뢰르(Honfleur)에서 베르틀로(Berthelot)가의 10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¹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는 피에르(Pierr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2살부터 선원 생활을 하던 피에르 베르틀로는 커서 프랑스 선박의 선장이자 상인으로서 활동하던 중 1635년 인도의 고아(Goa)에서 카르멜회의 한 원장을 만나 그 길로 카르멜회에 입회하여 디오니시우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서약을 한 후에 포르투갈계 부원장이 대사를 태우고 가는 배의 조타수로 일할 것을 요청받고 수마트라(Sumatra)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자 카르멜회 장상은 그에게 사제품을 주고 사목자로서 활동하도록 하였다.
이때 그는 평수사인 ²레뎀투스(Redemptus)와 함께 항해하게 되었는데, 레뎀투스의 세속명은 토마스 로드리게스 다 쿠나(Thomas Rodriquez da Cunha)였다.
레뎀투스는 카르멜회에 입회하기 전에는 인도의 군인으로 활동했었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아친(Achin)에 당도하였을 때 수마트라인들이 대사와 그의 부하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들은 거의 모두 학살당했는데,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끝까지 고수한 ¹디오니시우스는 코끼리에 의해 짓밟혀 순교하였고, ²레뎀투스 역시 살해되었다.
탄생의 ¹디오니시우스와 십자가의 ²레뎀투스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